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떡빙이
이기식
6.25 사변이 끝나갈 무렵의 초등학교 시절, 불현듯 되살아 나는 기억이 하나있다. 동네에 '떡빙이'이라 불리는 여자 거지가 가끔 나타났다. 보통 거지 같으면 찌그러진 미제 깡통을 들이밀면서 '밥 좀 주세요' 하는데 다른 거지와는 다르게 떡을 달라고 한다. 그래서 부쳐진 이름이 '떡빙이'다. 소문에는 집안도 좋고, 꽤 돈도 있고, 또 공부도 많이 했는데 이번 전쟁 중에 가족을 다 잃고 난 뒤, 미쳤다고 한다. 지나치면서 보면, 학교에서 자주 보는 여선생님과 비슷했다. 전쟁이 잠잠해지면서부터, 보이지 않았다. 누구한테 물으면 식구들을 만나러 하늘나라로 가지 않았겠느냐고 대답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왠지 모르나 그녀는 아직도 어디선가 계속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라는 환상幻想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항상 무언인가를 찾으니까.
정월이나 추석이 되면 정성 들여 만든 여러 가지 떡이 상하지 않도록 소쿠리에 담아, 바람 잘 통하는 다락방에 올려놓는다. 나는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수시로 다락에 기어 올라가 떡을 들고나와 친구들하고도 나눠 먹는다. 마치 생쥐가 풀 바구니에 들랑거리는 듯하다. 그런 나를 보고 외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말씀하신다. "저 떡빙이는 이다음에 떡방앗간 처녀에게 장가보내야겠다“그러시면서도, 밥 지을 때, 쑥떡을 얹어서 쪄 주시곤 했다. 그런지 외할머니가 그리울 때가 많다. 은근히 기대했던 방앗간 소녀는 결국 인연이 안 닿았다. 우리 모두 떡빙이었던 시절이다.
국제학회로 인도네시아 발리섬에 갔을 때였다. 저녁 식사 후에 산책 삼아 호텔 밖으로 나오니 해변마을이 보였다. 논두렁을 따라가다 보니 조그만 가게가 보였다. 앞에 놓여 있는 평상에서 어린 소녀가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백설기 같았다. 주인아주머니가 순박하게 웃으면서 나에게도 건넨다. 시원한 캔맥주와 함께 건네준 백설기를 먹었다. 다모작이 가능한 동남아시아에서는 쌀로 만든 음식이 많을지도 모른다. 일본, 중국도 새해에 떡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든가, 또는 행운이 온다고 믿고 있다. 국제학회에 참석했으니, 차제에 '국제 떡빙이 학회'라도 만들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호텔로 돌아왔다.
심지어 KIST 같은 첨단을 걷는 연구소도, 최신식 컴퓨터나 슈퍼컴을 설치할 때, 떡을 놓고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관련 연구원들, 연구소 소장이 함께 모여 값비싼 문명의 이기가, 제발 고장이 안 나고 잘 돌아가도록 해달라는 바람이다. 그것뿐인가. 입시시험 날 아침,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식욕도 없는 입시생에게 억지로 떡을 먹이기도 한다. 체하지 않는 게 다행이다. 미신인 것 같기도 하지만, 오히려 성공이나 성장을 위한 소박한 의식이다.
매년, 추석 한가위가 되면 대낮 같은 달이 뜬다. 옥토끼 부부는, 전광판을 밝게 켜서 보름달을 킨 다음, 계수나무 밑에서 절굿공이로 쌀을 찧기 시작한다. 지상에서도 남녀들이 달빛 아래 모여, 떡메로 절구에 떡을 신나게 친다. 흥이 무르익으면 한 쌍, 두 쌍, 어디론가 사라진다. 인절미를 찧은 때 나는 '철버덕' 소리가 여기저기서 끊이질 않는다. 부부는 눈이 빨개지도록 지상을 살피다가 새벽이 돼서야 켜놓은 달을 끄고 잠자리에 든다. 지난 8월 말의 슈퍼문 때문에 전원을 너무 사용했다. 곧 추석인데 걱정이다. 싸구려 중국산 태양전지라도 사서 부지런히 충전해야 할 판이다.
떡에 관한 속담은, 다른 음식에 비해 유난히 많다. 속담집을 보면 250여 개가 보인다. 이에 관련된 속담 한두 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는 떡이 커야 오는 떡도 크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노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싼 것이 비지떡 등. 삶의 거울이고, 해학·익살이기도 하다. 영어 속담이나, 공·맹자 등의 명심보감보다 더 자연스럽고 감칠맛이 난다. 커가면서 나도 모르게 우리의 생활철학으로 자리 잡는다.
떡이란 낱말도 음식 이외에, 낚시 미끼, 뭉쳐진 것, 착한 사람을 비유하거나 마약을 의미하는 은어로도 쓰인다. 또 '떡 벌어진'처럼 바라지거나 벌어진 모양, 의젓한 모양을 나타낸다. 접두어로도 자주 보인다. 떡칠, 떡값, 떡고물, 찰떡궁합 등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대략 300여 단어. 기타 명사보다 월등 많은 편이다. 접미어인 경우는 550여 개로, 복떡, 고수레떡, 찹쌀떡 등처럼 주로 떡의 이름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꼭 기억해 두면 좋은 떡에 관한 처세훈도 많다. '웬 떡이냐?"이다. 아무 떡이나 꿀떡꿀떡 집어 먹으면 위험하다는 경고다. 주위에서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을 때는, 대부분이 먹지 말아야 할 떡을 꿀떡했을 때이다. 명예와 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생각을 하다 보면 자주 일어나는 실수이다. 그런데 꿀떡하고도 무사한 사람들도 간혹 보인다. 이상한 소문은 많은데도 끄떡없다. 하느님이 그런 사람들까지 돌보지는 않겠고, 아마도 이 사회에 뿌리박고 있는 부조리가 아닌가 싶다.
조선시대의 명필 한석봉의 이야기도 있다. 어머니와 10년 입산의 약속을 어기고 3년이 지나 하산하자, 석봉의 어머니는 호롱불을 끄고, 자신은 가래떡을 썰고 아들에게는 글씨를 쓰게 한다. 불을 켜 보니 모친의 떡은 보기 좋게 가지런하게 썰려있었으나 아들의 글씨는 엉망이었다. 석봉은 다시 산으로 가서 남은 7년을 채우고 돌아와 조선의 명필이 된다는 이야기다. 자식 교육에 대한 부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말이나 속담들은 우리 사회를 서로 연결해 주는 윤활유, 촉매제 역할을 한다. 같이 모여 방아를 찧고 만든 것을 여럿에게 돌리면서 후한 인심을 나눴다. 그저께 싸웠던 집과도 떡이 오간다. 직접 들고 가기가 쑥스러우니까 슬쩍 아들이나 딸들에게 들려 보낸다. 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라는 말도, 단순히 미워서가 아니라, 잘해주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애틋한 마음 씀씀이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명절 풍습이 점차로 시들해지는 것이 섭섭하다. 옛날의 한가위 같은 인심이 돌아오면 좋겠다.
오늘은 기다리던 장날이다. 집사람 뒤를 부지런히 쫓아가서, 짐꾼 노릇을 할 계획이다. 당뇨 때문에 평소에는 떡을 못 먹게 하나 이날은 떡집에 들러준다. '꿀떡꿀떡집' 아줌마가 듬뿍 떠주는 꿀에 가래떡을 쿠~욱 찍어서 먹는 모습을 떠올리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이래저래 떡빙이다. [2023/09/26]
<수필과 비평 2023-11 v.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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