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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正浩의 大東地志를 파헤치니, 대륙(大陸) 땅이다 [제3편]
[대동지지(大東地志) 제주(濟州) 土産物은 중원(中原)과 南亞細亞 땅의 것]
2024년 03월 31일
○ “김정호(金正浩)”, 그분이 만들었다는 “대동지지(大東地志)”를 보면 : 철저(徹底)하게 ‘한반도(韓半島)를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영토(領土)로 만들어 놓았다’ 아주 치밀(緻密)하고 철저(徹底)하게 말이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대해 ‘제1편과 2편’에서 살펴보았다.
➨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와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의 대부분(大部分)의 여러 지리지(地理志)에서 오늘날 우리가 이해(理解)하기 어렵고, 이해(理解)될 수 없는 부분(部分)이 바로 「“고려사(高麗史) 지리지(地理志)”의 서두(序頭)에 있는 “수만리(數萬里)”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는 ‘고려(高麗)의 전(全) 강역(疆域)’을 그대로 ‘바톤 터치’를 했고, 바뀐 것은, 역성(易姓)으로 『왕씨(王氏)가 이씨(李氏)로 바뀌었다』라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大東地志)” 몇 부분(部分)을 간략(簡略)하게 살펴보자.
(1) 大東地志 卷一 / 京都 [京都] : 〈本百濟慰禮城。 始祖十四年遷于漢山, 歷三百七十五年〉라고 하였는데,
‘한산(漢山)과 백제(百濟)’에 관한 이야기는 조선사(朝鮮史)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登場)하는 감초(甘草)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죄송(罪悚)하게도, 아주 미안(未安)한 말이지만 : “한산(漢山)”이라는 산(山)은 존재(存在)하지 않는다.
➊ “한산(漢山)”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山)을 말하는 건가?
➋ “북한산(北漢山)”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山)을 말하는 건가?
➌ “남한산(南漢山)”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山)을 말하는 건가?
본래(本來)의 한산(漢山)은, “한산(漢山)”이 있고, 그 북(北)쪽에 북한산(北漢山)이 있으며, 또 한산(漢山)의 남(南)쪽에 남한산(南漢山)이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한산(漢山)”이라는 산(山)은 없고, “북한산(北漢山)과 남한산(南漢山)”만이 있다는 것인가? 도대체 뭔 설명(說明)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만 길게 늘어놓았는데… …아주 간단(簡單)한 문제(問題)다. 즉(卽), 『“한산(漢山)”이라는 고대(古代)로부터 내려오는 산(山)의 이름(名)은 없다』라는 이야기다.
➨ 남한산(南漢山) : 해발고도(海拔高度) 480m [혹은, 일장산(日長山)·주장산(晝長山)]
➨ 북한산(北漢山) : 해발고도(海拔高度) 836m [혹은, 한산(漢山)·부아악(負兒嶽)·횡악(橫嶽)·북한산군(北漢山郡)·북한산주(北漢山州)·삼각산(三角山)·북한산(北漢山)]
여기서 우리가 ‘원전(原典) 원문(原文)’을 보면 : “북한산군(北漢山郡)이나, 북한산주(北漢山州)”라는 말은, 곧 북한산(北漢山) 주변(周邊)의 땅을 묶어 “군(郡)”을 둔 것이고, 또 “주(州)”를 설치(設置)한 것이다. 그러면 이때도 북한산(北漢山)이라고 했다는 증거(證據)다. 그런데 오늘날의 설명(說明)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북한산군(北漢山郡)’은 무엇이고 ‘북한산주(北漢山州)’는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아래의 “위키백과” 설명(說明)을 보면 참으로 가관(可觀)이다.
➨➨➨ 북한산(北漢山) [출처(出處) : 위키백과] : 북한산(北漢山)은 서울특별시 강북구·도봉구·은평구·성북구·종로구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양주시·의정부시의 경계에 있는 높이 835.6m(2013년 6월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산으로, ➨ 이름은 조선 후기시대 때 한성의 북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 【필자(筆者)의 의문(疑問) 제기(提起) : 그렇다면 고구려(高駒驪)의 ‘북한산군(北漢山郡)’은 어디에서 나온 이름이며, 신라(新羅)의 ‘북한산주(北漢山州)’는 어디에서부터 출현(出現)하는 것이냐?】
북한산은 1억 7천만 년 전에 형성되었으며, 최초로는 마한의 땅으로 삼국시대 백제에서는 한산(漢山)이라 불렸고 인수봉은 부아악(負兒嶽)이라 불렸으며 시조 비류와 온조 형제가 올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31년 이후 횡악(橫嶽)이라고도 불렸다. 475년 고구려가 이곳을 정벌하여 ‘북한산군(北漢山郡)’이라 칭한다. 신라가 이곳을 정벌하고(553년) 난 후 557년에 일시적으로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설치하였다. 이때 ➨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졌다.
➨ 【필자(筆者)의 의문(疑問) 제기(提起) : 신라(新羅) 때는 부아산(負兒山)이라고 했다면 “북한산진흥왕순수비(北漢山眞興王巡狩碑)”가 아니라 “부아산진흥왕순수비(負兒山眞興王巡狩碑)”가 딱 맞는 말이 아니더냐! 무슨 얼어 죽을 “북한산진흥왕순수비(北漢山眞興王 巡狩碑)”란 말이냐? 진실(眞實)로 “북한산진흥왕순수비(北漢山眞興王 巡狩碑)”라고 금석문(金石文)에 각인(刻印)되어 있다면 : 이는 일제(日帝)가 만들었다는 가장 확실(確實)한 증거(證據)다. 왜냐하면 신라(新羅) 때는 북한산(北漢山)이라는 산(山)의 이름 자체가 없었고, 부아산(負兒山)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건 팩트[Fact]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는 부아산(負兒山)이라고도 불렀고, 993년 이후 때 부아봉(현 인수봉 810.5m), 중봉(현 백운대 835.6m), 국망봉(현 만경대 800.6m, 국토지리정보원) 세 봉우리가 모여 있어 삼각(三角)처럼 보여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려왔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고려시대에 측성한 중흥산성을 보수축하여 북한산성을 축성(1711년)한 이후 한성의 북쪽이라는 의미에서 북한산(北漢山)이란 산명을 별칭으로 사용해 오다가, 일제강점기 이후로 점차 북한산(北漢山)이란 산명을 정식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1983년에 대한민국의 국립공원 북한산으로 지정되었고, 2010년에는 북한산 둘레길 코스가 개방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북한산(北漢山)]
➨ 【필자(筆者)의 의문(疑問) 제기(提起) : ➊ 결국(結局) ‘한성(漢城)의 북(北)’쪽에 있는 산(山)이라서 18세기(世紀)에 들어서 ‘북한산(北漢山)’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별칭(別稱)으로 말이다. 그러다가 일제(日帝) 식민지(植民地) 때부터 ‘북한산(北漢山)’이라는 이름이 정식(定式) 명칭(名稱)이 되었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일제(日帝) 식민지(植民地) 이전(以前)에는 북한산(北漢山)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라는 뜻이 된다.
➋ 그렇다면 : 여기서 고구려(高駒驪)의 “북한산군(北漢山郡)”은 어떻게 탄생(誕生)되었으며, 신라(新羅)의 ‘북한산주(北漢山州)’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이 땅에는 “한산(漢山)”이라는 산은 없었다는 뜻이자, 일제(日帝) 때에 그 이름이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기막힌 이야기다.】
➨➨➨ 〈옛 ‘고전(古典) 원문(原文)’에 “한산(漢山)”이 등장(登場)하다 보니 : 여기에 맞춰 북한산(北漢山)과 남한산(南漢山)을 만들어 놓고 기록(記錄)에 따라 북한산(北漢山)도 한산(漢山)이 되고 남한산(南漢山)도 한산(漢山)이 되는 희극(喜劇)을 연출(演出)하고 있는 것이다.〉
지리지(地理志)에서조차 “한산(漢山)”의 정확(正確)한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한반도(韓半島) “한산(漢山)”은, 근세(近世)의 “짝퉁”이라는 강력(强力)한 증거(證據)다. 최소한(最小限) 2,000년이 넘는 세월(歲月) 동안 한민족(韓民族)의 얼과 혼(魂)이 살아있는 산(山)의 위치(位置)조차 알지 못한다면 : 이건 ‘짝퉁’이란 것이고, 한민족(韓民族)을 ‘개돼지’ 취급(取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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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都城 : 〈太祖五年築都城, 徵西北面安州以南民夫十一萬九千, 始于正月, 停于二月。 至秋又徵江原、慶尙、全羅三道民夫七萬九千, 始于八月, 終于九月。 使平壤伯趙浚等監築。 周圍九千九百七十五步。 十一月移都。 世宗三年改築都城。 發諸道丁夫三十萬。 石築。 周圍一萬四千九百三十五步。 以周尺量之, 爲八萬九千六百十尺; 以里作之, 爲四十一里一百七十五步。 高四十尺二寸。 女堞四千六百六十四, 雉城六處, 曲城一處, 城廊七十五所。 〉
• 대동지지(大東地志) : 〈世宗 3年, 改築都城 : 周圍一萬四千九百三十五步[14,935步]〉라고 하였는데, 이 숫자 즉(卽) 「14,935 步」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출처불명(出處不明)이라는 것이다. 아래를 보자.
➊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도성(都城) : 都城周回九千九百七十五步[9,975步] 〉: “1보(步)”는 ‘1.386’m이니, 「9,975보(步) : ‘13.825’km」를 말하는 것이다. 임자년(壬子年), ‘AD 1,432年’에 완성되었다. 약 33리(里)다.
➋ 〈新增東國輿地勝覽 京城 : 京城。我太祖五年,用石築之。世宗四年改修。周九千九百七十五步[9,975步),高四十尺二寸。〉 : 중종(中宗) 25년(AD 1,530년) 완성(完城) : 역시(亦是) 주(周) : 9,975보(步)라고 하였다.
• 9,975보(步)는, 13.825㎞, 약 33리(里)다. 높이(高)는, 주척(周尺)으로는 9.70m 고려(高麗), 조선(朝鮮)의 ‘척(尺)’으로는 ‘13m’를 나타낸다.
➌ 〈東國輿地志 : 我太祖康獻王五年,用石築之。世宗四年改修。周三十三里七十五步,高四丈。〉라고 하였으니, “33리 75보라면 : 약 13.8∼14.0km”를 말하는 것이다. 유형원(柳馨遠)에 의하여 “AD 1,656”년 경에 만들어진 것이다.
➍ 〈성시전도(城市全圖)【AD 1,792年 四月】: 「9,970보(步) : ‘13.818’km」〉를 말하는 것이다. 즉(卽) 한성(漢城) 도성(都城)의 길이(周)를 말하는 것이다. ➨ 9,970보(步)는, 13.818㎞, 약 33리(里)다.
➠➠➠ 위의 글 “➊+➋+➌+➍”에서 말하는 것은, 태조(太祖) 5년에 쌓고, 또 세종(世宗) 4년에 개수(改修)했는데, 이때 성(城) 주위가 “9,970∼9,975보(步)”라고 하였으니 약(約) 13.7 ∼ 14㎞를 말하는 것이고, 약 “33”리(里)를 말하는 것이다.
➠➠➠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大東地志)”는 14,935보(步)라고 하였는데, 이는 4,960보(步)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문제(問題)가 된다. 「4,960보는 약 7㎞에 달하는 거리(距離)」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는, 도성(都城)을 개축(改築)했던 당사자(當事者)의 기록(記錄)이므로 “이것이 잘못되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곧 신뢰(信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곧 ‘대동지지(大東地志)’의 것은, “출처(出處) 불분명(不分明)”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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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大東地志 卷一 / 京都 漢城府 / 沿革 : 百濟始祖元年 漢成帝鴻嘉三年癸卯。 建都于此, 稱慰禮城, 古址在惠化門外。 詳廣州。 十四年徙都漢山。 今廣州古邑。 近肖古王二十六年徙都于此, 稱北漢山。 以廣州別稱南漢山, 猶言南北京。
➊ 한성부(漢城府) 기록(記錄)으로 보면 : 「14년에 한산(漢山)으로 도읍을 옮겼다」라고 하면서 “지금의 광주(廣州) 고읍(古邑)”이라고 한 것으로 볼 때 : 「남한산(南漢山)을 한산(漢山)이라고 했다」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한산(漢山)을 기준(基準)했다”라면, 남한산(南漢山)은, 광주(廣州) 고읍(古邑)의 남(南)쪽에 있어야 옳은 말이 된다.
➋ 그런데, 〈근초고왕(近肖古王) 26년에 도성(都城)을 옮겼는데, 이곳을 가리켜 북한산(北漢山)이라고 칭했다【삼국사기(三國史記) 曰 : 二十六年, 移 都 漢 山】는 것이다. 그리고는 광주(廣州)의 별칭을 남한산(南漢山)이라고 하고, 이래서 남경(南京), 북경(北京)이 되었다.【近肖古王二十六年徙都于此, 稱北漢山。 以廣州別稱南漢山, 猶言南北京。】〉라는 이야기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한산(漢山)으로 도읍을 옮겼다”라고 했지, “그 한산(漢山)을 북한산(北漢山)이라고 했다”라는 말은 없다.
【大東地志, 漢城府 : 《百濟始祖元年 漢成帝鴻嘉三年癸卯。 建都于此, 稱慰禮城, 古址在惠化門外。 詳廣州。 十四年徙都漢山。 今廣州古邑。 近肖古王二十六年徙都于此, 稱北漢山。 以廣州別稱南漢山, 猶言南北京。》】
이 설명(說明)대로라면 : 백제(百濟)는 한산(漢山)으로 옮겼다가 다시 북한산(北漢山)으로 또 옮겨갔다는 것이고, 이래서 남경(南京)이요, 북경(北京)이라고 했다는 것인데,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지리지(地理志)라고 아니할 수 없는 출처불명(出處不明)의 지리지(地理志)임은 분명(分明)해 보인다.
【『近肖古王二十六年徙都于此, 稱北漢山 : 근초고왕(近肖古王) 26년에 이곳으로 서울을 옮겼다. 북한산이라고 칭했다』라고 하였으니, 백제(百濟) 근초고왕(近肖古王) 때 북한산(北漢山)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헌데 무슨 얼어 죽을 18세기에 한성(漢城)의 북(北)쪽에 있는 산(山)이라고 하여 북한산(北漢山)이라고 했다는 건가! 이런 해설(解說)을 하는‘사가(史家) 새0’들은 국민(國民)들의 뇌(腦) 수준(水準)을 닭 머리 정도(程度)로 취급(取扱)하는 건가? 이런 우라질… …사가(史家) 새0들!】
(4) 府號 : 京兆。 : “경조(京兆)”란 전한(前漢) 때의 장안(長安)을 “경조(京兆)”라고 했고, 직할통치구역(直轄統治區域)인 ‘기보(畿輔)=기내(畿內)’ 일천(一千) 리(里) 땅을 ‘[경조지방(京兆地方)’이라고 했다.
경조(京兆) 또는 경사(京師)는 경기(京畿)와 같은 뜻이지만 왕조(王朝)마다 다르게 이를 적용(適用)한 것은 바로 본기(本紀)나 지리지(地理志) 기록(記錄)을 보면 알 수 있다.
(5) 戶口 : 〈戶四萬五千七百零, 口二十八萬三千二百零〉 : 「서력(西曆) 1,792년 4월 23일까지도 도성(都城)의 호수(戶數)는 “8만” 여가(餘家)」라고 주군(主君) 앞에서 신하(臣下)들이 찬사(讚辭)를 늘어놓았다고 하였다.
뭔 4만 5천 호(戶)?
(6) 山水 : “한산(漢山)”이라는 산(山)의 이름조차 없다.
〈漢江。 東國方言, 稱大曰漢, 猶言大江也。〉 : 그럼 한강(漢江)보다도 더 큰 압록강(鴨綠江)은 대강(大江)이 아니고 뭔가? 한(漢)이라는 한자(漢字)를 동국(東國) 방언(方言)으로 “크다”라는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漢”자는 본시(本是) “크다”라는 뜻을 내포(內包)하고 있다. 방언(方言)이 아니고 말이다.
(7) 形勝 : 北鎭華山, 有龍盤虎踞之勢, 南以漢江爲襟帶。 左控關嶺, 右環渤海。 其形勝甲於東方, 誠山河百二之地。 : 우측에는 발해(渤海)에 둘러싸여 있다.
발해(渤海)가 어디에 있는 바다를 말하는 건가? 도성(都城)의 서(西)쪽 황해(黃海)는 있어도, 발해(渤海)는 없다! 뭔 발해(渤海) 타령(打令)?
(8) 圓覺寺。 舊名興福寺。 在寬仁坊大寺洞。 世祖七年刱建。 寺有安平大君所造白塔, 雕鏤奇巧, 未及成而安平敗。 有金守溫所撰碑。 中宗七年撤之。
도성(都城)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14층 석탑(石塔)에 대해서 : “석탑(石塔)이 있다”라는 말만 기록(記錄)했을 뿐 14층 이야기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다.
(9) 邑號 : 中京, 《道詵記》。 松都, 高宗時稱。 西京。 《松京志》。
언제부터 한성(漢城)이 중경(中京)이 된 것인가? 그렇다면 “북경(北京)은? 남경(南京)은?” 반대(反對) 개념(槪念)으로 “서경(西京)은? 중경(中京)은 동경(東京)은?”
한성(漢城)을 서경(西京)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중경(中京)은 어디고, 동경(東京)은 어딘가? 정말 답답한 기록(記錄)이요, 답답한 이 글의 저자(著者)다.
‘한반도(韓半島)’라는 반도(半島) 땅, ‘동서(東西)는 짧고, 남북(南北)은 몇 배(倍)의 긴 지형(地形)을 가진 땅’에서는 : “서경(西京), 중경(中京), 동경(東京)”이라는 것은 배치(配置)할 수 없는 일이다.
가능(可能)한 것은, “북경(北京), 중경(中京), 남경(南京)”이라는 방위(方位)와 도성(都城)의 배치(配置)일 뿐이다.
(10) 開城府 : 城池 : 內城。 : 卽勃禦塹城。 高麗稱皇城。 凡二千六百間, 環列十三門。 外城。 :高麗顯宗二十年, 築開京羅城。 先是平章事姜邯贊以京城無城郭, 請築之。 王命參知政事李可道定城基, 周二萬九千七百步, 立門凡二十二。 門號曰: 崇仁, 宣旗, 保定, 光德, 德山, 會賓, 仙溪, 泰安, 弘仁, 乾德, 保泰, 宣義, 狻猊, 定平, 仙巖, 慈安, 彰義, 迎陽, 安和, 成道, 會昌, 安定。 ○ 用丁夫三十萬四千四百人。 【필자(筆者) 주(注) : 22개소(個所)의 문(門) 이름 중에서 ‘산예(狻猊)’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산예(狻猊)’란 사자(獅子)의 탈을 쓰고 춤을 추는 가면극(假面劇)을 말한다. 인도(印度)로부터 유래(由來)했다고 전(傳)해진다.】 위의 것은, 전(前) 왕조(王朝)였던 “고려(高麗) 도성(都城)”을 말하는 것이다.
➊ 「내성(內城)」은, 황성(皇城)을 말하는 것인데, 내성(內城)은 해자(垓字)를 만들어 성(城)을 쌓았다(塹城)는 것이고, 2천6백 간(間)으로, 13개의 문(門)이 있었다고 하였다. 「외성(外城)」은, 나성(羅城)을 말하는 것으로, 길이가 무려(無慮) 29,700보(步)【41.164㎞ : 100리(里)가 넘는다】요, 문(門)이 22개소(個所)가 있었다고 하였다.
또 『‘내성(內城)인 황성(皇城)’은 ‘해자(垓字)’를 가진 성(城)으로 만들었다‘【塹城】라는 것이니, 이러한 흔적(痕迹)은 있느냐?』 하는 것도 흥미(興味)를 끄는 대목이다.
➋ 조선왕조(朝鮮王朝)는, 겨우 9,975보(保)【대동지지(大東地志) : 周圍 14,935步】문(門) 8개소(個所)일 뿐이다.
➌ 이와 같은 기록(記錄)으로 보면 : “개성(開城)=개경(開京)=송경(松京)”은 황성(皇城)이나 외성(外城)의 규모(規模)로 보면 :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세 배(倍)” 정도(程度)의 규모(規模)를 가졌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황성(皇城)은 해자(垓字)를 만들고 성(城)을 쌓았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성(羅城)과 황성(皇城)‘에 대한 정황(情況)은, 반도(半島) 땅을 다 헤집고 다녀도 흔적(痕迹)조차 찾을 수 없다.
(11) 大東地志 卷二 / 京畿道 江華府 : 形勝 : 東北環江, 西南環海。 右接兩西, 左控三南。 土地沃饒, 魚鹽富繁。 島嶼絡繹, 襟抱固密, 爲京師之咽喉。 府號 江都, 高麗時稱。 沁州。
강화도(江華島) : 〈동(東)쪽과 북(北)쪽은 강(江)에 둘러싸여 있고, 서(西)쪽과 남(南)쪽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우측(右側)으로는 양서(兩西)와 접하여 있고, 좌측(左側)으로는 삼남(三南)을 당긴다. 중략(中略), 이곳은 경사(京師)의 인후(咽喉)다〉라고 하였는데 바로 전(前) 도성(都城) 편에서는 ‘경조(京兆)’라고 하였다.
여기서 강화도(江華島)의 지세(地勢)는 : ‘우접양서(右接兩西)’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며,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또 ‘좌공삼남(左控三南)’이란 무엇을 뜻하며, 어디를 말하는 건가?
‘양서(兩西)’라면 : ‘관서(關西) 또는 해서(海西)’를 말하는 건가? 그곳은 강화도(江華島)의 북(北)쪽이요,
‘삼남(三南)’이란 남(南)쪽의 ‘3’도를 말하는 것으로 ‘충청도(忠淸道)•전라도(全羅道)•경상도(慶尙道)’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곳과 강화도(江華島)와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땅이다. 무슨 얼어 죽을… …강화도를 설명(說明)하면서 이러한 기록(記錄)을 남겼다는 희극(戲劇)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13) 大東地志 卷十二 / 全羅道 濟州 / 形勝
➠ 위의 한반도(韓半島) 남해(南海) 가운데에 있는 제주도(濟州島)를 중심(中心)으로 동서남북(東西南北) 형세(形勢)를 알아보자.
➊ 북(北)쪽은 바다를 건너 전라도(全羅道) 땅에 닿고, ➋ 동(東)쪽으로는 멀리에 일본(日本)의 규슈 서(西)쪽 해안가에 닿고, ➌ 남(南)쪽은 망망대해(茫茫大海)요, ➍서(西)쪽은 강소성(江蘇省)의 중부(中部) 해안가에 닿는다.
아래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말하는 바와 비교(比較)를 해보자.
➡ 大東地志 卷十二 / 全羅道 濟州 / 形勝 : 《東控日本, 西直江浙, 南望琉球, 北接全羅。 : 제주(濟州)의 형승(形勝)은, 동(東)쪽으로 일본(日本)을 제어하고, 서(西)쪽으로는 곧바로 강절(江浙)이며, 남(南)쪽은 유구(流求)가 바라보며, 북(北)쪽으로는 전라(全羅)와 접(接)했다》하고 하였는데,
➊ 「북(北)쪽으로는 전라(全羅)와 접(接)했다」라는 말은 : 오늘날의 한반도(韓半島)와 제주도(濟州島)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본토(本土)와 제주도(濟州島)와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주도(濟州島) 편을 보면 : 〈北 枕 巨 海 : 북쪽으로 큰 바다를 베개 베고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형세(形勢)를 “接”이라는 한자(漢字)를 사용(使用)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接”자를 사용(使用)했다면 : 「전라도(全羅道)와 제주도(濟州島)는 뭍으로 이어져 있었다」라는 뜻이 된다. 오늘날의 한반도(韓半島) ‘지세(地勢)=형세(形勢)’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例)를 들어 : 「해남도(海南島)와 뇌주반도(雷州半島)는, 서로 바라본다(相望) 또는 그 거리(距里)가 18km 기량 떨어져 있어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곳에서는 “접(接)”을 사용(使用)해도 무방(無妨)하리라 생각이 든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 〈距海南館頭梁海路七百里 : 해남(海南)의 객사(客舍) 두량(頭梁)에서 해로(海路)로 700리 떨어져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해로(海路) 700리를 “접(接)했다”라고 기록(記錄)한다?
➋ 「동(東)쪽으로 일본을 제어한다」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것인데, 제주(濟州)에서 동(東)쪽으로는 망망대해(茫茫大海)로 7 백리(百里) 이상(以上) 떨어져 있어 사실(事實) 동(東)쪽으로 일본(日本)에 닿는다는 이야기도 민망(憫惘)한 설명(說明)이 된다.
➌ 「남(南)쪽은 ‘유구(流求)=오키나와’를 바라본다」라는 말 역시(亦是) 적절(適切)한 표현(表現)이 아니다. 여기서 “望 자(字)를 썼다면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라는 뜻이 분명(分明)하다. 그러나 “제주(濟州)와 유구(流求)”는 ‘1 천리(千里) 이상(以上)’ 떨어져 있어 망망대해(茫茫大海)라는 표현(表現)이 가장 적절(適切)하다.
반도(半島) 제주(濟州)와 ‘유구(流求)=오키나와’는 아주 먼, 망망대해(茫茫大海)를 가야 하는 이국(異國)의 땅이다.
➍ 「서(西)쪽은 곧바로 강절(江浙)이다」라 하였으니, ‘장강(長江)과 절강(浙江)’ 땅에 닿는다는 뜻이나, 실제(實際)로는 서남방(西南方)에 가깝다. 서(西)쪽은 곧바로 강소성(江蘇省) 중부(中部)의 해안가에 닿는다는 말이 올바른 것이다.
➡ 家家橘柚, 處處驊騮。 地方褊小, 不能自王。 古則若周之越裳, 今則猶漢之儋崖。 地瘠民貧, 惟以海産、木道經紀謀生。 : 가가호호(家家戶戶)가 귤(橘)과 유자(柚子)가 있으며, 준마(駿馬)와 월따말【털빛이 붉고 갈기가 검은 말】이 이곳저곳에 노닌다. 땅이 좁고 작으니 스스로 왕(王)이 될 수 없다. 옛 주(周) 때의 월상(越裳)과 같고, 오히려 한(漢)나라의 담애(儋崖)와 같다.
➊ 월상(越裳) : 尚書大傳·歸禾:「交趾之南,有越裳國。周公居懾六年,制禮作樂,天下和平,越裳以三象重九譯而獻白雉曰:道路悠遠,山川阻深恐使之不通,故九譯而朝」 古今注:「周公致太平,越裳氏重譯來獻,使者迷其歸路,周公賜軿車五乘,皆為司南(車)之制。」라고 하였으니, 월상(越裳)은 오늘날의 베트남 남부지방일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➋ 담애(儋崖) : ‘담이(儋耳), 주애(朱崖)’를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해남도(海南島)를 일컫는다고 설명(說明)하고 있으나, 전한(前漢) 때의 거리(距離)로 보면 메콩강【Mekong River】 하류(下流)에 해당(該當)된다. 【전회(前回)에 이미 설명(說明), 카페[Cafe]에 게재(揭載)되어 있음. 참고(參考)하세요】
➌ ‘한반도(韓半島) 제주(濟州)’를 「옛 월상(越裳)이나 담이(儋耳), 주애(朱崖)의 땅」과 비교(比較)를 한 것인데, 이곳에도 ‘귤(橘)과 유자(柚)’가 풍년을 이루는 곳일까? 한반도(韓半島)의 제주(濟州)는, 옛 귤(橘)의 생산지(生産地)가 아니었다는 것은 과학적(科學的)으로 입증(立證)이 된다.
「제주도(濟州島)」는, 〈‘월상(越裳), 담이(儋耳), 주애(朱崖)’와 함께 주변(周邊)에 있어야 이러한 설명(說明)을 충족(充足)시킬 수 있다. 원사(元史) 탐라(耽羅) 편과 일본(日本) 편을 보면 바로 교지(交趾)와 근접(近接)해 있는 곳에 탐라(耽羅)가 있었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한반도(韓半島) 지도(地圖)를 만들어 놓고, 지세(地勢)는 전혀 다른 땅을, 토산물(土産物) 또한 전혀 다른 땅의 것을 가져와 차용(借用), 복사(複寫)한 것은, ‘지도(地圖)를 제작(製作)했다’라는 것을 스스로 부정(否定)케 하는 것이다. 아래의 것들을 보면 확실(確實)해진다.
(14) 大東地志 卷十二 / 全羅道 濟州 / 토산(土産)
➡ 土産 (1) : 山稻, 黍, 稷, 粟, 大豆, 小豆, 大麥, 小麥, 蕎麥, 菉豆, 馬, 牛, 黑、黃、斑數種。 角甚美, 可爲觥。 麂子, ➠➠➠ 糜鹿, 惟産此州。 皮細靭。 羊, 羔, 猪, 獐, 貍, 香鼠, 獾, 海獺, 地獺, 蟹, 鰒, 石決明, 黃蛤, 海衣, 牛毛, 藿, 烏賊魚, 銀口魚, 玉頭魚, 古刀魚, 鯊魚, 刀魚, 行魚, 文魚, 蠙珠。 貝, 玳瑁, 鸚鵡螺。 右三種, 出牛島及大靜蓋波島。 橘, 有金橘、山橘、洞庭橘、倭橘、靑橘五種。 柑, 有黃柑、乳柑數種。 榧子, 梔子, 栗。 有赤栗、加時栗數種。 ○ 右諸種果, 俱出果園, 園皆築墻。
토산(土産) : 산도(山稻 : 밭벼), 기장(黍), 직(稷 : 피), 속(粟 : 조), 대두(大豆), 소두(小豆 : 팥), 대맥(大麥 : 보리), 소맥(小麥 : 밀), 교맥(蕎麥 : 메밀), 녹두(菉豆), 말(馬), 소(牛)【검은 소, 누런 소, 얼룩소는 뿔이 아주 아름답고, 뿔잔을 만들 수 있다】, 궤자(麂子 : 노루), ➨➨➨ 미록(麋鹿)【유일하게 이 주(州)에서 산출되는데, 가죽이 가늘고 질기다】, 양(羊), 양(羔), 저(猪 : 돼지), 장(獐 : 노루), 리(貍 : 삵, 살쾡이), 향서(香鼠 : 사향쥐), 환(獾 : 오소리), 해달(海獺), 지달(地獺 : 水獺), 해(蟹 : 게), 복(鰒 : 전복), 석결명(石決明), 황합(黃蛤), 해의(海衣 : 김), 우모(牛毛), 곽(藿 : 香草), 오적어(烏賊魚 : 오징어), 은구어(銀口魚), 옥두어(玉頭魚), 고도어(古刀魚), 사어(鯊魚 : 沙魚), 도어(刀魚 : 갈치), 행어(行魚), 문어(文魚), 빈주(蠙珠 : 眞珠), 패(貝 : 조개), 대모【玳瑁 : 熱帶, 亞熱帶에 사는 바다거북이】, 앵무라(鸚鵡螺 : 앵무소라)【우측(右側)의 세 종(種)은. 우도(牛島)와 대정(大靜)의 개파도(蓋波島)에서 나온다】, 귤(橘)【금귤(金橘), 산귤(山橘), 동정귤(洞庭橘), 왜귤(倭橘), 청귤(靑橘)의 다섯 종이 있다】, 감(柑)【황감(黃柑), 유감(乳柑) 등 여러 종(種)이 있다】, 비자(榧子), 치자(梔子), 율(栗 : 밤)【붉은 밤, 이 시각으로 보면 여러 종(種)이 있다】.
➡ 위에서 말하는 것은, 오늘날의 반도(半島) 제주(濟州)에서 산출(産出)된다고 했을 때, 제주도(濟州島)는, “한민족(韓民族)에게 하늘이 내려준 천혜(天惠)의 지지(之地)”라고 해야 마땅한 땅이다. 아래에 열거(列擧)한 몇 가지 종류(種類)들은, 19세기(世紀) 반도(半島) 제주도(濟州島) 땅에서 산출(産出)될 수 없었던 것들이다.
➠➠➠【‘제주(濟州) 토산물(土産物)’에 대해서는 우리 카페【Cafe : 문무의 조선사 해설】에 자세(仔細)한 내용(內容)이 이미 게재(揭載)되어 있으므로 참고(參考)하시면 됩니다.】
이러한 산물(産物)들이 산출(産出)될 수 있었던 곳은 “아열대(亞熱帶)와 열대(熱帶) 기후대(氣候帶)”의 땅에서 산출(産出)되는 토산물(土産物)이다.
➡➡➡ 중요(重要)한 것은, 〈“발로 걷고, 뛰며, 달리며 팔도강산(八道江山)을 수차례씩 다니며 한반도(韓半島) 지도(地圖)를 만들었다”라는 사람이 “그 땅의 지리지(地理志) 속에서는 전혀 다른 땅의 이야기를 소설(小說)처럼 기록(記錄)해 놓았다”라는 점이다. 이것을 보면 짜깁기한 것이 확실(確實)한 것이고, 이건 왜곡(歪曲), 조작(造作)이 아니고는 불가능(不可能)한 일이다.〉
➊ 소(牛) 【黑、黃、斑數種。 角甚美, 可爲觥。 검은 소, 누런 소, 얼룩소는 뿔이 아주 아름답고, 뿔잔을 만들 수 있다】: ‘제주도(濟州島)에 소(牛)가 많이 산출(産出)된다’라는 이야기는, 기록(記錄)은 많은데, 그 흔적(痕迹), 고증(考證)할 수 있는 사료(史料)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제주도(濟州島)에서 동정귤(洞庭橘)이나 왜귤(倭橘)이 나고, 대모(玳瑁)나 앵무(鸚鵡)조개가 난다』라는 말과 같이, 너무 허무맹랑(虛無孟浪)한 이야기다. 도대체 왜 이런 기록(記錄)들이 오늘날의 과학시대(科學時代)에도 통용(通用)되고 역사해설(歷史解說)로 인정(認定)될 수 있는지를 전혀 이해(理解) 못하겠다는 것이다.
• 제주도(濟州島)가 아열대(亞熱帶) 또는 열대지방(熱帶地方)에 있는 섬(島)인가? 아주 간단(簡單)하고 단순(單純)한 문제(問題)임에도 누구도 이에 대해 이의(異議)를 제기(提起)하지 않는다. 당연(當然)한 것처럼 여기는 풍토(風土)를 보면 : 우리 사회(社會)가 왜 이 모양이 되어가는지를 미뤄 짐작(斟酌)할 수 있는 것이다.
➠➠➠ 〈거짓(假)이 판을 치고, 거짓(假)이 진실(眞實)을 덮고, 거짓(假)이 진실(眞實)인 냥 행세(行世)하는 사회(社會)는, 결코 공정(公正)하지 못하며, 정의(正義)롭지 못하고, 불평등(不平等) 한 사회(社會)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社會)가 바로 이 모양(模樣)이다.
➋ 「미록(麋鹿)」【유일하게 이 주(州)에서 산출되는데, 가죽이 가늘고 질기다】: 인터넷에서 “미록(麋鹿)”을 검색해 보면 : 대부분(大部分) 오늘날의 「동정호(洞庭湖) 주변의 늪지대에서 살아가는 동물(動物)이라고 하였다. 미록(麋鹿)은, 중국(中國)에서 서식(棲息)하는 사슴으로 200만에서 300만 년의 역사를 가진 “중국(中國) 특유(特有)의 멸종위기(滅種危機) 희귀동물(稀貴動物)”이다」라고 설명(說明)하고 있었다.
➨➨➨ 〈미록(麋鹿)【유일하게 이 주(州)에서 산출되는데, 가죽이 가늘고 질기다】〉라고 한 것을 보면 : “제주(濟州)”에서만 유일(唯一)하게 자생(自生)하고 있는 동물(動物)이라는 것인데, 이러한 “제주(濟州)”가 어떻게 바다 가운데에 떠 있는 “제주도(濟州島)”의 토산(土産)이 될 수 있겠는가! “제주(濟州)”에서만 산출(産出)된다고 친절(親切)하게 설명(說明)해주고 있잖은가!
곧 “제주(濟州)”라는 고을은 : 「장강(長江)의 동정호(洞庭湖)로부터 그 하류(河流) 주변일대(周邊一帶)에 있었다」라는 알 수 있는 것이다. 대륙(大陸)의 장강하류(長江下流) 주변(周邊)에 “제주(濟州)”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確認)해 주고 있다. 고전(古典) 원전(原典)에서는 : 바로 “강좌(江左)”지방으로, “옛 백제(百濟) 땅”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미록(麋鹿)”은 『이곳의 유일(唯一)한 토산(土産)으로, 세계(世界) 유일(唯一) 토산(土産), 서식지(棲息地)』라고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제주도(濟州島)와 털끝만큼도 관계없는 이야기다.
… 미록(麋鹿) : 사불상(四不像) [이미지 출처(出處) -네이버, 두산백과]
➠ 麋鹿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 〈麋鹿(學名:Elaphurus davidianus)是一種鹿科麋鹿屬的動物,中國古代稱之為麈,別稱四不像,西方也稱之為大衛神父鹿(英語:Père David's deer)。其體長達兩米,重300公斤。常和馴鹿混淆。➡麋鹿原生於中國長江中下游的沼澤地帶,以青草或水草為食,有時也到海中銜食海藻。曾經廣布於東亞地區。後來由於自然氣候變化和人為因素,在漢朝末年就近乎絕種。元朝時,為供遊獵,殘餘的麋鹿被捕捉運到皇家獵苑內飼養。到19世紀時,只剩下在北京南海子皇家獵苑內一群,並於20世紀初在中國野外絕種。西方傳教士來華後將麋鹿引入歐洲,其中許多歐洲動物園的麋鹿被英國購買並繁殖到255頭,形成穩定的種群,並在1983年將部分個體送回中國。目前世界麋鹿總數在大約5,000頭,其中中國約有3,000頭。
特徵 : 麋鹿俗稱四不像,其頭臉細長似馬、角多叉似鹿、頸長似駱駝(一說為蹄似牛)、尾端有黑毛,似驢。成年麋鹿體長可達1.9至2.2公尺,體重可達135至200公斤。雄性有角,且每年最多有兩副,夏季的較大,並在六至八月的發情期結束後,於十一月脫落;若有第二副角,則會在一月前生長完全並在數星期後脫落。夏季毛為紅棕色,冬季毛較粗濃,呈灰黑色。麋鹿四肢粗大:主蹄寬大能分開,多肉,趾間有皮腱膜,有很發達的懸蹄,行走時帶有響亮的磕碰聲;側蹄發達,適宜在沼澤地中行走和活動;長而多毛的尾,利於驅趕飛擾的昆蟲.〉
➨ 두산백과 : 친후국가습지공원[Qinhu National Wetland Park , 溱湖国家湿地公园(진호국가습지공원)]
중국 장쑤성[江苏省] 타이저우시[泰州市] 장옌구[姜堰区]에 있는 습지공원이다. 2012년에 국가 5A급 관광지로 선정되었다. 중국 장쑤성[江苏省] 타이저우시[泰州市] 장옌구[姜堰区]에 있으며, 중국 국립입업청의 국립습지모델 수용 검사를 통과한 최초의 공원이다. 물, 습지 및 생태를 주제로 설립되었고, 공원 총면적 중 37%를 호수 경관이 차지한다.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습지와 수로가 미로처럼 연결된 원시의 습지 생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 또 각종 수생 생물 및 습지 생물을 비롯해 야생 식물 150여 종과 야생 동물 90여 종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공원 안에 국가 보호 동물이자 세계적으로도 희귀 동물인 “미록(麋鹿, 사불상)”서식지가 있다. 습지에 관한 전시와 교육을 하는 습지과학박물관이 있다. 2012년 국가 5A급 관광지로 선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친후국가습지공원 [Qinhu National Wetland Park, 溱湖国家湿地公园(진호국가습지공원)]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사불상[Père David's Deer] [출처 : 서울동물원] : 〈꼬리는 당나귀, 머리는 말, 뿔은 사슴, 발굽은 소와 비슷하나 그 어느 것과도 다르다 하여 붙여진 이이다. 사불상은 중국의 토종 사슴류로, 사냥과 서식지 파괴로 멸종위기에 처하였으나 외부와 차단된 역대 황제들의 사냥터에 한 무리가 남아있었다. 중략(中略)〉
➨➨➨ 이렇게 보면 “미록(麋鹿)”의 원산지(原産地)는, 「동정호(洞庭湖) 주변(周邊), 장강(長江) 하류의 늪지대」라고 할 수 있으며, 희귀종(稀貴種)이라는 것은, 반도(半島) 제주도(濟州島)와는 전혀 관련(關聯)이 없는「“대륙(大陸)의 제주(濟州)”와 깊은 연관(聯關)이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곧 위의 원문(原文)을 보면 〈麋鹿 : 惟産此州。 皮細靭。 : 미록(麋鹿) : 유일하게 이 고을(州) 즉 제주(濟州)에서 난다〉라고 하였으니 말이다.
➨➨➨ 여기서 확실(確實)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제주도(濟州島)”와 ➠“제주(濟州)”는 같은 곳의 같은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두 곳의 땅에 있었다”」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즉(卽),
• 제주도(濟州島) : 해중(海中)의 섬(島)이다.
• 제주(濟州) : 내륙(內陸)의 땅에 있는 고을(州) 곧 “제주(濟州)”를 말하는 것이고, “미록(麋鹿)”은, 제주도(濟州島)의 토산(土産)이 아니라 「제주(濟州)의 토산(土産)이다.」라는 것이다.
➠➠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여러 종류(種類)의 지리지(地理志) 전라도(全羅道) 편의 “제주(濟州)…대정(大靜)…정의(旌義)”는, 『섬(島) 제주도(濟州島) + 내륙(內陸)의 고을(州) 제주(濟州)』를 한데 묶어 짜깁기 한 것이다〉라고 본다. 대륙(大陸)이든 반도(半島) 땅이든, 그렇지 않고서는 제주(濟州)의 ‘토산(土産)’ 편을 설명(說明)할 수가 없다. 【전회(前回)에도 이러한 문제(問題)에 대해서 의문(疑問)을 제기(提起)하였다.】
➌ 향서(香鼠 : 사향쥐) : ‘사향 뒤쥐’를 말하는 것이다. 【표준국어서전 : 땃쥣과의 하나. 생쥐와 비슷하나 몸의 길이는 13cm, 꼬리는 7cm 정도이며, 잿빛을 띤 갈색이다. 털은 부드럽고 주둥이는 뾰족하다. 눈이 작고 옆구리에 사향 비슷한 악취를 내는 샘이 있어 고양이나 뱀이 싫어한다. 밤에 인가 주위의 곤충이나 지렁이, 개구리 따위를 잡아먹는데 4~10월에 한 배에 2~6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아프리카 북부, 아라비아, 일본, 대만 등지에 분포한다.】
➍ 「빈주(蠙珠 : 眞珠), 패(貝 : 조개), 대모【玳瑁 : 熱帶, 亞熱帶에 사는 바다거북이】, 앵무라(鸚鵡螺 : 앵무소라)【우측(右側)의 세 종(種)은. 우도(牛島)와 대정(大靜)의 개파도(蓋波島)에서 나온다】」 : 반도(半島) 제주도(濟州島)에서 산출(産出)될 수 없는 것들이다. 어쩌다가 얻을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토산물(土産物)”이란 특정지역(特定地域)의 토산(土産)을 말하는 것이다.
위에서 열거(列擧)한 것들은 「대만(臺灣) 남(南)쪽, 해남도(海南島) 남부(南部) 근해(近海), 필리핀(呂宋) 근해(近海)의 토산물(土産物)」이다. 정말 반도(半島) 제주(濟州)의 토산물(土産物)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모든 생물(生物)은 자연환경(自然環境)을 벗어나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의 필리핀(呂宋) 남부(南部) 관광(觀光) 코스[Course]에 ‘바다’속에서 유영(遊泳)하는 “바다거북”을 볼 수 있는 ‘투어’도 있다고 전해진다.
➎ 귤(橘)【금귤(金橘), 산귤(山橘), 동정귤(洞庭橘), 왜귤(倭橘), 청귤(靑橘)의 다섯 종이 있다】: 이 또한 마찬가지다. 어떻게 동정귤(洞庭橘)이나 왜귤(倭橘)이 반도(半島) 제주도(濟州島)의 토산(土産)이 될 수 있는지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이야기다.
당연(當然)히 ‘동정귤(洞庭橘)은 동정호(洞庭湖) 근교(近郊), 왜귤(倭橘)은 왜(倭) 땅 가까이에서 자생(自生)한다’라는 것은, 자연(自然)의 이치(理致)다. “반도조선사(半島朝鮮史)”는 이렇게 자연(自然)의 이치(理致)에도 어긋나는 괴물(怪物)로 만들어진 것이다.
➏ 감(柑)【황감(黃柑), 유감(乳柑) 등 여러 종(種)이 있다】 : 마찬가지다.
➠ ‘귤(橘)과 감(柑)’ 등에 대해서는 전회(前回)의 제주(濟州) 토산물(土産物) 편에서 상세(詳細)한 설명(說明)을 한 바 있다. 참고(參考)하시면 됩니다. 다만 결론(結論)은, 오늘날의 제주도(濟州島)와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다른 곳의 다른 땅의 토산(土産)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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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土産 (2) : 無患子, 葉蒼白, 實漆黑。 橙子, 菩提實, 有兩種。 瀛洲實, 生漢拏山上。 實小, 黑而甘。 : 무환자(無患子)【잎은 푸른기가 있고 해쓱하며, 열매는 칠흑(漆黑)이다】, 등자(橙子), 보제실(菩提實)【두 종(種)이 있다】, 영주실(瀛洲實)【한라산(漢拏山) 위에서 자라는데, 과실은 작고, 검은 것이 달다.】, 鹿角實, 樹如紫檀, 葉如赤木, 實小而色丹, 味甘滑, 可食。 五味子, 品上。 燕覆子, 無灰木, 出牛島。 在海中柔脆, 隨波上下, 出水乃堅。 : 녹각실(鹿角實)【자단(紫檀)나무와 같은데, 잎은 같고, 나무는 붉고, 과실은 작은데 붉은색이며, 맛은 부드럽고 달다. 먹을 수 있다】, 오미자(五味子)【최상품(最上品)이다.】, 연복자(燕覆子), 무회목(無灰木)【우도(牛島)에서 나는데,무르고 약한 것이 바다 가운데에서, 파도치는 대로 아래위로 움직인다. 물에서 나올때는 단단해져 있다.】, 山柚子木, 唐柚子木, 榕木, 二年木, 有腦香氣。 櫨木, 加沙木, 朴達木, 梨木, 棟實, 蔓香木, 生漢拏山。 形如紫檀。 : 산유자목(山柚子木), 당유자목(唐柚子木), 용목(榕木 : 벵갈보리수), 이년목(二年木)【腦香氣가 있다】, 노목(櫨木 : 옻나무, 레몬의 한 종류?), 가사목(加沙木), 박달목(朴達木), 이목(梨木 : 배나무), 동실(棟實), 만향목(蔓香木)【한라산(漢拏山)에서 자라는데 자단(紫檀)과 형태가 같다】. 靑楊, 樹如楊, 葉如眞松而細嫩。 金桐木, 可作琴。 粘木, 杜沖, 出楸子島。 枳角, 厚朴, 苦練根, 零陵香, 安息香, 卽黃漆木汁。 : 청양(靑楊), 수여양(樹如楊)【잎은 진송(眞松)과 같은데 여리고 가늘다】, 금동목(金桐木)【거문고(琴)를 만든다.】, 점목(粘木), 두충(杜沖)【추자도(楸子島)에서 난다.】, 지각(枳角), 후박(厚朴), 고련근(苦練根), 영릉향(零陵香), 안식향(安息香)【곧 황칠목(黃漆木)의 즙(汁)이다】, 香附子, 靑皮, 海桐皮, 蜀椒, 陳皮, 蓽澄加, 八角, 香蕈, 俗云蔈枯。 木衣, 石斛, 石鍾乳, 白蠟, 松寄生, 出漢拏山高處。 : 향부자(香附子), 청피(靑皮 : 푸른 귤껍질), 해동피(海桐皮 : 엄나무껍질), 촉초(蜀椒 : 川椒), 진피(陳皮 : 오래 묶은 귤껍질), 필징가(蓽澄加), 팔각(八角), 향심(香蕈 : 느타리버섯 : 표고;蔈枯), 목의(木衣), 석곡(石斛 : 난초과), 석종유(石鍾乳), 백랍(白蠟), 송기생(松寄生)【한라산(漢拏山) 높은 곳에서 난다】, 天門冬, 麥門冬, 蔓荊子, 半夏, 茴香, 仙靈脾, 生魚, 品美佳而至貴。 望魚, 胎生。 鹽, 極貴。 濱海皆礁, 而有釜者無多故也。 草席。 : 천문동(天門冬), 맥문동(麥門冬), 만형자(蔓荊子), 반하(半夏), 회향(茴香), 선령비(仙靈脾 : 음양곽:淫羊藿), 생어(生魚)【아름답고 미려하여 아주 귀하다.】, 망어(望魚)【태생(胎生)이다】, 염(鹽)【아주 귀하다. 바닷가가 모두 암초(暗礁)여서, 가마를 하는 자들이 원래 많이 없기 때문이다】. 초석(草席)…
➊ 무환자(無患子) : [출처(出處) : 다음백과 : 우리 나무의 세계 1] : 무환자나무는 일본 남부, 타이완, 중국 남부, 인도 등 주로 난대나 아열대가 고향이다. 우리나라의 무환자나무는 인도가 원산지로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이 열매는 돌덩이같이 단단하고 만질수록 더욱 반질반질해져 스님들의 염주 재료로 그만이다. 불교 경전인 《목환자경》에 보면 “무환자나무 열매 108개를 꿰어서 지극한 마음으로 하나씩 헤아려 나가면 마음속 깊숙한 곳에 들어 있는 번뇌와 고통이 없어진다”라고 했다. 그래서 무환자나무의 다른 이름은 아예 ‘염주나무’, 또는 ‘보리수’라고도 한다. 또 이수광의 《지봉유설》 〈훼목부〉에도 “열매는 구슬과 같아서 속담에 이것을 무환주(無患珠)라고 한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Daum백과] 무환자나무 – 우리 나무의 세계 1, 박상진, 김영사]
➋ 등자(橙子) : 등자(橙子)나무의 열매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자(柚子)라고 부른다
➌ 보제실(菩提實), 영주실(瀛洲實), 녹각실(鹿角實)【자단(紫檀)나무와 같은데, 잎은 같고, 나무는 붉고, 과실은 작은데 붉은색이며, 맛은 부드럽고 달다. 먹을 수 있다】
➍ 무회목(無灰木)【우도(牛島)에서 나는데, 무르고 약한 것이 바다 가운데에서, 파도치는 대로 아래위로 움직인다. 물에서 나올 때는 단단해져 있다.】
➎ 산유자목(山柚子木) : 긴 타원형의 잎을 가지고 있으며, 키는 보통 2~3m에 이른다. 주로 바닷가의 들에서 자라며, 제주도 및 타이완·중국·일본 등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제주도에서 공물로 바치던 특산품이었다. 그 때문에 조정에서는 경차관을 파견하여 표(標)를 세워 벌채를 금하게 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제주 삼읍(三邑)의 감자(柑子)나무·귤나무·유자나무는 해마다 심거나 접붙이기를 하며, 부근의 주민을 정하여 비목(榧木)·노목(櫨木)·이년목(二年木)·산유자목을 간수하게 하고 연말에 그 숫자를 왕에게 보고하도록 규정하였다. 【例 : 本州非他陸地之比 四面石山戴土 山腰以上 地脈肥厚 然而國用最緊 山柚子木二年木榧子木安息香木多産焉(성종실록』 24년 8월 5일) / 출처(出處) : “위키 실록사전”】
문제(問題)는, 이러한 기록(記錄)에 따라 “반도(半島) 제주도(濟州島)”에 토산물(土産物)로 산출(産出)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➏ 당유자목(唐柚子木) :
➐ 용목(榕木) : 벵골보리수(Bengal : 菩提樹 : 뽕나뭇과의 상록 교목) 나무를 일컫는 말이다. 【榕 : 벵골보리수, ‘뽕’나무과의 ‘열대산(熱帶産) 상록교목(常綠喬木)’이라고 ‘한자사전’에서 설명(說明)하고 있다.】
➑ 이년목(二年木)【腦香氣가 있다】: 장기(長機) 이년목(二年木) : 장기는 가마와 같이 무거운 것을 메거나 드는 데 쓰이는 길고 굵은 멜대로 장강목(長杠木)이라고도 한다. 이년목은 ‘가시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튼튼하고 가벼우면서도 탄력이 있어 창자루, 화살대 등을 만드는 목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出處 : 仁祖實錄 24년 병술(1646) 1월 4일(임자) 맑음 / 주(注)]
➒ 「두충(杜沖)」 : 두충(杜沖)과의 낙엽(落葉) 교목(喬木). 높이는 10미터 이상(以上)이며,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楕圓形)이다. 암수딴그루로 봄에 잔꽃이 핀다. 나무껍질ㆍ잎ㆍ열매 따위를 자르면 하얀 고무질 유즙(乳汁)이 나오고 마른 뒤에 자르면 하얀 실 같은 것이 서로 붙어 있다. 마른 껍질ㆍ잎ㆍ열매는 약의 재료(材料)로 쓴다. 중국(中國) 허베이(河北) 지방(地方)이 원산지(原產地)이다. [출처(出處) : 네이버, 한자사전]
『두충(杜沖)』 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각종(各種) 지리지(地理志)에 빼놓지 않고 “한반도(韓半島) 남부(南部)지방의 토산물(土産物)”로 기록(記錄)되어 있는데,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주(濟州) 토산(土産) 두충(杜沖), … 대동지지(大東地志) 및 각종(各種) 지리지(地理志) : 제주(濟州) 토산(土産) 두충(杜沖)이 산출(産出)된다고 하였다.
… 기언 제14권 중편 / 전원거(田園居) 1 연천(漣川)에서 / 십청원기(十靑園記) : 전나무, 측백나무, 박달나무, 비자, 노송, 만송(蔓松), 황죽(篁竹), 두충(杜冲) 같은 상록수를 많이 심었다.【若檜,柏,檀,榧,老松,蔓松,篁竹,杜沖】
… 연려실기술 별집 제16권 / 지리전고(地理典故) / 산천의 형승(形勝) : 동래의 해운대(海雲臺) : 현(縣)의 동쪽 18리에 있다. 산기슭이 바다에 들어가서 누에고치의 머리와 같다. 그 위는 모두 동백(冬柏)과 두충(杜沖)으로 덮여 있다.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경상도(慶尙道) / 동래현(東萊縣) : 海雲臺【海雲臺。在縣東海邊, 崔致遠所遊之地, 亭宇遺址尙存。 冬栢、杜沖、森鬱其側。: 현 동쪽 바닷가에 있으니, 최치원(崔致遠)이 놀던 곳이다. 장자 터가 지금도 남아 있는데, 동백나무와 두충(杜沖)나무가 그 곁에 빽빽하게 우거져 있다.】
… 연산군 10년 갑자(1504) 4월 7일(무술) : 傳曰 : 琵琶材杜沖木, 令有處伐取以進 : 전교하기를, 「비파(琵琶) 만드는 재목 두충(杜沖) 나무가 있는 곳에서 벌채하여 바치게 하라」하였다.
➠ 인터넷을 통해 수목원(樹木園)을 하나하나 검색(檢索)하다가… …바로 〈홍릉수목원에 국내에 식재된 모든 두충나무의 아버지 나무, 어머니 나무 2본이 AD 1,920년 중국에서 도입된 이래(以來) 이곳에 있다〉라고 소개하는 글을 찾게 되었다. 【출처(出處) : 네이버, 블로그 / 마음을 열고(舍廊房)】
이것을 확인(確認)하기 위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까지… … 역시(亦是)는 역시(亦是)다. 즉(卽) 〈홍릉수목원(洪陵樹木園) : 현황(現況) : 수목원 내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나무는 문배나무로, 1935년에 일본인 나까이[中井猛之進] 교수가 처음 발견한 문배나무의 기준 표본목이 있다. 또 국내에 식재된 모든 두충나무의 아버지나무, 어머니나무 2본이 1920년대 중국에서 도입된 이래 이곳에 있다〉라는 것을 확인(確認)할 수 있었다.
➠➠➠ 그렇다면,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왕조실록(王朝實錄), 각종(各種) 지리지(地理志), 기타(其他) 사대부(士大夫)들의 문집(文集)속에 등장(登場)하는 두충(杜沖)나무」는,
「한반도(韓半島)가 아닌 중원대륙(中原大陸)에 있었다」라는 것이고, 「그 땅이 바로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영토(領土)였으며, 수만(數萬) 년(年) 동이(東夷)들, 한민족(韓民族)의 토착지(土着地)였다」라는 뜻이다.
또 “김정호(金正浩)”가 편찬(編纂)했다는 대동지지(大東地志)는 신뢰(信賴)할 수 없는, 출처불명(出處不明)의 지리지(地理志)이자, 이것을 토대(土臺)로 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또한 “출처불명(出處不明)”이며, 이는 누군가가 만들어 『반도조선왕조(半島朝鮮王朝)을 고착화(固着化)하는데 철저(徹底)하게 이용(利用)하고, 이를 증거(證據)로 삼기 위해 “김정호(金正浩)”라는 허구(虛構)의 인물(人物)을 만들어냈다』라는 것이다.
왜냐 “김정호(金正浩)가 직접(直接) 발로 걷고, 뛰며, 달리며 팔도강산(八道江山)을 답사(踏査)한 뒤에 만들었다”라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한반도(韓半島)의 것이다’ 그러나,
⒜ 〈그 지도(地圖)를 설명(說明)하는 서문(序文)의 가장 중요(重要)한 지형지세(地形地勢)는 한반도(韓半島)의 것이 아닌 “대륙(大陸)의 것”이다.〉
⒝ 더불어 〈“김정호(金正浩)”가 직접(直接) 발로 걷고, 뛰며, 달리며 팔도강산(八道江山)을 답사(踏査)한 뒤에 만들었다는 지리지(地理志)인 “대동지지(大東地志)”의 많은 토산물(土産物) 역시(亦是) 한반도(韓半島) 산물(産物)이 아닌 “대륙(大陸)과 아열대(亞熱帶)와 열대(熱帶)의 땅에서 산출(産出)되는 토산물(土産物)이다”〉
⒞ ‘김정호(金正浩)’ 스스로 평생(平生)을, 일생(一生)을 지도(地圖)와 지리지(地理志)를 만드는데 헌신(獻身)했다는 한국인(韓國人)들의 평가(評價)와는 전혀 다르게 : 〈➨ 지도(地圖)는 한반도(韓半島) 땅을 그려 놓고, ➨ 서문(序文)은 대륙(大陸) 땅의 지형지세(地形地勢)를 기록(記錄)해 놓고, ➨ 토산물(土産物) 또한 한반도(韓半島)의 것이 아닌 “대륙(大陸) 땅과 열대(熱帶), 아열대(亞熱帶) 땅의 토산물(土産物)”을 기록(記錄), 설명(說明)하고 있다〉라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걸까?
➠➠➠ 〈‘김정호(金正浩)’라는 인물(人物)은 ‘가공인물(架空人物)’이며, 실제(實際) 지도(地圖)를 만든 자(者)들은 일제(日帝) 군국주의자(軍國主義者)【필자(筆者)는, 일제참모본부(日帝參謀本部)의 작품(作品)이라고 의심(疑心)하고 있다. 이곳에 속해있던 많은 장교(將校)들이 한반도(韓半島)와 만주(滿洲) 땅을 헤집고 다녔다는 것으로 추정(推定)할 수 있는 것이다.】들이며, 조선왕조(朝鮮王朝)를 반도(半島) 땅에 이식(移植)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자, 무지몽매(無知蒙昧)했던 당시(當時)의 한반도(韓半島) 백성(百姓)들에게 ‘반도(半島) 조선(朝鮮)’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본다면 핵심(核心)을 찌른 것이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➒ 노목(櫨木), 가사목(加沙木), 동실(棟實)
➓ 안식향(安息香)【곧 황칠목(黃漆木)의 즙(汁)】: 안식향(安息香)은, 안식향이지 무슨 황칠즙(黃漆汁)을 안식향(安息香)이라 할 수 있겠는가?【安息香(英語:benzoin)是安息香科安息香屬某些物種的樹脂,可做熏香,也可入藥】안식향(安息香) 역시 오늘날의 베트남[Vietnam]이나 자바[Java], 수마트라[Sumatera]섬 등지에서 자생(自生), 산출(産出)된다고 한다.
황칠즙(黃漆汁) : 두우(杜佑)는, 통전(通典)에서 말하기를 : 〈百濟 : 國西南海中有三島, 出黃漆樹, 似小榎樹而大. 六月取汁, 漆器物若黃金, 其光奪目. : 백제국(百濟國) 서남(西南)쪽 바다 가운데에 ‘세’ 섬(島)이 있는데, 황칠(黃漆)나무가 나는데, 6월에 즙(汁)을 취한다. 기물(器物)에 칠(漆)을 하면 약간 황금(黃金)과 같아, 그 광(光)이 눈을 빼앗길 정도다〉라고 하였는데,
백제(百濟)가 한반도(韓半島)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問題)조차 알지 못한다.
“통전(通典)”에서는 말하기를 : “백제국(百濟國)”은, 『진(晉)나라 때에 ‘구려(句麗)=고구려(高駒驪)’는 이미 요동(遼東)을 다스렸는데, 백제(百濟) 또한 요서(遼西)와 진평(晉平) 두 군(郡)을 점거(占據)하였다. 【유성(柳城)과 북평(北平) 사이 땅이다】백제국(百濟國)의 땅은, 토착(土着)의 땅이 낮고 습하여, 백성(百姓)들은 모두 산(山)에서 산다. 【晉時句麗既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 晉平二郡【今柳城, 北平之間】. 土著地多下濕, 率皆山居】』라고 하였는데,
➠➠➠ 〈한반도(韓半島) 땅, “충청도(忠淸道), 전라도(全羅道)” 땅이 낮고, 습하여 그곳의 백성(百姓)들이 모두 산(山)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나?〉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엘리트층이라고 자칭(自稱)하는 소위(所謂) 역사학자(歷史學者) 또는 교수(敎授), 박사(博士)니 하는 분들에게 물어보자. 이게 맞는 말인가? 왜곡(歪曲)되고 조작(造作)된 말인가?
⓫ 영릉향(零陵香) : 영향초(靈香草)라고도 하는데, “인도(印度), 호남(湖南), 광동(廣東), 광서(廣西), 운남(雲南)” 등지(等地)에 분포(分包)한다. 훈초(薰草), 혜초(蕙草)라고도 한다. 영향초(靈香草)[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靈香草(學名:Lysimachia foenum-graecum)為報春花科珍珠菜屬的植物。分布於印度以及中國大陸的廣東、湖南、雲南、廣西等地,生長於海拔800米至1,700米的地區,一般生長在山谷溪邊、林下或腐殖質土壤中〉라고 하였다.
⓬ 만향목(蔓香木)【한라산(漢拏山)에서 자라는데 자단(紫檀)과 모양이 같다.】: 耽羅志 : 蔓香木生漢挐山上。形如紫檀 라고 하였는데… …
⓭ 필징가(蓽澄加) : 蓽澄茄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 蓽澄茄(學名:Piper cubeba),又名尾胡椒(英語:tailed pepper),是胡椒屬的一種植物,被栽培以獲取其果實與精油。它主要生長於爪哇島與蘇門答臘島地區,因此有時也被叫做爪哇胡椒。其果實在成熟之前被採集,並被仔細地加以乾燥處理。蓽澄茄的貿易由其乾燥的漿果組成,乾漿果在外觀上類似於黑胡椒,但比黑胡椒多了梗柄——即「尾胡椒」的「尾巴」。在乾燥過程中,果皮會產生褶皺,顏色也會從灰棕色變為黑色。其種子很硬,呈現白色並富含植物油。蓽澄茄的氣味被描述為一種讓人愉快的香味。其味辛辣刺鼻,有些微苦味。蓽澄茄音譯自梵語विडङ्ग(viḍaṅga),不過這個梵語詞原本是指味道酸甜的白花酸藤果。
蓽澄茄通過印度與阿拉伯人之間的貿易傳向歐洲。古法語中的quibibes一詞來自於阿拉伯語中起源未明的kababah(كبابة),英文名稱cubeb則來自古法語。[1][2]蓽澄茄首先以阿拉伯名字出現在鍊金術著作中。在約翰·帕金森的著作《Theatrum Botanicum》中,他提到葡萄牙國王在1640年前後下令禁止銷售蓽澄茄,以促進黑胡椒的貿易。在19世紀的歐洲,蓽澄茄貿易曾因其醫學用途而經歷了一段短暫的復興,但是此後它在歐洲市場幾乎消失。在西方,它仍然被用作琴酒與香菸的香味劑;在印度尼西亞與非洲則被用作食物的佐料。[중국(中國) ‘위키백과’에서 찾을 수 있었다]
➠ ‘필징가(蓽澄加)=필징가(篳澄茄)’로, 산출(産出)되는 곳은 “조와(爪哇)【Indonesia, 자바(Java) 섬(島)】 및 소문답랄(蘇門答臘)【Indonesia, 수마트라(Sumatera)】섬(島)”이라고 하였다.【主要生長於爪哇島與蘇門答臘島地區】필징가(篳澄茄)의 열매에서 기름을 추출(抽出)한다고 한다.
이러한 ‘필징가(蓽澄加)=필징가(篳澄茄)’가 ‘한반도(韓半島) 제주도(濟州島)’ 땅에서 산출(産出)된다고 하면 어찌 될까?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우물 안의 개구리 사회(社會)와 같다”라고 하면 과장(誇張)된 표현(表現)일까? 우린 그저 이웃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고 있을 뿐이다.」
⓮ 팔각(八角) : ➀ 팔각(star anise)은, 붓순나무과에 속하는 식물로 중국이 원산인 향신료의 일종이다. [출처(出處) : 나무위키] ➁ 팔각은 중국향신료 오향의 재료 중 하나다. 중국말로는 '딸레오', 영문으론 스타 아니스(Star Anise)로 불린다. 문헌에 따라선 팔각회향(八角回香)으로 기록돼 있기도 하다. 팔각은 원래 인도? 고유의 향신료로 목련과의 팔각나무에서 나는 씨앗이다. 모양은 불가사리처럼 생겼다. 가운데 적갈색의 편원형 열매가 1개씩 박혀있다. 붓순나무는 중국의 자생식물로 신종인플루엔자의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원료인 팔각(八角, 영명 Star anice)과 분류학적으로 사촌간이다. [출처(出處) : 아시아경제 : 왕성상 입력 2009. 9. 4. 11:11 수정 2009. 9. 4. 11:11]
⓯ 목의(木衣), 석곡(石斛 : 난초과), 석종유(石鍾乳) : 석수(石髓),
⓰ 만형자(蔓荊子) : [출처(出處) : 산림경제 제4권 / 치약(治藥) / 만형자(蔓荊子) 순비기나무 열매 : 덩굴져 난다. 줄기의 높이는 4~5척이고 마디를 마주하여 가지가 친다. 그리고 잎은 살구나무 잎과 같고 가을에야 열매를 맺는데, 크기는 오자(梧子 오동나무 열매) 의 크기와 같고 가벼우며 속이 비었다.《증류본초》. 8월이나 9월에 채취한다.《증류본초》. 술에 쪄서 볕에 말려 빻아서 사용한다.《의학입문》
⓱ 회향(茴香) : [네이버, 세계 약용식물 백과사전 1 : 〈회향[茴香] : 회향속(Foeniculum) 식물은 전 세계에 약 4종이 있으며 유럽, 아메리카 및 아시아 서부에 분포한다. 중국에 1종이 있는데 약으로 사용되며 중국 각지에서 재배가 가능하다.〉
회향은 ‘회향자(蘹香子)’란 약명으로 《신수본초(新修本草)》에 처음 기재되었고, ‘소회향’이란 약명으로 《본초몽전(本草蒙荃)》에 처음 기재되었다. 옛 서적에 기록된 회향은 오늘날의 약용품종과 일치하며 《중국약전(中國藥典)》(2015년 판)에 수록된 이 종이 중약 소회향의 법정기원식물이다. 주요 산지는 중국의 내몽골, 산서, 흑룡강 등이며 내몽골에서 나는 것이 질이 우수하고 산서의 생산량이 가장 많다. 그 밖에 남방 각지에서도 재배한다. 《대한민국약전》(11개정판)에는 회향을 “회향(Foeniculum vulgare Miller, 산형과)의 잘 익은 열매”로 등재하고 있다. [출처(出處) : 세계 약용식물 백과사전 1 : 회향[茴香]
⓲ 생어(生魚)【아름답고 미려하여 아주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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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大東地志 卷十四 全羅道
해남(海南) / 土産 : 篁竹, 箭竹, 楮, 苧, 柹, ➠ 柚, 橘, 榴, 茶, 白玉石, 花斑石, 香蕈, 藿, 海衣, 莓山, 甘苔, 黃角, 牛毛, 細毛, 鰒, 紅蛤, 海蔘等魚物數十種。
진도(珍島) : 土産 : ➠ 橘, 柚, 榴, 榧, 箭竹, 藿, 黃角, 甘苔, 莓山, 細毛, 牛毛, 香蕈, 海衣, 鰒, 紅蛤, 海蔘等魚物十餘種。
전라도(全羅道)의 “해남(海南)이나 진도(珍島)” 등지(等地)에서 이미 19세기(世紀) 이전(以前)부터 “귤(橘)과 유자(柚子)”가 산출(産出)되고, 자생(自生)한다는 것을 무엇으로 이를 증거(證據)할 수 있는가?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말하는 토산물(土産物)은 “한반도(韓半島) 제주도(濟州島)에서 산출(産出)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김정호(金正浩)”라는 인물(人物)은 누구냐? 하는 것이다. 이건 완전(完全) 출처불명(出處不明)의 인물(人物)이며, 또 출처불명(出處不明)의 지리지(地理志)라는 것이 확인(確認)된다.
그럼 누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니 대동지지(大東地志)’니 하는 것들을 “김정호(金正浩)”가 만들고, 편찬(編纂)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냐? 어떤 증거(證據), 어떤 근거(根據)로 말이다. 「이게 바로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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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현재(現在) 보고 있는 “각종(各種) 지리지(地理志)”의 “전라도(全羅道) 제주(濟州)” 편은, 또 제주(濟州) 편에 기록(記錄)된 토산(土産)은 :
➊ 내륙【內陸 : 뭍, 陸地】에 있는 고을(州)인 “제주(濟州)”, 그리고
➋ 바다 가운데【海中】에 있는 제주도(濟州島)를 짜깁기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그 이유는 장강(長江) 일대(一帶)와 그 남(南)쪽은 아열대기후대(亞熱帶氣候帶)에 자리 잡고 있어, 토산물(土産物)이 본토(本土)와 확연(確然)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이것을 따로 구분(區分)할 수 없는 땅이 바로 반도(半島) 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濟州)”를 몽땅 한곳으로 몰아 만들어낸 것이다」라고 하면 그 설명(說明)이 충분(充分)할 것 같다. 그러나 이건 역설적(逆說的)으로 조선사(朝鮮史)를 왜곡(歪曲), 조작(造作)한 「서구(西歐)+일제(日帝)+부역매국노(附逆賣國奴)」들에게는 악몽(惡夢)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제주(濟州)와 제주도(濟州島)”를 같은 곳의 땅으로 묶어 놓으니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즉(卽), 내륙(內陸)인 ‘뭍’에서 나는 토산(土産)과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섬(島)’에서 산출(産出)되는 토산물(土産物)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 하나하나 열거(列擧)하기 시작하면 며칠 밤을 꼬박 새워도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이다. 중요(重要)한 것은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말하는 토산물(土産物)은 제주도(濟州島)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고,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서문(序文)에서 말하는 자연환경(自然環境)과 지형지세(地形地勢) 등은, 반도(半島) 땅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김정호(金正浩)’라는 출처불명(出處不明)의 인물(人物)에 의해 만들어지고 제작(製作)되었다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그가 편찬(編纂)했다는 대동지지(大東地志)라는 지리지(地理志) 또한 반도(半島) 땅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누가 “김정호(金正浩)”라는 인물(人物)을 띄워 놓은 것일까? 아마도 일제(日帝)에 의해 부풀려지고, 과장(誇張)되고 확대(擴大) 재생산(再生産)되어, “반도(半島) 조선(朝鮮)”을 고착(固着)시키는 데에 철저(徹底)하게 이용(利用)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몽매(無知蒙昧)했던… … 양반(兩班)과 관리(官吏)들의 횡포(橫暴)에, 일제(日帝)의 강압통치(强壓統治)와 폭력(暴力) 앞에서, 먹고살기에도 급급했던 중인(中人) 이하(以下)의 천민(賤民)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나!
일제(日帝)와 그에 야합(野合)한 양반(兩班)과 사대부(士大夫)들의 부역 매국노(附逆 賣國奴)들에게 철저(徹底)하게 이용(利用)만 당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主張)에 힘이 실리는 것은, 오늘날의 우리 사회(社會)가 이를 증거(證據)하고, 확인(確認)해 주고 있다.
곧 친일사대주의자(親日事大主義者)들이 넘쳐나고 토착왜구(土着倭寇) 세력(勢力)이 판치는 것이 그 증거(證據)다. 이러한 사회현상(社會現象)은 강압통치(强壓統治)와 식민통치(植民統治)를 겪었던 다른 국가(國家)에서는 있을 수 없는 아주 “이상현상(異常現狀)”인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친일분자(親日分子)들과 친일사대주의자(親日事大主義者)들이 득세(得勢)하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이 유일무이(唯一無二)하다.
특히 “윤석열” 정권(政權)이 들어서고 나서부터 “친일파(親日派)”들이 득세(得勢)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社會)가 망조(亡兆)가 든 것과 때를 같이 하고 있다.
이건 국가(國家)와 민족(民族)이 소멸(消滅)하거나 이민족(異民族)에게 동화(同化)되어 사라질 수 있는 확률(確率)이 점점(漸漸) 높아진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3편 / 1, 2, 3 –끝-]
2024년 03월 31일 [글쓴이 : 문무(文武)]
첫댓글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 국내에서 통용되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치도록 해보고 싶다"
특히 역사통설(반도사관=식민사관=친일사관) 논자들이 애지중지하는 고전원문과 함께 말이다.
***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
우리나라는 현재 "일제통치[[미군정포함]]" "과정의 연속"이라고 해도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닐 것 같다. 그저 보이는 무뉘만 민주주의요, 자본주의요, 독립국가라는 허울속에 갇혀 있을 뿐,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
일제제국주의자[[미군군정포함]]들이 통치했던 일제강점기때와 무엇이 다르냐? 하는 문제에 심각하게 부딪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 특히 일반 국민들이나 속칭 말하는 민초들에서는 친일분자들이 소수이지만 : 소위 엘리트층이라고 하여 국가와 국민들을 이끌고 나가는 층에서는 친일분자들이 집중분포되어 있다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 특히 요즘 시끄러운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후보자들 중에서도 '친일분자들이 섞여 있다'는 것, 이건 앞으로도 계속 친일분자들이 정치계와 엘리트층에 침투되어 있다는 증거다. 소위 이 자(者)들은, 뼈속까지 친일분자로 "토착왜구"와 다름이 없다.
이걸 막는 것은 국민들이다.
1. "일본과 가깝게, 사이 좋게, 이웃나라로 지내야 한다"는 것은,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많은 부분이 서로 겹치는 이웃국가(나라)로써 일반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2. 그러나 국가체제에 대한 도전과 같은 "친일분자로 부역매국노"들이 주장하는 일본과의 관계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친일분자들과 부역매국노들은 : 한반도를 일제(日帝) 치하(治下)에 가둬두기를 바라는 자들이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희대의 반역자들이다. 이게 반역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 반역자가 될 수 있겠나?
3. 학계(學界), 정치계(政治界), 관계(官界), 경제계(經濟界)등 온갖 분야에 "친일분자"들이 침투되어 있고, 부역매국노들의 손길이 뻗쳐있다는 것"은 눈을 감고 있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4. 이런 '친일분자들과 부역매국도들과 토착왜구들을 감시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주어진 의무와 같은 것이다' 바로 국가를 방위하고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하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도자"는 결코 믿을 수 없는 존재다. 이들은 정치를 위해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기를 서슴치 않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바로 대표적인 인물이자 전형적인 예다.
다음 게재편으로는 :
***개마대산(蓋馬大山)"과 관계되는 내용으로,
학계에서는 '개마대산을 백두산'이라고 해설하고 있는데,
필자는 : '개마대산은 백두산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관심과 성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 생각에 강절은 압록강이 매우 굽어지는 삼수,갑산에서 부터 만포까지의 구간을 말하는 것 같은데요. 한반도의 산수, 갑산이 아니고요. 압록강의 특성이 습지이고, 그래서 沙漠(莫, 막은 장막을 친다는 것이므로, 물의 장막)일 가능성이 많고, 정약용의 대동수경에도 습지나 늪지를 연상케하는 구절이 많습니다. 지금의 오비강이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산타클로스의 주인공이 누돌프코 사슴인 것을 보면 , 북쪽이 원래 살던 곳이 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마대산은 알타이산의 근간이 되는 산으로 백두산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고요. 개마무사라고 하듯이 고구려 발상지이며 백두산이고, 대흥안령에 속할 것 같습니다. 백두산 자체가 어마어마한 크기이므로 그 산의 갈래에 소백산도 있고, 증산도 있고, 흑림봉도 있고, 긍특산도 있고, 설령도 있고, 설한령도 있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산을 태백산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미록으로 검색하니 이미륵이라는 조선이 나오더군요. 이미륵(이미록)과 안봉근, 이극로 등이 상해에서 독일로 유학간 사람으로, 이사람이 독일에서 철학, 미술, 동물학, 의학자 등 쟁쟁한 사람이었더군요.
1. "백두산" 곧 "장백산"에 대해서는 우리 카페에 많은 설명이 게재되어 있으며, 우리 카페에서는 "벨루하산"이 곧 백두산이라고 주장한지가 오래됩니다. "벨루하산이 바로 알타이산, 아이태산, 금산입니다"
2. 압록강은 : 이 강(江)을 중심으로 서쪽은 이(오랑캐)요, 그 동쪽은 화(중화=중국=華)로 나눈다고고 했으며,
이 강을 중심으로 서방(西方)과 동방(東方)으로 나눈다고 했고, 구라파와 아세아주 경계라고 했으니, 바로 이 강(江)이 "오브 또는 오비강"이라고 우리 카페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3. 개마산과 개마대산 또는 단단대령 또는 단대령을 모두 한 곳이라고 역사통설(반도사관=식민사관)논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만 : 산맥과 한 봉우리를 말하는 것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4. 만약 개마대산이 백두산이라고 한다면 : 옛 역사서에서 말하는 기록과는 서로 상반되는 내용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관심과 성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문 무 벨류하산도 장백산의 한봉우리 설령으로 분석되더군요. 그러나 천지가 있는 봉은 흑림봉이고, 이곳이 홉스골호로 판단됩니다. 벨류하산에서 압록강과 두만강, 송화강이 나오지 않으니까요.
이 사람이 주로 어울렸던 사람들이 엘제 프로이드, 브로너 등 상당히 알려진 사람들이고, 정신분석학이 프로이드가 지었다는 것도 조금은 생각해볼 여지를 주더군요. 브로너의 이론도 마찬가지고요. 미록으로 검색하면 네덜란드, 라틴어도 다 미록으로 검색되는데, 이 미록을 호로 가졌던 사람의 대표작이 압록강이라고 하더군요. 의미 심장한 내용입니다.
http://mirokli.com/trace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