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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시면 재밌다규;
3월 13일자 필름 2.0 생활의 발견
글쓴이 : 김작가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 애호가들의 가장 큰 소원은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보는 것이다. 오랫동안 '팝계의 미사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한국 내한공연 시장이 근래 달려졌다. 찾아오는 아티스트의 면면도 좋아졌고 공연의 질도 마찬가지다. 올 여름에는 대형 록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소식도 있다. 오랜 준비와 많은 뒷 이야기를 남기곤 하는, 내한 공연의 모든 것을 지난 달 21일 내한했던 오아시스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12년을 기다렸다. 너무 오랜 기다림이었다. 1994년
세상은 어디나 인맥과 경력
공연기획사 옐로우나인의 김형일 팀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오아시스의 열혈팬이다. 그의 오랜 숙원은 오아시스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키는 것. 오랜 꿈이 현실이 된 지난 1일, 그가 머문 호텔 방에는
오랜 숙원이 현실화의 수면으로 다가서기 시작한 것은 지난 초여름. 오아시스가 6집 앨범
세상의 모든 '바닥'이 그러하듯 공연 바닥도 좁다. 국제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에이전시들이면 더 좁은 바닥에 머무른다. 따라서 이런저런 인맥을 통해 메인 에이전트와 연결되어 있는 회사들이 우선이다. 인맥이 그냥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돈이 한두 푼 오가는 것도 아니다. 자칫 공연이 취소라도 되었다가는 세계를 오가는 아티스트의 일정에 이만저만 타격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실적을 통해 쌓인 신뢰가 있어야 한다. 다소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국내 공연기획사들이 자꾸 해외 아티스트들을 데려오는 이유다. 국제적 아티스트의 공연을 성사시킨다는 건 세계의 공연판에서 신용등급을 몇 단계 올리는 지름길이다.
뮤지션 측과 특정 에이전트끼리 1:1로 계약이 성사되는 경우도 있지만 국내 업체들끼리 특정 뮤지션의 공연을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기획사가 한두 개 있는 것도 아니고 메이저 뮤지션의 경우 국내 직배사를 통해 공연 의사를 타전하는 일이 종종 있다. 직배사들은 여러 기획사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입찰에 붙인다. 이른바 '비딩'이다. 이럴 때 자칫하면 과열되기 마련. 지난 해 9월 공연을 불과 이틀 남겨놓고 취소되어 국제적 망신거리가 됐던 엔니오 모리코네 공연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고 한다. 특정 업체에서 모리코네 측의 과도한 개런티에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어 결국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합의와 조율을 통해 정해진다. 정액제도 있고 러닝 개런티도 있다. 티켓이 몇 장 이상 팔리면 그 이상은 아티스트와 프로모터가 나누는 식이다. 오아시스도 러닝 개런티였다. 전석 매진이었으니 모르긴 몰라도 꽤 짭짤했을 것이다.
나는 귀한 몸이라오
개런티가 정해졌다고 끝이 아니다. 진정한 조율은 이제부터다. 해외에 나가면 달라진 환경 때문에 몸에 탈이 나기 마련이다. 뮤지션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계약서는 더욱 두꺼워진다. 아티스트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주최 측이 갖춰야 할 온갖 조건들이 따라 붙기 마련이므로. 거물일수록 더 까다롭다. 머라이어 캐리는 공연 전 반드시 샴페인을 마셔야 한다고 했다. 별 중의 별, 머라이어 캐리다. 편의점에서 파는 싸구려 샴페인일 리가 없다. 그녀는 한 병에 수십만원짜리 최고급 브랜드만 마신다. 세 병만 사도 백만원은 훌쩍 넘긴다. 경비절감을 위해 그 샴페인이 한국에 없다고 했더니 아예 직접 갖고 왔다고 한다. 이 샴페인을 마시지 않으면 목소리를 5옥타브까지 올릴 수 없었던 것일까. 호쾌한 음악과 호쾌한 무대 매너로 유명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스프라이트를 요구했다. 칠성 사이다나 스프라이트나 브랜드만 다르고 거기서 거기다. 그러나 혹여 스프라이트 대신 칠성 사이다를 마시고 탈이라도 날까봐 끝까지 의심을 풀지 않았다. 고작 사이다 따위에 찝찝해하다니, 왠지 쪼잔하다. 그것도 천하의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말이다.
지구인 중 가장 호사스런 생활을 하기로 유명한 엘튼 존은 투어도 호사스럽다. 현지의 음향, 조명 장비를 조달하는 관례와는 달리 그는 컨테이너에 모든 장비를 싣고 전세계를 누빈다. 물론 전용기로 다닌다. 그 장비 목록 안에는 공기청정기와 카페트가 있다. 대기실에 설치하기 위해서다. 그는 직접 제작한 향초도 갖고 다닌다. 그런데 이 향초는 반드시 심지가 5mm 이하로 맞춰져 있어야 한다. 이 향초가 'candle in the wind'에 등장하는 그 캔들인지는 모르겠으나 향은 보통 초와 별다르지 않았다고. '5갤론의 뜨거운 물이 담긴 식수통, 에비앙 생수 (1리터와 1.8리터 짜리), 립아이 스테이크가 준비된 저녁, 파스타 프리마베라를 주문해 줄 것, 다양한 종류의 프링글스, 잘 썰어 놓은 감자튀김 (1/3은 나트륨이어야 함)' 등의 내용이 미친 듯이 펼쳐진다는 건스 앤 로지스의 라이더(물품 리스트)쯤은 되어야 엘튼 존만 할까나.
어쨌든 심지어 껌 브랜드까지 정해 놓는 경우도 있으니 스타가 요구하는 아이템은 하다 못해 귀후비개마저도 무조건 최고급일 것이라 지레 겁먹기 마련이다. 스팅 내한 공연 당시 그의 라이더에는 국내에 없는 티백 브랜드가 적혀 있었다. 공연 전에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해 마시는 차라는 설명과 함께. 명색이 스팅인데 아무 차나 마실까. 영국 왕실에라도 납품되는 브랜드인가 싶어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영국 어느 슈퍼에서나 파는 가장 싸구려 차였다고 한다. 신사 중의 신사인 스팅이 평소 얼마나 검약한 생활을 하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덧붙여 제일 흔한 주의 사항은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배려. 유달리 채식주의자가 많은 서양인들이니만큼 이 부분은 늘 신경써야 한다. 한국의 맛을 느끼게 해 준답시고 진한 육수, 아니 소가 헤엄치고 간 국물이라도 먹였다가는 무슨 사건이 벌어질는지.
세트리스트와 대기실 풍경
평생 한 번 볼까말까한 공연을 찾는 관객의 마음은 다 똑같다. 최신곡도 좋지만 그보다는 히트곡을 듣고 싶어한다. 따라서 세트리스트에 대한 조율이 있기 마련. 기획사 측은 국내 팬클럽의 설문조사 등을 거쳐 국내 관객들이 원하는 노래는 꼭 연주해 줄 것을 요청하곤 한다. 오아시스의 팬들은 'Wonderwall', 'Don't Look Back In Anger'는 물론이고 'Stand By Me' 'Whatever' 등을 원했다. 그러나 'Stand By Me'는 공연 당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No'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Whatever'는 사전에 오케스트라 없이는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라도 있었지만. 아무리 그들이 3집, 4집을 좋아하지 않는다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Stand By Me'가 빠진 건 어쨌든 아쉬울 수밖에 없다. 올 여름 후지 록 페스티벌에서나 들을 수 있을까.
그래도 오아시스는 괜찮은 편. 90년대 국내 모던 록 팬들이 가장 사랑했던 밴드 중의 하나였던 스웨이드. 이들의 후신인 티어스 내한 공연 때 초미의 관심사는 과연 티어스가 스웨이드 시절의 노래를 연주할까 말까였다. 팬들의 열망을 전달하기도 전이었다. 내한공연 포스터 시안에 '스웨이드의 새로운 이름, 티어스'라는 카피가 들어갔다. 그러나 매니지먼트는 "브렛 앤더슨도, 버나드 버틀러도 스웨이드라는 단어는 언급하지 않아하니 빼 달라"고 요청했다.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기자 회견에서 정작 멤버들이 스웨이드 시절의 노래를 부를지도 모른다고 한 것. 역시나 공염불이었다. 관객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도 티어스는 한 소절의 스웨이드 곡도 연주하지 않았다. 스팅이 사전 요청을 받아 'Shape Of My Heart'를 한국에서만 연주하고, 수잔 베가가 정해진 세트 리스트를 무시하고 객석의 신청곡을 받아 즉석에서 부르곤 했던 아름다운 풍경과는 실로 대조된다. 역시 신사와 숙녀는 록커와는 다른 인종이란 말인가.
지켜지건 무시되건 세트리스트는 보통 공연 당일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이 부분만큼은 누구도 터치 않는 뮤지션의 영역. 대부분 미리 정해진 세트리스트에 따라 세계를 도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 날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그 날 공연할 노래들이 정해지고 리허설이 끝나면 뮤지션은 대기실에 머문다. 이런 저런 관계자들과 뮤지션의 친구, 관계자의 친구까지 북새통을 이루는 국내 뮤지션의 대기실 풍경과는 달리 해외 뮤지션의 대기실은 일종의 성역이다. 국내 관계자는 물론 현지 스탭들도 극히 일부만 출입할 수 있다. 보통 공연을 앞두고 휴식을 취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공연 전, 대기실에 마련된 뷔페 테이블을 이용해서 뮤지션들은 저녁을 해결한다.
오아시스도 그랬다. 밀실에서의 식사 시간, 누군가가 접시를 들고 나오더니 김치가 떨어졌다며 접시 가득 김치를 채워갔다. 기타를 멘 채 "난 김치를 아주 좋아해요"라며 행복한 미소로 돌아간 그는 겜 아처, 밴드의 기타리스트였다(푸하하~ 귀여운 겜!) 노엘 갤러거가 툭하면 멤버들을 구박하는 이유도 왠지 납득이 간다. 에이브릴 라빈은 더 했다. 방에 가만히 앉아 있기에 10대의 나이가 혈기왕성했기 때문일까. 그녀는 자신의 방에 백밴드를 불러 함께 노는 걸론 심심했던지 공연장 위층의 웨딩홀에서 축구를 하고 놀다가 유리창을 깨먹는 불의의 사고를 내기도 했다. 물론 공연이 끝난 후의 대기실 풍경이 수라도 그 자체였다고 전해지는 마릴린 맨슨만 했겠냐만. 보이즈 투 멘, 알리시아 키스 등 흑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대기실은 저 멀리까지 떠드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하니 어느 쪽이 더 부산스러운지는 들어가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진정한 파워, 관객의 힘
참으로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절대 안심할 수는 없다. 뮤지션이 무대에 올라가면 기획자들은 그제서야 한 시름 놓는다. 아무리 컨디션 안 좋은 뮤지션일지라도 최대의 에너지를 끌어내고야 마는 한국 관객들의 수준 때문이다. 모든 노래를 다 따라 부르는 건 기본이다. 거기에 점프와 슬램도 멈추지 않는다. 영어로 조크를 던져도 반응이 온다. 무엇보다 일사분란하다. 함께 앙코르를 외치고 함께 이름을 연호한다. 뮤지션이 감동받지 않으면 말이 안될 정도다.
그래서였을까. 2001년 스매싱 펌킨스의 빌리 코건은 객석을 향해 "이제야 왔다니, 우리가 바보였다" 말해 아직까지도 팬들에게 회자되는 감동을 안겼다. 마릴린 맨슨은 첫 공연 당시 어찌나 '필'을 받았던지 마지막 곡을 부르다가 전원이 나가 공연이 중단되는 사태를 불렀다. 당초 예정된 곡들을 모두 연주하고 나서도 한국 관객들의 열정적 반응에 완전히 미쳐버린 림프 비즈킷은 객석에서 앙코르가 터져 나올 때마다 계속 무대로 가는 계단을 밟았다.
비록 무대에서는 대놓고 기분 좋은 티는 내지 않았던 오아시스였지만 그들도 감동받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공연이 끝난 후 열린 뒤풀이에서 노엘 갤러거는 "그동안 내가 했던 공연 중 거의 최고"라고, 리엄 갤러거는 "관객들이 진짜 무섭더군"이라며 신나게 떠들었다고 한다. 립 서비스였을까. 다음 공연지였던 싱가포르에 가서 가진 인터뷰를 보면 분명히 아닌 것 같다. 한국 공연은 어땠느냐는 현지 취재진의 질문에 리엄은 이렇게 말했다. "관객이 미친 듯이 광분한 최고의 공연 중 하나였다."
이번 투어 도중 리엄 갤러거가 향수병에 시달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렇잖아도 성격 좋지 않기로 유명한 밴드다. 중간에 투어를 취소했던 경력마저 있다. 기획사든 음반사든 모두가 걱정했다. 숙소에서 공연장까지 가는 20여분 동안 리엄이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은 매니저도, 통역도 아니었다. 영국에 있는 아들이었다. 핸드폰으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한 대화를 멈추지 않는 그의 모습은 모르긴 몰라도 꽤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공연이 끝날 때 그는 객석을 향해 자신의 탬버린을 던졌다. 타월까지 던졌다. 오아시스의 팬들은 리엄의 이런 행동이 그 공연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는 표현이라고 증언한다. 무엇이 이 독설 형제를 기쁘게 했을까.
런던 웸블리 구장에서의 공연 못지 않은 크기로 울려 퍼지던 'Wonderwall'과 'Don't Look Back In Anger'의 싱얼롱,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넥타이 부대의 대거 등장, 카메라 단상 위에 올라가 정확히 리엄의 눈높이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결국 잠시 무대 아래로 내려온 리엄으로 하여금 "저 사람 좀 내려가라고 해, 웃음 참느라 노래를 할 수가 없어"라 말하게 했던, 그 넥타이 부대의 한 명, 과연 무엇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하나다. 5700석을 꽉 채웠던 사람들이 모두 가졌을 감정. 눈물까지 흘리며 오아시스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는 내가 혼자서 12년을 기다려 온 것은 아니구나, 란 마음으로 역시 옆에서 함께 소리치는 낯선 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싶은 그런 북받침 말이다.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1시간 반을 보냈을 것이다. 그들의 그런 마음이 무대까지 전달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관객의 힘인 것이다. 찾아오는 모든 뮤지션들을 감동시키는 이 힘이야말로 우리가 언젠가는 후지 록 페스티벌이 부럽지 않은 대형 페스티벌을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첫댓글 진짜 오아시스 공연 가고 싶었는데.. 한번만 더 와달라규...제발..
진짜 속이 쓰리다....한번만 더 와줘 제발 ㅠㅠ
아...이런 글만 보면 진짜 감동의 눈물이..ㅜㅜ
그때의 감동이ㅠㅠ
공연 기획자 같은거 하고 싶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부러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