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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다음 이미지 및 위키백과 사전 내용 참조
돌베개 -장준하저
1953년 3월 발행된 사상계
이 잡지는 1970년 5월 종간 되는데
이건 박정희가 이 사상계를 없애려고 양아치같은 농간을 계속해서 결국 종간하게됨
사상계의 영향력이 엄청나서
박정희는 언론을 죽이기 위해 사상계를 죽였음
항상 언론부터 죽이려고함 친일파라 일본놈들에게 배웠나봄
요즘 다 죽어버린 언론이.... 생각남
-사족-
이번에 KBS 사장 임명 절차에 있는 고대영 기억해 주길
<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꽂으신 인물이니 알만하지 2011 KBS 야당 도청사건의 주모자.. 로 의심 받는 인물임
-KBS 야당 도청사건은 닉슨을 하야하게 만든 워터게이트 버금가는 사건인데 묻힘
KBS기자가 야당 비공개 회의를 도청해서 여당에 넘긴 일임
한선교가 야당의원 비공개 회의를 줄줄이 읽으면서 녹취록이라는 말실수를 해서 탈로가 남
당시 실제적으로 그 일을 했던 인물은 KBS들어 온지 얼마 안된 신입 기자 였고
나중에 경찰 수사 중에 휴대폰 <이것을 이용해 녹음했음 > 노트북을 압수수색 하려 하자
전 날 잃어버렸다고 했다가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묻자 만취해서 기억이 안난다고 했음
경찰이 수색하기 전 날에 모두 새 것으로 교체되는데
고대영이 장기자를 불러 휴대전화 잃어버렸다고 하면서 새 휴대전화를 줬다고함
<보도 본부장이 신입기자를 따로 불러서 잃어버린 휴대전화를 챙겨주셨네 가. 족. 같은 회사네 >
이 엄청난 사건에 KBS노조는 물론 언론협회에서 들고 일어났으나
고대영본부장은 KBS 명예 흠짓내기라고 야당의원들을 민형사고소한다고 난리침
KBS 의식있는 기자들에게는 정권에 부역한 치욕으로 남아있음
자 이런 사람이 총선 대선을 앞두고 KBS 사장 후보로 지금 청문회 중입니다.
암튼 사상계 이야기로 다시 돌아 가면
쟈갸운 남자 함석헌 선생님의 포문으로
교회 대표 윤형중 신부님 사상계 비트 다운
<윤형중 신부님도 훌륭한 분이십니다.
- 경향신문 사장을 하기도 했고 카톨릭대표 지성인으로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 71명중 한분이시고
청렴하게 사셨고 마지막 가시는 길에는 모든 것을 다 내놓으시고 안구까지 기증하시고 떠난 목회자셨음 >
윤형중 신부님의 반론 글
함선생이 신부가 안되겠다니
천만 다행이다
설령 신부가 되겠다 할지라도
천주교에는 모가지가 열네번 잘리면 잘렸지
함선생 같은 욕설가 험구가
모든것이 혼동시 말하여
도무지 분별 할 줄 모르는
그런 인물을 신부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복음서를 손에 들고서
천당 지옥도 믿지 않는 미지근한 함선생이요
현실에 모든 방면에 대하여
그처럼 지독한 불평과 불만을 품고있는 함선생이요
복음서와 함께 그 미지근한 태도를 버리고
현행 질서의 전복을 목표로 하는 공산당에
본격적으로 입당함이 어떨런지
< 한마디로 너 북으로 가버렷!! >
자 이 말을 들은 함석헌 선생님 다시 사상계 비트 시전 ~!
근데 이번에는 신부님 노노 당신과 할 말 없음 장준하 나와라 !!!
함석헌
나는 윤신부에게는 할 말이 없다
왜 없나
공개토론 하자는데 할말이 없다는 것은 비겁한 일인듯하나
겁이 나서는 아니다
사실은 내 성의 껏 말한 다음에는
어떤 일을 당해도 좋다 생각했다
군인 경찰 위력도 두려워하고 싶지 않은데
신부 한 사람 두려워 할까
그러나 내 글은 원고대로 발표되지 않고
중요한 부분이 잡지사의 손으로 깎임을 당하였다
그대로 내면
혹시라도 당국의 비위에 거슬려
사(社)로서 손해를 보지 않겠나 생각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리 의논도 없이
그 일을 당한 나는
분하고 슬픔을 견딜수 없었다
나는 내 사상 내 인격을 상품화 하여
마음대로 처분하려는
자본주의 배금주의에 대한 프로테스트Protest 아니 할수 없었다
그리하여 글을 쓰지 않을 것을 사(社)에 통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남의 돼지 같은 살점을 지키기위하여
참의 살점
민중의 마음의 살점을
깎이고 싶지는 않았다
민중이 내게 명하는 것이
"있는대로 말하라"
하는 것이라 들었기 때문이다
장준하 선생님이 함석헌 선생님 글 중에서 자른 부분이 이승만을 욕하고 군대를 욕한 부분이었음
근데 장준하 선생님이 일본놈들 앞에서도 호령했던 사람이 이승만이 두려워서 그랬을리 만무
그리고 자신도 이승만을 비판하기도 했음
그래서 장준하 선생님의 함석헌 선생님 글을 검열해서 실은 이유는 분분함
< 내가 글 잘라서 함석헌 선생님 글 안쓰신다는 글까지 다 사상계에 실으시면서... 왜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음 >
자 이걸로 사상계 비트는 장준하 선생님의 검열로 컨트롤 다운됨
그렇지만 함석헌 선생님이 글을 안쓰신 것은 아님
1958년 사상계에 이승만 비판글을 쓰심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 함석헌
남한은
북한을 소련 중공의 꼭두각시라 하고
북한은
남한을 미국의 꼭두각시라고 하니
있는 것은 꼭두각시 뿐이지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이다.
6.25는 그 꼭두각시의 놀음이다
민중의 시대에 민중이 살아야할 터인데
민중이 죽었으니
남의 꼭두각시 밖에는 될것이 없지 않은가
6.25전쟁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승만과
소련 중공을 배경으로 한 김일성이 한 싸움이었지
민중이 한 싸움은 아니다.
그러니까
서울을 빼앗겼을때
저 임진왜란 때
선조가 그랬듯이
이승만도 국민을 다 버리고
민중 잡아 먹고
토실토실 쌀찐 강아지 같은 벼슬아치들과
여우같은 비서 나부랭이들만 끌고
야밤에 한강을 건너 도망을 간것이다
밤이 깊도록 서울은 절대 아니버린다고 공표하고
슬쩍 도망을 쳤으니
국민이 믿으려 해도 믿을 수 없다
저희끼리만 살겠다고 도망을 한것이지
정부가 피난간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나라가 없는 민중 이승만은 정부도 아니다 비판한 것임>
사족 -이승만은 자기는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고 지는 이미 도망가고 있으면서
대전에서 서울 사수하라고 밤새 방송을 함
이 말에 사람들은 안심하고 피난 안감 그리고 이승만이 도망가면서 다리 폭파시킴
이 글로 함석헌 선생님이 연행되었고 이때 장준하 선생님도 같이 연행됨
이승만을 비판했던 이 글 때문에 함석헌 선생님은 당시 60세가 넘은 연세셨음 독립운동가 이기도 하심
어린 경관에게 구타까지 당하는 고초를 겪으심
장준하 선생님 역시 글을 쓰셨는데
이승만 독재가 기승을 부리자
59년 2월호에
책을 펼치면 바로 보이는 것이 장준하 선생님이 쓰시는 권두언임 거기에
< 무엇을 말하랴 민권을 짓밟는 횡포를 보고 >
장준하
라는 제목만 있고 그 밑에 자신의 이름 장준하 만 딱 쓴
백지 권두언을 내보냄
<요즘 말로 편집자 말 앞에 쓰는거 그런거 잡지에서 가장 중요한 말 >
이 백지 권두언을 보기 위해
<여백이지만 이 의미를 아니까 이걸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난리가 났었음
그래서 그 당시에도 구하기 어려운 호가 됨 >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전남매일 신문의
전남매일신문기자 절필선언
우리는 보았다
-전남매일신문기자일동 1980. 5. 20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한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년 5월 20일
전남매일신문기자 일동
전남매일신문사장 귀하
<이런 것과 같은 것임 >
이런 사상계에 민중은 아낌없는 성원을 보냄
광복되고 일본이 탈탈 털어가고
6.25 전쟁나고
이승만 독재까지
밥한끼도 먹기 어려웠던 그 어려운 시대에
사상계 10만부 판매부수가 말해주는 의미가 어떤 것이 였는지 생각해 보게됨
그 만큼 민중을 대변하고 민중들을 위해 존재하는 언론이었던 것임
5.16쿠데타 이후
<5.16 군사 쿠테타는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에 부사령관이던 소장 박정희, 중령 김종필, 소령 이낙선 등이 장면 내각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임.>
1961년 7월호에 함석헌 선생님의 5.16 쿠데타를 비판하는 글을 실음
함석헌 선생님은 여기서
5.16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건 한마디로 군인들이 강도 짓 한것인데
강도는 밤에 하지만
이건 백주대낮에 군인들이
강도짓을 한 것이다.
....
5.16 집단은 공동묘지의 매장 인부가 아닌가
-일부 발췌-
- 계엄 상황이나 다름 없는 상황에서 군부에 선전 포고 한 것이나 다름 없었음 -
이것으로 다시 장준하선생님과 함석헌 선생님이 연행됨
이곳에서 이 둘을 조사한것이
예비역 중령 김.종.필
< 예 맞습니다. 그 김종필입니다. >
함석헌 선생님보고 정신분열증 같은 영감쟁이라고 하며
이런글을 왜 실었냐고 장준하를 뭐라고함
이에 장준하 선생님은 김종필에게 이렇게 말함
이 글은 내가 직접 함선생님에게 부탁해서 내손으로 받아다
내 손으로 실은 것이요
여러분을 위한 글이요
지금 모든 언론이 잘한다는 말 이외에는
다른 말은 일체 하고 있지 않소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나라 방향이 옳은 길로 걸어 가는 것 같지 않고
또한 뜻이 있는 여러 사람들이
말로는 못하지만
생각은 나와 같기 때문에
충고로 이 글을 실은 것이외다
나와 함선생 이외에는
이런 시기에 이런 충고를 할 사람이 없소
라고 말함
<61년 5.16 쿠테타 이후 1달 이후 부터 비판하심 >
사실 쿠테타 직후 6월호에 장준하는 5.16을 옹호함-민중에 권력을 이양한다고 하는 것을 믿었음
<믿을 걸 믿으셔야죠 ㅜㅜ 이걸로 5.16한 애들이 장준하 선생님도 인정했다 하는 빌미를 줌....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이미 일어난 일이니 두고 보자 뭐 이런 취지의 글이 었음
그리고 그 바로 다음달 7월호에 비판 글을 실은 것임 -그랬다고 해도 이부분은 비판 받는 부분임 >
함석헌 선생님은 그 당시에도 혁명은 민중이 하는 것이지 군인은 혁명 못한다 하며 5.16 군사 쿠테타를 반대하시고 비판하심
박정희는 사상계 죽이기에 들어감
한일협정에 장준하가
이 정권이 우리나라 정부냐 일본 정부냐
하고 비판하고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때는
박정희 보고 밀수 왕초다 !!! 직격탄을 날림 ㅋㅋㅋㅋㅋㅋ
<삼성 뒤에 몸통이 박정희다 라고 직격탄을 날린것임 >
그리고 민정 이양 < 처음 쿠테타할때 박정희가 한말 >을 집요하게 요구함
매 권두언에 계속 언제 민정이양할거냐
너 약속 왜 안지키냐
언제 지킬거냐
계속 그렇게 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 남자 중국대륙 6000리를 7개월 동안 생몸둥아리 하나로 횡단해서 광복군을 찾아간 집요한 남자 >
결국 박정희는 민정이양을 하겠다고 함
<아오 장준하 저놈 !!! >
그러자 바로
장준하 선생님은
그래 진작 그래야지
근데 넌 대통령 후보로 나오지마
너는 안됨
그리고 너는 군으로도 되돌아 가지 마라
너 같은 군인이 양상 되면 안된다
쿠테타한 군인은 다시 군에 돌아가면 안된다
이렇게 사상계에 쓰심 크 bbb
자 그럼 박정희는 사상계를 죽이기 위해 어떤 짓을 했냐면
양아치짓거리를 함
사상계를 서점에서 엄청나게 주문함
중앙정보부가 이걸 서점에 보이는 족족 다 삼
그리고 전 책을 훼손하고
"이거 책 찢어졌음 반품해줘" "나 안볼래"
이러고 전부 반품함
<아... 씨 증말 치사함 하는 짓이...지금하고 똑...
그때 중앙정보부가 이름 바꾸고 국정원 됐지 ... 옛날부터 이런일 했구나... >
그리고 세무조사함...
장준하 선생님 집이 하나 있었는데
장준하 선생님은 사상계로 번돈은 다 그 당시 민주화 운동하고 돈없는 지식인들에게 써서
돈을 집에 가져다 준적이 없음 ㅎㅎㅎㅎ ㅠ.ㅠ
사모님 고생하셨어요
저 집은 어떻게 된거냐면
허허 벌판이 있음
거기서 장준하 선생님 부인하고 자식들이 천막치고 살았음
장준하 선생님 아들들이 7년 !!! 무려 7년을 돌 날라서 조금 쌓고 ... 또 돌 가져와서 좀 쌓고
이렇게 해서 집하나 만듬 ㅠㅠ 찌통
<내가 전에 13년이라고 했는데 7년으로 수정 >
장준하 선생님 사상계 월 10만부 파셨는데 아들들은 집에서 노역....
암튼 이렇게 7년을 걸려서 겨우 바람 안들어오고 천막 아닌곳에서 자는 구나 했는데
완성 되고 3개월도 안됐는데
세무조사로 뺐어감 !!!!!!!!!!!! 박정희가
어후...
그리고 지 부하에게 줌
장준하 굴욕줄려고 일부로 이런거지 뭐
그래도 장준하 선생님 평생 자기 위해 돈을 쓴 사람도 아니고 돈도 없고 그랬음
그래서 이 방법이 안통하자
더 치사한 방법을 씀
사상계에 글쓴 사람들 대학교에서 쫓아냄
본인이 안되면 주변을 괴롭혀라
그리고 회유해서 장관자리 주고 빼오고
자리하나 주고 사상계에 글 못쓰게 하고
그렇게 협박하고 회유하고 하면서
장준하 선생님 주변사람을 없애버리고 고립시킴
<양아치 조폭들이 시전하는 방법을 시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밀수 왕초!!! 라고 말했다고
국가 원수 모독죄로 구속함
< 지금 주진우 기자... 재판 받고 있습니다. 네... 자랑스러운 아버지 똑 닮으셨네요 >
다음편 민주화 운동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 ... < 내일 언제쯤 ^^;;;>
1.< 그때 그시절 >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프롤로그 그리고 윤동주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019
2.<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운동까지 반드시 알아야할 인물 장준하 <feat 박정희가 가장 두려워한 인물>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207
3.[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김구와 장준하 (feat 일본군이 먹다 남은 음식을 개처럼 받아먹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704
4.[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1950년판 컨트롤비트 첫번째 (feat.사상계)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9356
6. [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 (feat. 장준하 죽음의 키 김용환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1057
7.[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그것이 알고 싶다 < feat. 사건의 재구성 김용환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1934
8.[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그것이 알고 싶다 < feat. 사라진 9시간 >
9.[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진상조사 위원회 < feat. 근접한 진실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3340
10. [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feat .오후 3시 의문의 괴전화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5900
11.[그때 그시절] 세명의 거짓말쟁이와 유골이 말해준 진실 (feat.장준하 죽음 그후)
12.[그때 그시절] 친구를 가슴에 묻고 민주주의 투사가 된 목사님 문익환- 프롤로그 (feat.문성근)
첫댓글 아시발 국가원수모독죄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거지 진짜
어휴 어디서 쌩양아치짓만 배워와서는 대통령을한다고 나대
와 진짜 개더럽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시 잘 보고 있어요! 진짜 하는 짓을 똑같이 하는구나...
이번 총선 앞두고 고대영 임명하려는 것도 눈에 보이고,
거기에 ebs는 아예 인물자체가 교학사인 인물 가져다 놓으려고 하고ㅎ...
이제야 읽네 고마워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