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자와 하루나 소설집의 『나는 고독한 별처럼』 중 「실은 붉다, 실은 하얗다」를 읽고
SF.
Science Fiction의 약자다.
현실에 ‘아직’ 없거나 미래의 기술을 ‘상상’해서 만드는 이야기다.
SF는 나에게는 무서운 존재였다.
물론 미래를 ‘상상’하는 세상일 수 있지만, 현실에 ‘아직’ 없는, 다가오고 있는 미래일 수도 있으니.
많은 SF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느낀다. 무섭다고. 하지만 어떨 때는 기대된다.
그래서 나는 SF라는 장르를 매력있게 생각한다.
작가의 세계관을 들여다 보는게 쉽지 않았다. 구조적 설명 없이, 그냥 전개되는 과정을 보며 이해해야 했지만,
오히려 더 책의 몰입도를 높여준 것 같다.
소설집 중 「실은 붉다, 실은 하얗다」라는 소설로 글을 마무리해보겠다.
버섯균을 통해 같은 버섯균 끼리 서로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은 균사를 몸속에 받아들임으로써 말하지 않아도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주인공 역시 친구 ‘곳코’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친구와 함께 균사를 고르게 된다. 처음에는 서로의 감정을 숨김없이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지만,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은 서로의 불안과 상처, 질투와 결핍까지 고스란히 마주하게 된다. 마음이 이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사랑과 공감만 공유하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가장 어두운 감정까지 끌어안아야 한다는 사실을 작품은 조용히 보여준다. 이야기는 완벽한 이해란 과연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완전한 공감인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연결’이라는 단어가 지닌 양면성이 매력있었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 한다. 말하지 않아도 내 슬픔을 알아주는 사람, 설명하지 않아도 내 외로움을 느껴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 이상 혼자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작품 속 균사는 바로 그런 인간의 오래된 소망을 실현해 주는 장치처럼 존재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완벽한 이해가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는데, 사람의 마음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질투할 수 있고,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상처받을까 두려워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아주 조용하고 섬세한 문장들로 그려낸다.
특히 제목인 「실은 붉다, 실은 하얗다」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붉다는 것은 뜨겁게 타오르는 감정, 숨길 수 없는 욕망과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반대로 하얗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순수함과 침묵, 혹은 감정을 감추려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사람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흔들리고 있다. 작품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색을 보여준다.
SF라는 형식을 빌리는 것 같았다. 균사라는 설정이 낮설게 다가오지만 매우 인간적이고,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친구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영원히 이어지고 싶은 마음, 그러나 동시에 자기 자신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본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와 곳코의 관계가 단순한 우정보단, 어딘가 불안하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서로를 이해하고 싶어할 수록 나오는 고독을 발견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인간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와 침묵이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완벽하게 이해받고 싶어 하지만, 사실 사람은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상대의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된다면, 오히려 상처받거나 견디지 못할 순간도 많아질 것이다. 그렇기에 작품 속 균사는 연결의 상징인 동시에 인간 관계의 위험성을 드러내는 존재처럼 존재한다. 그렇기에 사람은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게 아닐까.
책을 덮은 뒤, 약간 슬프면서도, 반가웠다. 한 번씩,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의 감정을 상상하고, 단정 짓기도 했다. 그래서 더 외로웠던 것 같다. 만약 감정을 읽게 된다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생각만 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더 외로워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은 붉다, 실은 하얗다」라는 작품은 단순히 이루어 질지도 모르는 미래 사회를 상상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끝없이 반복해 온 질문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왜 서로를 이해하고 싶을까, 그리고 정말 완전한 이해는 가능할까? 작품은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읽고 난 뒤에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자라나는 균사처럼, 이야기는 오래도록 나의 감정을 흔들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