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
동대구역에서 수서 가는 기차를 탔다. 출입문 입구에서 두 번째 창가 쪽이 내 좌석이다. 통로 쪽에는 이미 부산 방향에서 먼저 타고 온 손님이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밖은 매서운 바람이 불고 차안의 손님은 모두 코로나 예방을 위해서 마스크를 하고 있다. 문 입구 쪽이라 가끔씩 들락날락하는 손님들이 있어 문이 열렸다가 닫히기를 반복한다. 좁은 공간인지라 옆 손님께 피해가 갈까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창 쪽으로 한껏 기대어 눈을 감았다. 이 자세로 두어 시간을 가야 한다. 차가 왜관을 지났다싶은 즈음에 앞좌석에 앉은 손님이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한다. 누구보고 말하는지 몰라 가만히 있었더니 나에게 눈을 맞추고는 계속 무슨 말을 한다.
자세를 바로하고 “저보고 하시는 말씀이냐”고 물었더니 “너무 심하지 않느냐”며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한다. 뭔 말인지 몰라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코 그만 훌쩍거리라”고 반말을 한다.내가 언제 코를 훌쩍거렸다는 말인가? 훌쩍거렸다하더라도 마스크를 끼고 있고 열차 소음도 있는데 코훌쩍이는 소리가 앞좌석에 까지 얼마나 크게 들렸기에 신경질적인 반응인가 싶었지만 쓸데없는 시비에 엮이기 싫어서 “아! 미안합니다. 나도 몰랐네요!”하고 입을 다물었다.
평소 비염기가 있는 지라 나도 모르게 찬바람을 쇠니 코를 훌쩍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를 향해 한 번 더 째려보더니만 자세를 바로 잡는다. 서른 두서넛 되어 보이는 젊은이다. 깍두기 머리를 하고 있고 어깨가 떡 벌어졌다. 저 주먹에 한대 맞으면 코뼈가 부러질 지도 모른다. 행여라도 코를 훌쩍일까봐 숨을 한껏 죽이고 창밖으로 시선을 주고 가만히 있었다. 가끔씩 그가 흘깃거리며 뒤 돌아본다. 한참을 그러더니 다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다시 출입문을 열고 객실 밖으로 나갔다 들어 왔다를 되풀이 한다. 화가 안풀렸다는 뜻이다. 죽은 척 하며 눈을 감고 숨을 죽였다. 크레오파트라의 코가 떠올랐다. 코 때문에 세계 역사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일진이 안 좋은 날이다. 답답하여 문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혜로운 분이기에 해결책을 줄 것이다. 톡톡 자판치는 소리가 또 시비를 당할 것 같아서 조심에 또 조심을 했다. 답이 왔다.“그냥 흘려보내시길 잘 하셨습니다.”겉으로만 흘려보낸 것일 뿐 속마음에서 까지 흘려보낸 것은 아니다.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한판 붙어버려?’
아들보다 더 젊은 아이에게 봉변을 당하면 나만 낭패다. 수서 역까지 그런 자세로 숨도 못 쉬고 왔다. 왜 저런 머리를 두고 깍두기 머리라 했을까 궁금했다. 답을 못 찾았는데 오늘 이 글을 쓰기 전에 알게 되었다. 모서리마다 날카로운 각이 서 있으니 무언가에 자꾸 걸린다는 뜻이다. 종착역에 도착해서 내리는 녀석의 뒷모습이 꼭 김정은이 놈을 닮았다.
‘나한테 걸리는 놈들 전부 핵폭탄으로 쏴버려?’
이 글을 쓰고 나서 3개월 쯤 후에 이 사건이 현실화된 동영상 하나가 카톡으로 날아 왔다. 나이든 어떤 남성이 젊은 아가씨에게 핸드폰으로 마구 두들겨 맞아서 머리가 깨어져 피가 나는 장면이다. 9호선 지하철 열차에서 20대 여성이 바닥에 침을 뱉는 것을 본 60대 남성이 이를 지적하자 욕을 하며 폭행하는 장면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지하철 열차 내의 그 많은 사람들이 누구하나 적극 나서서 제대로 말리는 사람도 없다. 남성은 자기 방어를 포기하고 아가씨 가방끈을 잡고 머리를 들이대며 계속 때리라고 자학한다. “ 놔라 이 더러운 세끼야!”라는 소리로 들리는 악을 쓰는 욕설에 뒤이어 동영상을 촬영하던 사람이 피해 남성에게 “명함하나 주세요. 제가 영상 보내 드릴게요”하는 말이 마지막 멘트로 나온다.
- 지금부터 10년 전인 2013년의 지하철 풍경
지하철 안이다. 십대의 나이로 보이는 청소년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지만 나이 드신 할머니에게 험한 욕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아무도 그 아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때 온몸에 문신을 한 험상궂게 생긴 청년이 나서더니 “너 왜 이 할머니에게 욕하느냐”며 그 아이에게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퍼부었다. 그 아이는 찍 소리도 못하고 사시나무 떨듯 몸을 덜덜 떨었다. 무시무시한 욕은 어느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계속 되었고 지하철 안은 완전히 공포 분위기가 되었다. 승객들은 하나 같이 그 청년과 눈길이 마주치는 것 초차도 피하고 있었다.”
지하철을 탔다가 직접 현장을 목격한 여성 수필가 한 분이 나에게 전해준 이야기다.
그때 그 아이는 지금 20대가 되었을 것이고 문신을 한 청년은 40대가 되었을 것이다.
첫댓글 제가 새벽산행 간다고 나섰는데 인도 위에 어떤 남자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제가 옆에 가기는 두렵고 해서 길가는 사람들한테 좀 살펴봐달라고 했는데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습니다. 그게 현실인 것 같아 마음 편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
어떤 노인이 꾀죄죄한 모습으로 양지 쪽에 앉아서 매일 햇볕 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길가는 사람들이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그런데 신학교를 다니는 한 청년이 학교를 가면서 매일 그 노인에게 인사를 하고 잘 주무셨느냐? 식사는 하셨느냐고 관심을 가져 주었다. 어느 날 부터 그 노인이 보이질 않았다. 몇 일이 지나도 보이질 않았다. 노인의 안부가 궁금해진 청년이 노인을 찾아 나섰다. 수소문 끝에 찾아냈더니 한 달 여 전에 타계하셨는데 유언공증 변호사들이 그동안 그 청년을 찾으러 다녔다며 반가워 하였다. 돌아가신 노인이 자기 재산의 절반(?)을 그 청년에게 주라고 하였단다. 돌아가신 남루한 그 할아버지는 코카콜라 창업주라 하였다. 청년은 그 재물로 수많은 불우 이웃을 구제하였고 인류를 위해 크게 봉사했다고 하는데 그 청년의 이름은 까먹었다. 인터넷 검색하면 나올라나?
죽으면 다 소용 없는 것이 물질인데 우리는 지금도 물질에 너무 집착합니다. 친구들에게 술 한잔 차 한잔 사는 일에도 인색합니다.
죽어서 천국 가기 위해서 절과 교회와 성당에는 열심히 다닙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한창 코로나가 창괄하던 때 테니스 치던 누군가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아무도 그 사람에게 다가 가지 못하고 있는데 어떤 이가 달려와 인공호흡까지해서 사람을 살렸습니다. 그 당시엔 마스크 벗는 것도 무서웠던 시절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계산 성당 총회장이었습니다.한사람의 용기있는 행동에 목숨 하나를 살린 것입니다. 가끔은 좋은 사람도 따문따문 보입니다.ㅎ
의인 입니다. 계산성당에 대주교님 설교가 감동이었습니다.
내가 대접 받고자 하는 그대로 남에게 대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