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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특징과 능력
시 19: 7-11
오늘 설교는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특징과 능력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7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증거’, 8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교훈’ ‘여호와의 계명’, 9절에 나오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 ‘여호와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기독교인을 참된 신앙인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입니다. 이 두 가지가 없이는 경건하고 거룩한 삶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딤전 4:5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말씀합니다.
서울 약수동에 엉터리 권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남편은 교회를 나가지 않는데도 돈을 잘 버는 사장이었습니다. 이 권사님은 믿음이 좋고 봉사를 잘해서 권사가 된 것이 아니라 돈을 잘 버는 남편이 용돈을 많이 주니까 헌금을 많이 내서 권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은 권사가 되었는데도 주일 낮 예배 한번만 드리고, 새벽예배도 안 드리고, 수요일도 안 나오고, 금요일도 안 나오는 엉터리 권사였습니다. 그저 친구들과 만나서 돈 쓰는 재미로 살고 있으니 제대로 직분을 감당했겠습니까? 그런데 이 엉터리 권사님이 정신을 번쩍 차릴 일이 생겼습니다. 그 아들이 엉터리가 되어서 교회를 안 나오는 것입니다. 게다가 나쁜 친구들과 사귀어서 가출을 하고, 경찰서 유치장을 드나들고, 가끔씩 돈 훔치러 집에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권사님이 기도제목이 생겼습니다. 아들이 가출하고 나서부터는 그 권사님의 얼굴에 기쁨이 없고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다가 문득 ‘하나님도 나 때문에 마음이 무척 상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마침 목사님이 설교하시면서 “네 믿음을 보려거든 네 자녀에게서 찾아봐라. 자녀는 부모의 얼굴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부터 회개하며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도 기도하고, 저녁에도 기도하고, 하루 종일 설교테이프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돈을 훔치러 왔다가 설교테이프를 틀어놓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아,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집으로 돌아와 학교도 잘 다니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착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눈물의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이 엉터리 권사님은 기도하는 권사님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습니다. 또 전도하는 권사님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교인 중에 자녀 문제만 있다고 하면 그 집에 무조건 찾아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기도하십시오. 설교 테이프 들으십시오. 찬송 부르십시오.” 하고 심방하는 권사님이 되었습니다. 이 권사님은 기도와 말씀으로 자신이 거룩해진 것만 아니라 아들까지도 변화되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잠 13:13에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고 말씀하는데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상이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면 개인의 인생에 하나님의 상이 넘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나라는 복을 받습니다. 우리나라가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200년 전에는 노르웨이라는 나라는 정말 비참하고 가나한 나라였습니다. 나무껍질로 빵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고 길거리에서 굶어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보는 일은 너무나 흔한 일이었습니다. 학교는 부족하였고 대학은 아예 하나도 없었습니다. 수 백 년 간 이웃 나라의 지배를 받아 온 노르웨이는 어촌과 작은 농장 밖에 아무것도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1796년 4월5일 <한스 닐센 헤우게>라는 젊은이가 회심을 경험하고는 1796년부터 1804년 사이에 나라 전체의 마을 곳곳을 다니며 성경을 보급하였고, 천개가 넘는 가정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그가 가르친 제자들이 다시 사역자로 세워져 나라 곳곳에서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노르웨이는 1인당 국민소득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고, 훌륭한 교육체계로 인하여 문맹률이 0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헤우게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진 모든 것보다 더 귀중하고 거룩한 보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독일이 위대한 나라가 된 것은 마르틴 루가 1517년 종교개혁을 해서 전 독일 사람들에게 독일어로 번역된 성경을 읽고 배우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이 최고의 민족이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의 시인 빅토르 위고는 “영국이 세계적인 나라가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지상에서 제일 좋은 나라가 어디입歐? 가장 아름답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 스위스라고 말합니다. 스위스가 좋은 나라가 된 것은 종교개혁자 칼빈 때문이라고 합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말씀으로 정치와 경제를 다스리고, 교육을 새롭게 했습니다. 온 나라에 기독교 정신을 불어넣었습니다. 스위스 대법원에는 “국민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라고 쓰여진 벽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스위스가 오늘날까지도 존경받는 부강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또 미국은 어떻습니까? 현재 최강국인 미국은 앞으로 30∼40년 동안은 세계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청교도인 102명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지 않았습니까? 미국은 신앙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요즘에도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성경에 손을 올려놓습니다. 국회의장, 대법원장, 대학교 총장들도 성경에 손을 올려놓습니다. 또 지폐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인쇄를 했습니다. 그 돈은 세계 경제를 주름잡고 있습니다.
그럼 왜 성경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복을 받고 성경을 사랑하는 나라가 복된 나라가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성경이 가진 특징과 능력 때문입니다.
1.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합니다(7절)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합니다. 여기서 완전하다는 말은 ‘흠없는’ 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흠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영혼을 소성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손가락 인형 속에 사람의 손가락이 들어가면 죽어있는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사람 속에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그 말씀이 그 사람을 소성시킵니다. 여기서 소성시킨다는 말은 회복시킨다는 말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말씀을 받은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집 안에서 기르는 화분을 생각해 봅시다. 어느 날 보니 물이 부족한지 햇빛을 보지 못해서 그런지 시들어 축 처져있습니다. 그 화분을 수돗가로 가지고가서 물을 흠뻑 줍니다. 그리고 창가에 내놓고 일광욕을 시켜줍니다. 그러면 축 처져있던 화분이 어떻게 될까요? 잎이 싱싱해지고 생기가 돌게 됩니다. 사람도 똑같습니다. 의로운 태양이 되시는 하나님의 빛을 보지 못하고 생명수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하면 시들어버린 화초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싱싱해지고 생기가 돕니다. 소성케 되는 것입니다.
아마 여기계신 분들 중 벤허라는 영화를 보지 못한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벤허를 웰레스는 사람이 썼습니다. 그는 불신자였습니다. 불신자인 그는 기독교는 거짓이요 쓸데없는 종교임을 증명하는 책을 쓰려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읽던 중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예수님이 인류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위해서 바르게살기로 다짐하고 벤허를 쓰게 된 것입니다. 그는 불신앙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지만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는 성경의 소성케 하는 능력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인도에 어떤 불교학자가 기독교가 발전되는 것을 근심하여 기독교는 거짓이요 헛것임을 반박하기 위하여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니 흠잡을 데가 없어 계속해서 성경을 읽게 되었고 13년 동안 읽는 가운데 진리를 발견하고 위대한 전도자로 개종하였습니다. 이 사람 역시 완전한 성경을 통해서 영혼이 소성되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교회는 나오는데 영적으로 잡히는 것이 없고 신앙이 희미하고 시들어버린 화초처럼 영적으로 축 처져있다면 성경을 읽으십시오. 설교를 반복해서 들으십시오.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언제든지 설교를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또 읽고 설교를 듣고 또 들으면 반드시 영혼이 소성하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합니다(7절).
‘확실하다’는 영어로 ‘sure’인데 ‘절대적이다. 신뢰할 만하다. 의지할 만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합니다.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의지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인생에 참된 지혜는 성경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롭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두 가지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이 주는 첫 번째 지혜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받는데, 성경이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 3:15)
성경이 주는 두 번째 지혜는 삶의 지혜입니다.
본문 7절에서 ‘우둔하다’는 말은 ‘문을 열어 놓았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온갖 것들이 들어와 붙잡아야 할 것과 놓아야 할 것이 분별이 되지 않게 됩니다. 조금만 앞이 혼란스러워도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선명한 기준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말씀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주의 말씀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분별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시 119:105에서 다윗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인생을 지혜롭게 산 사람 중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그렇게 지혜롭게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등이 되고 빛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빛은 목회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성경을 가까이 하고 성경의 빛 안에서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죠지 워싱턴은 "성경 없이 어떻게 바른 정치를 할 수 있겠느냐"고 했고, 링컨은 "사람이 훌륭하게 살고 보람 있게 죽으려면 날마다 성경을 양식처럼 먹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일이 잘되고 무사할 때도 성경에서 갈 길을 찾아야 하고, 상황이 곤란해지고 괴로울 때에도 성경에서 갈 길을 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 4:6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보며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라고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록펠러는 이천년 교회사에서 최고의 물질적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늘 “내 사업의 성공비결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늘 성경을 읽었고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서 사업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가 석유 왕이 되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성경을 읽다가 영감을 받아서 된 것입니다. 그가 창 11:3을 읽는데 이런 말이 씌여 있었습니다.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역청은 히브리어 ‘헤마르’인데 영어성경에는 ‘아스팔트’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스팔트는 원재료가 석유입니다. 록펠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영감이 번개처럼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역청이 많았으면 역청으로 벽돌을 만들었을까 역청이 많다면 지하에는 석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즉시 스탠다드라는 석유 회사에 연락을 해서 이라크, 중동, 바벨론 일대를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조사 결과 그곳에는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것 때문에 세계 최고의 부호가 되었습니다.
그는 부자가 되어서 자기만 잘 먹고 산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많은 헌신을 했고 아름다운 교회를 많이 지은 그는 정말 값지게 산 부자였습니다. 그는 98세까지 장수하며 평안을 누렸습니다. 그는 주일이 되면 항상 40분 전에 교회에 도착하여 예배 시간을 기다렸다가 앞자리에 앉아 말씀을 받고, 날마다 신문보다 성경을 먼저 읽었답니다. 그리고 90세가 넘어 시력이 약해지자 성경을 잘 읽는 사람을 구하여 날마다 성경을 읽게 하고 그것을 들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그 삶을 이겨나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한 사람들에게 지혜를 줍니다.
미국 아이오와 주의 작은 농촌의 이름 없는 교회에 다니는 한 남자 성도가 교회에 가던 도중 길거리에서 장난하고 있는 네 명의 소년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 소년들을 열심히 권고해서 교회에 데리고 가 성경공부반을 조직하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 소년들은 장성하여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1932년 이 늙은 성경교사의 은퇴 겸 생일 축하연에 편지 4통이 낭독되었습니다. 그 편지는 성경공부반을 조직 할 때의 처음 학생 네 명으로부터 온 축하 겸 감사 편지였습니다. 하나는 중국 선교사로부터, 두 번째 편지는 연방은행 총재로부터, 그리고 세 번째 편지는 후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부터 온 것이고, 마지막 편지는 미국의 대공황시기에 미국을 이끌었던 후버 대통령의 편지였습니다. 시골의 이름 없는 교회에서 일어났던 성경공부의 반을 통해서 위대한 리더들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우둔한 사람들을 지혜롭게 합니다.
3.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8절).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 정직해지고 자신이 정직해지기 때문에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여기서 ‘정직’은 육상선수들이 달리는 트랙을 의미합니다. 선수가 자신이 달려야 트랙에서 벗어나면 실격처리 됩니다. 자신이 달려야 할 트랙을 알고 그 길로 갈 때 만족이 있고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길, 내 인생의 트랙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길을 갈 때 우리의 인생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렘 15:16에서 예레미야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라고 말합니다. 사실 예레미야의 형편은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고 싶을 만큼 비참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먹었고 그 말씀의 힘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신의 인생의 트랙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외적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이 그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마지막이 가까워 옴을 인식하고 디모데에게 가죽성경을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 안에서 자신이 자신의 인생의 트랙을 올바로 달리고 있다는 다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른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이 가까이 온 줄 알았지만 주 안에서 기뻤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밖에 있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그 편지에서 기뻐하고 기뻐하라고 16번이나 기쁨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여 기쁨이 충만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기쁨은 사회적인 성공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의 트랙을 알고 그 트랙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큰 사업가가 되고 모든 사람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성도 얻지 못하고, 큰돈도 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비록 명성을 얻지 못해도, 큰돈을 벌지 못해도 정직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신의 인생의 트랙을 발견하고 그 길을 간다면 그 사람은 기쁘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입니다. 모든 사람이 눈이 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손이 될 수 없습니다. 지체에게 중요한 것은 크기가 모양이 아닙니다.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자신의 자리에서 제 기능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체의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그렇게 할 때 건강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의 트랙을 발견하시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4.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합니다(8절).
말씀은 순결합니다. 순수합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면 말씀이 우리의 눈을 밝게 해줍니다. 눈을 밝게 한다는 말은 분별력을 준다는 말입니다.
말씀이 가진 눈을 밝게 하는 능력을 세 가지로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말씀은 안경입니다. 어떤 분은 눈이 너무 나빠서 책을 읽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밥상 위에 있는 음식이 뭔지를 잘 모른다고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인사를 해도 목소리를 듣기 전에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합니다. 이정도가 된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도구가 있습니다. 바로 안경입니다. 안경만 쓰면 책도 읽고, 밥상의 반찬도 분별하고, 인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인생에서 안경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다림줄입니다. 건축을 할 때 수직을 잡아주는 다림줄이 있습니다. 실에 추를 달고 늘어뜨리면 수직을 정확하게 잡아줍니다. 다림줄이 없으면 벽을 세울 때 반듯하게 세울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인생의 다림줄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인생을 바르게 잡아줍니다.
말씀은 등불입니다. 어두운 길을 갈 때 등불은 어둠을 물리치고 길을 보여줍니다. 등불이 없다면 돌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원수가 파놓은 함정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등불은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인생의 길에 등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만사를 다 환하게 보이게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해야 자신감이 있고, 용기가 있고, 희망이 있고,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출세하는지 다 보이게 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어둠 속에서 헤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를 나오지만 말씀이 없어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버틀랜드 러셀이 죽기 얼마 전에 자서전을 썼는데, “철학은 내 인생을 유실시켰다. 나는 삶의 실제를 동분서주 하며 추구했다. 그러나 나는 그 삶의 실제를 찾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인생의 실패는 말씀을 등지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그 사상이나 이론이 아무리 훌륭해도 말씀을 등진 철학과 사상은 불순물이 끼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눈을 어둡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하여 우리의 눈을 밝게 해줍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존 오웬 교수는 “인간의 눈은 장막으로 덮여있기 때문에 선악을 올바로 식별할 수가 없다. 탐심과 욕심과 교만이라는 장막이 덮여 있다. 이 장막을 제거하는 것이 성경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그 말씀이 우리의 눈을 밝게 해서 거룩하게 살고 의롭고 선하고 착하게 살게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사용설명서입니다. 어떤 상품을 살 때 그 상품에 대한 사용설명서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용설명서대로 사용해야만 그 물건을 만든 목적대로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사용설명서를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다면 그 제품은 망가지거나 제대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사용설명서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가치를 아시기 바랍니다. 시편기자는 성경의 가치를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대적인 표현을 한다면 ‘큰 돈을 버는 것보다 더 몹시 원한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돈 벌고 싶지요? 많은 돈, 큰 돈 벌고 싶지요?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초월적인 영성을 가졌든지 아니면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큰돈을 벌고 싶을 것입니다. 간절히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그것보다 더 몹시 말씀을 원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말씀 속에 참된 성공과 풍성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 119:165입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시 1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경상남북도 합친 것 정도의 작은 땅덩어리입니다. 그나마 쓸모 있는 땅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주위에는 비옥한 당이 많았고 언제나 그 당시 세계 최대의 제국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앗수르 제국, 바벨로니아 제국, 이집트 제국, 페르시아 제국, 헬라제국 등입니다. 그러나 그 제국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작고 척박한 이스라엘만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세상적인 가치로 통치했던 제국들은 사라졌고 성경적인 가치로 유지된 이스라엘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는 매일 2시간 기도하고 20장씩 성경을 읽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의 책 읽는 속도로 성경을 읽는다면 80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 15분씩만 성경을 읽는다면 1년에 성경을 1독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하루 15분을 성경 읽는데 투자하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말씀의 꿀을 먹으라.
본문 : 시19:7-11
성경에는 "꿀을 먹으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잠언 24:13-14보면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 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고 했습니다. 꿀이 우리 몸에 좋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무엘상 14장 25-27에도 보면 요나단이 전쟁 중에 피곤하여 지쳐 있을 때 수풀속 땅에 있는 꿀을 조금 먹고 기력을 되찾았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꿀은 좋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3:4보면 세례요한이 유대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꿀은 집에서 사람이 벌을 길러서 얻어내는 꿀이 있는가 하면, 토종꿀보다 더 좋은 석청, 즉 야생꿀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가정마다 꿀을 조금씩 간직했다가 어려울 때 약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저희가 어렸을 때 위급한 환자에게 꿀을 먹이면 소생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꿀은 가정 상비약으로 많이 사용 되어왔습니다. 오늘날 현대 의학을 연구하는 의사들도 꿀의 좋은 점과 효능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꿀의 주성분이 포도당과 과당인데 이것은 설탕과는 달리 몸안에서 중성 지방을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벌꿀에 들어있는 과당은 혈당농도를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몸에 피로를 없애준다고 합니다. 또 꿀에는 칼슘과 마그네슘이 들어있어서 불면증,신경통,관절염 등에 효과가 크고 항생 물질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장티푸스나,기관지염,폐렴 등에도 좋다고 합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 꿀을 먹으면 깨끗하게 치료되는 것을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감기에 잘 걸리는 분이나 쉽게 피로를 느끼는 분들은 꿀을 장복하면 매우 효과가 있습니다. 제가 주일에 설교를 새벽부터-석양예배까지 4번이나 하고 나면 몸살기가 옵니다. 그때에 꿀을 한두 숟가락 먹으면 다시 회복이 됩니다. 그래서 인삼과 꿀을 많이 먹는 편입니다. 꿀에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 가운데 비타민 C가 제일 많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채소에도 비타민C가 많습니다. 그런데 채소는 밭에서부터 유통 과정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기까지의 시간동안 비타민C가 많이 파괴되어 버립니다. 영양 학자들은 채소를 밭에서 뽑으면 그대로 두어도 24시간이 경과하면, 비타민C가 50%나 파괴되기 때문에 채소를 농촌에서 직접 먹는 것과 도시에서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을 느낄수 있다고 합니다. 과일도 과수원의 나무에서 먹는 것과 시장에서 사먹는 것은 맛이 아주 다릅니다. 하루지나면 달라지고 이틀지나면 달라지고 일주일쯤 지나면 맛이 전혀 달라집니다. 결국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극히 적은 양의 비타민만 섭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꿀은 1년이가도 10년이 가도 비타민이 파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꿀이 몸에 좋은 것입니다. 벌들이 꿀을 1kg을 만들기 위해서 560만개의 꽃을 찾아 다녀야 한답니다. 벌은 꿀에서만 꿀을 따는 것이 아니라, 물에서도 채취하고, 흙에서도 채취하고, 인분에서도 채취하고, 썩은 동물이나 생물에서도 채취합니다.
벌이 꿀을 만들기 위해서 수천 수백 곳을 찾아다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꿀을 먹는 것은 수백 가지의 좋은 것을 먹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꿀이 많이 나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가짜 꿀이 많습니다. 외국에는(미국) 가짜 꿀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진짜 꿀을 만드는 것보다 가짜꿀(설탕) 값이 더 비싸기 때문에 돈이 휠씬 더 드는 가짜 꿀을 만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순도100% 꿀을 맛 볼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좋은 것을 이야기 할 때 언제나 꿀에 비유합니다. 음식맛이 좋을 때도 "꿀맛같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외국사람들은 자기 아내를 소개할 때 "허니"(Honey)라고 합니다. 아내가 가정에서 꿀같은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또 옛날에 부잣집에서는 떡을 꿀에 찍어 먹었습니다. 꿀떡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고 합니다. 똑같은 당분이지만 꿀은 우리 몸에 아주 유익한 반면에 설탕은 나쁘다고 합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무서운 대적은 흰설탕과 흰쌀밥이라고 합니다.
죤 유리킨 박사가 1972년 출간한 "감미의 위험"책에서 심장병, 동맥경화의 원일을 설탕을 많이 섭취하는데 있다고 밝혔습니다. 혈액 내에서 포도당 과잉으로 인한 고혈당도가 혈액의 삼투압을 변화시키고 췌장에서는 인슐린을 소모시켜 도리어 저혈당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또 정신분열증 환자의 67%가 저혈당환자라고 합니다. 당분을 많이 먹어서 산성체질이 되면 흥분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세기의 질병은 거의가 설탕 때문에 온다고 합니다. 흥분을 심하게 하면 자살, 폭행,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고 합니다. 또 당분을 많이 섭취해서 비만도 오고 고혈압도 됩니다. 선진국의 아이들이 빨리 크고 조숙한 것은 설탕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분유나 커피, 아이스크림, 초코렛, 과자들에서 당분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설탕을 적게 먹는 운동도 하고 음료수에도 당분이 없는 음료수를 따로 제조해서 파는 제도가 마련되어 무가당제품이 인기입니다.
본문에서 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꿀을 많이 먹으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으라는 뜻입니다. 꿀을 달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달다는 뜻입니다. 꿀을 아무리 먹어도 부작용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영혼과 믿음을 건강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인스턴트식품이나 설탕은 우리에게 부작용을 주고 질병의 원인을 제공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단맛을 잃어버리고 인간이 만든 맛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마약과 술취함, 사치와 음란 등 열락에 빠져서 예술이라는 미명아래 갖가지 인간적인 맛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입에서는 달콤할찌 몰라도 자기 몸과 영혼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갖가지 질병과 부작용의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을 떠나서 행복을 얻으려는데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우리 몸에 양약이 되고 보약이 되는 꿀이 말씀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치료는 말씀으로 해야 합니다. 모든 길은 말씀속에 있습니다. 승리의길, 행복의길, 건강의길, 축복의 길이 모두 말씀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우리에게 무한한 능력을 주신다고 마태복음 13:23에 말씀했습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100배 혹 60배 혹 30배가 되느니라" 그리고 말씀대로 사는 삶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가정, 기업, 나라는 든든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다고 마태복음 7:24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말씀이 무엇을 말하려는지를 파악하고 그 말씀의 빛을 따라가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꿀벌들이 꿀이 있는 곳을 찾아가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서 그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도여러분! 누가 우리를 도와주겠습니까? 누가 나의 노후를 책임져주고 나의 가정, 나의 자녀를 인도해 주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을 붙드는 자에게 꿀 같은 은혜를 부어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꿀처럼 달게 들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소리는 달콤하게 들리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달게 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삶은 정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맛을 느끼고 항상 사모하고 은혜롭게 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오는 것입니다. 매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믿음이 생깁니다. 말씀 속에는 무한한 영양분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들을 때 치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은 영육의 모든 질병이 물러가고 어두움의 권세가 가까이 오지 못합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우리는 말씀을 잘 지켜야 합니다.(신행일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말씀을 듣는 것은 잘하는데 지키는 것은 잘 못합니다. 지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됩니다. 쉬운 것 같으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려워도 어려운 가운데서 말씀을 지키다보면 말씀의 단 맛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 다니엘같은, 요셉같은 기적과 응답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성경이 하라는대로 하고 그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달고 오묘한 말씀으로 알고 지킬 때 여러분의 앞날에 주님의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꿀송이 같이 달게 읽어야 합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 주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이렇게 말씀이 귀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소리내어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여러분의 피로를 풀어주고 영혼에 평안을 얻게 만들어 줍니다. 감기를 몰아내고 기관지도 좋게 하고 폐도 튼튼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신령한 은혜의 말씀은 영육의 연약함을 이기게 합니다. 학생이 또 말씀을 읽고 공부를 시작하면 두뇌가 맑아지고 정신이 집중되고 공부도 잘하게 됩니다. 말씀을 읽고 잠을 자면 잠도 단잠을 이루고 악령도 역사하지 못합니다. 할렐루야!
넷째로,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꿀송이 같은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시편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103절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그리고 131절에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헐떡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말씀의 맛을 잃어버리고 세상소설이나 문학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문학이나 소설이 우리를 치료해 주지 못합니다. 문학은 결코 우리를 건강한 인격으로 복된 생애로 만들어주지 못하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시는 줄 믿습니다.
다섯째,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으면 말씀을 잘 모릅니다. 시편 119:73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시간나는 대로 신령한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주의 종에게 교회에서 배워야 합니다.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가르쳐주시고, 이사야를 통하여 히스기야에게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도 배우므로 지식을 더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면 어떤 축복을 받습니까?
① 형통한 은혜가 주어집니다.
시편 1:1-3절 -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입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할렐루야!
②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성경 66권의 주인은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성경의 중심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을 읽거나 듣다보면 주님을 만나게 되고 영접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함이니라"
③ 멸망이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꿀송이 같이 사모하는 자에게는 고통이 없고, 어두움이 없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살펴보면 말씀대로 살지 않고 말씀을 떠나서 사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와 재앙이 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07:10-11절에 참으로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10,11 -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고 했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가정이 어둡고 하는 일이 잘되지 않고 곤고하며 쇠사슬에 매인 것처럼 답답한 것입니다.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십시오. 환하고 밝은, 풀리고 형통하는 삶이 될줄 믿습니다.
④ 영원한 축복을 주십니다.
베드로전서 1:24-25 -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의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축복은 말씀을 따라 살 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말씀을 꿀같이 사모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출처: 그리스도인의 복된 삶 글쓴이: 그리스도의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