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銀海寺掛佛幀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은해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괘불탱.
보물 제1270호. 1750년(영조 26)에 보총(普摠)과 처일(處一) 두 화승(畵僧)이 그렸다. 정면 불입상이 큰 화폭에 표현된 그림이다.
하단부의 연못에는 연봉오리와 황금색의 꽃술이 탐스러운 연꽃, 중단부는 모란과 연꽃 다발이 산화(散花)하는 모습, 상단부에는 영락(瓔珞)이 화려한 보개(寶蓋) 주위로 모란 혹은 연꽃을 문 여섯 마리의 봉황새 등 배경이 설명적이다.
원형 두광(頭光)을 지닌 불상은 두 어깨를 덮은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를 걸쳤다. 그리고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가슴 앞에 두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 모양이다. 높은 육계(肉髻)에 둥근 정상 계주(頂上髻珠)가 장식된 머리 모양이다.
반개(半開)한 눈과 작은 입의 얼굴 표정은 온화하다. 묵직한 법의에는 가로와 세로로 교차하는 줄무늬 안에 변형된 국화문이 빈틈없이 금으로 표현되어 있다. 적색과 녹색 위주이며 갈색, 하늘색, 감색 등 밝고 화려한 채색이 돋보인다.
붉은 테를 두른 화면 밖의 외연은 살색 바탕에 호분(湖粉)으로 연당초 문양을 찍어낸 듯한 목판화의 효과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연속 문양 기법은 법의에도 사용되었다. 이 외연대 밖에도 좌․우에 각 33개의 원과 상(上)에 15개의 붉은 원 안에 범자(梵字)를 굵은 황색으로 한 자씩 써넣었다. 이 괘불탱에서 본격적인 범자 문양대가 나타나는데, 18세기에는 범자문 장식이 매우 성행하였다.
포(布)가 비칠 정도로 경쾌한 갈색의 밑바탕 칠에, 신체나 옷 등 질감의 변화에 따라 담채(淡彩)와 진채(眞彩)를 병용하여 형상을 강조하였다. 괘불탱으로는 드물게 비단을 바탕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삼베 바탕보다는 적색과 녹색 등이 더 선명하고 우아하게 발색(發色)되었다.
연꽃이 만발한 연못에 서 있는 불상 주위로 극락조가 날고 꽃비가 내리는 신비한 불토(佛土)를 나타낸 배경 묘사는 독존(獨尊) 입상이 성행하는 18세기 괘불탱에 유행하였던 요소이다. 배경에 산화하는 꽃을 묘사한 예로 1684년 작 율곡사 괘불탱, 1725년 작 청량사 괘불탱을 들 수 있다.
권속이 축소된 영산회상도 괘불탱 중 석가모니불만을 배치한 독존 형식 괘불탱으로는 1622년 작 죽림사 괘불탱, 1673년 작 천은사 괘불탱이 있으며 18세기에는 특히 성행하여 1727년 작 미황사 괘불탱, 1753년 작 선암사 괘불탱, 1772년 작 개심사 괘불탱 등이 있다.
[참고문헌]
<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 96-97 지정편(문화재관리국, 1998).
국립중앙박물관 2020년 괘불전
꽃비 내리다-보물 제1270호 영천 은해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은 2020년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꽃비 내리다-영천 은해사 괘불’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바다처럼 겹겹이 은빛 안개로 아름다운 사찰, 영천 은해사(銀海寺)의 괘불(掛佛)을 소개합니다.
봄기운이 감돌던 1750년 4월, 팔공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은해사에서 야외 의식에 거는 대형 불화인 괘불이 완성되었습니다. 감춰진 11m의 화면이 펼쳐지는 순간, 발 디딜 틈 없이 모인 대중들은 화사한 꽃비 속에 홀로 자리한 부처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마주한 부처는 누구였을까요? 괘불에 그려진 홀로 서 있는 여래는 영취산(靈鷲山)에서 가르침을 전한 석가모니불이었겠죠. 그러나 화려한 깃털로 장식된 새들과 화면을 가득 채운 꽃은 즐거움만 가득한 곳, 아미타불의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연상시킵니다. 괘불에 그려진 꽃은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찬탄하며 뿌려진 청정한 공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미타불의 극락 하늘에서 내린다는 꽃비 같기도 합니다.
은해사 괘불이 처음 펼쳐진 그날부터 270년이 지난 2020년, 괘불에 담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전해집니다. 극락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불과 극락의 찬란한 모습을 그린 <염불왕생첩경도(念佛往生捷徑圖)>도 8월 23일까지 함께 선보입니다. 열다섯 번째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찾아온 괘불을 바라보며 대형 화폭에 흩뿌려지는 꽃비에 흠뻑 취하고, 아미타불의 신앙을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 전시기간 : 2020. 4. 6.(온라인 공개) ~ 2020. 10. 11.
※ 전시기간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며, 온라인 전시관에서 은해사 괘불 영상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전시장소 : 서화관 불교회화실
※ 상설전시관은 코로나19로 인해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사전 예약 후 관람이 가능합니다. (예약 인원 미달 시 현장에서 입장권 발권 후 입장)
○ 전시품 : 은해사 괘불탱(보물 제1270호),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보물 제1857호, 8월 23일까지 전시) 등
○ <꽃비 내리다 - 영천 은해사 괘불 전시도록> 판매
열다섯 번째 괘불전 <꽃비 내리다-영천 은해사 괘불 도록>에는 은해사의 연혁과 사적을 정리하고, 괘불과 함께 은해사의 법당을 장엄한 세 불화를 종합적으로 조명했습니다. 괘불전 도록을 통해 동시기 승려 장인들의 협업 모습, 불사를 도모하기 위해 계를 조직했던 동갑내기 은해사 승려들의 공덕, 팔공산 인근의 염불신앙까지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부록에는 은해사 관련 사적의 원문과 번역문을 정리했습니다. 전시도록은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상품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목차
1. 극락구품의 고향, 팔공산 은해사
2. 꽃비 내리다-영천 은해사 괘불
3. 법당을 장엄한 은해사의 세 불화
4. 부록
- 화기와 방제
- 은해사 관련 자료
- 참고문헌
- 영문초록
가격 : 10,000원
판매 :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상품점(02-2077-2943/2942)
[한국 산사 불화기행]
4. 팔공산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
지금 막 극락에 도달한 듯 극적 묘사
아미타불 주재하는 서방정토
감동적으로 그린 18세기 불화
구품연못서 화생하는 왕생자
용선 탄 이들 맞는 아미타삼존
한 화면에 집약, 구성 돋보여
불화는 다른 장르의 불교미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전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 일대기인 팔상(八相), 불교의 이상향인 정토세계, 윤회의 굴레인 육도(六道)의 의미와 내용도 그림을 통해 어느 정도 묘사할 수 있다. 이렇듯 불화는 ‘예배’ 외에 ‘경전의 도설(圖說)’이라는 기능까지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念佛往生捷徑圖)’는 ‘염불수행을 통한 극락왕생의 염원’을 구체적이면서도 장대하게 그린 독보적인 정토계 불화이다.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은해사(銀海寺)는 경상북도의 명산 팔공산 자락에 자리한 미타도량이다. 조계종 제10교구본사로, 8곳의 산내 암자와 50여 곳의 말사를 거느린 거찰이기도 하다. 신라 때 혜철국사가 개산한 후 해안사(海眼寺)로 불리다가 조선 16세기에 천교스님이 중창하면서 지금의 사명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은해사는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귀중한 유물이 무수히 많은데, 그중에는 서방 극락세계를 감동적으로 묘사한 그림이 한 점 포함되어 있다. ‘염불왕생첩경도’라고 불리는 조선 18세기 불화이다.
극락, 불자라면 누구나 가기를 염원하는 이상세계이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인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에 따르면, 극락은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서방의 정토로 일체의 고통이 없고 칠보의 나무, 칠보의 연못, 칠보의 누각, 칠보의 연화, 황금의 대지,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과 극락조가 노닌다고 한다.
또한 극락에 왕생하려면 무수한 염불공덕을 쌓아야 한다고 한다. 염불(念佛)이란 부처님 상호(相好)를 생각하여 관(觀)하거나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수행법이다.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는 이러한 염불 수행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결과 도달할 수 있는 극락의 모습을 우아한 필치로 담아냈다.
이 불화는 세로 159.8cm, 가로 306.5cm의 비단 바탕에 그려져 있다. 붉은색과 녹청색을 위주로 하고 군청색 및 백색 그리고 금을 곁들여 그린 채색 불화이다. 필선은 섬세하면서도 힘이 있으며 존상들의 얼굴 이목구비와 표정에서부터 옷과 장엄물의 문양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들여 그린 흔적이 역력하다. 제작 연대는 조선 1750년이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한 장면 옆에는 방제가 함께 쓰여 있어 세부적인 의미를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했다. 화면의 상부에 위치한 장면 ①은 극락의 장엄이다. 아미타삼존, 즉 아미타여래와 좌우 협시인 관음․세지보살이 앉아 왕생자를 맞이하고 있으며(방제: 佛與菩薩接俱接念佛人) 그 주변으로 보배로운 나무(방제: 七重行樹潰陰垂布妙好無窮)와 칠보 누각(방제: 地上有七寶樓閣千層萬畳廣妙好), 기묘한 각종 극락조(방제: 種種奇妙雜色之鳥畫夜六時常說妙法)가 노닐고 있다. 또한 상품상생자를 데려오기 위한 금은 대좌를 주악 천인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방제: 上品上生者所來金銀臺風樂侍衆).
다음으로 화면의 하부 향 좌측에 배치된 장면 ②는 구품 연못이다. 칠보의 구품 연지(방제: 七寶池/ 八功德水流注葉間演說妙法百寶裝飾)에서 화생하는 왕생자들이 그려져 있다. 왕생자는 ‘상품상생’에서부터 ‘하품하생’에 이르기까지 제14 상배관–제15 중배관–제16 하배관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화면 향 우측 아래에 배치된 장면 ③은 용선접인(龍船接引)이다. 다수의 왕생자들을 태운 용선이 극락에 도달하는 모습이다. 배의 앞머리에는 관음보살이 번을 들고 인도하고 있고 뒤에서는 대세지보살이 삿대를 젓고 있다. 위에서는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아미타삼존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방제: 阿彌陀佛現前接引念佛衆生). 용선에 타고 있는 70여 명의 왕생자들은 수행자에서부터 속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다양한데, 모두 고개를 들어 용선이 향하고 있는 극락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듯 세부적인 내용은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지만, 화면 하부의 구품 왕생자와 반야용선은 화면 상부의 불․보살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구품연지 왕생자는 난간 위에 앉아 있는 아미타삼존의 손에서 나오는 빛을 통해 극락으로 인도되고 있으며, 용선 왕생자들은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아미타불과 권속들의 영접을 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아미타 정토계 불화는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극락에서 부처님 설법을 그린 아미타설법도, 왕생자를 맞이하러 오는 모습의 아미타래영도, 극락 관상법을 묘사한 관경변상도, 서방 극락세계를 다채롭게 장엄한 아미타정토도, 그리고 중생이 극락정토를 향해 반야의 지혜에 의지하여 용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모습을 그린 용선접인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극락 관련 불화들을 보면 해당 주제를 각기 별도의 화폭에 그린 것이 대부분이며, 극락의 모습, 구품 연화 화생, 그리고 반야용선을 한 화폭에 그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예를 들어, 고려와 조선전기에 그려진 관경변상도는 관법의 도설 위주로 그려져 있으며 조선 후기 정토변상도 역시 극락의 장엄과 아미타여래의 설법, 그리고 구품의 묘사가 대부분이다. 또한 ‘아미타정토도’(조선 1582년, 일본 라이코지 소장)나 ‘관경변상도’(조선 16세기, 일본 호린지 소장)에서는 용선을 확인할 수 있지만, 전자는 극락의 장엄이 구체적이지 않으며 후자는 용선이 하단에 작게 그려져 있어 시각적으로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은해사의 ‘염불왕생첩경도’는 앞서 설명했듯이, 극락의 이상적인 모습 및 구품 연지에서의 화생 장면 등과 더불어 지금 막 극락에 도달한 듯한 용선의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의미를 지닌다.
한편 이 그림은 ‘염불왕생첩경도’라는 명칭 외에 연구자들에 따라 때론 관경변상도, 서방구품용선접인도, 극락구품도 등으로도 불린다. 현재 문화재청과 소장처인 은해사에서는 ‘염불왕생첩경도’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선 방제에서 찾을 수 있다.
방제 중에는 ‘念佛之人生蓮華池(염불인이 연화 연못에서 태어나다)’, ‘佛與菩薩接俱接念佛人(불보살이 염불인을 만나다)’, ‘阿彌陀佛現前接引念佛衆生(아미타불이 앞에서 염불 중생을 인도하다)’, ‘念佛之人龍船往生(염불인이 용선을 타고 와 왕생하다)’라고 쓰여 있는 구절들이 있다. ‘염불인’이라는 구절이 반복해서 쓰여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염불수행이 극락왕생할 수 있는 방편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이 그림이 표방하고 있는 염불수행은 은해사의 당시 신앙 성격과도 연관이 있다. 조선 후기에는 전국 각지에서 염불 신앙이 팽배해 있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경북의 팔공산과 그 인근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18세기 경북지역에서 간행된 정토계 불서 중에는 <염불보권문(念佛普勸文)>이 포함되어 있다. 염불보권문은 예천 용문사에서 1704년 간행되기 시작한 이후 수도사, 동화사 등에서도 개판했는데, 이 책에서는 염불의식과 진언, 게송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칭명염불을 통해 왕생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동화사에서 간행한 <불설아미타경>(1753)에는 아미타경과 함께 염불과 관련된 ‘왕랑반혼전(王郎返魂傳)’과 ‘임종정념결(臨終正念訣)’이 합본되어 있는데, 간기를 보면 은해사가 포함되어 있다. 이렇듯 팔공산과 그 인근 지역에서는 염불 신앙이 팽배해 있었고 그 결과 은해사에서는 ‘염불왕생첩경도’와 같은 그림을 제작, 봉안하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 그림은 30여 년 전 도난당했다가 2010년에 환수되어 보수를 거친 후 현재 사중의 성보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현재 화기가 결실되어 남아 있지 않지만, 1990년에 발간된 문화재청 보고서에는 ‘건륭 15년’, 즉 1750년 작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은해사에서는 1750년에 ‘염불왕생첩경도’ 외에 ‘아미타설법도’와 괘불도를 함께 제작했는데 이 그림들의 화풍과도 유사해 1750년 제작설을 신뢰할 수 있게 해 준다.
‘염불왕생첩경도’는 전체적인 구성과 구도, 세부표현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 하나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그림으로, 미타도량 은해사를 명실상부 대표할만한 정토계 불화라 할 수 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보물 제1857호로 지정되었다.
신광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강사
[불교신문 3564호 2020년 3월 11일자]
* 성민정,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 연구', 2018, 동국대 석사학위 논문이 있으나 용량이 많아 싣지 못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RISS에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2015년 제1회 동산문화재위원회 회의록
안건번호 동산 2015-01-007
7.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永川 銀海寺 念佛往生捷徑圖)
가. 심의사항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의 보물 지정 여부를 부의하오니 심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ㅇ 2013년 불교문화재 일제조사(’02.~’12. 일제조사의 전국보강조사)를 통해 지정조사 대상으로 선정됨에 따라 관계전문가의 조사(’14.7.28~29)를 실시하였음
ㅇ 위 사안에 대해 본위원회 2014년도 제7차회의(12.11)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가치가 있다고 검토되어 30일간 지정예고('14.12.30~'15.1.28)하고 보물 지정 여부를 부의하는 것임
다. 주요내용
◦ 지정현황 : 비지정
◦ 명 칭 :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永川 銀海寺 念佛往生捷徑圖)
◦ 소유자(관리자) : 은해사
◦ 소 재 지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청통로951
◦ 수 량 : 1폭
◦ 규 격 : 159.8×306.5cm
◦ 재 질 : 비단
◦ 제작연대 : 1750년
◦ 제 작 자 : 미상
라. 조사자검토의견
ㅇ
이 불화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중생들을 般若龍船에 태우고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장면과 이를 맞이하는 아미타불 일행, 極樂蓮池에서 蓮花化生하는 왕생자, 寶樹와 極樂鳥 등 극락의 장엄한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念佛往生捷徑圖이다. 원래 은해사 심검당에 舊藏되었던 것으로 도난되었다가 최근 회수되었는데 현재 화기는 남아있지 않지만 도난 이전 조사 시에 乾隆15년이라는 연대가 남아있던 것이 확인되어 1750년도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염불왕생첩경도는 <觀無量壽經>에 기록된 극락왕생의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觀想을 통한 막연한 극락왕생이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가는 실현 가능한 극락왕생을 염원하던 중생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선후기에는 극락왕생의 모습을 직접 그린 불화가 약 20여 점 정도 남아 있는데, 이 작품은 현존하는 조선후기 극락왕생도 중 가장 이른 예라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색이 바래서 어두운 편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채색이 잘 남아 있으며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한 편이다. 이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여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ㅇ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1750년)는 염불 신앙관과 결합하여 인간 사후 아미타가 주관하는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이상향의 세계를 묘사한 것이다. 매우 성글고 가는 견목 바탕에 채색을 베푼 불화로 안료가 잘 남아있고 보존상태 역시 양호하다. 은해사염불왕생첩경도는 18세기 중엽에 해당하는 불화로 화면 전체에 총 22개의 傍題銘을 두어 이 방면 圖像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게다가 조선전기와 후기의 극락왕생 불화를 연결하는 중요한 사례로서 불교회화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따라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보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ㅇ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의 경우 화면 하단 중앙부 일부에만 손상이 엿보일 뿐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으로, <觀無量壽經>을 소의경전으로 하여 나타낸 변상도적 성격의 그림이다. 이 불화는 극락왕생자와 연화화생자를 통해 가고자 하는 극락세계를 보여주는 도해식 표현의 거의 유일한 자료로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지금은 비록 화기가 잘려나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국립문화재연구소 발간 자료에 ‘건륭15년’이라는 조사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1750년임을 알 수 있다. 은해사의 경우 화승 ‘處一’이 책임을 맡아 1750년 괘불도와 대웅전 아미타후불도를 함께 조성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염불왕생첩경도 역시 동일 화승에 의해 동일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는 국가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
마. 내용 및 특징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는 극락세계에 도착하는 왕생자와 아미타불의 설법을 들으며 연화화생하는 왕생자를 다양한 극락의 배경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도난사건 이후 화기가 잘려나간 채 회수되었으며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최근에 은해사 성보박물관으로 보관되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1990년에 발간한 <전국사찰불화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乾隆十五年’이라는 글씨를 제외하고는 잘려져 나가 화사를 알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어1750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모든 화기는 찾아볼 수 없으며 비단 배접으로 장황된 액자형태로 남아있다 평균 63cm의 비단 5폭으로 구성된 본 작품은 전체적으로 색이 바래 어두워졌지만 색채의 탈락이 적어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다. 구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극락세계의 도착하는 2부류의 왕생자의 모습이 표현된 좌측과 아미타불의 설법을 들으며 연화화생하는 우측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왼쪽의 극락왕생 장면은 奏樂天女들이 금색 연화대를 운반하는 장면이 상단에 배치되고 하단에는 인로왕보살과 관음세지보살 그리고 수많은 왕생자들이 반야용선에 승선하는 장면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중간에는 아미타불이 다른 왕생자과 함께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으로 구성되었다. 傍題에는 ‘上品上生者所業金銀臺風樂侍衆’, ‘阿彌陀佛現前接引念佛衆生’라는 기록이 있어 아미타불이 상품상생의 염불수행자를 인도하고 관음세지보살이 龍船에 승선한 왕생자들을 인도하는 장면임을 설명하고 있다. 우측에는 극락의 모습을 배경으로 연화화생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1611년 간행된 실상사 <觀無量壽經> 변상판화의 모티브가 나열되듯이 표현되어 주목된다.먼저 화면 중앙에서 좌측으로 약간 벗어난 위치에 寶樓觀의 전각과 극락조가 표현되었으며 그 옆에는 아미타삼존이 설법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하단에 칠보연지에서 上品上生-下品下生까지왕생자가 연화화생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이 장면은 관무량수경 변상판화의 寶冠의 모습과 유사하다. 우측 상단에는 寶樹觀의 모습이 흰색과 금색의 두 개의 보수로 표현되었으며 하단에는 華座觀의 모습이 표현되어 커다란 연화좌대가 배치되었다. 이처럼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의 우측 부분의 도상을 살펴보면 관무량수경 변상판화의 영향이 깊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를 바탕으로 작가가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색채는 어두운 남색 하늘에 다양한 색채를 이용하여 극락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특히 바닥의 칠보 연지와 반야용선이 떠있는 물의 표현이 황토색으로 표현된 것은 특이한 부분이다. 전체적인 문양은 생략되어 있으며 불․보살의 大衣에만 金線으로 표현되었다.
바. 의결사항
ㅇ 원안가결 : 보물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