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영화 '은교'의 원작자인 박범신 작가의 TV 인터뷰를
시청한 적이 있다.
17세 여고생과 70세 노인 사랑이 말이 되나?
필자는 소설 '은교'에 대해서, 나이 들어서도 늙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초월적 판타지로 정당화?한 기록쯤으로 이해한다.
인터뷰에서 박범신 작가는 오욕칠정에 대해 강조했다.
오욕(수면욕, 색욕, 재물욕, 명예욕, 식욕)과
칠정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망)은
'인간 정서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부분이며 노인이든 청년이든 욕망은 가치 중립적이라
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큰 번뇌는 나이를 먹어서도 아직, 오욕칠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실토했다.
동병상련이랄까? 필자도 작가의 말에 강하게 동감하기에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늦게나마 그의 저서 '논산일기'를 읽게 되었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각광받던, 1993년 겨울,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그후 3년동안 용인 외딴집 '한터산방'에서 고통스러운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두 가지 화두에 매달렸는데 하나는 자신은 누구이고 문학은 무엇인가? 이고
또 하나는 영원성과 찰나 사이를 연결시키는 초월에 대한 꿈이었다.
그는 해답을 얻기 위해. 산속을 헤매며 자학적인 고행을 자행헀다.
그러나, 자신의 몸 속에서 끝없이 생성되는 사랑(오욕칠정: 필자 주)에의 열망만이
오직, 삶을 견인해 갈 수 있는 에너지이자 희망이라고 결론 짓는다.
그리고, 자신은 지상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실존적 존재에 불과함을
절망과 함께 자각한다.
자신을 가리켜, 인격과 지성보다, 오욕칠정을 앞세운 작가라고 말하는 그는
그 열정을 못이겨 수시로 집을 떠나 히말라야 등 외지로 돌아 다녔다.
한 때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가득한 채. 자살 시도 등, 자의식의 감옥에 갇혀 지냈다.
논산일기는 2011년 11월 - 2012년 2월까지, 그의 고향인 논산의 조정리 , 탑정 호수와
대둔산 근처의 집에 기거하며 쓴 일기 형식의 글이다.
그의 글은 가난 속에서 어둡고 침울했던 어린 시절의 가족 이야기, 그로부터 탈출을 꿈꾸던
10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조정리에서의 일상은 주로 주위의 경관을 찾아서 산책하거나 조선 시대 선비들의 고택 방문, 그들의 권력 다툼과 학문의 역사 더듬기 그리고
고향 친구, 문우들과 자주 어울리며 낭만과 풍류를 즐기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박 작가는 항상 사랑과 영원 그리고 초월을 꿈꿨다.
소년같은 감성으로 고독과 그리움 사이에서 방황하며, 그의 머릿 속은 쉼 없는
낭만과 몽환적 상상, 철학적 상념으로 가득했다.
독서와 글쓰기는 그의 정신적 미로의 돌파구였으며 글을 쓸 때 외에는
정서적 충동에 매우 예민하고 감성적이었다.
아래는, 그의 글 중 음미할만한 문장들이다:
- 과거는 먼 곳으로 흘러갔다. 오직 새로운 공간과 시간만이 우리의 실존을 주관하는
유일하고 위대한 철길이다.
-나의 소망은 생물학적 나이만큼 영혼이 깊어지되 ,불온한 감수성을 유지하며
청년 작가로 향기롭게 늙는 것이다.
-나의 꿈은 찰나와 영원, 현실과 초월의 두 세계를 내 나머지 삶에서 접붙여 사는 것이다.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작가는 오욕칠정의 진흙밭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공자처럼 집착을 버릴 수는 없다.
-열애의 불길 속을 가로지르고 싶은 나의 꿈이 뜨겁고, 무섭고 애닯다.
-내가 찾아 간 고향은 고향이지만 이미, 옛날의 그 자리, 그 시간도 아니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위태롭고 새로운 시간과 공간 속으로
'출발' 해 간 것이다. 새로운 시간을 향한 장엄한 반역과 그 너머의 미지의 또 다른
감미를 구하고자 하는 나의 꿈은 아직 옹골차다.
*
젊은 감성이 꿈틀거리는 작가는 사랑에 대한 욕망과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항상 일탈을 꿈꾼다. 그러나 차가운 현실의 주변을 서성거리며 끝내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실존적 인정주의'를 비하하고 있다.
이 부분이 필자에게 깊히 와 닿는다.
오직 그에게만 해당하는 아야기일까?
*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박범신 논산일기
하이네( m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