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절 큰 열반
1 덕왕은 다시 물었다.
"어떤 갓이 큰 열반입니까?"
"큰 자비로써 일체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모든 중생을 부모와 같이 생각하며, 중생에게 생사의 바다를 건너게 하고, 널리 일실의 도를 보여 주면, 그것이 곧 큰 열반인 것이다. 또 나라는 것은 '나 없음'으로써 자재한 것이다. 구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일체의 법을 얻을 수 있고, 허공과 같이 일체의 곳에 두루 차서 있기 때문에 실로 볼 수는 없으나, 일체의 사람에게 자유롭게 보여 줄 수가 있는 것이다. 또 큰 즐거움이 있으므로 큰 열반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큰 즐거움이라고 하는 것은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니다. 멀리 일체의 번뇌를 여의어서 지혜는 원만하고 몸은 항상 있어서 적정한 것이다. 또는 순일하게 깨끗한 까닭으로 큰 열반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순일하게 깨끗하다는 것은 이십오유의 깨끗하지 못한 것을 끊어서 업과 몸과 마음이 깨끗한 것이다.
덕왕아, 보살은 모든 중생에 다 불성이 있음을 알고 있다. 불성이 있기 때문에 선행의 싹을 끊어 말려 버린 중생도, 그의 나쁜 마음을 버리면 반드시 다 무상정진의 도를 얻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이승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덕왕아, 보살이 큰 열반을 닦는다는 것은 깊이 기울어지지 않는 뿌리를 얻는 것이니, 그것은 곧 게으르지 않는 불방일이다. 불방일은 도의 뿌리요 모든 선의 근본이다. 모든 발자국 가운데는 코끼리가 으뜸이요, 모든 영광 가운데는 햇빛이 제일인 것같이 불방일은 모든 선법 가운데서 제일이다. 또 보살은 이 몸이 곧 무상정진의 도를 얻는 그릇임을 생각하여 악마의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좁은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하라. 또 일체 중생은 다 복밭이 되지아니함이 없음을 관하라. 또 살해하려는 마음을 여의어서 이 선행으로써 중생에게 장수와 신력을 얻기를 원하라. 도둑질하는 마음을 여의어서 이 선행으로써 중생에게 그 구하는 것을 만족시키기를 원하라. 또 음욕을 좋아하는 마음을 여의어서 이 선행으로써 중생에게 삼독이 없고 기갈이 없기를 원하라. 거짓말을 하려는 마음을 여의어 이 선행으로써 중생에게 모든 불토를 건설하여, 꽃이 향기롭게 피고 모든 중생의 소리가 묘하기를 원하라. 이간 중상하는 말질을 여의어 이 선행으로써 모든 중생이 화목하여 도를 강설하기를 원하라. 악담 패설의 악한 말버릇를 여의어 이 선행으로써 모든 불국토에 돌자갈과 가시덤불 같은 것이 없어서, 모든 중생에게 그 마음이 평등하기를 원하라. 쓸데없는 허풍선이의 구업을 여의어 이 선행으로써 모든 중생에게 고뇌가 없기를 원하라. 탐심과 질투심을 여의어서 이 선행으로써 모든 중생에게 탐심과 질투심이 없기를 원하라. 남을 고달프게 괴롭게 하려는 마음을 여의어, 이 선행으로써 모든 중생이 한 가지로 대자를 닦아 일자지를 얻기를 원하라. 삿된 지견을 여의고 이 선행으로써 일체 중생이 다 마하반야바라밀을 얻기를 원하라. 그리하여, 이 원력과 인연으로 부처를 이룰 때에는, 다 그 맹세를 성취하여 불국토를 깨끗하게 건설하고 모든 번뇌의 원적을 여의게 될 것이다.
덕왕아, 보시하는 자는 주리지 않고 또 목마르는 일이 없다. 이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이십오유의 갈애의 병을 여의게 한다. 보살은 이에 의하여 금강 삼매를 얻고, 이에 머물러 번뇌를 깨뜨리고 중생을 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금강이 일체의 물건을 깨뜨릴지라도 자신으로서는 이것을 깨뜨렸다는 생각이 없다. 또 대지는 일체의 물건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으로서는 이것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없는 거와 같이 보살은 번뇌를 깨뜨리고 중생을 건지지만, 내가 스스로 중생을 건졌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 마음에 교만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또 보살은 항상 오직 이 삼매에 의하여 이 교화를 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까닭이다.
2 덕왕아, 큰 열반을 가까이 하는 원인에 네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선지식을 가까이 하는 것이요, 둘째는 마음을 오로지하여 법문을 듣는 것이요, 셋째는 마음을 모아서 정법을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정법과 같이 행을 닦는 것이다. 착한 남자야, 사람이 병이 들었을 때에, 널리 의사의 가르침을 받고 가르치는 대로 그 약을 먹으면 병이 나아 편안할 것이다. 선지식은 어진 의사이다. 보살이 잘 그 선지식의 가르침을 따르면 번뇌의 병을 제하고 열반의 편안함을 얻을 것이다.
선지식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도를 닦고 또 사람에게 도를 배워 닦게 하는 것이 선지식이다. 항상 자기의 즐거움은 구하지 않고 중생을 위하여 즐거움을 구하며, 다른 이의 허물은 볼지라도 그의 단점은 말하지 않으며, 입으로는 착한 일만 말하는 것이 선지식이다.
덕왕아, 초하루에서 보름까지는 달이 차차 차듯이, 선지식도 또한 여러 학인이 그의 가르침을 듣고 차츰차츰 어리석음을 여의고 선행을 닦는 것을 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제일로 일컫는 진실한 선지식은 여래와 보살이다. 그는 항상 부드러운 말과 또 나무람으로써, 잘 중생의 마음을 조복하는 까닭이다. 예를 들면, 설산이 모든 영약의 본처인 것같이, 부처와 보살은 일체 선행의 본처다.
착한 남자야, 설산에 항기로운 좋은 약이 있으니, 이름이 사가다. 이 약은 보기만 해도 장수를 얻고 생각만 하여도 지혜를 얻는다고 이른다. 부처와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누구든지 그를 보기만 하여도 일체의 번뇌를 끊고 악마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만일 그를 접촉하는 자가 있으면, 요사를 면하고 정도에서 퇴타하지 아니하며, 또 만일 그를 생각하는 자가 있으면, 무상정도를 얻는다. 그리하여 일체 중생은 법을 듣고 믿음을 갖추며, 믿음에 의하여 도를 행하고 마침내 부처의 지위에 이른다. 그러므로 선행을 얻는 것은 다 법을 듣는 데 있는 것으로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보살이 법을 듣고 이것을 생각하면 그는 곧 사전도를 끊고 열반을 가까이 하며, 생ㆍ로ㆍ병ㆍ사를 만나더라도 괴로운 생각을 내지 않고 나아가서 법다이 도를 닦는다.
착한 남자야, 열반에는 머무르는 곳이 없다. 다만 번뇌를 끊은 곳이다. 열반은 상常ㆍ락樂ㆍ아我ㆍ정淨이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애욕의 즐거움이 아니요, 묘한 적멸의 즐거움이다.
3 덕왕아, 선근을 끊은 무리는, 모든 부처님을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단선의 마음을 여의지 못한다. 그것은 선을 끊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보리 마음을 내면 무상정진의 도를 얻게 될 것이다.
착한 남자야, 어느 나라의 왕이 있었다. 그는 공후의 소리를 듣고, 그 묘한 소리에 도취되고 감동하여 무심할 수가 없었다. 왕은 신하에게 물었다.
'이런 소리는 어떤 것에서 나오는 것이냐?'
'공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소리를 가지고 올 수 없겠느냐?'
'대왕이시여, 이것입니다.'
하고, 공후를 가져다 바쳤다. 왕은 공후를 보고 '소리를 내봐라' 했다. 그러나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성급한 왕은 공후의 줄을 끓었다. 그래도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왕은 공후를 깨뜨려 소리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들을 수는 없었다. 왕은 노하여 신하에게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나를 속였느냐?'
그래서 신하는
'대왕이시여, 소리를 들으시려면 그런 방법으로서는 아니 됩니다.'했다.
'그러면 무슨 방법을 써야 소리를 들을 수 있느냐?'
이때에, 신하는 공순하게 여쭈었다.
'공후 소리를 들으시려면, 여러 가지 인연과 방편에 의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고 말했다.
착한 남자야, 중생의 불성도 또한 이와 같다. 그 불성은 있는 곳이 없어서 오직 여러 가지 인연에 의해서만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선행을 닦아야 나타나는 것이다. 선근을 끊은 사람은 불성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저들이 불성이 있는 줄을 믿기만 하면, 삼악도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단선인이라고 말 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