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뢰사파혈단(風雷死派血團) 위당(委當) 안쪽......
깊은 곳에서 가녀린 여인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린다.
산고의 고통은 태초부터 시작된 전쟁.....
하얀 이불자락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쥐어 비틀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녀의 커다란 고성이 사파의 당주에게 들릴 정도로 울려 퍼지자,
잠시 후 들리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당주는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도 어느 새 발걸음은 위당으로 향하고 있다.
"수고하셨소 부인, 부인 닮은 아들이구려"
"하아...저를 닮았다 하심은 당치도 않습니다....당주......."
당주가 두 팔 가득 안고 있던 하얀 보자기에 쌓인 아기를 여인에게 보여준다.
어느 새 그친 울음.....아기의 쇄골부근에....붉은 인이 찍혀있다. 놀란 산모는 아기를 뒤적거리고....
당주도 인(印)을 발견했는지 놀란 눈으로 주위에 있던 하인들에게 소리친다.
"어서 인두를 가져오너라"
옆에서 마냥 즐거워하던 하인은 어리둥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인두를 가져온다.
숯에 뜨겁게 달구어진 쇠.....당주는 소매를 걷고 쇠막대를 집어낸다. 서서히 아기의 몸에 다다가는 인두....
또다시 부인의 피를 토해내는 비명이 사파 본당(本堂)을 가득 채워낸다.
서장(序章)[1]
하얗게 웃고 있는 아기의 초상화, 그 초상화의 테를 두르고 있는 황금빛 액자를 닦고 있는 하녀....
열심히 방긋방긋 웃으며 액자를 닦고 있던 하녀는 귀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바람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눈을 커다랗게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앞에 보이는 건 아기초상화의 목에 꽂혀있는 하나의 단검...
한 발자국 물러서며 뒤를 돌아보니 누군가가 서있다.
"내가 그 초상화는 태워버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묵직하게 하녀의 온몸을 감싸는 그의 목소리......
그녀는 덜덜거리며 몸을 떨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내가 물었다"
하녀의 입에서 이제는 아예 작은 흐느낌까지 들린다.
차가운 금속성의 물체가 챙-하고 그의 손에 들려진다
공중을 가르는 짜릿한 소리가 들리자
하녀의 목이 피와 눈물을 섞어 바닥에 떨어진다.
-혈단은 아침부터 수십의 하인들 시체를 처리하고 있다.
당주가 혀를 차며 붉은 머리칼의 그를 돌아본다.
"태(兌)야, 이리 와 보거라"
그가 부르자 어느 새 곁에 당주의 옆에 서 있는 태(兌).....
허리에는 기다란 장검과 단검 둘을 한꺼번에 차고 있는 것이 마른 몸의 그에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
"장검을 아예 그렇게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닐 것이면 버리거라"
당주의 옆에 서 있던 부인이 너무하다는 듯 한마디한다.
"아닙니다 당주, 뭐 그러실 것까지는 없잖습니까, 지(地)도 아직 키가 다 자라지 않았고,
특별히 당주께서 내려주신 하례물도 없으니 넘어가시지요"
당주가 할 말을 잃는다.
그는 부인을 씁쓸하게 한번 돌아보고는 다시 붉은 머리의 그에게 다가간다.
"태지(兌地)야, 검은 자신의 몸에 꼭 맡는 것을 사용하여야 한단다, 아무리 강한 무인도 자신의
신체에 맞지 않는 검을 쓰면 힘의 절반을 버리게 되는 것이란다, 물론 천(天)의 경지에 오르면
'검강'이라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지만, 오르지 못한다면.....자신의 신체에 꼭 맞는 검을 사용해야 한다
알겠니?"
붉은 머리 태지가 머리를 끄덕인다. 알겠다는 뜻인지 귀찮아서 그냥 넘기려는 것인지....
그를 뒤로하고 위당으로 들어가는 당주를 뚫어져라 주시한다.
태지의 작고 귀여운 입술이 달싹인다.
"검....강...?...."
서장(序章)[2]
푸른빛이 감싸고도는 울창한 대나무 숲, 작은 새의 지저귐도 없는 고요함을 오로지 공기를
가르는 검성(劍聲)만이 자리한다. 이마에는 땀이 한가득 인데 얼굴의 미소는 사라질 줄을 모른다.
검을 휘두르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인 듯, 잠깐의 눈 깜빡임도 허용하지 않고 열심히 공기를 가른다.
"태지님...태지님...."
한 명의 하녀가 그를 애타게 찾는다. 잠시 하던 몸짓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누군가의
목소리인가를 알았는지 다시 몸짓을 시작한다.
주위에 서성이던 하녀가 그를 발견했는지 부리나케 달려온다.
-사악....
대나무가 소리 없이 양 갈래로 갈라진다.
달려오던 하녀는 자신의 눈앞에서 대나무가 갈라지는 것을 보자 눈을 뒤집고는 고꾸라진다.
한치의 오차 없이 정확히 잘려나간 대나무....한 쪽 눈을 살짝 찡그리고는 그 대나무를 뚫어져라 주시하던
태지는 인상을 파악-찡그리더니 하녀의 몸 위에 대나무를 툭-하니 던져놓고는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
주머니에서 피리를 꺼내 불기 시작한다.
서서히 몰려들기 시작하는 동물들...
엉거주춤 저 고개 넘어 맹수까지도 어떻게 들었는지 그의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누런 갈기의 커다란 고양이 같은 맹수에 얼룩무늬가 있는 맹수까지....
그 맹수들에게 다가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털을 문지르며 그들의 등에 올라탄 태지는
마치 숲 속의 산신처럼 보였다
-현석은 아까부터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왠지 모르게 괜히 흥분되고, 누군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쓰다듬고, 뒷머리를
긁적이고, 이건 분명히 아까 만난 길거리의 점쟁이의 말 때문이 아니다 라고 속으로 외치는 현석이다.
"후우..."
크게 한 숨을 쉬고 나니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풍뢰사파혈단의 공자가 자신의 도정문하정파(道正門下政派)에 방문한다는 말도
언뜻 스쳐지나가다 들은 것 같기도 하였다.
"가볼까..."
시장의 어귀에 서있던 현석은 발걸음을 뒤쪽으로 했다 앞으로 했다 여간 정신이 산란했다.
그 모습을 보고 기방의 작은 꼬마가 달려온다
"문하의 도련님..."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다만 짧은 단발머리의 예쁘장한 사람이다.
"문하의 도련님...잠시 기방에 들르셔서 목을 축이심이..."
그러고 보니 언뜻 목이 마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현석이 말하기를,
"내 나이 10세에 어찌 기방에 들를 수 있겠느냐, 부친의 허락을 맡지 아니하였으니 이만 가 볼 것이니라"
라고 그 아이에게 말하자 아이는 알았다는 듯,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고는 예를 갖춘다
"저는 이 기방의 기주(基主)인 옥령(玉靈)의 자식인 옥현(玉絃)이라고 합니다 제 나이 7세에 감히
도련님의 심성을 수련타 하였으니 용서해주시기 바라옵니다"
현석이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짓자 그 아이도 미소짓는다. 그 때 저 멀리서 혈단의 가마가 보이자,
아이를 등뒤에 숨긴 채 골목의 그림자로 숨었다. 자신의 앞으로 지나가는 혈단의 가마....
그 위에 정자세로 앉아 있는 혈단의 공자는......
현석의 심장을 더욱더 뛰게 만들뿐이었다.
서장(序章)[3]
그와 눈이 마주쳤다.
도정문하정파의 현석공자.....아마도 그는 나를 모를 테지....
태지는 손에 들고 있던 부채로 조금 더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아버님 대신으로 가는 사타(事他)...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미래의 경쟁자를 만나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여 승낙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검 손잡이를 잡는 나의 손은 무엇 때문인지....
어차피 당신과 나, 평생 자신들의 사람들을 대신해서 싸워야할 운명....
하지만 서로 그리 틀리다고 만은 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요....우리서로 닮은 점도 있을 테니...
태지가 부채를 살짝 기울이고 옆에 있던 하인에게 묻는다.
"문하의 공자는 어떻다 하더냐?"
"...예...올 해 나이는 태지 님보다 두 해 위시고, 품행이 방정하시어, 명성이 자자하다 들었습니다."
"그래?"
자신의 웃음을 부채로나마 가리고 있는 태지, 옆에서 얼토당토 하게 쳐다보고 있던 하인이
옆에서 누군가의 속삭임에 깜짝 놀라 크게 외친다
"가마를 내려라"
기울여지지 않고 똑바로 땅과 닿는 혈단의 가마.....
그는 청색의 예복에 검은 예당포(모자)를 쓰고 있었다. 양손은 가지런히 모아 살짝 들어 부채를 잡고있는
태지의 모습이란...가히 놀랍다고 할 수 있다.
"고하거라"
태지의 낮은 목소리에.....다시 한번 놀라서 문손잡이를 잡는 하인.....
손잡이에 손이 닿기 직전, 태지의 부채가 자신의 손을 내려친다.
벌써 빨갛게 부어있는 손....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서는 태지를 올려다본다.
"화당(火當)이라......"
그의 하얀 얼굴에 또다시 아수라의 미소가 걸린다.
손을 뻗어 부채로 손잡이를 내려친다. 뜨겁게 달구어진 손잡이가 어디서 생겨서 나왔는지 모르는
맑은 물망울들에게 손을 들고....그의 키에 열 배도 넘는 커다란 문이 나무를 찍어내는 소리를 내며
열리고 있다.
"어서 오십시오, 문하(門下)에 오신 것을 반가워하지 않겠사옵니다...호호호"
혈단 하인들의 얼굴이 모두 시뻘개진다. 무어라고 한마디씩하며 태지에게 말하지만, 그는 듣지 않는다.
자줏빛의 짧은치마를 입고있는 여인.....눈과 눈썹의 사이에는 푸른색의 분이 발라져 있었고,
입술에는 생피라도 발랐는지 눈이 따가울 정도의 붉음이 있었다.
"문하(門下)에서는 밖에 있었던 잡귀들을 긁어모아 근신한다지요? 여긴 그 문하로 들어가는 아귀문(餓鬼門) 9성의
제 1성이고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려 공자"
여체의 몸이 순식간에 지네로 변한다. 혈단의 하인들은 이미 도망간지 한참이고, 태지의 주변에는
여러 명의 검은 복면의 무사들이 서있었다.
"박(搏)"
태지의 목소리에 따라 검은 복면의 무사들이 그 지네를 둘러싸고 결계를 형성한다.
지네가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는다.
"문(刎)"
태지의 목소리에 따라 검은 복면의 무사들이 그 지네의 목을 내려친다.
그러나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커다란 지네...
"살(殺)"
태지의 목소리에 따라 검은 복면의 무사들이 그 지네의 심장을 내리 누른다.
조금씩 움직이던 다리도 이제 꿈틀거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싸는 안개를 헤치며.....
태지가 붉은 눈을 하고 입가를 살며시 끌어올리며 두 번째 문인 제 2성을 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장검을 손에 쥔 채로......
서장(序章)[4]
태지의 장검을 만든 사람은 그리 유명하지 않다. 하지만 곳곳의 천(天)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검만을 만들어 준다는 객 설이 떠돌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가 태지를 처음 본 그 순간
3년을 오로지 그 한 자루의 검만을 만들었다는 것도.....그 검은 얇은 날의....일본의 도(刀)보다 훨씬 얇은 날을
가지고 있었고 길이는 촌마을의 힘센 장수의 키와 같다 들었다. 가볍기는 새털과 비교한다하고....
그 검 날의 강도는 서양의 금강석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하였다.
태지의 아버지조차 모르는 태지의 검의 시조....
그것은 옛날, 동방의 중추를 세운 단군의 조부....
천인(天人)이였다.
-얇은 갈대로 짜여있는 누런 발 안쪽에 문하의 당주가 자리하고 있었다. 흐릿한 인영으로나마 볼 수 있는
그의 모습은 조금의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고 온 방안에 위엄을 뿌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예(禮)를 표하는 자세로 앉아있던 태지가 고개를 슬며시 들고 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당주"
당주가 손짓으로나마 일어나라 말한다.
"9성을 통과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많이 쇠하였을 듯 싶은 그의 목소리....양쪽에서 그를 지키고 서있던 두 명의 여인이 발을 걷는다.
하얀 가면으로 가려져 있는 그의 얼굴.....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채로도 가리고 있는 그는 얼굴에
커다란 흉이 있을 듯 싶었다. 태지의 입 꼬리가 둥글게 말려 올라간다.
"아뇨, 그리 힘은 들지 않았습니다만.... 그나저나 그런 많은 괴(怪)들을 잡으셨다면 깨나 많이
노고 하셨을 듯 싶습니다...훗, 어깨라도 주물러 드릴까요?"
태지가 부채로 자신의 웃음을 가린다.
그러나 조금씩 새어나가게 하는 태지.....
주위에 몰려있던 문하의 무사들이 그에게 달려 들려하자 네 명의 검은 복면 무사들이 그들을 저지한다.
"섣부른 도발을 금하시지요, 그들은 우리 혈단의 4모(母)입니다..."
"...여인네란 말씀이십니까?"
자줏빛 옷차림의 여인이 당주의 자리 옆에서 천을 걷고 나온다. 피를 너무 많이 흡수하여 머리칼의 끝이
붉게 색이 드려있다. 그녀는 태지에게 다가가 그의 뺨을 기다란 손톱으로 쓰다듬는다.
"적화(赤花)....."
그녀의 입술이 반원을 그린다.
"기억하고 계시는군요.....태지공자"
그녀의 눈썹 끝도 적색, 적혈(赤血)의 무술을 기가 몸을 충만하게 채울 정도로 내공이 뛰어난 여인.....
이 문하의 둘째 재력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은 복면의 차림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덤벼든다.
정지.......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는 넷....태지가 한 손을 펴고 4모의 행동을 저지하고 있다.
"무모하구나"
적화가 그들에게 다가가 한 명씩 뺨을 내리고 있다. 꼼짝도 하지 않는 4母... 손에 피가 흐를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고 있다. 태지가 옆에서 계속 피식거리고... 그런 그의 모습이 못마땅한 듯이 적화가 당주에게
걸어가 그의 어깨를 한 손으로 집는다.
당주가 손을 뻗어 문을 가리킨다. 본당의 정문...적화가 빠르게 날아가 문을 열어 재낀다.
본당 복도에...현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서 있었다.
"하하...이거 들켰군요, 안에서 하도 재미있는 얘기들을 하시길래..."
태지의 미간이 좁혀진다. 길거리에서 보았던, 오래 전에 보았던 그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아마도 적화의
앞이라서 더욱더 그런 것 같았다. 까무잡잡한 손으로 앞머리를 뒤로 넘기는 그의 모습이 처량해 보이기까지 한다.
"흠...현석공자이십니까...?"
현석은 귀에 들려오는 태지의 목소리에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좀 전에 시장 통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다.
서방의 사람처럼 희디흰 피부와, 여인네 같은 붉은 입술...좀처럼 검과는 일치되지 않았다.
현석이 피식거린다.
"아....이거 초면에 실례가...쿡쿡..."
검을 앞으로 끌어 모아 포권(包拳) 자세를 취한다.
괜찮다는 태지의 무언의 표현...지금 현석의 상황을 잘 알 듯싶었다.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담(談)을 요구한다.
쾌히 승낙하는 태지...현석이 이끄는 대로 밖의 무예당(武藝堂)으로 발걸음 한다.
수많은 병사가 귀(鬼)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붉은 화당(火堂)에서 만들어진 철(鐵)감옥의 쇠가 뜨겁게 달구어져
자신의 품안에 가두어 두었던 귀들의 살갗을 서서히 태우고 있었다. 그에 따라 괴이한 비명을 지르는 귀들...
태지가 부채를 품안에 집어넣고 현석에게 다가간다.
"당주는...적화에게 화륜(火輪)을 당했다 하지요...3성의 백족귀가 말해 들었습니다..."
현석이 태지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 소근거린다.
"명석하십니다...적화는 화륜으로 아버님을 지배하고 있어요...한치 앞을 내다보시지 못합니다...공자..
해결해 주시겠소?"
단검을 빼어든 태지...가벼운 손짓으로 왼손의 새끼손가락의 살점을 살짝 떼어낸다.
툭-
바닥에 힘없이 스며드는 그의 붉은 액체...
끈적한 그의 피들이 서로 엉키어 그들의 뒤에 위치해 있던 벽면에 자신의 몸을 바른다.
커다란 원형을 이루며 태지와 피들이 만들어낸 글자는...
魔(마)...
현석이 급하게 자신의 옷을 찢어 태지의 손가락을 감싸준다. 왜 그랬냐는 듯이 다그치는 눈빛...
그런 그의 눈빛이 우스웠는지 태지는 그 이후 한참동안 그렇게 웃어 재낀다.
"하하...이것이 앞으로 한동안 적화의 화륜(火輪)이나 염류(炎流)를 막아줄 거예요.....
현석공자, 사십일 후, 무림에서 혈풍(血風)이 밀어닥칠 것입니다...그때까지, 이 문하를 키우도록 하세요,
적화는 곧 돌아갈 것입니다. 화화(火花)로 들어간 적화는 사십일 후 밀어닥칠 혈풍을 기대하고 있겠지요,
지금은 그저 아무 것도 묻지 마시고, 제가하라 시는 데로 하시면 됩니다...문하를 키우세요! 혈풍은 더욱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현석의 메마른 목구멍이 더욱더 파삭해진다.
서장(序章)[5]
사타를 마치고 혈단으로 돌아온 태지는 제일 먼저 검을 모시는 신주(神住)로 향했다.
확 풍겨져 오는 향내가 은은하게 코끝을 감싼다...가운데에 검의 신(神)이라 불리는 한 사람,
한때 신방(神方)의 위치까지 올랐다는 자신의 조부의 초상이 걸려있다.
방안을 가득 매우는 태지의 향기....
연일 계속해서 그의 몸에서 신비스럽게 풍겨져 나오던 향내와도 같았다....
...묵향(墨香)...
완벽한 암흑으로 이루어져 있는 심장....
완벽한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심장....
완벽한 계략으로 이루어져 있는 머리....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 청초함을 숨기고 있는
그러나 심장 깊은 곳에 뜨거운 피를 숨기고 있는
그러나 무한한 자유를 품고 있는
신(神)의 향기.......
묵향(墨香)....
그렇게 태지는 살아가고 있다....
촤악-갑자기 허리춤에서 검을 빼드는 태지...
문 쪽에서 이상한 기척을 느꼈는지 바싹 긴장해 있는 모습이다.
털컹-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세 명의 괴한...
한 명은 태지와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상태였고, 나머지 두 명은 양쪽으로 나뉘어 태지를 둘러싸고 있다.
"누구냐"
위엄이 서려있는 태지의 목소리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세 명이 동시에 그에게 달려든다.
갑작스런 목소리에 엉거주춤 칼을 쥐고 대항한다. 그러나 세 명을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게다가 세 명 모두 상당한 실력자로 보이고...태지 나이 겨우 8세이다.
키가 조금 다른 아이들보다 크다지만 여전히 어리기는 마찬가지...
그의 천재성은 나이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다.
다행히 세 명이 한꺼번에 덤비지 않는다.
손에 힘을 주고 혈단의 비기 뇌룡장(雷龍章)의 제 2각(覺) 성수(聖帥)를 펼친다.
공중으로 튀어 올라 자신을 공격하는 한 명의 괴한을 일자로 검을 뉘여 막는다.
챙-
찌르르하게 팔을 관통하는 통증...순간 태지의 눈에 보인 것은 신발 안에서 꺼내어지는 괴한의 단검...
얼굴 쪽으로 날아오는 작은 단검을 고개를 꺾어 피했지만 뺨을 스친 단검...온몸에 뻣뻣하게 굳어오는 것이
뱀독을 발랐는가 싶었다.
"으읏...."
발을 억지로 옮겨 성수를 펼치게 한 다음...벽으로 날아올라 검을 휘두른다.
-털썩..
"끄어어..."
곧이어 바닥으로 떨어진 건 괴한의 발...우습게도 허리를 자른다는 게 발을 잘라 버리고 말았다.
효과는 있었는지 조금씩 꿈틀거리던 괴한의 움직임이 더뎌진다.
고개가 옆으로 힘없이 꺾여지는 동시에 숨을 거두는 괴한...그와 동시에 다른 한 명의 괴한이 태지에게
날아든다. 순간 빨갛게 달아오르는 태지의 목 언저리....우악스럽게 튀어나오는 핏줄들...
유독 목 주변이 가장 심했다. 그러나 한 순간 짧게 보인 붉게 빛나는 문양...
태지의 눈이 또 다시 붉게 변한다...어떤 초식인지 구별할 수 없는 난생 처음 보는 절(節)...
그의 기다란 장검이 어느 새 두 번째 검객의 심장을 꿰뚫고 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을 흥건히 적신 끈적한 피 위로 고개를 처박는 괴한...
세 번째 남은 괴한이 다가온다.
"후후....공자...역시...혈단의 자식답습니다..."
저이가 뭐라 그러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목구멍이 찢어져 너덜거리는 것 같았다.
거친 숨을 몰아 쉬느라 눈앞이 뿌옇게 흐리다. 남은 자는 이제 단 하나...
하지만...눈앞이 하얘지는 동시에...태지의 무릎이 바닥에 꺾이고 처절하게 낙하한다...
마지막 들리는 소리....4母가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를 뒤로하고...그는 이를 악물고 잡고있던 정신을...
놓아버린다...
서장(序章)[6]
적화는 아침부터 시끄럽게 귀를 때리는 소림(小林)의 종소리에 해가 밝기도 전에 이불을 걷고 말았다.
그녀가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웬일이라는 듯 한 명의 어린 꼬마가 쪼르륵 달려와 그녀에게
차 한잔을 내민다.
"안녕히 주무셨사옵니까"
어린 꼬마아이의 물음에 적화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침대 옆에 걸려있던 소가죽의 망토를 집는다.
간단히 단복차림의 소가죽망토만 걸친 모습이 이곳 화화련(火花蓮)의 련주라 생각되지 않는다.
화장기 가신 모습도 화려하게 보이지만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그녀의 어깨가 눈에 시리다.
"당주에게 갈 것이야"
그녀의 힘없는 한마디에 아무도 모르는 한숨을 뱉고 등불을 쥔 채 방을 나서는 꼬마아이...
적화의 외동딸...서랑(徐浪)...
무림의 통신부(通信部)을 맡고 있는 화화련은 커다란 천무당(天巫堂)의 소속파이다.
천무당에 속해서 그들에게 정보를 가져다주는, 그 대가로 따로 활동을 조금이나마 실행할 수 있는 소파(小派)..
그러나 아직 천무당의 지배권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곳 천무당의 당주...나이 10세에 엄청난 무술의 실력을 가지고, 무림 세력 4할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천무당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다는 천재...그가 바로 왕실 제 2세력의 두령,
이접현(李蝶現)의 아들 이주노(李主路)이다.
삐걱...
천무당 본당의 커다란 문이 열리고....적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까 와는 다른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그녀의 모습...도도하게 걷는 그녀의 모습에 눈이 아프다.
그런 그녀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본당의 제상(祭床)...제상 앞에 누군가 앉아서 향을 날리고 있었다.
"당주..."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적화....슬며시 느껴지는 한기에 어깨를 움츠린다.
그가 바라보고 있다. 저 섬뜻한 푸른 눈동자는 나의 기를 죽여놓고 있다. 불의 기운을 죽이는 얼음의 느낌..
그러나 그런 기운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공중으로 황홀하게 사라진다.
"오셨습니까..."
적화의 품으로 파고드는 이....
이주노....
지금의 그의 모습은 아직은 어리고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이다.
누가 그랬는가...이이가 바로 천무당의 당주라는 것을....조금씩 떨리는 작은 어깨가 측은해 보인다.
작은 두 손으로 적화의 허리를 놓칠 새라 꼬옥 붙잡는다.
"아버지께서 저를 싫어하시는 것 같습니다..슬퍼서....검을 쥐었습니다...."
비검(悲劍)....유하(流下)..
이주노의 속칭....그가 무림에 나갔을 때 그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한 나그네가 붙여준 이름이다.
그가 천무당의 사람인 것을 모르고 자신은 정파이며 너는 천재적인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한 자루의
검을 쥐어준....사파 천무당의 당주....이주노의 실질적인 스승....지금의 무림 지존인 백이관(伯利觀)이다...
"당치도 않습니다....당상(堂上: 前당주의 호칭)께서 당주를 싫어하시다니요.."
"아닙니다...제가 검을 쥐고 조금이라도 훈련을 도우려 하면 성을 내시면서 저를 쫓아버려요..."
......그것은 당신께서...
정파의 뿌리를 밟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어리셔서 그렇습니다....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래도....그래도 서운합니다..."
말끝을 흐리며..
혼란 속에서 허우적대던 그는 눈물을 내비친다.
물기 어린 숨을 한 번 내쉬고는..
...더욱더 적화의 품으로 자신을 숨긴다...
서장(序章)[7]
기다란 검이 덜덜거린다.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자신의 몸을 과시했던 그 도도한 검은 어디 가고
주인 잘못 만나 시장 통으로 팔려 나가는 늙은 소처럼 울어대고 있다.
푸른 공기가 머릿속을 지배하는 대나무 숲에 하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다, 그것은 춤이 아니다. 흐늘거리는 것이 춤사위로 보였지만 그것은 검법의 초식이다.
어설퍼 보이는 몸짓은 이내 땅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이가 태지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젠장..."
더욱더 야윈 그의 손목이 작게 경련을 일으킨다. 눈자위가 검게 파인 것이 그가 오랫동안 앓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검을 지주로 하여 일어나려고 노력해보지만 헛수고....털썩 누워 대나무 숲의 공기를 한껏 들이킨다.
가슴 속 깊이 차 오르는 맑은 공기에 몸도 가벼워지는 느낌...눈을 감았다. 새들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심심하게 하지는 않는다. 팔을 움직여 옆에 떨구어져 있던 대나무 조각을 들어 보인다. 한쪽 눈을 살며시 찡그리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모습이 영락없는 8세의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수많은 검의 잔재들이 남아있는 잘린 대나무...언젠가 서부터 자신이 검으로 잘라냈던 대나무들 이였다. 다른 대나무 조각을 집어 보았으나 검이 잘라낸 모양은 모두 제각각 이였다. 지금 그는 자신에게 크게 실망했다.
한 낱 대나무마저 똑바로 잘라내지 못하는 자신의 실력을,
사파의 우두머리 격인 이 혈단의 이름에 먹칠을 한 자신을...
그러나....다른 정파나 사파의 8세 공자들은...지금...
그와는 달리 검을 손에 쥐지도 못하고 있다...
아침을 먹으려 위당으로 내려온 혈단의 당주는 자신의 부인과 함께 등장하여야 할 아들을 찾고 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당신과 있는 것 아니냐고 물어오는 부인의 말에 그는 또 한번 한끼를 걸러야만 했다.
결국 그가 있는 곳이 혈단의 뒤에 위치해있는 가까운 대숲에 있다는 것을 알자 본당 의자에 등을 깊숙히
묻어놓는다. 그러다 그의 굵은 침묵은 급히 본당의 문을 열어 재끼고 들어오는 전령사 때문에 깨지고 만다.
"당주! 혈교의 부교주가 지금 침묵교(沈默矯)를 기습하고 있습니다! 상대는 병사 5만명의 유기(油奇)이고
침묵교는 채 3만명도 안되는 병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뭐야? 그렇다면 즉시 광오(狂烏)병사 7만 명을 즉시 보내라!"
"존명!"
-콰앙!!!
당주의 주먹이 의자 손잡이를 내려친다.
"이렇게....빨리..."
...이제...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중장(中章)[8]
시장통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주막...
주정뱅이, 무사, 거렁뱅이..모두가 이 안에 모여 앉아 술잔을 나누고 있다.
대나무로 빗장을 친 창 문 너머로 산적패거리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하고...
술잔을 들던 주정뱅이도 안주를 손안 가득 담아서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주막 주인도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하기 지쳤는지 문을 닫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안에 손님들이 남아있는 상황이라 더 어쩔 수가 없었다.
-콰앙!..
곧이어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이어 들리고...몇 안 남아있던 손님들은 묵묵히 잔을 들이킨다.
산적 패의 우두머리가 그들에게 다가간다. -터억...칼을 식탁 위에 꽂아놓는다.
"이봐, 여기 간덩이가 부은 놈이 있군...어떻게 할까, 이 놈 간을 떼어먹을까?"
"크하하하...!"
산적 패들의 통쾌하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주막을 가득 채운다.
그들은 2층으로 이어진 계단에 주르륵 이어 앉아 술을 홀짝거린다.
그러다 입맛을 버렸다는 듯, 미간을 찌그려 트려 놓고는 술잔을 주인장의 얼굴에 던진다.
"어이쿠!"
얼굴을 움켜지며 한 쪽 구석으로 쓰러지는 주인...
여전히 한 테이블에 쪼롬히 모여 앉아 있던 몇몇의 간 큰손님들은 술을 들이킬 뿐이다.
산적 패의 졸개가 낄낄거리며 그들에게 다가와서는 식탁 위에 꽂혀 있던 칼을 뽑아 그들의 얼굴에
대고 위협하는 시늉을 보인다. 조금도 물러서는 기색이 없는 손님들...모두가 파계승모(破戒僧帽)를
쓰고 있는 터라 얼굴이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스님의 모자를 쓰고 있다 해도 전혀
승려 같지 않은 그들의 주위공기에 섣불리 덤벼들었던 산적 패의 어린아이는 지래 겁을 먹고
꼬랑지를 내리고 내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우두머리가 성큼 거리며 다가와서는 우직한 주먹으로 식탁을 내리친다.
-우직...
반으로 나뉘어지는 식탁...
그제서 야 술을 들이키던 그들의 손짓이 멈추고...승모를 조금 더 위로 올려 그들을 바라본다.
승모를 쓰고 있던 6명...일제히 입을 연다.
"기사회생(起死回生)하려거든 자리를 뜨시오"
"뭣이?"
되물어 오듯 묻는 산적 패들..
또 한번 크게 웃어 재낀다.
한참을 그렇게 웃다가 일제히 한가지의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그들...
그와 동시에 승모 6인이 날아오른다. 우두머리 머리 위에 한 명...졸개들 머리 위에 다섯 명...
각자 맡은 산적 패거리 머리 위에 오른 후 크게 회전한다.
-우지끈...푸악..!!
마룻바닥이 꺼지고 있다. 산적 패들의 다리뼈는 이미 부서졌고, 승모 인들이 회전하면서 그들을
땅속으로 박아 넣는다. 이리저리 질퍽한 습기의 흙이 주막 사방으로 튀고...
우두머리가 당하고, 그 외세인 나머지 5명이 당하자 자연스레 줄행랑을 치는 나머지 산적들...
머리만 나와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그들을 본 채 만 채 한쪽 구석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주인장에게,
"미안하게 됐습니다. 마룻바닥을 부신 값은 드릴 테니, 저희는 못 본 걸로 해 주십시오..."
이런 말 한마디와...은전(銀錢)열 닷 돈을 던져놓고...말도 없이 사라지는 그들의 검은 등에...
붉은 글씨의...오(烏)가...울음소리를 내며...탄식하고 있다...
중장(中章)[9]
도정문하정파(道正門下政派)
무예당 마당 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 다 무너진 벽...
아직도 빙(氷)이라는 글자가 푸르게 빛나면서 화당(火當)의 화륜과 염류를 억제하고 있다.
괴(怪)들은 무리를 지어 결계 안에 갇혀 있었다. 소리지르는 것도 이젠 지쳤는지 가만히 숨을 죽이고
바깥에서 들여주는 닭의 고기와 마늘을 씹으며 연명하고 있다. 매일 이어지던 간수(看守)들의 채찍소리도
멈추었고 시름시름 앓는 듯한 도정문하 당주의 신음도 끊긴지 오래되었다.
현석은 태지공자의 빙술(氷術)로 적화의 염류를 막은 것에 대해 굉장한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염류를 맞아 미친 듯이 발광하던 괴(怪)들은 던져준 고기만 받아먹으면서도 얌전히 앉아 있었고, 하루종일 일하고도
새벽까지 일하던 일꾼들이 매일 6시간 가까이 잠을 잘 수 있을 만큼 여유로와 졌다.
하루에 아홉 번씩 이차(移車)꾼을 시켜서 문하의 뒤에 위치해있는 백마산(白馬山) 중턱에 들어앉아 있는 무위사
(無位寺)에 보내 그곳 주지가 보내주는 약으로 당주의 몸 안에 화기(火氣)들을 식히고, 반나절을 산으로 올라 스승과
함께 검술을 즐기는 것이 이젠 하루일과가 되어 버렸다. 현석의 검 솜씨는 날마다 늘어간다.
문하의 비기는 이젠 모두 외워 지겨워질 지경이고, 하루빨리 강호로 나가 많은 경험을 쌓고 싶지만, 적화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 문하의 상황이라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실력 좋은 결계사(結界士)를 키워 문하를 닫아
놓으라고 할 군사적 여유도 없을뿐더러, 겨우 나마 연명하고 있던 무림정파세력 3할이라는 좋은 명분도 잃을
지경이다. 견뎌야한다. 버텨야 한다. 조금 더 문하를 키운 후, 그 때 나가도 상관없을 것이다.
현석은 손에 힘을 주어 검 자루를 쥐었다. 하늘로 높이 치 들어 소리친다.
그렇게...목구멍이 터져 나가도 상관없다는 듯이...
"나는...기다릴 것이다! 천하를 손에 쥐어 평안하게 할 때까지..!!"
...하늘에 맹세할 것입니다...
나의 심장과, 목숨과도 같은 검을 걸고....
내가 할 것입니다..
내가...천하를 손에 쥘 것입니다...
나는...참고...기다릴 것입니다...!
"사방신(四方神)들은 문하의 방문(方門)을 하나씩 지키도록! 원생(原生)들에게는 보은장(報恩章) 제 7장을 가르치고,
1급수의 괴들은 팔주산사당(八柱山祠堂)에 들여 마음을 정화하도록 훈련시켜라! 내가 지켜볼 것이다! 정파의
본의(本意)를 지키도록 해라! 어길 시에는....내가 직접 처벌한다!"
모두들...허리를 굽혀...
결의에 찬 눈으로...현석을 올려본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문하를 이대로 무너지게 할 수 없다고...
칼자루를 쥐고 있던 손에 더욱더 힘을 주어 다짐한다.
"존명!"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그를 주시하고 있던 현석의 스승은...
품안에 있던 도덕경(道德經)과 충의부(忠毅部)를 꺼내 철창 안으로 던져 넣는다.
그것이 먹인 줄 알고 덤벼든 호녀귀(狐女鬼)는 게걸스럽게 입안으로 쳐 넣던 종이 짝을 쓸모 없게 됐다는 듯
거칠게 뱉어버리고는 다시금 웅크리고 누워 잠을 청한다.
현석의 스승, 주한규(周旱規)는 자신의 소맷자락 깊숙히에 누워있던 치경사(治景士)를 꺼내들어 바라보다가
아깝지만 버려야겠다는, 조금 다급한 손길로 저 멀리 던져버린다.
"에긍...치경사는 이제 다 떼었으니 무얼 가르친담..."
중장(中章)[10]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지금 혈단의 분위기는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명주실 같았으며,
누군가가 손끝이라도 댄다면, 끊어져 손등을 칠 것 같은 태세였다.
단지.....부드러운 비단옷감으로 자신의 검을 슥슥 문지르는 태지 만을 제외하곤..
아주 태평하다는 눈길로 검만을 바라보고 있는 태지가 못마땅하다는 듯 그의 아버지인 혈단의 당주는
상(床)을 주먹으로 탕탕 치면서 한탄해한다. 옆에서 다소곳이 바라만 보고 있던 그의 부인은 진정하라는 듯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그런 부인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얇은 입술을 굳게 닫은 채 한숨만을 쏟아낸다.
한참동안 이어지던 칼 다듬는 소리가 멈춘 후...끊길 듯 한 여린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 걱정하실 것 없잖습니까..."
태지의 말에 황당하다는 듯 책상을 두어번 실컷 두드리고는 흘깃하는 태세가 화가 아주 단단히 난 것 같았다.
화를 삭히며 앞에 놓여져 있던 찻잔에 손을 뻗어 한 모금 쭈욱 들이킨다. 차갑게 식은 매실차가 식도를 타고
뱃속으로 질주하는 느낌을 빌어 화를 조금 누그러뜨리며 퉁명스럽게 반문한다.
"걱정할 것 없다? 하! 지금 우리 혈단의 다음 세력인 혈교의 가장 큰 세력이 이곳을 무너뜨리려 온다하는데
걱정할 것 없다? 네가 지금 제 정신이더냐? 광오(狂烏)병사 5만 명을 철회시킨 것도 모자라 오륜(烏淪)6인만을
보냈는데, 걱정할 것 없다?..오호...네가 키운 오륜을 자랑하고 싶었던 게냐?...허나, 상황은 상황! 4모(母)를 보내
도 시원케 이기지 못할 유기들을 어찌 이긴 단 말이냐! 네 나이 고작 8세니라..."
-콰앙!
또다시 이어지는 상을 내려치는 소리...
그러나 이번엔 당주가 화를 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제가 잘못했다든 말씀이십니까? 실패하실 거라 이 말씀이십니까?"
-콰앙!
또다시 들리는 둔탁한 파괴음...
언제나 그의 품안에 잠들어 있던 단검이 상의 나뭇결을 비집고 들어 앉아있다.
태지의 새끼손가락이 뱀의 독니처럼 번뜩이는 날카로운 단검의 날 옆에 누워있고,
상에 꽂혀있는 작은 단검이 금방이라도 손가락을 삼켜버릴 듯 바람처럼 갈라져 내리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땐! 제 이 손가락을 내어드리지요!"
태지의 말 한마디에 스러질 듯 겨우 하녀의 도움으로 버티고 있는 혈단의 부인이 이마를 집는다.
도저히 이 상황을 더는 못 보겠다는 듯이 제 2사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태지의 초상화...이것만 보면 불같이
화를 내는 태지 덕분에 제 2사당이 통째로 옮겨져 버렸다...목에 붉은 인두자국이 있는 유일한 어렸을 적 초상화...
그렇게 넋을 놓은 채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던 부인은 손을 뻗어 초상화를 옆으로 돌린다...
-푸식...
수많은 먼지들을 머금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비밀스런 방의 공기...
그 안에는...피로 가득 찬 하나의 넘칠 듯한 그릇과...
범의 모양을 한 도자기 위에 소중히 놓여져 있는 세 권의 책과...
푸르고, 붉고, 청아한 초록을 내뱉는....세 자루의 검이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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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부터 올려달라시는 분들이 있으시다길래.....^^;
무턱대고 모두 삭제한다음 올립니다...-_=;
죄송합니다.
그동안 리플 달아주셨던분들 너무 감사하고요,
땡스투는 완결에 따라 붙이겠습니다.
완결이 언제 날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없는 소설 봐주시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