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천명을 먹이시고 물 위로 걸어오신 예수
마태복음 14 : 13 – 3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이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를 잘 드리고 말씀 순종하고 충성해도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없으면 구원도 영생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2년을 예수님을 따르고 배웠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이적에서부터 나병환자를 비롯한 많은 병든 자를 고치고 하물며 죽은 자도 살리시는 것을 보았음에도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산상수훈을 비롯하여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천국 복음을 듣고 배웠음에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원하는 믿음을 위해서 두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고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병이어 이적을 베푸시고 그래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없어서 제자들을 바다 가운데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거스르므로 고난을 받을 때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셔서 바람이 그치게 하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저녁이 되매’(15)와 ‘밤 사경’(25)은 해가 지고 뜨는 불과 몇 시간, 만물이 잠들고 쉬는 고요한 밤에 오병이어 이적을 베푸시고 물 위로 걸어오셔서 고난 당하는 제자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두 이적을 베푸신 것을 보고 예수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33)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원하시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원하시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없다면 오랫동안 믿었고 직분을 맡아서 교회를 잘 섬겼을지라도 구원도 영생도 얻을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저녁이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 나누어 먹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굶주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한 어린아이가 먹을 정도의 도시락)로 5천 명(남녀노소 모두 2만여 명)이 배부르게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19)라는 말씀은 유월절 성만찬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해마다 유월절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지켰습니다. 공생애 첫 번째 유월절도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요2:13). 그러나 두 번째 유월절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시지 않고 갈릴리 바닷가의 빈들에서 큰 무리에게 떡을 떼어 주며 유월절을 지켰습니다(요6:4).
그런데 떡을 배부르게 먹은 무리는 예수를 선지자 중에 하나로 알고 와서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요6:14).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준 모세와 같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면 그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줄 뿐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해 줄 수는 분으로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축사하시므로 떡과 물고기가 마치 뻥튀기를 한 것처럼 순식간에 무리가 배부르게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을 만큼의 큰 떡 덩이가 되고 물고기가 된 것이 아닙니다.
마치 사르밧 과부의 집에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였던 것처럼(왕상17:14)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서 떼어 주시는 것을 제자들은 무리에게 주어 배부르게 먹게 하고 열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이를 보고 무리가 예수님께 와서 억지로 붙들고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를 본 제자들은 흥분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추대하는 무리와 함께 축제의 밤이 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22). ‘즉시 재촉하사’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는 무리와 제자들의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즉시 제자들을 무리에서 떼어 재촉하여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오늘의 교회가 오병이어의 말씀을 물질적인 축복으로 가르치고 성도들은 믿고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헌금 봉투를 들고 ‘오병이어의 축복기도’를 하면 성도들은 큰 소리로 아멘! 이라고 외칩니다.
이것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작은 것을 바쳐도 천배 만배의 복을 주시는 임금으로 가르치고 배웁니다. 예수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믿습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을 때 예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마치 예수를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는 무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기도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임금으로 믿는 것은 구원도 영생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세다로 가게 하시고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22,23). 그런데 제자들은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했습니다(24).
‘바람이 거스르므로’란 말은 폭풍을 동반한 급격한 기후 변동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환호와 열광하는 무리를 뒤로하고 예수님으로부터 떠밀려 배를 타고 가는 제자들에게 마귀가 가져다주는 시험입니다.
마귀들은 제자들이 탄 배를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으로 거슬려서 그들을 절망적인 상태로 몰아쳤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아고보와 요한은 어려서부터 고기 잡는 어부였기에 왠만한 바람은 이겨낼 수 있었지만, 그들도 거스르는 바람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밤 사경(25)은 해가 뜨기 직전으로 하루 중에 가장 어두울 때로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매우 절망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산에 계신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는 제자들을 보셨습니다.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젖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막6:48)란 말씀은 아무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매우 절망적인 상태를 주님께서 보시고 도와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아무도 알지 못하고 도와줄 수 없는 절박한 상태에 있을 때 보시고 도와주실 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뿐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유령인가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질렀습니다. ‘유령’이라고 소리 지른 것은 사람으로서는 바람이 거스르는 한밤중에 바다 위로 걸어서 올 수 없다는 것을 강하게 표현하는 말입니다.
‘유령’이란 사람이 아닌 실체가 없는 귀신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령이라’ 외치며 두려워 몸이 굳어버렸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즉시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2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며 영접하였고,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셨을 때 바람이 그치고 바다는 잔잔해졌습니다. 이를 본 제자들은 이 모든 것을 보고 마음에 심히 놀랐습니다(막6:51).
그런데 마가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다’(막6:52)라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이 떡을 떼실 때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신 분으로 알았다면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이라고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33)라고 고백했습니다.
같은 사건을 보고 마태와 마가가 다르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다르게 말한 것은 마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지도 않을 뿐 아니라 떡을 떼는 일이나 바람이 거스리므로 고난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2:12절에 ‘마가’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열흘 동안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120여 명이 모여 기도했습니다. 오순절 강림하신 성령 충만함을 받고 그때부터 외삼촌인 바나바를 따르고 바울과 함께 전도사역을 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떼어 주신 떡을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는 일에 수종 들며 오병이어의 이적을 체험했습니다. 바람이 거스르므로 고난을 당했고,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셔서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치는 체험도 했습니다.
마태는 직접 보고 체험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고난을 당하고 도움을 받고 체험한 믿음과 고난도 당하지 않았고 도움을 받은 체험도 없는 믿음은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요셉이 낳은 아들이 아니라,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의 신앙고백입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33)은 열두 사도입니다. 사도들은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배부르게 먹고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는 큰 무리를 다 흩어 돌려보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영생도 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먹고사는 복을 주시는 분으로 믿는 기복적인 믿음은 구원도 영생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신이 뽑아 세운 열두 제자들은 재촉하여 무리에게서 떼어내어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고난을 당했을 때 바다 위로 걸어오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셔서 비로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6:16). 우리도 베드로처럼 복이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복이 있는 자라야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백합시다. 주님 오시는 그날에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