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이 있다. 위급한 상황에 놓인 사람의 마음을 우리는 흔히 이렇게 표현한다. 지금 그러한 처지의 사람들이 있다.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는 진폐환자와 그 가족들이다. 아니 전국에 있는 중증 진폐환자들 또한 같은 심정일 것이다. 몇년째 논란이 되어온 성모병원의 진폐병실 폐쇄 문제가 최근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며칠 전에 이들 진폐환자 후원모임 관계자와 수녀님 한 분이 나를 찾아왔다. 광원(광부) 출신으로 평소 진폐환자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온 내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이곳 정선 사북까지 달려왔단다. 이들은 성모병원 진폐병동 폐쇄를 한사코 반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전국에는 진폐진료요양기관으로 지정된 의료시설이 29곳이 있다. 그중 성모병원은 중증진폐환자들을 진료하고 연구할 우수한 시설과 전문인력을 갖춘 유일한 의과대학 부속병원이다. 무엇보다 성모병원은 폐암을 비롯해 진폐증과 관련된 각종 중증 합병증 진료와 수술에 가장 우수한 의료진과 의료장비를 보유한 종합병원이다. 이에 반해 여타 진폐병원들은 전문의 부족으로 100~200명의 진폐환자를 한두 명의 의사들이 돌보는 실정이다. 이렇게 의료진이 절대 부족하다 보니 적극적인 진폐환자 진료보다는 단순 요양 차원으로 운영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런 까닭에 요즘도 지방의 진폐병원에서 상태가 나쁜 진폐환자들이 성모병원 진폐전문 의료진을 찾는 경우가 상당하다. 이렇듯 성모병원 진폐병실은 중증 진폐환자들에겐 목숨처럼 소중한 곳이다. 진폐병실이 일반병실 운영보다 수익이 낮아 병원 쪽에 상당한 부담인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중증 진폐환자들에게는 마지막 희망의 촛불이자 불씨와도 같은 진폐병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왜 성모병원 진폐병실을 폐쇄해서는 안 되는지’를 이렇게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간절하게 도움을 호소했다. 그리고 말미에는 이렇게 소중하고 중요한 문제에 우리 사회가 너무 무관심한데 대한 안타까움과 서운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나 또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도 해법도 없으니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었다. 기껏 이 문제를 여론화하기 위해 언론에 호소하고 뜻 있는 국회의원의 도움을 요청해보라는 몇 마디 조언이 전부였으니.
지금 우리 경제는 배럴당 50달러를 훌쩍 넘어버린 석유 값에 그야말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 1970년대에도 두 차례 석유파동이 있었다. 그러한 국가적 위기상황 때 가장 큰 공로자는 바로 석탄을 캐는 광원들이었다. 그때만 해도 흔히 ‘산업역군’ ‘산업전사’라 불리운 그들. 이들이 지하 막장에서 열심히 석탄을 캐온 죄로 얻게 된 직업병이 바로 ‘진폐증’이다. 전국엔 지금 2700여명 입원 진폐환자들 외에도 6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재가 진폐환자들이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전쟁터 같은 지하 막장에서 피땀 흘린 노동으로 수고해온 이들 ‘산업전사’들에 대한 예우가 이래서는 안 된다.
예전엔 200병상으로 유지되어온 성모병원 진폐전문 병실. 그러나 이제 얼마 남지 않은 17병상 2개 병실마저 폐쇄될 위기라고 한다. 이들은 지금 특정병원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 이들의 주장은 분명한 명분과 설득력이 있다. 한때는 ‘국가유공자’들이었던 진폐환자들. 성모병원이 아니면 살릴 수 없는 이들에겐 진폐병실 폐쇄는 바로 인권이자 생존권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특정병원의 경영상 문제’로 보고 병원 쪽이 알아서 할 사안으로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성모병원 진폐병실 폐쇄 문제로 이렇게 백방으로 뛰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다급하게 두드리는 ‘긴급구조 요청’에 시민단체와 국회 언론 등에서 팔을 걷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어 하루속히 희소식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