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묘를 지키며 돌봐주는 사람을 묘지기라고 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남의 정원을 돌보며 관리해 주는 사람은 정원지기라고 해야겠지요?
저는 요즈음 제 직업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트럭운전수인가, 정원지기인가?
물론 아주 행복한 고민이고 혼란입니다.
제 또래이고 자신의 차를 운전해 온 사람이라면 대개 삼십 년 정도 이상의 운전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정도 경력이라면 차를 몬다는 것은 기술이 아니고 걷는다는 의미의 확장 같은 것, 더 빠르면서 덜 힘든 나의 큰 발을 움직이는 것 같은 의미로 느끼고 있을 겁니다.
트럭 바퀴가 18개라 미국에서 에잇틴휠드라이버라고도 부르는 트럭운전수라는 직업을 가진 지 어언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지금은 뉴멕시코주의 주도인 알버쿠키란 도시를 거쳐 콜로라도주의 덴버를 돌아 텍사스주의 달라스로 돌아오는 일이 일요일부터 시작해서 매주 초에 하는 일이고, 주중에는 하루나 이틀, 텍사스주 내의 가까운 도시 오스틴이나 산안토니오를 다녀오거나 가까운 루이지애나주로 다녀오는 일을 하고 금요일부터 토요일 이틀을 쉬는 것이 루틴입니다.
그런데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이 운전한다는 일이 직업이나 일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구석이 있습니다.
대개 직업인 일을 한다는 것은 그것을 할 때에 온몸과 정신을 집중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틈틈이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요리사가 그렇고 의사가, 엔지니어가, 선생이, 가정주부가, 목수가... 심지어 사기꾼까지도 자신의 일에 온 정신을 집중을 합니다.
저도 그렇게 살아왔었고 당연히 트럭운전수도 그러리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 일을 해보니 자꾸 고개를 좌우로 젓게 됩니다.
'아니야... 이건 직업 아닌 것 같아...'
운전에 있어서는 트럭도 승용차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 크기만 차이가 있을 뿐.
낯선 곳으로 처음 운행을 하면 운전이 일 같긴 합니다.
낯서니 조심을 해야 하잖아요. 집중도 해야 하고...
그러나 길과 장소가 익숙해지고 나면 따로 집중을 안 해도 똑바로 갈 곳, 꺾어야 할 곳, 돌아가는 곳 알아서 하게 됩니다.
그러니 운전을 하면서 딴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고 노래를 듣다가 따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 정도의 일 집중력에 비해 그 대가는 기대 이상으로 많이 받고 있으니 양심적으로도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트럭운전수가 직업이 맞나...?'
운전을 하는 동안 제가 하는 행동들을 가만히 되짚어 보다가 어쩌면 그거 일 수는 있겠다 싶었습니다.
'정원지기. 맞아... 그거야.'
제가 관리하고 돌보는 정원은 꽤 큽니다.
아니.. 무지 많이 큽니다. 내 나라보다 큽니다.
제가 관리하는 정원에는 수많은 살아있는 생명들과, 그 수많은 생명들을 품고 길러내는 땅과 햇살과 바람이 있습니다.
뭐.. 다른 정원지기들처럼 물을 주고 가꾸고 돌보며 하나하나 정성 들여 키우지는 못하지만 저는 자연방임주의자라 ㅎㅎ 그냥 스스로 알아서들 잘 자라기를 지켜봐 주기만 합니다.
그래서 정원지기로서 제가 하는 일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중 첫째가 눈을 맞추고 관심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아직은 초보 정원지기라 눈에 띄는 생명들에게만 눈을 맞추고 관심을 보여줍니다.
말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니 서로 통할 수 있는 마음으로 눈을 맞추고 관심을 마음에 담아 건네는 것이지요.
'햇빛, 오늘도 힘 좋네. 덕분에 많은 생명들 기운 나겠다.'
'바람 좋아. 가슴속이 시원한 걸~'
'젖소야, 새끼와 나란히 걸으니 참 좋겠네?'
'초원과꽃, 지난주엔 안 보이더니 언제 꽃 피웠어?'
'고개 숙인 키작은 해바라기들, 기운 내~ 내년에 또 볼 수 있을 거야. 서로 건강 잘 지켜서 내년에 또 보자~'
'사슴 가족들, 길 조심해. 가까이 오면 위험하잖아.'
정원 안에 산이 있고 벌판이 있고, 숲이 있고 강이 있다 보니 눈을 맞추고 마음을 전할 대상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일에 집중이 잘 됩니다. ㅎ
두 번째 일은 그 대상들을 가슴에 담는 것입니다.
머리에 담지 않고 느리지만 가슴에 담는 이유는 제가 늙고 기운이 빠져 더 이상 정원을 돌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리고 제가 기억한 것들이 제 머릿속에서 수증기처럼 증발할 때라도, 제가 눈을 맞추며 가슴에 담았던 그들이 샘물처럼 가슴에서 퐁퐁 솟아오르며 저를 웃음 짓게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천상병 시인님처럼 아름다운 지구별에 소풍 나온 기쁨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세 번째 일은 집중보다는 진심이 필요합니다.
명복을 빌어주는 일이거든요.
정원을 돌보러 다니는 길에는 매주 목숨을 잃은 생명들이 손으로는 다 셀 수 없이 많이 보입니다
사슴도 있고 들개도 오소리도 동작 느린 파썸도, 더러 하늘 나는 매나 까마귀도 보이고... 다양한 생명들이 삶을 마감한 방치된 흔적들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보일 때마다 그들의 명복을 빌어 줍니다.
신을 앞세우지 않고 진심을 다해 그들에게는 명복을, 그들의 남겨진 가족들에는 위로를 진심을 다해 전합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저에겐 소중한 일입니다.
이 세 가지 일들은 자연히 서로 이어지며 저를 집중하게 해 주고 일의 보람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 정도면 일의 대가로 그만큼을 받아도 양심적으로 미안하지는 않다 싶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늘부터 제 직업은 정원지기라 할 것입니다.
언젠가 님들을 만나면 님들도 그렇게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정원지기 마음자리'
첫댓글 정원지기도 좋고
에이틴휠드라이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댓가를 받고
일하시고
댓가를 안 받고
이 큰 자연정원
관리하시는
마음가짐
신의 축복입니다.
늘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길....!
맞습니다. 신의 축복을 제가
많이 받고 삽니다.
돈을 받고 일을 하는게 직업 이지요
마음자리님은 트럭 운전이 직업 인거는 잘 알고있구
정원지기도 돈을 받고 하시는 일인지요?
나는 차 운전대만 앉아서 시동만 걸고 나면 부들부들 떠는 스타일이라서
승용차 300 키로 정도 운전 하고는 운전은 은퇴 했습니당
그래서 전철만 타고 다니는데 이거 나에게는 아주 좋읍디다
마음자리님은 운전이 적성에 맞는거 같으니 운전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아... 제 아내도 이 넓은 땅에 살면서 운전을 못 합니다. 운전대에만
앉으면 벌벌 떨어서.
ㅎㅎ 아내가 그러니 딸도 아들도 면허만 있지 운전은 안 합니다.
그러니 저는 운전복을 타고 났어요. 한국에 살 때도 출장이 잦은 일이라 운전은 원없이 하다 갈 것 같습니다. ㅎ
이 아침 좋은 글 고맙습니다 ㆍ건강하십시요 ㆍ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을 두 배로 누리는
겸업을 하십니다.
네 정원지기라 불러 드리겠습니다.
여기도 로드킬의 흔적이 잦아요.
주로 고양이입니다.
잘 읽었습니다.좋은 날 되시구요.
감사합니다.
잘 기억해두셨다가 제가 지언님 뵙게 되는 날, 꼭 그렇게 불러주세요.
트럭커 하면 와일드 한 느낌인데
정원지기 좋네요. ㅎ
자연과 소통하며 지내는 트럭커
정원지기 화이팅 입니다.
트럭이 커서 그런 느낌인데
만나본 트러커들은 보통 성실하고 나이도 대부분 많은 편입니다.
여든이 넘은 트러커도 만났는데
길 다니는 것이 좋아서 힘 닿는데까지 하겠다더군요.
정원지기로 인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원지기 ᆢ직업이 참 마음에 듭니다.
나는 거대한 트럭이 커브길을 무사히 꺾어 가는 것을 보면 늘 경이롭습니다
마음자리님 은 주로 미서부를 종단하시는군요.
나는 이번 10월말 미동부 여행을 예약해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ㅎㅎ 그렇지요? 저도 마음에 듭니다.
동부는 정치 중심지이고 오래된 도시들이 많아 볼 것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동부쪽으로는 시카고까지만 가보고 더 동쪽으로는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10월 말이면 곧 오시겠네요.
그때가 되면 같은 하늘 아래 푸른비님 계신다 생각하며 더 열심히 정원 돌보겠습니다. ㅎㅎ.
마음자리님은 뭐든 빅 사이즈입니다.
넓은 대륙을 달리는 것도 그렇고,
대형 트럭도 그렇고,
트럭이 달리는 그 넓은 공간을 정원이라 하시니,
에이틴휠드라이버에
정원 지기가 조화롭습니다.
궁합이 딱 맞아요.
언젠가, 댓글에 한 손으로 핸들을
다른 한 손엔 지구를...ㅎ
했던 것이 맞는 말이 되었습니다.^^
Welcome to colorful colorado
정말 잘 어울리지요? ㅎㅎ
그렇게 생각하니 길 달리는 일이
더 즐거워졌습니다.
아.. 제가 그렇게나 광오한 댓글을 단 적이 있었군요. 건방이 과했던 것 같습니다. ㅎ
@마음자리
마음자리님의 댓글이 아니고
마음자리님이 쓰신 글에
제가 댓글을 달았는 것입니다.ㅎ
@콩꽃 아하...ㅎㅎ
저에게 기운내라고 해주신 말씀이었군요.
꼭 그렇게 되도록 즐거운 마음으로 애써보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교감을 하려고 마음을 쓰지만 보호 하지도 못하고 운동가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니 봉사라 할 수도 없지만 그저 서로 살아있으니 마음을 전하고 받는 그 교감이 좋아서 정원지기라고 자칭하는 거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랑이 밉지않아 보이니 좋습니다
가리늦게 운전 직업을 찾았는데 딱 맞는다니 얼마나 복받은 일일까요
정원지기란 말이 참 좋네요, 그러나 항상 안전운전 하셔야지요
자랑인 줄 눈치 채셨에요. ㅎㅎ
네. 늘 안전운전이 우선입니다.
감사합니다.
고국을 떠나 남의 나라에서 적응하며
산다는게 만만치는 않을텐데요
자연과 동화되어 긍정적으로
살아가시니 대단합니다
정말 만만치 않았었는데
그래서 실패와 좌절의 반복이었는데
저에게 맞는 길을 찾아서 참 고맙고
행복하게 느끼며 삽니다.
건강하게 즐겁게 안전하게
운행도 하시고 정원,관리도 하시고
넉넉한 수입도,받으시고
행복이 주렁주렁 열리시네요.
가끔씩 아름다운 정원 사진도
보여 주시고 즐거운 시간 되세요.
행복하게 사는 모습은
조윤정님이 저의 귀감입니다.
늘 격려와 응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벽이 신발이 18개?
지네에 가까운 대발이네요.
오고가는 길에 만나는 생물들과
인사를 나누며 마음으로 관리하는
정원지기 참 좋습니다.
정원지기도 좋고 동산지기도 좋고 ㅋㅋ
강원도에서 3박째라
피곤하지만 힐링되는 여행중~
제가 만나는 모든 생물들에게도 안부를 전하겠습니다.
새벽이 신발이 10개 마차 신발이 8개 도합 18개입니다. ㅎㅎ
강원도에서 힐링 중이시군요.
여기서도 강원도 산을 닮은 산을 찾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강원도 산처럼 멋지고 아기자기한 산을 찾을 수가 없어요.
안부 전하시다보면 절로 힐링이 되어 있으실 겁니다.
차가 막히지 않는 길이라면
운전하시는 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기대 이상의 대가가 따른다니
더더욱 괜찮은 일 같고요.
바퀴가 18개라니 엄청나게 큰 차 같네요.
정원지기도 보람을 느끼시겠어요.
그리고 목숨을밇은 생명들에게
명복을 빌어 주신다니
마음자리 님의 마음은 아름다우신 분이라
여겨집니다.
늘 운전 조심하시고요~
여긴 정말 길이 뻥 뚫려있고 차는 별로 없어서 마치 고속도로를 전세낸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러니 대화할 상대가 주변의 살아있는 생명들 밖에 없어요. 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구봉선배님 그간 자취가 뜸하셔서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추석은 잘 쇠셨지요?
네. 오래오래 할 생각입니다. ㅎ
자연과 대화하는 내용에
깜짝 놀랐습니다.
건축가로 은퇴하신 분이
뜰을 가꾸는 일상을 보여 준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 후르츠'에서
그 분이 작은 피켓에 글귀를 써서
뜰 곳곳에 세워 두는데요.
'능소화야 안녕, 올해도 여전히 만날 수 있어 참 반갑구나'
'수선화야 잘 가. 내년에 또 만나자'
'종달새야 목 마르지? 물 먹고 가렴.'
오래 전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그런 식으로 자연과 인사를 나누거든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통하게 되어 있나 봅니다.
늘 안전 운행하시기 바랍니다.
아... 그 다큐멘터리 영화, 한번 찾아서 보겠습니다.
자연 사랑하는 법도 배워두면 더 나을 것 같네요.
고마워요 플로라님~~
저의 주위에도
두분의 남편분이
하셨다고 하네요..
같이 여행다니듯
다니셨고
한분은
교대로 하셨다고 해요
운전이 필수지요
트렌스포 필수품 받기
감사하구요...
정원지기님 보단
수필가 신것 같이
섬세하신
마음자리님으로....
처음엔 보랏빛 쑥부쟁이?
국화과 꽃...이뻐요!!
구절초 닮았어요...
Daum.에 꽃검색도
해봤어요.
요래 나오네요...
ㅡㅡㅡ
개미취꽃 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