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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정
240407(일) 불법사드철거 김천평화촛불 🤗제 933회🤗
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
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
누군가 꽃이 진다고 말해도
난 다시 씨앗이 될 테니까요
그땐 행복 할래요
고단했던 날들
이젠 잠시 쉬어요
또다시 내게 봄은 올 테니까
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
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
흙으로 돌아가는 이 길이
때로는 외롭고 슬프겠지만
그땐 행복 할래요
고단했던 날들
이젠 잠시 쉬어요
또다시 내게 봄은 올 테니까
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
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
- 영화 ‘김복동’OST 윤미래「꽃」
● ‘임을위한 행진곡’ 제창
● 이끄미 : 김종희 기획팀장
아침에 커튼 사이로 벚꽃이 보입니다. 아침마다 환한 세상을 선물받아 너무 감사합니다. 꽃이 피면 열매가 되고 그 열매가 씨앗으로 다시 환생할 거라는 김복동 어머님을 기리는 ‘꽃’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우리도 이 자리에서 평화의 꽃을 피우고 이 땅의 평화의 열매를 맺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 땅에 튼튼한 평화의 나무를 키워내는 평화의 씨앗이 되고자 모였습니다. 짜장면을 드신 힘으로 933회 촛불집회 구호로 힘차게 시작하겠습니다.
전쟁을 반대한다.
평화에 살자.
사드 뽑고 통일로 가자.
● 여는 마당 : 성주 소야몸짓패 ♪동지가
● 이봉란 어머님 납시셨습니다^^
♪ 추풍령
기적도 숨이 차서
목메어 울고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싸늘한 철길.
떠나간 아쉬움이 뼈에 사무쳐
거칠은 두빰위에 눈물이 어려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 고개
♪ 모란동백
세상은 바람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 동백아가씨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기다리네 동백 아가씨
가신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 오려나
● 박석민 자문위원장
우리집이 작년 재작년 조금씩 비가 새더니 올해는 봄에 비가 많이 와서 지붕 공사를 해야 했습니다. 여름도 아니고 봄비에... 다용도실과 복도에서 물이 막 떨어져, 제가 알기로는 휴전선 이남에서 일을 제일 잘하는 김종룡 팀장이 도와주셨어요. 지붕에 아침부터 올라가 보니까 뭐를 바르고 하려면 청소부터 해야 되겠더라구요. 청소기 끌고 올라가고 빗자루 청소만 한 3시간 걸리더라고요. 지붕에 앉아가지고 오늘 뭔 얘기하지? 이 생각 하다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이야기 아시죠? 또한, 4월에 하루를 쉰 농부는 동지섣달에 열흘을 고생한다는 얘기도 있어요. 4월은 농사를 짓는 분들로서는 바쁘고 힘든 가운데 4월이 또한 한 해를 준비하는 이런 때이지요. 그런 바쁜 와중에도 꿋꿋하게 우리 사드 집회 지키는 운영팀 박수 한번 주시죠 👏 👏 👏
옥상에서 잠깐 잠깐 앉아가지고 인터넷 뒤져보니까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하는 그 어원이 1922년에 영국의 T.S.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이라고 하는 사람이 시를 썼는데 '황무지'라고 하는 시의 맨 첫 줄이 4월은 매우 잔인한 달! 이게 첫 줄이어서 그게 어원이 됐다 그래요. 1922년이면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 3천 명 가까이 유럽에서 사람이 죽었고 엘리엇 개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하고 이별도 했어요. 황무지... 굳이 그 시를 일컫지 않아도 우리나라 또한 4월이 많이 아파요. 그렇죠? 제주 4.3희생도 있었고요.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지만 그 혁명을 위해서 4.19 때 186명이 죽기도 했고, 그리고 10년 전 세월호의 아픔도 있어서 정말 이 아픔이 잔인한 달로 끝나지 않으려면 내일 모레 총선 잘 돼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저는 더 많이 들어요. 1976년 4월 중국은 천안문 광장 앞에서 있었던 일련의 민주화 운동으로 전차, 인민해방군 수송을 위한 트럭을 동원해 무고한 시민들 2600여명을 깔아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2007년 4월 16일 날 조지 버지니아 공대에서 우리나라 유학생이었어요. ‘조승희’라고 하는 친구가... 미국에서 큰 총기 난사 중에 하나였고 33명이 죽었어요. 그리고 1906년에 캘리포니아에 지진 나가지고 3천 명이 죽기도 하고... 세계적으로도 4월달에 많은 이런 인명피해가 있는 달 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말씀드린 대로 4월이 잔인하지 않으려면 민중을 이끄는 지도자를 잘 뽑아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내일 모레 총선이니까 총선 얘기를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어서 총선 얘기할 건데 그전에 세월호 얘기 잠깐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 주에 물론 세월호 우리가 기념하면서 발언도 있고 세월호 기억하는 집회 내용으로 저희가 준비를 하고 있는데 4월 4일날 김천교육너머에서 세월호 10주년을 맞아서 단원고 2학년 5반 엄마들 모시고 간담회를 했어요. 보면서 옛날 생각도 나고 뭐 얘기를 할까 그러다가 10년 전 얘기하면 엄마들이 너무 아파할 것 같기도 하고 시간상의 문제도 있어서 얘기 안 했고 그때 잠깐 들었던 생각을 아예 오늘 그냥 같이 공유할까 싶어서 말씀드리면 한국 사람은 큰 트라우마를 몇 가지 안고 살아요. 가장 큰 트라우마는 한국전쟁이에요. 우리의 삶과 우리들의 모든 것을 짓누르는 한국전쟁은 온 국민이 경험했든 경험하지 않았든 큰 트라우마를 겪고 살아요.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평화가 이루어져야죠. 그리고 그걸 디딤돌로 통일로 나갈 준비를 해야 돼요. 그거 말고는 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방법이 저는 없다고 생각해요.우리가 사드 반대 싸움을 하는 이유도 뭐예요? 그런 평화 체제를 만들려고 싸우는 겁니다.
또 하나는 세월호 문제예요. 10년 전에 대한민국 사람 모든 사람이 tv 화면을 통해서 생중계로 아이들이 죽는 걸 봤어요. 그것이 우리 가슴, 우리들의 삶 곳곳에 큰 트라우마로 남을 수밖에 없었죠. 이게 해결되려면 어떻게 돼야 돼요? 세월호의 진실이 규명되고 잘못한 놈 처벌받고 다시는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사회 구조를 만들고 이렇게 돼야 되는데 안 했어요. 세월호 엄마가 그럽디다. 그날 다들 열심히 세월호 잊지 않고 함께해 주는데 정치권 이 새끼들만 안 한다고... 10년 동안 오히려 틀어막고 이 진실을 규명하는 걸 안 해왔어요. 특히 지금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이 세력들이 10년 전에 그 일이 생겼을 때 저는 이제 민주노총이 일했는데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처음에 세월호 문제가 터지고 수 많은 주검이 올려졌잖아요. 그러면서 이제 부모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다가가질 못하게 했는 거예요. 그 아픔에 옆에 갈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7월 2일날 단원고 2학년 엄마들과 아빠들이 전국에서 거리 서명받겠다는 소식이 들려서 민주노총 설득해서 여기 우리 다 붙어야 된다고... 그래서 민주노총 전체 사업장 들어가서 서명받게 해야 된다... 이러고서 이제 제가 영남권 붙었어요. 7월 2일날 영남권은 창원에서 기자회견하고 출발하고 호남권은 진도 팽목항에서 기자회견을 출발해서 호남권은 짝수반 그다음에 영남권은 홀수반 이렇게 양쪽에서 올라와서 서울에서 만나는 걸로 했는데
창원에 STX라는 조선회사가 있어요. 엄마 몇 분이 못 들어가겠대요. 왜요? 그랬더니 배만 보면 애들 생각나서 못 들어가겠다는 거야. 그다음에 이제 통영에 성동조선이라고 있어요. 그 다음 날은 한번 용기 내서 들어가 보겠다고 그러고 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그 배 건조하는 거를 쭉 보더니 노조 간부한테 저 배 튼튼하냐고 물어보니까 노조 간부야 우리 튼튼하게 배 잘 만듭니다. 이랬는데 엄마가 그 소리 듣고 울어. 우리 애들도 저런 튼튼한 배 탔으면 안 죽었을 건데 노조 간부가 그 얘기한 게 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거예요. 하루 서명하고 거리 서명하고 그 다음 날 하루 더 지내고 저녁 되면 좀 친해져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이래 갖고 제가 태어나서 하루 6시간 마이크 잡고 선동한 건 그때가 처음이고 그 이후에도 없어요. 그때가 마지막일 거야.
그때 제가 제일 많이 했던 얘기가 세월호 진실 규명이 안 되면 대한민국은 단 한 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그랬어요. 진실 규명 안 되니까 이태원 참사 터지고 그것조차도 진실 규명하자고 하는데 거부권 행사하잖아요. 그리고 제가 그때 보니까 엄마들이 훨씬 강해요. 아빠들은 같이 서명하고 난 다음에 저녁에 이제 술 한잔 먹는데 갑자기 울어. 갑자기 한 아빠가 우시니까 다른 아빠들이 같이 울어. 왜 우냐고 내가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내가 애 이름을 잘못 지었다고 애 이름을 ‘세호’라고지어가지고 우리 아들이 세월호 타서 죽었어. 내가 죽인 거라고... 이러고 울어요. 매일 저녁 아버지들은 다 울더라고 엄마들은 안 그렇던데... 그래서 엄마는 훨씬 강하고 위대한 것을 그때 다시 한 번 느꼈어요. 그렇게 10년을 아이들을 가슴에 묻고 이 엄마 아빠들이 아직도 길거리에 있어요.
한편으론 교육 너머에서 그런 자리를 만들어서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는데 한편으로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실제로 세월호 진실 규명 나서는 건 엄마 아빠들이 하고 있고 우리는 같이 못했다고 하는 그런 죄책감도 들고 그래서 세월호 문제도 이태원 참사 문제도 이게 극복되지 않으면 한 발도 앞으로 못 나간다고 하는 얘기 동의하시죠? 이게 어떻게 그들만의 싸움이에요? 대한민국 사람 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우리 모두의 싸움이죠. 그래서 좀 더 기억하고 함께하는 그런 것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세월호 다음 주에 얘기하겠지만 짧게 말씀드렸습니다.
총선 얘기해볼 건데요. 3일 있다가 선거를 하는데 제가 이제 소성리에서는 한번 얘기를 했는데 아재 개그 하려구요^^ 국회의원 선거 하잖아요. 총선은 국회의원 선거죠.
Q. 국회의원 선거의 반댓말은?
A. 국회의원 앉은거!...
기왕 이상한 얘기 시작한 거 하나 더!
Q. 아이하고 아버지하고 이제 아이가 막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바다에 갔는데 큰 배가 지나가요. 그래가지고 아빠 저 배가 영어로 뭐야? 물으니 아빠가 ‘ship’했어요. 근데 그 밑에 조그만 요트에 김건희하고 윤석열이 타고 막 가. 그러니까 애가 뭐라고 했게요?
A. 그래? 그럼 저건 쉽새끼네
현대통령이 20번이 넘는 민생 토론회를 다녔어요. 근데 나중에 확인됐잖아요. 그쪽 지역에 해당 공약 보고 가서 얘기하고 이런 거... 이거 선관위가 이러면 뭐 해야 돼요? 작살내야 돼요. 제재하고 중단하라고... 노무현이 열린 우리당 잘 됐으면 좋겠다고 하는 얘기 한마디 때문에 2004년 3월 12일날 탄핵가결된 사람이예요. 윤석열은 탄핵감도 넘어섰다고. 근데 선관위가 아무것도 안 해. 왜? 선관위 꽉 잡고 있거든. 이 검사 권력이 딱딱 잡고 있어서 찍소리도 안 해요. 노무현이 탄핵 두 번째로 됐는데 첫 번째 탄핵은 누구예요? 이승만, 이승만이 1925년에 3월 18일 날 뭘 했냐 하면 국제연맹에다가 임시정부의 권한을 위임하는 거를 임의로 막 한 거예요. 그래갖고 짤렸어. 첫 번째 탄핵이에요. 그래갖고 박은식이 그 다음 대통령을 맡게 돼요. 이승만기념관을 만든 데죠? 작년 4월 4일 날 국가보안부처가 뭘 발표했냐 하면 이승만 기념관 만든다고 막 논쟁이 되니까 이승만 기념관을 만드는 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독립 유공자 지원과 법률에 따라서 하는 거다.. 이러고 지금 추진하는 거야 전직 대통령 때문이라서 하는 게 워낙 말이 많으니까 그렇게 하고 4.3을 또 짓밟는 거지요.
제가 총선은 국민들이 투표를 하는 거지만 뽑는 건 누가 뽑는 거다. 국회의원은 정당이 뽑는 거예요. 국회의원은 정당이 뽑아요. 무슨 얘기냐?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300명이에요. 그래서 비례대표 이번에 1명 줄여갖고 46명이에요. 46명 추천 누가 해요? 위성 정당을 만들든 어떻든 비례 정당이 추천하죠. 그리고 그거 가지고 정당 찍어서 비례의원들을 하고 그거 한 석이라도 하려고 진보정당 자기 가치 다 팽개치고 위성정당 들어간 거고. 그리고 나머지 지역구 254석 이거를 누가 추천해요? 정당이에요 그러니까 민주당 공천 가지고 난리 핀 거고 국민의힘은 조용히 됐는데 옛날 공천하고 썩은 공천 그대로 한 거고... 그리고 양당이 막대기만 꽂아도 되는 데 많죠. 얘네들이 내놓은 인물, 그거 보고 투표하는 거예요.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우리가 투표라고 하는 행위를 통해서 국회의원을 뽑지만 실제로 국회의원을 세우는 건 정당이 뽑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이번에 사전투표가 32% 정도 지금 투표했어. 역대 사전투표율 최고예요. 저는 이번 총선이 그런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어서 제가 지난번 말씀드렸던 역대 가장 빛나는 총선 85년 총선처럼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85년 2.12 총선은 84.6%였어요. 하여튼 그래서 그런 총선으로 가지 않을까? 총선 얘기해달라고 했지만 마무리하면 윤석열 정권 심판 선거를 하게 돼 있는 거고 윤석열 2년 딱 돌아보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윤석열 딱 등장해가지고 맨 처음에 한 게 뭐예요? 용산으로 가셨어요.그래서 용산으로 이전 하는데 469억 된다고. 그랬는데 야당 발표로는 1조원 들어간다고 그랬어. 그러다가 7월달에 나토 가셨어요. 우크라이나 전쟁 터지고 한반도의 상황이 아주 안 좋은데 나갈 때 기자들한테 뭐라 그랬냐 하면 나토의 처음 가시는데 어떤 각오로 가십니까? 뭐 가서 밥이나 먹고 얼굴이나 익히고.. 하고 가셨어요. 부인 데리고 가고 지지율 24%로 뚝 떨어졌고 7월 29일 날 박순애라고 교육부 장관을 추천했는데 음주 전력이 있었어. 그래도 버텼어요. 35일 동안. 근데 뭘로 날아갔냐 하면 만 5세 조기 취학 입학 이거 내놨다가 두들겨 맞고 그것 때문에 사퇴했어.그러다가 이제 한 9월 돼가지고는 미국 가셔 가지고 바이든하고 만났는데 45초.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 이래갖고 온 국민 청력테스트 하셨어요. 그다음에 딱 넘어와 가지고는 3월달에 노동자들 일을 너무 쪼금해 52시간이 뭐야 69시간으로 늘려서 막 난리를 만들어 놨어. 그다음 작년 4월 4일날 윤석열이 뭐였어요? 전 국민 66.5%가 찬성하는 쌀값 안정화. 양곡법 거부권 행사했어요. 제가 지난번에 이 윤석열 정부 행정부의 장관 얘기를 다 했는데 농림부 얘기 안 했죠? 농림부 장관이 누군지 몰라요. 왜? 윤석열 정부의 농업정책이 없어요. 이번에 하나로 마트 가서 대파 흔들었어요. 우리나라 대파는 누가 생산해요? 데메테르라고 하는 농업의 신 풍요의 여신인 우리 할머니들이 농사한 거예요. 이거를 능멸했어. 농민은 없어요. 그다음에 8월달에 캠프 데이비드에서 같이 한미일 동맹 구축 선언했어요.그리고 거기에서 일본 원전수 방류 실질적으로 승인했고 그다음에 역대 어느 정권보다 대북 정책으로 억제 정책, 미국 핵까지 동원한 맞춤형 억제 전략으로 한반도 나락으로 빠뜨렸어. 11월 28일 날 법에서 내 와이프는 제외야...라면서 특검법 거부했죠. 이태원하고 김건희 특검법 다 거부합니다. 그다음에 강성회 입틀막, 카이스트 입틀막, 의사들 입틀막, 국민들 입틀막...
이번 총선이 실제로 윤석열을 심판하는 계기로 나아가야죠.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한국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위기마다 이 나라를 살려온 것처럼 그런 집단지성으로 총선 투표 다 하세요. 지금 국민들의 관심이 그만큼 높아져 있는 만큼 우리들의 요구가 조금씩 관철되리라 믿어요. ‘최종병기 활’이라는 영화 있죠? 우리가 가진 건 ‘최종병기 표’가 있잖아. 하나씩 다 있는... 윤석열도 한 표, 나도 한 표! 그 한표에 승리의 역사를 쓰고 이 사드집회 또한 열심히 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사드 뽑고 평화 심자!
● 닫는 마당 : 소야몸짓패
♪내일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