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행복
문희봉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그냥 나답게 사는 일이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뜻이라고 일찍이 법정은 ‘산에는 꽃이 피네’에서 말하고 있다.
꼬마들의 목소리가 조명보다 밝은 이유는 무소유의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늘과 땅 사이 어찌 이런 세계가 있으리. 봄볕 아래 나른해진 고양이처럼 웃음이 함박꽃처럼 쏟아지는 집에서 꼬박꼬박 졸음을 쏟아내는 것이 무소유의 행복이 아닐까? 나이 여든이 넘으면 집에 있으나 산에 있으나 매일반이라는데 과욕을 부려 무엇하리.
우리는 약간의 이익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우를 범한다. 행복한 삶이란 나를 비롯해 나 이외의 것들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은 식어 버린 불꽃이나 어둠 속에 응고된 돌멩이가 아니다. 별을 별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발에 차인 돌멩이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 때,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비로소 행복은 출발선상에 선다. 벌들은 봄이면 아카시아꽃을 사랑하고, 여름이면 야생화를 사랑하는 것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아깝다고 버리지 않으면 아름다운 꽃밭이 잡초밭으로 변한다. 사소한 행복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몇 푼의 돈 때문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버리는 것은 불행을 향해 달려가는 것과 같다.
아침 산책 후 강가에 가면 친구는 가장자리에 서서 물속으로 돌을 던지는 것이 일과였다. 궁금하여 내가 물었다. “왜 자네는 아침마다 쓸데없이 돌들을 주워 강 속으로 던지는가?”. “나는 돌을 던지는 게 아니라네. 아침마다 교만이나 이기심 등 어제 하루 동안 쌓인 나의 죄악들을 던져버리고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것이라네.”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런 행위도 무소유의 삶이겠다.
하루 한 시간의 행복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교양과 품격 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는 스님 앞에 욕심이란 없다. 금강경의 마지막 구절에 보면 ‘모든 것이 내 마음에 있는 것으로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버릴 것 죄다 버리고 꼭 남겨야 할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는 스님이 있다. 그의 다비식에서는 얼마만큼의 사리가 나올까? 야생동물들은 천명을 다하고 건강하게 한 생애를 마친다. 자연에 순응하며 욕심 없이 살았기에 그럴 것이다. 이런 삶이 바로 무소유의 삶이 아닐까? 그런 삶은 아마도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갖고 있을 것이다.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인생이 전직 어린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시절의 순수한 생각, 투명한 눈빛, 맑은 마음, 유치한 감성이 유전자 속에 남아 있으니 나는 칠십을 넘겨서도 아이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래서 동심의 기본은 단순함과 호기심,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이라 했는지 모르겠다. 수시로 ‘오아, 옳지,’ 등의 감탄사를 말끝마다 쏟아낸다. 거기에 얼마나 잘 웃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하루에 600번 정도 웃는다. 그런데 어른들은 고작 대여섯 번 정도라니 말문이 막힌다.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대부분 동안(童顏)이다. 동안은 주름 없는 얼굴이기보다는 다양한 표정과 천진무구한 마음이다. 아름답고 천진한 어린이의 원형을 잘 관리할 줄 안다. 그렇게 하여 영원히 젊게 산다. 어떤 이는 삶이 신산스러울 때 자연의 품에 안긴다. 자연에서 흙이 베푸는 모습을 본다. 흙은 식물의 생육을 통해서 경직된 몸을 풀고 숨통을 트게 한다. 깊은 강물은 흐르는 소리는 들려주지 않지만, 여전히 아래로 아래로 물을 흘려 보낸다.
후덕하게 생긴 사람이 봄나물 같은 미소를 보내고 있다. 호두알처럼 쪼글쪼글 주름진 노파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난다. ‘행복은 결코 많고 큰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적게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고 법정은 말했다.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상대 행복이 아닌 절대 행복이다.
세월에 잘 적응하려면 가벼워지는 수밖에 없다. 고요와 깊이를 아는 사람은 은은한 시선의 미소만 있어도 만족한다.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도 무거운 마음의 무게를 덜어 주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