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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장준하저
장준하 선생님은 광복 직후에는 김구선생님을 모시다가
그 이후에 김구 선생님 곁을 떠나서 (물론 김구선생님과 상의후 )
이범석이라는 분 밑에서 잠깐 계셨는데 그 이후
정치에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시기를 보냄
그러던 와중에
김구 선생님이 부르셨음 이때가
1949년 6월 24일임
(김구 선생님이 육군소위 안두희에게 암살 당하신것이 6월 26일임 즉 이 만남 후 이틀후에 돌아 가심
-참 이런거 보면 ... 갑자기 그것도 자기 밑을 떠난지 오래된 장준하 선생님을 불러 앞을 내다 보신것 처럼 유품을 맡기신 ... )
이때 김구 선생님은
장준하 선생님에게 태극기 하나를 가지고 있으라고 물려주심
이 태극기야 말로 독립운동 역사와 같은 태극기임
윤봉길의사 의거직전에 김구 선생님과 찍은 사진 뒤에 걸려 있던 바로 그 태극기
윤봉길 의사 의거 직후 일본은 정말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분들을 다 때려 잡았음
안창호선생님도 이때 끌려가서 고문받았고
정말 모조리 끌려가고 난리가 났음
다 잡아가서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그러는 와중에서도 김구 선생님이 끝까지 지키신 태극기가
윤봉길 의사 생전에 그 앞에서 같이 찍은 이 태극기 였고
이 태극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걸려 있던 태극기임
우리나라 국보라고 할수 있음 ㅠㅠ
장준하 선생님은 전편에서 언급 했듯이 1945년에 광복군에 합류하고 얼마 되지 않아
광복을 맞았기 때문에
독립운동 계보의 막내임
김구선생님은 가장 큰 어른이시고
물론 그 중간에 큰 독립운동가 분들이 계셨음
근데 김구 선생님이 이 태극기를 장준하 선생님에게 물려주심
(당시에 김구 선생님 밑에 있지도 않았는데)
이것만봐도 김구 선생님이 장준하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수 있음
그렇게 정치에 떠나있는 와중에
김구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또 그 일년후 1950년 6월 25일 바로 그 사건 6.25 전쟁이 터진것임
<이 전쟁중에 어머니와 큰딸이 죽는데 인민군의 폭탄에 죽게됨 - 가뜩이나 엄청난 반공주의자 장준하 선생님에게 기름을 붙는 일이 일어난 것임 >
장준하 선생님은 자기 역할을 고민하다 정치인이 아니라 언론의 역할을 해야겠다 생각하심
당대 지식인을 아우르고
그들을 모으는 역할을 하는 잡지를 만드심
이것이 바로 사상계 임
(두둥! 이 사상계는 어마어마한 잡지임 )
1953년 3월에 사상계가 첫 발행됨
< 정치 세계사조 문학 을 아우르는 잡지임 >
당시 나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상계를 읽었으며
아니 사상계를 읽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가 없었고
요거 옆에 끼고 걸어줘야 ~ 어디서 있어 보일수 있었던 그런 잡지임
당시 일간지 조선일보 판매부수가 9만부임
근데 월간지 사상계 판매 부수 10만부 !!!!!!!!!!
1만부가 3일만에 다 팔려나가는 사회과학 잡지 사상 있을수 없는 판매기록을 세움
<지금 주간지 시사 잡지 1위가 시사인인데 5만 얼마임
그것도 2위하고 차이가 거의 2만부 차이가 나는 압도적 차이인데 5만부임
시사인 정기구독부수가 10만부가 되면 어떤 권력에도 상관 없이 어떤 기사라도 쓸수 있다고 그러더군 >
암튼 그때 인구수 이런거 다 빼고 비교해도 두배임
사상계의 영향력이 어머어마 했던 것임
장준하 선생님은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 이거 빼고서라도<여기서도 큰역할을 하셔서 뺄 수 없지만>
이 사상계 하나만으로도
사상계를 만든 발행인 그 자체만으로도
-장준하 선생님은 사상계 발행 기획 원고청탁 정리 편집 교정 하고 판매 배포 수금까지 (혼자 다하심 ㅠ.ㅠ )
<나중에 필진들이 많이 들어오게 되지만 처음에는 혼자 만듬>
현대사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 인데....
이글을 읽는 우리는 사실 들어 보지도 못한 인물이 되버림.... 하....
역사 다시 배울 필요가 있네
우리는 현대사를 제대로 다시 배워야 하는 건 맞네
박정희가 지운 역사를
우리는 다시 제대로 알 필요가 있음
<박정희가 두려워한 인물이 딱 두명 있었음 그 중한분이 김대중 전 대통령 이시고 한분이 장준하 선생님임
- 이 말을 잘 기억해 두기를 바람 >
암튼 왜 박정희가 두려워했는지 알겠지
독립운동에서는 김구선생님 태극기를 물려 받을 정도의 정통성이 있음
거기다 독립운동 당시에도 잡지를 만들고 글을 쓰셨음
그렇게 사상계라는 최고최대의 언론을 만들었음
펜이 칼보다 강하다 라는 것을 증명하심
이승만의 부정부패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셨고
박정희 독재 역시 그 맨앞에서 비판하시며 호령하셨음
장준하가 걸어온 길 . 삶 모든 부분에서 박정희가 당해 낼 수 가 없었기에 정말 두려운 존재였던것임
자 그럼 이제 사상계 발행 당시 있었던 사건을 몇개 이야기해 볼까함
< 사상계에는 당대 지식인들이 필진으로 글을 쓰고 또 여기서 쓰여진 글들로 토론도 하고
정말 모든 사상과 문학과 정치를 아우르 곳임
여기에서 글쓰는 인물들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 들이였고
동시에 사상가이자 민주화 운동가 이자 암튼 다 엄친아들임 말빨 글빨 장난 아니였음 >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보자면 단연 함석헌 선생님이심
함석헌 선생님은 어떤분이시냐면 일단은 다짜고짜 시 투척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런 따뜻한 시를 쓰신분임
<시는 따뜻하지만 글은 ㅎㄷㄷ 하지 >
이분에 관해서는 따로 공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을 정도임
이분의 글 몇개만 접해 보면
바로 압도 당함
이분은 신앙인이지만 일찍부터 무교회주의
< 교회가 권위의 상징으로 제도화 되어 그 안에서 권력화 되는 것을 비판하심
= 이렇게 생각하신게 1950년대임 이분글을 보면 정말 앞서 가셨다는것을 알수 있음 >
자 그럼 1950년판 컨트롤 비트 사건을 이야기 해 주겠음
이 함석헌 선생님이 사상계의 필진으로 참여해서 쓴 첫 글 부터
<얍~~~~~~~~~!! 한국 교회 나와라 커몬 !! 포문을 여심 >
한국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가 - 함석헌
기독교가 내비치는 교리와 실제가 다르고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이 같지 않은 듯하고
살았나 죽었나 의심이 나게 하니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이 사회가 정신적 혼란에 빠져 구원을 위해 두손을 내미는데
교회는 왜 아무런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지 않는가
이 나라의 기독교가 종파 싸움이 심하다는 것은
그만큼 이나라를 위해 하늘나라를 임하게 하려는 의욕이 적고
목적은 현세적인 권력에 두려는 증거다
기도 할때는 눈물을 흘리며 남북통일을 구하고
머리를 들고는 폭력을 써서 교회당 쟁탈전을 하고
그런 통일주의는 썩 잘한다고 해도
자기 교파가 독재적 통일을 원하는것 말고는 없다
그리고 1957년 3월에 다시 한번 글을 쓰심
<이글로 윤형중 신부와 사상계를 통해 반론 재반론을 하며 논쟁하였고 민중들까지 찬반으로 갈려 토론을 함 >
할 말이 있다 -함석헌
<일부 발췌- 정말 명문임 - 이분글은 다 명문임 ㅠㅠ >
우리 나라 역사는 벙어리의 역사다 무언극이다
이 민중은 입이 없다
표정이 없다
사람인 이상 입이 없을리 만무하지만
있어도 말을 아니하고 자라 온 민중이다
할 말이 없어서일까
아니 있다면 세계 어느나라 민중보다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입으로는 할 수 없는 말을
가슴에 사무치게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는 발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버리 (보리)집 같이 서있는 학교위에
날아가는 돈 잡는 다고 구더기때 같이 밀려가는 군중들 위에
그 군중을 또 박차고 먼지를 공중에 날리고 바람같이 지나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는 미친 년놈들 위에
또 그 모든것 다 보면서
나라 망하는 줄은 모르고
재미난 구경한다고
극장 앞에 입을 헤 벌리고 줄지어 서 있는
저 미친 젊은 놈 젊은 년들 위에
제발 구정물이라도 끼어 얹어 줍시다
저와 조금 다르면 공산당이라
비 국민이라
이단이라
제발 그런 소리 맙시다
시대착오다
역사에 거꾸로 갑니다.
하늘 명령 거스릅니다.
그것으로 망한 우리 나라 아닌가
제발 이 민중이 할 말 을 하게 하라
마이다스야 벌써 죽은지가 오래지 않나
나는 죽어도 말은 아니 할 수 없다
<예얍!!! 시 는 따뜻한 글은 쟈갸운 남자 함석헌 선생님의 포문으로 >
교회 대표 윤형중 신부님 컨트롤 비트 다운
<윤형중 신부님도 훌륭한 분이십니다. - 그렇기 때문에 서로 반론 재반론 하며 사상적 토론을 할 수 있었던 것임 >
스압으로 인해 .... 다음으로 ... ㅠㅠ
1.< 그때 그시절 >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프롤로그 그리고 윤동주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019
2.<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운동까지 반드시 알아야할 인물 장준하 <feat 박정희가 가장 두려워한 인물>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207
3.[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김구와 장준하 (feat 일본군이 먹다 남은 음식을 개처럼 받아먹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704
5. [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1950년판 컨트롤비트 두번째 (feat.사상계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9468
6. [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 (feat. 장준하 죽음의 키 김용환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1057
7.[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그것이 알고 싶다 < feat. 사건의 재구성 김용환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1934
8.[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그것이 알고 싶다 < feat. 사라진 9시간 >
9.[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진상조사 위원회 < feat. 근접한 진실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3340
10. [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feat .오후 3시 의문의 괴전화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5900
11.[그때 그시절] 세명의 거짓말쟁이와 유골이 말해준 진실 (feat.장준하 죽음 그후)
12.[그때 그시절] 친구를 가슴에 묻고 민주주의 투사가 된 목사님 문익환- 프롤로그 (feat.문성근)
첫댓글 이런글 너무좋다ㅜㅜ 잊지말자!!!
10만부... 대단하다
다음글 기대할게!!!!
재미있다! 고마워 여시!
정독해 가는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