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하늘과 땅 양쪽에 뿌리를 달았다
나무의 끝 허공에 작고 가느다란 줄기들은 나무의 실뿌리들
맨몸으로 땡볕과 눈발에 맞서는 나무
뿌리와 줄기의 구별을 할 겨를도 없었다
여름은 하늘에 심은 뿌리의 흔들림으로 견디고
겨울은 땅에 심은 뿌리의 힘으로 지난다
땅과 하늘을 쥐고 흔든 뿌리 바람을 일으킨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날아간 씨앗들이 흩어져 지구를 점령한다
물에 길을 터 바다 밑바닥을 지나가던 뿌리 섬을 산란했다
나무가 싹을 틔우면 꽃이 옹알이를 하고 새들이 피어나고 섬이 가정을 이뤘다
이파리가 날갯짓하는 순간 몇십 년이 훌쩍 흘러 밑동이 부풀었다
허공에 심은 머리칼은 채도가 선명한 꿈을 생산하며 하루하루 뻗어가고
땅속으로 뻗은 발부리는 헛발을 딛지 않으려 밝은 명도로 현실을 계산한다
멀리 있던 새가 나무에 앉아 있던 새보다 더 빨리 열매를 보고 날아가듯
나무는 두 개의 머리로 오늘을 흔든다
ㅡ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4년 8월호 공시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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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
하늘에 뿌리를 내린 나무 / 명서영
정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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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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