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피디: 오늘이 몇 일이지? 아침에 눈을 뜰 때 꼭 한 번은 묻곤 하지요, 그리고선 슬그머니 달력을 보다 깜짝 놀라게 됩니다. 벌써 12월이네... 마음이 바빠져야 할 것도 같고 또 왠지 남긴 것 하나 떠오르지 않아 맥이 턱 풀리기도 하는데요, 글쎄... 사랑이 있는 세상 여러분들의 마음 속은 어떨까... 싶습니다. 교회의 전례력이 세상의 달력보다 한 달 일찍 시작하는 대림시기... 어떠세요? 다가올 주님의 탄생을 세상보다 일찍 깨어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분. 그리 나쁘지만은 않으시지요? 그런 기다림, 그런 준비와 함께 하는 분이십니다. 사제단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셨지요? 변함없이 망미성당 조영만 신부님 나오셨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조신부: 안녕하십니까? 어느새 겨울 문턱에서 인사드리게 되네요. 망미성당 조영만 세례자요한 신부입니다. 그래요, 남긴 것도 또 쌓은 것도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달력 11장 뜯으며 살아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이것만큼 내 자신에게 더 위대한 것이 또 있겠습니까? 어제든가요? 예비자 교리반에 들어가서 예비자분들께 그랬습니다. 우리 성당에서 여러분들에게 뭐 대단스런 무엇인가를 드린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성공도 못 드릴지 모르고, 또 성당에 다닌다고 아픈 병이 낫고 하늘에서 턱하니 돈 뭉치가 떨어지게 만들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는 드릴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들이 눈뜨고 계신 이 순간 바로 지금,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들을 찾아드릴 수는 있습니다.
여러분 손에 없는 것 때문에 대단히 바쁘시지요? 그것 때문에 하루 왠종일 쫓아다니셨지만 어떠세요? 잘 잡으셨나요? 우리 성당에서는 그것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이것은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손에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러분 손에 든 행복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는 발견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도 참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계시겠지요? 누군가는 아파서 하루 종일 일어서지도 못하시는 분도 계실 터이고 부지런히 운전하시면서도 들으시겠지요. 상관없습니다. 지금 행복하기로 마음 먹는 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믿음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니까 말입니다.
남피디: 신부님의 예비자 교리반 새신자분들은 그렇게 말씀드리면 잘 알아들으시나요?
조신부: 글쎄요. 그래도 내가 행복해지기로 마음 먹고 시작하는 신앙생활이라면 행복하지 못할 이유도 없겠지요. 사실 신앙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희망한다는 일이지요? 믿기 때문에 희망하고 또 믿기 때문에 기다릴 줄 안다는 것입니다. 포기하거나 버리거나 절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대림시기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대림시기 그냥 아기 예수님 상을 구유에 안치하기 위해 기다린다면 우리는 21세기를 살면서도 그저 신화를 기다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아니지요. 우리는 신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 새로운 믿음, 그리고 하느님을 내 인생의 구유에 모시는 새로운 사랑의 출발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탄이 지닌 의미 아닐까... 싶습니다.
남피디: 아, 신부님이 성탄... 이야기를 하시니까 벌써 캐롤 송이 들려오는 듯 하는데요. 그럼 신부님 오늘 준비한 이 동화를 성탄 구유 앞에서 천사처럼 노래 부르던 초등부 꼬맹이들의 목소리로 한번 들려주시겠어요?
조신부: 안 그래도 이번 주 사제단 회의도 있고 해서 희망에 관한, 기다림과 기쁨에 관한 아름다운 동화 이야기 원고를 부탁드렸었는데, 주신 원고를 보고는 깜찍...해서 혼났습니다. 많이 앙증맞아야 되겠던데요? 원래 제 스타일은 왕이나... 뭐 대감... 이런 쪽이 어울리는데,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남피디: 아니예요, 신부님. 충분히 깜찍하실 수 있어요. 저희들이 준비한 동화는요, 음... 말을 하지 못하는 농아우 엄마가 있어요. 그리고 아주 예쁜 아들, 한별이가 있구요. 이 한별이가 엄마와 함께 아름다운 합창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각색해보았거든요. 그럼 오늘 신부님께서 맡으실 역할이... 깜찍한 한별이... 어떠세요? 마음 준비 잘 되셨어요?
조신부: 원고 준비하지 못한 죄로 오늘 여러분들에게 앙증컨셉으로 달려갑니다. 오늘 동화 제목이 뭐였지요?
남피디: 손으로 노래하는 우리 엄마. 대림시기 첫 번째 주일에 아름다운 기다림으로 전해드립니다. 사랑이 있는 세상, 금요일, 나레이션 드라마 라디오 동화 그 첫 번째 막을 올립니다.
(BG)
남피디,조신부(아이들):와 예쁘다~~
조신부(해설):지금은 점심시간...아이들이 한별이 주변에 우르르 모여들었어요.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들여다보고 있는 건 한별이의 도시락이랍니다. 오늘은 학교 급식이 쉬는 날이어서 모처럼 엄마가 싸 준 한별이의 도시락에는 색깔 곱게 튀겨낸 완자랑 맛살로 만든 토끼가 담겨있었고 밥에는 만화주인공 얼굴까지 반찬으로 예쁘게 그려져 있네요
남피디(샘이~여우같이~):와, 한별이는 좋겠다. 우리 엄만 맨날 소시지랑 김치만 싸주시는데
조신부(해설): 샘이가 부러운 듯 말하자, 다은이가 이야기했어요.
남피디(다은~멍~하게):한별이 엄마는 옷도 잘 만드신대...이 바지도 집에서 만든거래~ 한별아....딱 한 입만 먹어보면 안 될까 내 도시락 너 다 줄께....
조신부(해설):한껏 어깨가 으쓱해진 한별이가 인심을 쓰네요.
조신부(한별):그래..하나씩 먹어, 우리 엄마가 맛있는 건 친구들이랑 나눠먹으라고 하셨어..
조신부(해설):친구들이 너도나도 하나씩 집어 먹어서 한별이의 도시락은 금새 비었어요. 한별이는 몇 입 먹지도 못했지만 기분 좋게 씨익 웃으며 집으로 갔답니다. 오늘은 기분이 유난히 좋아서인지, 한별이의 발소리가 유난히 시끄럽네요~
조신부(한별):엄마 엄마~
조신부(해설):하지만 재봉틀로 한복 치맛단을 박고 있는 엄마는 한별이가 그렇게 요란스럽게 구는데도 열심히 일만 하셔요. 한별이가 톡톡 어깨를 건드리고 나서야 뒤돌아보며 반가운 미소를 지어주십니다. 한별이는 신발주머니를 내려놓고 손짓으로 인사했어요. 한별이와 엄마가 주고받는 말은 바로 수화거든요. 사람들이 천천히 말하면 입 모양을 보고 조금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지만 엄마는 수화 하는 것을 참 좋아한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나눌 수 있는건 수화뿐이니까요
조신부(한별):엄마...학. 교. 다. 녀. 왔. 습. 니. 다.
남피디(엄마-에코):그래...우리 한별이 학교에서 좋은 시간 보냈니? 우리 한별이..배고프지? 엄마가 피자 만들어 놨어~
조신부(한별): 와, 정말이요? 우리 엄마 최고...
조신부(해설): 한별이 집에서는 엄마 아빠, 외삼촌까지도 모두 수화를 합니다. 수화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죠.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아마 우리 엄마가 말할 수 있다면 바로 이분 목소리처럼 아름답지 않았을까... 싶은, 한별이가 좋아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 바로 한별이네 담임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피디(선생님):여러분도 안녕? 여러분.....12월 25일은 무슨 날이죠?
조신부(아이): 크리스마스요....
남피디(선생님):그래요.. 그래서 어머니들께서 그날..여러분에게 깜짝 파티를 준비하신대요~~
조신부(해설): 깜짝 파티? 선생님 말씀에 순간 교실 안이 시끌시끌해졌습니다. 파티는 뭐고 선물은 뭐야? 궁금해서 떠들기 시작한거죠
남피디(선생님):자~ 조용조용...선물이 뭔지 말해 줄께요.. 크리스마슨날 학교 강당에서 여러분을 위한 잔치가 있을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재미있는 마술과 연극을 보여주실 분들도 모셔오고, 선생님과 부모님들도 준비를 할텐데...선생님이 지금부터 나눠주는 안내장은 꼭 집에 가서 부모님께 보여드려야 해요. 그리고 행사에 같이 참여하자고 부탁드려 보세요
조신부(해설):아이들은 부모님께 갖다 드리라는 안내장을 받아서 자기가 먼저 읽어보았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어린이날 잔치에서 무얼 하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그 안내장에는 어린이날 잔치에서 노래를 불러줄 ‘어머니 합창단’을 모집한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어머니 합창단?’ 한별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습니다.
남피디(샘이):어머니 합창단이면 노래 잘하는 엄마들만 모이겠네? 당연 우리 엄마가 해야할거야...우리 엄마 노래 쩡말 잘하거든?
조신부(남자아이 1):엄마들이 서로 하겠다고 하면 어떻하지?
남피디(다은이): 그러면 엄마들을 노래시험 보게 하는거야... 시험을 봐서 노래 잘하는 엄마를 뽑아야 하지 않을까?
남피디(샘이):시험을 보게 된다면...우리 엄마가 제일 먼저 뽑힐걸? 너희들 성악과 가 뭔지 아니? 대학교에서 노래 잘 하는 사람들만 뽑는 곳이래..우리 엄마가 성악과 출생이다~
조신부(해설): 샘이는 아마 어른들이 성악과 출신..이라고 말한 것을 출생이라고 잘못 알아 들었나 봅니다.
남피디(다은이): 피이... 너네 엄마만 그래? 우리 엄마도 얼마나 노래 잘한다고? TV에서 노래자랑에도 나가셨는걸? 그 뿐인줄 알어? 우리 엄마는 피아노도 잘 쳐... 흥... 그럼, 합창단에서 피아노 반주는 우리엄마가 하면 되겠다
조신부(남자아이 1):우리 엄만 노래방 가면 항상 90점이어서 빵빠레 울린다 뭐....
조신부(해설):아이들은 서로 자신의 엄마가 노래를 잘 부른다며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한별이는 친구들과 어머니 합창단 이야기를 하기 싫어서 화단으로 나와 버렸습니다.
조신부(한별이):하필이면, 합창을 할게 뭐야? 난 노래 같은거 듣고 싶지 않아.
조신부(해설):보통때 같은 엄마 자랑에서는 빠지지 않을 한별이지만 오늘은 기분이 무척 상했습니다. 그때, 한별이가 걱정하던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남피디(샘이):한별이 너,. 너희 엄마는 노래 잘하시니?
조신부(한별이): 응? 뭐,.,,글쎄..
남피디(샘이): 말해봐, 너희 엄만 뭐든지 잘한다고 자랑했잖아? 니네 엄마 노래 못하니?
조신부(해설): 한별이는 차마..우리 엄마는 소리를 듣지 못하니까 노래를 할수 없다고 말할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떨결에 그만 엉뚱하게 대답을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조신부(한별이):그럼 잘하구 말구... 우리 엄마가 못 하는게 어디 있는 줄 아니?
남피디(샘이):그러니? 그럼 니네 엄마도 어머니 합창단 하시겠네?
조신부(한별이):(말 더듬으며)아마 싫다고 하실거야 우리 엄만 굉장히 바쁘시거든...
조신부(해설): 한별이는 여느 때처럼 학교가 끝나자 엄마 가게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보통때처럼 신이 나서 뛰어 들어가지 않았어요. 가게 앞에 도착했는데도 얼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간판만 올려다보았습니다. ‘수현 고전방’ 수현은 한별이 엄마의 이름입니다. 자기 이름이 번듯하게 걸려있는 가게를 가진 엄마는 한별이 엄마밖에는 없었어요...그래서 한별이는 늘 틈만 나면 친구들을 데려와서 간판을 보여주곤 했죠. 그러면 친구들은 늘 입을 떡 벌리고 감탄했죠.
남피디(다은이):너희 엄마 되게 유명한가보다. 이~~만큼 크게 이름이 쓰여있으니까...
조신부(해설):그렇게 자랑스러운 엄만데 오늘은 그런 엄마가 창피해서 거짓말까지 했으니..한별이는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한 것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한편 한별이가 가게로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을 본 엄마는 가게 안에서 한별이에게 손도 흔들고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지만 한별이는 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남피디(엄마):우리 한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오늘 한별이 표정이 이상한걸?
조신부(해설):그리고 밤이 되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일을 끝내고 들어온 엄마는 한별이 방으로 들어갔는데, 그때 책상위에 구겨진 종이를 발견했죠. 구깃구깃한 부분을 펴 보니 학교에서 부모님께 보낸 안내장이었습니다. 어머니 합창단 모집.....그제서야 엄마는 한별이가 왜 평소와 다른 행동을 했는지 다 알 것 같았습니다.
남피디: 한별아... 미안해...
조신부: 다음날 학교에 가서도 더 이상 어머니가 말도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것을 말할 수 없었던 한별이는 다가오는 성탄절이 싫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노래 잘한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이 미워졌습니다.
남피디(샘이):뭐야? 한별이? 며칠 전까지는 나랑 친하게 지내더니.. 이제 짝궁이 바뀌었다 이거지? 너 혹시 다은이 좋아하는 거 아냐? 얼래리 꼴래리...
조신부(해설): 뭐라구? 샘이 너, 이리 안와? 이게 진짜!
남피디(샘이엄마):샘이야...오늘 왜 이렇게 엄마 말을 안 듣니? 무슨 일 있었어? 학교에서 돌아올때부터 짜증을 내더니..저녁도 먹지 않구 고집부리구...샘이야..그럼 엄마랑 같이 나가서 떡볶이라도 사먹을까? 어때? 같이 갈래?
조신부(해설): 떡볶이? 한별이랑 싸워 퉁퉁 부어있던 샘이도 좋아하는 떡볶이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집을 나서는데 엄마가 그러십니다.
남피디: 참, 샘이야. 떡볶이 먹기전에 다음 주일날 고모 결혼식에 입을 한복을 찾으러 가야되. 그러니까... 거기서는 조용히 하고 있거라... 그 한복집 아주머니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분이셔, 그래도 한복을 아주 잘 만드시고 좋은 분이니까 만약..버릇없이 굴면 엄만 정말 실망할거야, 약속할 수 있지?
조신부(해설): 그렇게 한복집으로 들어간 샘이 엄마는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며 입을 크게 벌리고 또박또박 말을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엄마의 입 모양을 유심히 보았구요, 샘이는 그런 모습이 꼭 연극을 하는 사람들 같아 우스웠지만 엄마와의 약속 때문에 꾹 참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한별이가 가게로 들어왔죠. 바로 한별이 엄마 가게였던 겁니다.
남피디(샘이):어? 이한별? 니가 여기 웬일이야? 아~ 한별이 너네 엄마가 한복점 하신다더니, 이 아줌마가 너네 엄마야? 근데 한별이 너 이제보니까 순 거짓말쟁이야...너희 엄마는 귀머거리에 말도 못하는데 어떻게 노래를 해?
남피디(샘이엄마):샘이야..친구한테 그런말 하면 못써..엄마가 뭐랬어?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지?
남피디(샘이):한별이가 자기 엄마는 노래 잘한다고 나에게 거짓말 했단 말이예요.
조신부(해설):한별이 엄마는 샘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한별이와 샘이를 번갈아 보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한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등 뒤로 ‘귀머거리, 거짓말쟁이’하는 샘이의 말들이 쫓아오는거 같아서 더 빨리 뛰었습니다. 한별이는 창피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아무튼 까닭모를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남피디(샘이엄마): 샘이 너....앞으로 일주일간 외출금지야..학교 끝나고 집으로 바로 와서 숙제하고 집안일 도와, 그리고 텔레비전도 볼 수 없어 알겠니?
남피디(샘이): 씨이이... 이게 다 한별이때문이야.. 앞으로 절대로 한별이랑 사귀지 않을 거야. 어디 두고 봐,
조신부(해설): 문제는 그런데 다음날이었습니다. 한별이 반 교실은 온통 한별이 엄마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습니다.
남피디(다은이):샘이가 그러는데 한별이 엄마는 귀머거리래, 말 대신에 막~~~~ 이상하게 손을 움직인대
조신부(남자아이 1):웃을 때는 이상한 괴물 같은 소리도 낸다고 하더라
남피디(샘이):한별이 엄마 말할때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뻐끔뻐끔 하는 게... 문어 같애~~
조신부(한별이):(씩씩거리며)치...너네들....우리 엄마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그러신거야. 그래서 다른 사람처럼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이상하지는 않어. 우리 엄마도 너희들 엄마랑 똑같단 말이야
조신부(해설):한별이는 엄마를 귀머거리라고 함부로 말하는 아이들이 밉고 원망스러운데다 짝꿍인 다은이조차도 아이들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온 교실이 한별이 엄마에 대한 이야기로 도저히 그곳에 있을수 없어, 운동장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속상해서 눈물이 나는데 누군가 한별이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바로 선생님이었죠
남피디(선생님):우리 한별이..여기서 꽃구경하는 구나? 한별아...저기 있는 꽃나무가 알겠니? 장미지? 옛날 사람들은 장미가 못생긴 꽃이라고 생각했었대.
조신부(한별이):못 생겼다구요? 꽃 중에서 제일 예쁘잖아요
남피디(선생님):그러게 말이야. 장미의 약점이 있잖아? 가시! 그 가시 하나 때문에 장미 전체를 쓸모없다고 생각한거지, 그런데 누군가가 용감하게 장미를 꺾어다가 자기 정원에서 키우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사람들 눈이 달라졌지, 장미가 얼마나 예쁜 꽃인지 알게 된거야..가시 하나 때문에 장미를 우습게 본 사람들은 그제서야 자기 잘못을 깨달았단다.
조신부(해설): 한별이는 선생님이 왜 장미 이야기를 해 주시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다정한 눈빛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나아진 한별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갈수 있었습니다.
남피디(한별이 엄마):한별아..너 요즘...속상한 일 있지? 엄마 때문에 그래?
조신부(한별이):엄마...사실은 그때 샘이가 엄마 보고 난 다음...계속 놀려. 그렇다고 심하게 놀리는건 아니구, 수화하는 걸 처음 봐서 그럴 텐데...그래서 아이들이랑 같이 놀기가 싫어져.
남피디(엄마):우리 한별이가 친구들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했겠구나... 엄마가 소리를 들을수 없어도 우리 식구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사는지 알게 되면 친구들도 마음이 달라질거야, 한별아...다은이를 우리 집에 한번 데리고 오는건 어떻겠니?
조신부(한별): 우리 집에? 친구들을?... 음 그럼 내 짝 다은이를 데리고 와도 돼요?
남피디: 그러렴. 엄마가 맛있는거 해 줄께.
조신부: 진짜?
(BG길게)
남피디(엄마):어머..다은이구나....참 예쁘게 생겼어...참...다은이는 수화를 못하지?
조신부(해설):처음에 수화하는 모습을 본 다은이가 놀라는 듯 했지만 엄마가 웃으며 다은이 손을 잡아주자 굳은 표정이 조금 풀렸습니다. 그리고 한별이 엄마는 금방 구운 맛있는 과자를 내어주셨습니다.
남피디(다은이): 와~정말 예쁘다. 아줌마 이거 다 먹어도 되요? 어? 제가 말하면 못알아들으시나요?
조신부(한별이): 아냐, 다은아...우리 엄마는 말씀을 못하시지만 알아 들으실 수는 있으시거든. 입을 크게 벌리고 말해봐. 내가 엄마 말을 들려줄께. 엄마 다은이에게 이야기해주세요. 남피디(엄마):다은이....오늘 재미있었니?
남피디(다은이)네,
남피디(엄마):다은이는 우리 한별이가 싫으니?
남피디(다은이):아뇨...저도 한별이가 좋아요
남피디(엄마):그럼, 내가 싫어서 그러니? 아직도 아줌마가 무서워?
남피디(다은이):아뇨, 안 무서워요..샘이 말처럼 괴물 같지도 않은걸요? 아뇨. 괴물이 아니구...
남피디(엄마):그래...아줌마는 다음이가 이렇게 똑똑하고 착한 친구인줄 벌써 알고 있었지..이제부터는 아줌마하고도 한별이하고도 친하게 지내는거다~
(BG 길게)
조신부(해설): 싸우기도 하고 또 화해하기도하면서 그렇게 벌써 겨울 방학은 가까워지고 있었어요. 바로 성탄절이 가까워지고 있었지요. 어머니 합창단은 어떻게 되었냐구요? 성악과를 나온 샘이 엄마는 지휘를 맡았고, 피아노를 잘 치는 다은이 엄마는 반주자가 되었죠.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어머니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구경하려고 우르르 몰려 들어왔습니다. 한별이도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친구들을 따라 구경을 왔어요
조신부(남자아이 1):와~노래 정말 잘한다...성탄 잔치때 재미있을거야...
남피디(다은이): 엄마들이 이렇게 크게 잔치를 해 주는 학교는 없대. 그래서 시장님도 우리 학교에 구경오신대...
조신부(한별):그게 진짜야?
조신부(해설):아이들은 모두 흥분해서 저마다 떠들어댔습니다. 그리고 엄마들의 연습이 끝나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엄마에게 달려갔어요. 샘이는 지휘를 맡은 자기 엄마가 꽤나 자랑스러운지 다른 아이들에게 계속 엄마자랑을 늘어놓고 있는데, 잔뜩 우쭐해있는 샘이의 눈에 혼자 뒤쪽에 서 있는 한별이가 보였습니다. 샘이는 한별이한테 혀를 쏙 내밀고는 약을 올렸죠. 메롱~~그걸 보고 한별이는 풀이 죽어 밖으로 나갔습니다.
남피디(엄마): 선생님...저도 어린이날 잔치에 출연하게 해 주세요. 수화로 노래를 부르겠어요.
남피디(선생님): 한별이를 위해서는 좋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능하시겠어요? 노래를 못들으시니 박자를 맞추기가 쉽지 않을텐데요.
남피디(엄마): 그래도 저렇게 아이들이 기다리는데, 부족한 이 어미도 무언가 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부탁입니다. 선생님.
조신부(해설): 그 날부터 한번도 노래를 들어본 적 없었던 엄마는 수화로 엄마들의 노래를 따라 하는 연습을 시작하셨어요. 가족들에게는 일체 비밀에 붙였지요. 다른 엄마들 같으면 악보를 읽고 또 옆 사람의 소리도 들으며 곧잘 연습을 맞출 수 있었겠지만 한별이 엄마에게는 이 모든 것이 더욱 힘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남피디: 한별이 어머니, 힘들지 않으세요? 전체 어머니들이 하시는 박자와 비슷하게 맞아떨어지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전주가 있는 부분은 맞추기가 힘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무대 밑에서 박수를 작게 쳐드릴께요. 제가 박수치는 그 박자에 맞추셔서 함께 하시면 되겠어요.
남피디: 선생님 너무 고맙습니다. 단지 우리 아이 한별이뿐만 아니라 저 같은 장애인들에게도 함께 노래부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너무 고맙습니다.
조신부: 다른 어머니들의 비밀 속에 한별이 몰래 어머니 합창대회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방학시작과 함께 성탄 축제는 시작되었습니다. 흥겨운 노래가 나왔고 마술 아저씨가 등장에서 깜짝 놀랄 비둘기도 만들어주시고 또 꽃가루도 잔뜩 뿌려주셨지만, 한별이는 별로 신나지 않았습니다. 아빠도 그리고 삼촌도 박수는 치고 있었지만 그다지 흥겨워 하는 것 같지 않았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엄마가 사라진 것입니다. 아까부터 왠지 자꾸만 들썩들썩 하시더니 언제부턴가는 아예, 자리를 비우고 안보이는 것입니다. 어디갔지? 이제 어머니 합창단 공연만 하면 끝인데... 하고 두리번 거릴 무렵, 오늘의 마지막 무대 어머니 합창단이 등장했고 한별이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어머니 합창단 제일 앞줄에 한별이 어머니가 서 계셨던 것입니다.
조신부: 아빠... 아빠... 저기... 엄마...
조신부: 어디? 어디?
조신부: 조용한 전주 속에 어머니들의 합창은 시작되었고 한별이 어머니는 무대 아래에서 천천히 박자를 맞춰주시는 선생님을 뚫어져라 보며 힘겹게 수화를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무대는 설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누군가가 선생님의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쳐주기 시작했지요. 하나둘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똑같이 그 박자에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들의 합창소리는 박수로 맞춰지는 박자소리와 함께 한별이 어머니에게 전달되어갔고 한별이 어머니는 이내 그 박자를 따라 수화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노래였을 것입니다. 아마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뜨거운 감동이 한별이 엄마와 그리고 어느새 일어나 엄마를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있는 한별이와 그 반 친구들 모두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우뢰와 같은 공연이 끝나고 아이들은 엄마들에게 뛰어 올라갔고 그 속에 한별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을 한별이 반 아이들이 감싸주었습니다. 아마도 가장 큰 성탄 선물이 손으로 노래하는 엄마의 눈물되어 아까 내린 꽃가루에 살짝 내려 앉았습니다. 이 세상 가장 큰 성탄선물, 바로 우리 엄마의 노래입니다.
(음악) 남피디: 사랑이 있는 세상, 저희들이 첫 번째로 들려드린 성탄 선물이야기였습니다. 손으로 노래하는 우리 엄마.
조신부: 저는 정말로 왜 하필 예수님이 말구유에 누여졌을까... 묵상하면서, 그야말로 모든 사람, 높지도 낮지도 잘나거나 못나거나 구분 없이 짐승의 밥그릇에서부터 그 인생을 시작하심으로써 그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선물로 다가오신 그분을 더 잘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성탄이야기가 우리들 안에서 이 대림시기 동안 준비되었으면 합니다. 한별이네의 아주 특별한 성탄 이야기 속에는 참 여러 가지의 아픔들, 제약들이 등장하지만 결국 그 마음 한 구석에는 함께 기뻐하고 함께 행복해야할 사람들의 이름도 똑같이 들어있습니다. 누구는 누구 때문에 아프기도 하지만, 또 그 누군가가 있어야 나의 성탄이 의미롭듯이, 나에게 문제가 되는 그 사람에게도 똑같이 선물로 다가오시는 그런 성탄, 그런 대림의 준비면 어떨까... 싶어지네요.
남피디: 조영만 신부님과 함께 한 성탄의 준비, 다음 시간 기다리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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