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림성 도시조인 림팔급(林八及)공이
당(唐, AD618-907)나라 말(자유게시판 910-920번글에 상세기술)에
환관의 전횡,
살인기계 주전충(朱全忠,852-912)의 폭거,
동료 한림학사 류찬(柳璨)의 배신으로
7학사(薛仁敬,刘筌,宋奎,许董,权之奇,崔沍,孔德狩)와 함께
당시 신라국으로 망명하여 위기를 모면하였듯이,
진(秦,BC221-207)나라 진시황의 분서갱유(焚书坑儒)때
림미(林微,황제헌원70세손)의 동생 림헌(林宪)이
조상묘에 족보와 문헌을 감춰
세보기록이 탈취, 기록이 유실되어
대가 끊길뻔한 위기를 넘겼으며,
2.한(汉, BC 202-AD 220)나라
말
환관
십상시(十常侍)와 외척의 세력다툼을 틈타 등장한
동탁(董卓,-AD 192, 삼국지의 중국4대미인
초선을 연환계로 삼아
여포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인물)이 권신이 되어
당시
세력집안이던 림씨를 시기하여
림씨세력가 744명을 죽이는 참화속에
림농(林农,
황제헌원103세손)이
부친을 모시고 은거를 시작하여,
세손이
끊기는 화를 모면할 수 있었고,
3. 랑야방(琅琊榜), 소설을 극화한 역사드라마지만
묘하게 림씨가계보와 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시 남조의 양(南梁,502-557)나라
림섭(林燮)장군이 아들 림수(林殊)를 대동,
7만대군을 호령하여 출정하였으나
림씨권세를 시기하던 중앙정부 현경사의 음모로
역모죄를 쓰고 아군에 의해 몰살을 당합니다.
천행으로 살아나온 림수(林殊)는
맹독후유증으로 얼굴이 변하여 매장소(梅长苏)라는 가명으로
랑야방 수장이 되어 복수를 하는 과정을 그린
역사-무협-정치-책략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시대배경을 살펴 보면
(1) 림씨 세보상
위진(魏晋 220-420)과 수당(隋唐 581-907)세보는 기록되어 있으나
그중간인 남북조(南北朝 420-589)기간엔
관명은 물론 국적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황제헌원108세손 림관(林冠) 위원제(魏元帝)시 상서령(向书令)
109세손 림옥(林玉) 진무제(晋武帝)시 시중겸사례교위(侍中兼司隶校尉)
110세손 림봉훈(林逢勲) 진무제(晋武帝)시 박릉태수(博陵太守)
............
118세손 림격(林格) 진효무제(晋孝武帝)시 랑중령(郞中令)
119세손 림정지(林靖之) 진안인(晋安人)
120세손 림수지(林遂之) 진안인(晋安人)
121세손 림둔민(林遯民)
122세손 림옥진(林玉珍)
123세손 림원차(林元次)
124세손 림무(林茂) 수(隋)나라 보전(莆田)림씨시조
즉108세손부터 118세손까지는 위진(魏晋)국가소속,
124세손부터는 수(隋)나라소속이 기록되어있지만
119-123세손 5대는 남북조시대임이 추론되지만
국가소속과 관명이 명기되지 않았음은
핍박기 또는 은둔기였음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진(晋)나라에선 진안(晋安,지금의 복건성 福州)이 관향이었지만
수(隋)왕조가 시작될 즈음 보전(莆田)으로
즉 더 먼 남쪽으로 이주하였음도
이를 뒷바침합니다.
첫댓글 1. 林微字世隐,赵国九门人。赧王时仕于秦,为大夫左卿,封关内侯。 林宪,字世武。齐国邹县人。秦始皇焚书时,秘藏宗谱于祖墓内,使林氏世系不致失序。到汉高祖二年(前205年)任司隶校尉。 为黃帝七十世孙,比干三十八世孙。
2.林氏《长山世谱》记载:比干七十一世孙,祖考农公,字野贤,官经史博士,灵帝时阉宦十常侍流祸,凡忠臣义士缙绅名宦俱被戮,我族被害者744人,公同父罢归,恐祸及之,乃与父老潜之。《林氏宗谱序》也说:后汉之末,复遭董卓擅权乱政, 士爵播迁,每忌林族诸士,布言林氏宗党强于河北,汉主蒙其潜诉,宗族被戮者744人。。
3.原来,十二年前,南梁大通年间,北魏兴兵南下,赤焰军少帅林殊随父出征、率七万将士抗击敌军,不料七万将士因奸佞陷害含冤埋骨梅岭。林殊从地狱之门拾回残命,历经至亲尽失、削骨易容之痛,化身天下第一大帮江左盟盟主梅长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