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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글은
2013년 12월 30일 포스팅하였습니다.
마크로 렌즈로 인물 사진을 RAW 파일로 찍으면.......
포샵의 인물 보정은 필수 코스입니다.
포샵의 정교한 스킬은
원본과 보정본을 지옥과 천국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도
포샵으로 보정한 사진을 뛰어 넘지 못합니다.
카메라는 리얼이지만
포샵의 보정은 리터칭이기 때문입니다.
마크로 렌즈로 디테일한 사진을 찍고 포샵의 보정 작업을 오랫동안 하면서
복음으로 마음을 리터칭하는 사명의 날개를 달았습니다.
피사체를 사진으로 담아내기 위한 상학의 앵글과 상학의 사진 보정술은
복음으로 마음을 리터칭하는 최상의 영적인 삶을 사명의 사역 본분으로 느끼게 하였습니다.
카메라와 컴퓨터를 알기 오래전부터
흙의 정서로 성경을 아주 많이 애독하였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을 만나면.......
성경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였습니다.
신약과 구약을 종횡무진하면서
마음에 담겨진 생명의 말씀을 거룩한 만남으로 복음의 사명을 고취하였습니다.
성경을 연구한 책들과의 만남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하는 설교에 이르기까지 복음의 날선 비평은
사명자의 사역 본분이 되었습니다.
마치 마크로 렌즈로 찍은 사진에 묻어있는 수 많은 얼룩을 포샵으로 보정하듯
책을 읽으면 성경적인 비평이 되고 설교를 들으면 복음적인 분석이 참된 삶의 지평으로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성경을 너무 많이 읽었고 기도에 깨어있는 삶은
참과 거짓에 대한 분별이 마크로 렌즈로 사진을 찍듯 디테일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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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년.....
다산교회 부교역자로 부임한 허 전도사님에 대한 복음의 리터칭은
성경의 난제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된 신고식으로 시작하여 1년 동안 매주마다 계속 되었습니다.
허 전도사님은 중국에 단기 선교 갔다가 선교사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사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총신 재학 중에 다산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여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순수한 복음과 선교의 열정으로
중국의 복음화를 위한 큰 비전을 가졌습니다.
어느 때부턴가 중국 선교사들의 제 2의 정경으로 생각하는 "하늘에서 온 편지"에 대해서
복음적인 리터칭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늘에서 온 편지"는 중국 무속 신앙의 영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책이라는 한 마디로
진한 마음의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이어서 "순종"이라는 두 날개 시스템의 필독서를
인본주의 종교적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노예적 복종을 종교적 영성으로 추구하는
불량한 책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적 전쟁"이라는 책은
알파 영성으로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받아들이는 무속 신앙서라고 칼질하였습니다.
또한 은혜 영성의 파워라는 책은
인본주의 무속 신앙의 결정판으로 경건한 복음 신앙으로 위장한 거짓이라고 난도질하였습니다.
기독교 베스트 셀러에 대한 강도 높은 단금질은
복음으로 위장한 인본주의 무속 신앙의 가면을 벗겼습니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미궁으로 빠져들고
마음의 갈등으로 대립의 각은 날카로와졌습니다.
반항에 가까운 항변.......
성경적인 참된 복음 신앙은 무엇입니까?
중국 무속 신앙의 영성이 복음의 리터칭으로
참된 개혁주의 복음 신앙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습니다.
참된 복음의 리터칭은
믿음과 신념의 구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믿음은 은혜로 신본주의 신앙을 갖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지만
신념은 영성으로 신적인 능력을 추구하는 인본주의 신앙으로 비전을 허상으로 갖는다고 하였습니다.
영성과 비전과 실존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 인본주의 무속 신앙의 노예라고 강력한 일격을 가하였습니다.
신본주의를 가장한 인본주의 신앙은
한국의 유사 기독교와 사이비 이단을 양성하였다며
그 열매로 나무를 알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쁜 씨앗이 뿌려져 나쁜 열매를 맺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참된 복음의 리터칭은
참된 기도로 이어졌습니다.
불교인들이 부처에게 기도하는 갓바위 신앙으로
대상만 부처에서 하나님으로 바뀐 기도는 이방인의 중언부언하는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참된 하나님 나라 성도의 기도는
금단의 금향로에 담겨 하나님 보좌의 향으로 드려지는 영광의 찬송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불안과 염려가 모티브가 되어
무엇을 마실까 먹을까 입을까를 구하는 기도는 이방인의 삶의 가치로 중언부언하는 기도 신앙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모티브가 되어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의와 나라를 얻는 신앙의 패러다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주기도문이야말로
하나님의 뜻과 복음으로 가득한 참된 기도, 그 자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내 백성이 되고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는 옛 언약의 성취와
내 자녀가 되고 자녀의 아버지가 되시는 새 언약의 성취에 대한 신앙 고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이름에 대한 영광의 찬송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은혜의 탄성이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예수님의 일용할 양식이며
죄진 사람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은 하나님 나라 복음의 원리, 그 자체여서
악의 유혹을 받지 않고 죄악에서 건져 달라는 기도는 십자가의 정신이라고
간단하게 주기도문으로 리터칭하였습1니다.
참된 기도는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구분짓는 참된 신앙의 패러다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기도는 설교보다 더 자의적이어서
잘못된 기도로 신앙이 형성되면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거짓 무리가 됩니다.
또한 참된 복음의 리터칭은
강단의 복음이 사라지고 거짓 선지자의 몽사가 쏟아지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성경은 설교를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설교를 하기 위한 성경으로 잘 못 인식되었습니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조하는 목사는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구원얻는 믿음을 가진 것을 참칭하고 도용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하였던 사도들이 전하였던 말씀은
선지자의 예언을 이룬 예수가 그리스도다는 것을 전한 복음,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강단의 설교는
성경을 기록하였던 사도적 영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도들이 능욕받으면서 기쁘게 전하였던 하나님 나라 복음, 그 자체도 아닙니다.
오늘날 강단의 설교는 대부분 포스트 모던 사상과 기복과 무속적인 다원주의,
그리고 인본주의 건강 복음을 희석한 거짓 선지자의 몽사에 불과합니다.
주일마다 강단에서 쏟아지는 수 만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면
설교 통한 직통 계시를 수용하는 것이요, 또 이스라엘의 성읍 수 만큼 많은 하나님을 섬기는
범신론적인 종교 다원주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이단으로 정죄한 다른 복음의 실체요,
포스트 모던 사상이 프리모던의 교회 안으로 침투한 사탄의 전략 전술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 1:5-8절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게 하는 종교적 사기는
종교적 열정과 신념을 가진 사이비 교주의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선포하는 복음은
오늘날 교회 강단에서 찿아보기 힘든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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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끝없는 복음의 리터칭을 1년 동안 받은 허 전도사님은
복음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성경적인 복음 설교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언젠가부터 질문이 많아졌고......
나름 복음의 흔적을 추적하는 복음의 전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무심코 내 뱉은 한 마디.......
요즘 요한 계시록이 너무 재미 있다며 설교를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좋은 영향을 받아 설교를 할 정도로 인상깊은
어느 강사의 설교를 분석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강사의 다양한 설교를 몇 일 동안 들으면서
촘촘한 복음의 거물망으로 걸러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설교를 듣다가 멈추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설교를 계속 들어야 할지 말지를
깊이 고민하였습니다.
설교 내용을 듣기 전에 전해지는 스피취는
리듬없는 괭과리 소리였습니다.
징징 거리는 설교도 듣기 힘든데
리듬없는 괭과리 소리는 정말 듣기 거북하였습니다.
그래도 설교의 비평을 위해서
인내하면서 대여섯 편의 설교를 끝까지 다 들었습니다.
강사는 국내는 물론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성경 강의를 하는
신학교 교수 수준의 설교 강사였습니다,
강사의 성경 강의는 하나님의 나라가 주제였고
신약과 구약을 종횡무진하며 성경의 달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학적이었습니다.
그 다음 주 목요일....
다산교회서 허 전도사님을 만나 점심을 먹으러 가는 차 안에서
강사의 설교를 성경적인 복음으로 리터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성경적인 이상이 없고 ......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만 강조하면서 일반적인 구원의 교리를 귀납법적으로 나열하는 정도에 불과하였습니다.
특히 하나님 나라의 시작으로 오순절에 대한 강조는
성경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지식에 탄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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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파괴된 것은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한 제물이었다고 열변을 토하였습니다,
순교자의 영혼이 제단 아래 있다고 해서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순교의 제물 없이는 영생의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더욱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가 이방인을 위한 제물이 되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는
하박국의 말씀을 적용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시작을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을 때부터 시작하였다며
마태와 마가복음과 다르게 기록된 누가복음의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였다는 것을 강조하며
오순절 성령의 강림이 당시 성도들의 기도로 임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누가복움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도로 임한 성령과
성령 충만 받기 위해 하는 성도의 기도와는 완전 다릅니다.
예수님의 기도로 임한 성령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이지만
성령 충만 받기 위한 성도의 광신적 기도는 인본주의 무속 신앙, 그 자체입니다.
성령의 주권적 사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인치는 역사로 하나님의 나라를 성전으로 이루어 가지만
성도가 주체가 되어 성령을 무속으로 구하는 기도는
결과적으로 성령의 무속화를 가중시켜 기독교 엑소시스터 영성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강사는 오순절 성령에 대한 이해를
오순절 성령 운동과 신사도 운동과 뜻을 같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오순절 성령의 강림이
성도의 기도로 임하였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 오순절 성령이 강림한 열흘 동안
예루살렝의 마가 요한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였다는 것은 억지 추측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하였을 뿐.......
오순절날에 임한 성령 강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면서
가룻 유다를 대신할 열 두 명의 한 자리를 맛디아로 채웠습니다.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갔습니다.
가롯 유대 대신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위해 기도하였을 뿐.....
오순절 성령의 강림을 위해 기도한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그들이 기도하여 성령이 임하였다는 것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은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권적으로 하신 구속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 또한 주권적이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진리의 복음과 함께 생명의 구원을 인치는 구속 사역을 뜻대로 행하십니다.
성령 강림 전과 성령 강림 후의 변화를
디테일하면서도 역동적으로 기록하여 성령의 구속사적 동선을 사도행전으로 남겼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로 되어진 성령의 구속을 인치는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오순절의 프리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성전의 파괴를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제물로 이해하고
순교자의 피를 복음을 위한 희생 제물로 해석하는 설교를 성경적인 복음 설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찬송의 무속화를 첨단으로 이루면서
성경마저 자의적 해석으로 전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열강하는 설교를 듣고
큰 은혜를 받아 요한 계시록을 흥미있게 설교하였던 허 전도사님은
강력한 복음의 리터칭으로 단금질되었습니다.
"그 동안 잘 못한 설교는 어떻합니까 "라는 탄식은
복음의 리터칭으로 참된 복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카페의 글을 읽고 진리의 말씀에 깨어있는 성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를 믿음의 탄성으로 가진 참된 주의 백성일 것입니다.
성경적인 대화가 실종된 한국 교회는
주일 강단의 설교를 바울의 선포된 말씀과 동일시하는 종교적 교주병이 깊이 오염되었습니다.
설교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전파할 때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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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리터칭, 그 말씀이 단금질이라는 카페의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참된 복음 신앙의 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