요즘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몰라도 전통적으로 독일과 이탈리아는 분명 수비
에 역점을 둔 축구를 구사해 왔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적어도 두 팀
은 수비력에 있어서 만큼은 공히 세계 최정상급의 위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그러나 다분히 수비 중심적인 두 팀이 맞붙는다고 해서 경기 내용까지 루스
해지거나 지루한 축구로 일관한 것은 아닙니다. 양 팀이 수비적인 축구를
구사해 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뒤를 든든히 받친 연후에 공격에 나서는 일
종의 선수비 후공격의 패턴에 충실해 왔다는 것일 뿐, 단지 무승부 만을 염
두에 둔 소극적인 전략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사실 브라질 같이 특별한 팀을 빼놓고 대부분의 유럽팀들이 위험부담을 감
수해 가면서까지 적극적인 공격 전술을 택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물론
네덜란드나 스페인같이 다분히 공격에 비중을 둔 전술을 즐겨 취하는 유럽
팀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대부분의 유럽팀들은 굵직한 대회에 참
가하면 독일이나 이탈리아 처럼 수비를 두텁게 세우는 실리 지향적인 축구
를 구사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과거 그들이 맞붙었었던 축구가 그다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 자신들의 색깔에 맞춰 자신들의 컬러를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개성있는 축구를 구사해 왔기 때문입니다.
과거 이탈리아는 대부분의 선수들을 미드필드 아래로 내려 촘촘한 그물 수비
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수비 위주의 팀이라고
해서 90분 동안 내내 수비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상대의 헛점을 송곳 처럼
파고드는 특유의 빠른 역공 능력이 없었다면 그들의 수비축구는 자칫 무미건
조한 축구로 평가절하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탈리아 축구는 무엇보다 선수와 선수 간의 간격이 좁으므로 일단 상대의
볼을 차단했을 때, 앞 선에 위치한 선수들에게 볼을 연결하는 것이 용이한
까닭에 자연스레 역습이 가능했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후방에서 올라
온 볼을 최전방에서 확실하게 결정지어줄 특출한 골잡이들을 보유해 왔다는
점 또한 이탈리아의 자랑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수비력이 강했던 것은 후방의 포백이나 스리백 라인의 수비력이
철통 같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미드필더들까지 포함하여 상대적으로 많은
숫자를 수비에 가담시키므로 그 만큼 상대의 공격 공간이 줄어든 데서 연유
한 측면이 컸다고 보여집니다.
상대팀의 입장에서는 공격할 공간이 상대의 수비 숫자로 인해 극히 제한될
수 밖에 없었던 관계로 자연 이탈리아의 수비력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
는 상황이었습니다. 카테나치오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상대의 공격 숫자보
다 많은 수비력을 동원하여 상대의 공격을 가로막은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과거 이탈리아 축구를 놓고, 그들이 이중 삼중의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던 것도 바로 이러한 숫자를 통한 수비력의 증강에서 비롯된 것
입니다.
그러나 독일축구는 같은 수비축구라 하더라도 그 내용이나 형태에 있어서 이
탈리아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여 왔습니다. 우선 독일은 이탈리아처럼 선수들
이 자기 진영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비교적 넓게 퍼져
기동력과 패스웍 위주로 경기를 풀어가는 대형을 취해 왔습니다.
수비의 형태에 있어서도 독일은 이탈리아처럼 여러명이 볼을 잡은 상대 선수
를 에워싸는 협력 수비의 형태를 취했다기 보다는 각자가 자신이 맡은 구역
을 철저히 책임지고 그것이 돌파되면 다른 선수가 또다른 위치에서 상대의
공격을 커버해내는 철저한 조직 축구의 틀을 견지해 왔습니다.
이런 까닭에 독일은 일찍부터 조직력과 기동력을 생명으로 하는 축구가 고유
의 컬러로 자리 잡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선수들이 넓게 퍼져서 패싱
을 통해 경기를 풀어가며 넓은 공간을 오가려면 기동력은 물론 자연히 선수
개개인이 각자의 위치에서 백병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전투력, 즉 몸싸움
능력이 필수 조건으로 요구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독일축구에 포그츠, 슈바르첸벡, K 훼스터, 칼츠, 브리겔, 부흐발트
같은 대인방어와 상대와의 몸싸움에 능한 탁월한 수비수들이 다수 배출된 것
은 이러한 독일축구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축구가 뒤에 잔뜩 도사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 뛰쳐 나오
며 순식간에 찬스를 잡아나가는 유형이라면, 독일축구는 일정 간격을 유지하
며 공수의 밸런스를 가다듬은 연후에 패싱과 기동력을 발판으로 보다 체계적
으로 공격에 나서는 유형이었습니다.
결국 이탈리아 수비축구가 비교적 "다수의 힘"에 의존한 것이라면, 독일의
수비축구는 철저하게 "조직의 힘"에 의존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어찌보면 양국의 이렇듯 판이한 축구 양식은 열정적인 이탈리아의 감성과 냉
철하게 사물을 판단해가는 독일의 이성에서 비롯된 차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독일과 이탈리아는 고유의 컬러를 그대로 살리는 축구를 펼쳐왔기에
대표적인 수비축구임에도 그리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덕분에 팬들은 이
들이 펼치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흥미진진하게 지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70년 멕시코 월드컵 준결승전과 82년 스페인 월드컵
결승 경기인 것입니다. 비록 두 경기 모두 이탈리아의 극적인 승리로 귀결되
었지만, 경기의 승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양 팀은 자신들이 지닌 컬러를 살
려 절대절명의 승부처에서 자신들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으며 월드컵사의 손꼽
히는 명승부를 일구어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
는 것입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브라질과 함께 월드컵의 역사를 대표해 온 이른바 손꼽히
는 전통 강호들입니다. 20일 펼쳐지는 양 팀의 경기에서도 승패를 떠나 월드
컵사를 빛낸 전통의 라이벌다운 명승부가 펼쳐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이 몰랐던 독일축구를 좀 더 많이 알게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안타깝다면 지금의 독일은 많은 특성을 잃어버린것 같습니다. 월드컵 기간때만 해도 잉글랜드와의 월드컵 예선전으로 독일에 대한 인식이 그저 그런 팀으로 굳어버렸지만 이탈리아와의 경기 많은 기대를 해봅니다.
첫댓글 잘 지적해주셨네여... 흠... 다만 독일에 흠이 있다면.. 재빠른 역습이 힘들다는 것이지여...
좋은 글입니다. 90년 월드컵 우승 당시까지만 해도 서독은 기동력이 좋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중앙 미드필드에서의 압박과 철통같은 대인방어를 가능하게 했고, 마테우스라는 걸출한 커맨드 센터와 유기적인 패싱은 공격에서도 굉장한 화려함을 자랑했었죠.
글 잘쓰십니다 .. 왜 다음은 추천이 없는거야
좋은 분석이십니다.. 독일하면 기동력과 조직력인데.. 요즘의 이미지때문에 예전부터 거북이팀이었던걸로 평가를-_-;;;
독일이 농구팀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더군요..-_-; 키만 크다면서
독일은 수비축구가 아니라 공격형축구인데..
↑님.. 독일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수비축구란 생각이 강하게 남습니다.. 아시아에겐 강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요..
독일축구가 좋은 이유중에 하나가 까부는(?) 플레이어가 없고 어찌보면 정적인 축구라 다소 루즈한면은 있지만 선굵은 플레이와 루메니게님이 말씀하신 조직력으로 이뤄지는 스타일이 맘에 듭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이 몰랐던 독일축구를 좀 더 많이 알게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안타깝다면 지금의 독일은 많은 특성을 잃어버린것 같습니다. 월드컵 기간때만 해도 잉글랜드와의 월드컵 예선전으로 독일에 대한 인식이 그저 그런 팀으로 굳어버렸지만 이탈리아와의 경기 많은 기대를 해봅니다.
대표팀의 전통이기도 한데 일단 독일은 한 골을 넣으면 어지간해선 실점을 쉽게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상대의 허를 찔러 추가골을 낚아내죠. 이태리와도 매우 유사한데 그 대표적인 경기로는 86년 월드컵 4강전이죠. 브레메가 선쉬골을 뽑고 나서
슈마허를 정점으로 야콥스,푀어스터, 한스페터 브리겔로 이어지는 타이트한 수비로 플라티니와 기레세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 그 후 마가트의 허를 찌르는 패스로 낚아낸 루돌프의 추가골.
역으로 독일이 당한 것이 98년 월드컵 8강전이죠. 라디치의 혀를 내둘 정도의 선방에 막히다 수비수 퇴장까지 겹친 기습 선실점. 공격 강화를 위해 마샬과 키르스텐을 투입한 상황에 수비력 약화로 대량실점까지 허용한 어처구니없는 경기였습니다.
독일축구는 전통적으로 피지컬 중심의 조직력축구죠..저도 왠지 그 덤덤한 축구 스타일이 좋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