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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신학 질문코너 창 1:1의 태초와 요1:1의 태초는 같은가 다른가?
배수진 추천 0 조회 700 08.05.31 15:54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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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8.05.31 18:17

    첫댓글 (바로미님의 댓글) 1. 저는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창1:1의 태초는 문장에서 처럼 "천지를 창조하시는 시점"을 뜻하는 태초로 번역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요1:1 의 태초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라는 것을 통해 주님이 모든 것의 근원임을 나타내는 태초로 알고 있습니다. --> 바로미님의 댓글 감사드리며, 윗 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무나 답변해 주셔도 좋습니다. 윗 글에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신뢰해도 좋은 견해인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 08.05.31 17:22

    위의 해석도 그리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결국 말할려는 의도가 저와 크게 다르지 않네요.. 요1:1의 태초(바로미: 주님이 모든 것의 근원임을 나타내는 태초) (유재원: 성자께서는 창조 때에 이미 계셔서 만물 창조에 직접 참여하셨다는 것을 보다 분명히 설명하기 위한 것임)

  • 08.05.31 17:34

    그러나... 저는 영원전의 태초라기 보다는 창조전의 상태를 말하는 것 즉 창조의 첫 시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 그 시작이 창1:1의 태초라고 말하는 것이며.. 요1:1의 태초도 역시 그러한 해석으로 할 수 있으나 문장상 요1:1의 태초는 창1:1과 같은 태초로 번역될 시 문제가 피조세계의 창조시작시 같이 성자가 계셨다.. 즉 창조 이전에는 없었다라는 반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1:1의 태초는 창1:1의 태초보다 더 넓은 영역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좀더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요1장 초반절에서 성자가 창조 사역을 하신 것은 그가 창조주이시기 때문이지, 그가 창조를 위한 도구로서 창조된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08.05.31 17:38

    그러므로 창1:1의 태초의 범위는 피조세계의 창조의 시작점에 그 범위를 제한을 두는 것이며(문장상으로 보아도 피조창조를 위해 언급된 단어로 보입니다), 요1:1의 태초는 창조의 시작점을 포함.. 창조 이전의 상태까지 모두 포괄하고 있는 단어로 확장해야함을 1-3절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같은 의미의 태초라면.. 혼동될 부분이 꽤 있을 것입니다. 즉 성부가 창조했나? 성자가 창조했냐? 그러면 1절과 2절과 같이 성부가 성자와 함께 창조하셨다. 라고 할 것인데.. 문제는 언제부터 성자가 성부와 함께 있었는가? 창조 이전부터인가? 창조시작부터 함께인가? 할때에 요 1:1-3은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 08.05.31 17:39

    저는 상기 글 중 요1:1절의 태초라는 개념을 영원전의 태초라고 정의 한 것이 잘못 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영원전에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는 암시를 줍니다. 그러나 영원이라는 것은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이죠. 이것은 또한 아들께서 물질세계가 있기 직전에 비로서 하나님이 되셨다는 이단적인 주장의 위험성도 있을 것 같네요..저는 사도요한이 아들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시작도 끝도없는 영원하신 분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 08.05.31 17:41

    그리고 나서 그분으로 인한여 모든 만물이 지으졌다는 나열식의 문장 구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이 영원하신 하나님 아들을 강조하기 위해 마태나 누가와는 달리 족보도 없는 것을 고려해 보고요~

  • 08.05.31 17:44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요일2:13) --> 그럼 이 구절의 태초도 위처럼 해석한다면... 창조시점부터 계신 분으로 되는 우려가 있지 않을까요?

  • 작성자 08.05.31 18:35

    네,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결론은 두 분 모두 창1:1의 태초와 요1:1의 태초는 다르다는 것이군요. 윗 글에 대해선 생각해 볼 점이 있는 것이구요. 유재원님은 자신의 창조론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 모든 사람을 이렇게 둘로 구분한다는군요. 기존의 해석과 자신의 독특한 해석 사이에 차이점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재원님이 '(그리스도가)계셨다'고 말하지 않고 '계시고 있었다'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선재성'에 대해 확실히 못박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작성자 08.05.31 18:33

    단지, 일반적 견해와 자신의 견해 사이에 차이를 둔다는 점이 있는 것 같아서 혹시 문제될 소지가 있지 않을까 하여 글을 올려 보았습니다. 올바른 성경적 창조론의 정립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유재원님은 지금 따님이 소천하셔서 매우 힘든 상태라는데 제가 괜히 글을 올렸나도 싶습니다. 하지만, 진리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함께 이 문제를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 08.05.31 22:11

    <위의 해석도 그리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라는 위의 저의 글을 전제로 저의 글을 읽어주심... 아마 위의 유재원님도 그리 크게 문제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의 구절들에 대한 태초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분류 아닙니까? 같은 의미다. 아니다. .. 이렇게...

  • 작성자 08.05.31 22:09

    네, 그렇군요. 위의 해석도 그리 큰 문제가 없다고 바로미님이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는데도 제가 유의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 08.05.31 22:13

    태초에 함께 하셨던 엘로힘의 하나님을 표현하고자 한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원어성경에 무엇이라 말했는지 궁금합니다.

  • 작성자 08.05.31 22:34

    맛소라 사본: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베에트 하아레츠(창1:1) 참고로, 유재원 님은 엘로힘은 '장엄복수'의 표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09.07.24 15:10

    엘로힘은 장엄 복수로 여겨지거나(성경에서는 하나님께 대해 이렇게 쓰인 일이 없다), ---- 생명과 능력의 충만함을 시사하는 집중 복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복수는 하나님을 생명과 권능이 충만한 존재로 지칭한다. 개혁주의 신론 헤르만 바빙크 저 이승구 역 P141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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