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다음 날 아내와 함께 처가에 들려 노 장모님을 뵙고 귀가하면서 딸아이가 예매한 “관상이란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한편의 사극을 본 느낌이지만 마지막 대사가 뇌리에 떠나지 않기에 이 글을 쓴다.
(줄거리)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천재 관상가 내경(송광호). 처남 ‘팽헌’, 내경의 아들 ‘진형’과 산속에 칩거하고 있던 그는 관상 보는 기생 ‘연홍’의 제안으로 한양으로 향하고,
연홍의 기방에서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는 일을 하게 된다.
용한 관상쟁이로 한양 바닥에 소문이 돌던 무렵, ‘내경’은 ‘김종서’로부터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라는 명을 받아 궁으로 들어가게 되고,
내경은 김종서와 함께 ‘수양대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위태로운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한다.
하지만 팽현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수양대군이 왕권을 장악하고 김종서(호랑이상)는 수양대군(승냥이)에게 죽임을 당하고 또한 내경의 아들(진형)도 죽임을 당한다.
영화 마직막은 어느 바다가에서 내경과 칠삭둥이 한명회를 만나면서 끝난다.
(감상 후기)
영화를 감상후 영화 내용에는 없지만 그 시대의 단종과 순흥부(현 경북 영주)를 떠올랐다.
순흥부 고을 사람들은 단종의 폐위에 저항을 하였지만 수양은 그 고을의 모든 사람들을 죽여 피바다를 만들었다.
그것은 1980년 5월 18일 광주 학살보다 더 큰 학살 있였고,
제 1의 광주학살인 것이다.
개인의 왕권욕 정권욕에 민중의 피 울림에 글쓴이의 가슴을 서글프게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관상은 얼굴의 색깔 모양 등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운명 성격 직업
수명 건강등을 관찰하는 것이다.
동양에는 관상학뿐만 아니라 손금 사주등 관찰학이 있다.
김내경의 대사 중에 관상은
“머리는 하늘이니 높고 둥글어야 하고
해와 달은 눈이니 맑고 빛나야 하며
이마와 코는 산악이니 보기 좋게 솟아야 하고
나무와 풀은 머리카락과 수염이니 맑고 수려해야 한다
이렇듯 사람의 얼굴에는자연의 이치 그대로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담겨져 있으니
그 자체로 우주이고 자연의 법칙이다.
즉 관상에 세상의 삼라만상이 다 들어 있다고 말한다.“
영화의 말미에 김내경과 한명회의 대화가 나온다.
“한명회“ 그대의 관상학을 글로 남겨주십시오 누군가 역적의 모의를 하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김내경” 나는 파도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지 파도가 일어나는 원인의 바람을 보지 못했소 하며 기록을 거부한다.
글쓴이는 관상이 비 과학이다. 과학이다.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관상“의 영화의 감상을 주관적으로 쓰고자 한다.
감상후 “파도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지 파도가 일어나는 원인의 바람을 보지 못했소”
그 한마디가 뇌리에 떠나지 않아서 이 글을 쓴다.
잔잔한 바다는 바람이란 인연을 만나서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무상심이라고 한다.
또한 인연이라고 한다.
인연이란 무상 유상 모든 만남과 헤여짐을 말한다.
즉 생자필멸 회자정리
이 세상사 모든 것은 인연으로 이루워져 있다.
밭에 뿌려지는 씨앗도 그러하고 그대들이 오늘 스치는 모든 사람도 그러하다.
인연은 또한 인과를 말한다.
인과는 시절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시절은 시간과 장소를 말한다.
바닷가에서 해조류를 체취하려면 만조시에는 아무것도 채취를 할 수 없지만,
썰물이 되면 갯가에서 조개 홍합등을 채취를 많이 할 수 있다.
벼도 가을 되어야 수확을 하듯이 그것은 무상의 자연 법칙인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또한 인연이며,
스스로가 아무리 힘든 삶이든 행복한 삶이든 궁극적으로 허무가 아니라 무상 인 것이다.
그것은 연극배우가 무대에서 주어진 역할을 다하듯이 우리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이며,
그 모습 속에서 자각을 하면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행복은 돈 명예 권력이 아니라 일어나는 현상 속에서 자신의 내면이 고요하다면 그게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파도(삶)가 아무리 거칠게 휘몰아쳐도 파도 아래 수심은 고요(내면,한 생각)하듯이
자신을 성찰하는 이라면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면은 깊은 바다 속 심해처럼
중심을 잃지 않을 것이다.
김내경은 일어나는 인과의 무상심을 성찰을 하였지만,
성찰하는 자신의 근원은 성찰하지 못한 것 같다.
행복이란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행복을 추구한다.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어리석은 인간은 행복을 말하지만 죽을 때에도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죽는다.
어떤 사람은 지난날들을 회상하며 그때 그것이 행복했다고 회상을 한다.
끝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은 순간 순간 자각 속에서 행불행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깨어있는 선사 조사 성현들은 깊은 행복 속에 있으면서 행불행을 논하지 않는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또한 그 대사가 마음에 남아 있었는데 해답을 얻은거 같네요~ 감사함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