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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о 개인 여행기 스크랩 인도 네팔 기행. 5일차 : 1월 9일 (토요일) 카주라호
윤상현 추천 0 조회 235 10.08.26 09:04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5일차 : 1월 9일 (토요일) 카주라호

 

가도 가도 끝없는 시골의 안개 길에서 자정을 넘겨서야 겨우 볼품없는 휴게실을 만났다. 그래도 울긋불긋 늘어진 오색의 전등불이 조금은 환상적이다. 이런 날씨에 가장 먼저 눈에 드는 것은 역시나 모닥불이다. 날씨 탓에 낮게 깔린 연기로 코가 매워도 변변찮은 옷차림에 떨다보니 등까지 뻣뻣해진 판에 얼마나 반갑겠는가. 처음 ‘잔시’ 역에서 승차를 할 때 자청한 뒷좌석이 어찌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등에 닿는 부분이 바로 차량의 내벽과 유리창인지라 외부의 찬 기운이 바로 등줄기로 얹혔다. 내장까지 찬 기운이 스민 듯 손발이 얼어오는 중에 다행히도 휴게실에 당도한 것이다.

우선 뜨거운 ‘짜이 차’ 한잔으로 한기를 달랜 다음 모닥불 곁에 걸터앉아 신발까지 벗고서 발을 말리노라니 따스한 기운이 온 몸에 퍼진다. 납작한 ‘짜파티 빵’을 ‘커리’에 찍어 간단히 야참까지 하고나니 한결 몸 상태가 가볍다.

함께 출발했던 다른 차량이 삼십분이 더 지나서야 겨우 도착했다. 타이어 펑크로 인해 아예 짚차를 교체했는데 쾡 한 표정들에 쌩 고생이 묻어있다.

다시 출발된 차량 안에서 발견한 메트리스 조각 하나가 너무도 고맙다. 비록 넝마에 가깝지만 불편한대로 차가운 등 뒤에 받치니 한결 견딜만하다. 안대에 귀 마게까지 하고나니 엔진 소음도 아련하다. 슬며시 잠에 들었다싶었는데 그 흔들리는 차에 앉아 내쳐 4시간을 잤다.

결국 도착하였다. ‘아그라’의 숙소에서 출발한지 장장 22시간 만에 연착과 지연을 견디고 힌두사원의 도시 ‘카주라호’의 초입에 닿은 것이다. 아직도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힌두 사원인 ‘락슈미나’ 곁의 게스트하우스 ‘요기 롯지’를 찾아간다. 극심한 안개는 현지의 지프 운전사들마저 당황케 한다. 이전에도 몇 번은 와보았을 그곳을 몇 번을 헤맨 끝에 겨우겨우 찾아간다.

5시 45분. 체크 인 후,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기에는 이미 날이 새버렸다. 다행히 지프 안에서 불편한대로 눈을 붙여두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지 견딜만하다. 방을 배정 받은 뒤 간단히 세면만 한 후 이곳에서의 일정 소화에 나선다.

로비를 나서는데 탁자 위에 세탁을 해둔 갈색 체크무늬 식탁보가 눈에 띤다. 높은 습도 탓에 아직 눅눅하긴 해도 이걸 어깨에 두르면 한결 따뜻하리라.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뒤집어쓰고 나오니 이리도 행복할 수가 없다.

역시나 자욱한 안개 속에서 울려오는 종소리가 사원의 존재를 알린다. 딸랑임을 쫓아 돌담길로 돌아드니 정교한 조각으로 외벽을 장식한 힌두사원 ‘푸자’가 우뚝하다. 힌두교의 예법에 따라 맨발로 올라서는데 바닥의 돌계단에 발이 시리다.

우선 두 손 모아 예를 표한 뒤 내부를 살핀다. 돔형의 둥근 돌 천장에는 붉은 전등불이 매달렸고 그 아래의 중심엔 ‘우주의 성기’로 불리는 원주형 기둥(링가)이 솟았다. 터번을 두른 사두는 바닥에 주저앉아 경을 외우고 원색차림으로 성장을 한 몇몇 남녀 신도들은 작은 바가지로 물을 떠서 조심스레 기둥에 끼얹는다. 역시나 주문을 외우며 기둥을 어루만지는 방식으로 행하는 의식이 마치 우리네 무당들이 남근석을 앞에 두고 비나리 하는듯하다. 예배 중임에도 불구하고 나그네를 막지 않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사진기의 섬광과 셔터소리도 허용한다니 그네들의 마음 씀씀이가 너그럽다. 다시 합장하여 예를 표하면서 앞 여정의 무사함을 빌어본다.

골목에서 붉은 칠을 뒤집어쓴 채 몇 개의 촛불로 기림을 받고 있는 ‘비슈누 신’을 둘러본 뒤 모퉁이를 돌아서니 바로 ‘락슈마나 사원’의 입구 매표소다. 여기는 ‘카주라호’의 ‘서쪽 사원 군’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이 도시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입장료를 지불 한 뒤 일행들 모두 정원의 잔디밭에서 아침 요가로 몸을 푼다. 발아래 이슬 담뿍한 풀들로 바짓단이 축축하다. 건기에 해당하는 이 계절은 비가 안 내리는 것뿐이지 실은 짙은 안개로 인해 습도가 엄청 높다. 천식이라도 있다면 정말 괴로울 노릇이다.

돌출 현관과 작은 탑들이 모여 35m 높이의 뾰족탑을 이루고 있는‘캉다리아 마하데바 시바 신전’은 이 사원의 얼굴이다. 신전에 다가서자 왠 깡마른 체구의 인도인이 접근하더니 청하지도 않은 가이드를 자임하고 나선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더니 ‘프랜드’를 연발하며 다가서는데 뿌리치기가 왠지 어정쩡하다. 내부에 들어서자 ‘시바’의 형상으로 온 사방을 장식한 부조물들이 정교하다. 다섯 방향 ‘시바’의 모습은 요가의 근본 동작에 해당한다며 줄줄이 이어지는 손짓 발짓의 해설을 거의 잘 이해할 순 없다.

약간의 팁으로 그를 돌려보낸 뒤 신전의 외벽을 둘러보는데 하나같이 시바와 비슈누신, 요정들과 아름다운 여인들 그리고 동물들의 섬세한 모습이 빼곡히 조각되어있어 하나의 거대한 조각 작품을 연상케 한다. 그중 압권은 ‘미투나 상’으로서, 여인들의 풍만한 곡선미는 물론 남녀의 섬세한 성애 모습이 너무나도 적나라하여 당황스럽다. 하지만 이런 부조물들은 모두가 ‘카르마 요가’의 수행 방편으로 이용되며 ‘탄드리즘’의 한 모습이라 한다. ‘탄드리즘’이라 함은 음과 양, 남과 여, 정신과 육체, 절대자와 피조물의 완전한 합일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성적 결합은 해탈로 이르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곧 성행위의 묘사는 ‘둘이 곧 하나’인 감각적인 행복과 함께 정신적인 행복의 최고 형태를 상징한다. 진정한 힌두교도들에게는 세속(世俗)은 신성한 것이며, 소멸(消滅)역시 불멸의 구원에 이르는 열쇠가 된다. 요컨대 ‘사랑이 곧 신’인 셈이다.

월대(月臺)를 따라 좀 더 서쪽으로 발걸음은 옮기니 비계(飛階)를 설치하고 보수공사 중인 신전들이 나타난다. 외벽의 부조 형상은 아까와 비슷하지만 어인 일인지 미완성인 채 비어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아마도 건립 당시에 역사적 변혁사건으로 말미암아 공사를 채 마치지 못했을까 추정할 따름이다.

아직도 자욱한 안개 때문에 전체적인 사원의 어울림은 여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슬슬 배도 고파오는데 그냥 나가기엔 비싼 입장권이 너무 아깝다. 출구에서 관리인에게 상황 설명과 함께 아무리 부탁을 해도 재 입장은 절대 안 된단다. 심지어는 돈을 내면 자기들이 음식을 해서 날라다 주겠다는 역 제의까지 하며 지니고 있던 ‘짜파티’와 채소류 음식을 맛보기로 나눠준다. 대처인 ‘아그라’의 ‘타지마할’에서도 재 입장이 허용됐었다. 이 깡 촌에서 돈 맛을 안 것인지 해도 해도 너무한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결국 포기하고서 먹자 집을 찾아간다. 인도 여행 중에 이곳만큼 한국 식당이 많은 곳도 드물다더니 과연 그렇다. ‘전라도식당’ ‘총각집’ ‘순이네’ 등등, 조악하지만 분명한 한글 간판이 곳곳에 눈에 띤다. 인구 7,000명 정도로 한적한 이 곳 시골 마을을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도 찾나보다.

아름드리 당산나무 솟아있는 호숫가 2층 옥상에 ‘총각 밥집’간판이 선명하다. 곁에는 ‘소주도 있어요’ ‘김치찌게, 된장국, 닭도리탕, 신라면’ 등이 병기(倂記) 되었다. 여행 중엔 되도록 현지 음식을 고수하는 편이지만 이쯤 하여 한번 라면에 밥을 말아먹어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여러 사람이 동시에 주문을 하고나니 역시나 음식들을 일인분씩 따로 만들어 내오느라 여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아니다. 우리식의 ‘빨리 빨리’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다림 속에 무심한 눈길을 호수에 주노라니 걷혀가는 안개 속에서 드러낸 규모가 훨씬 아담하다. 탄두리 치킨에 맥주까지 한 잔 걸친 뒤 바로 식당 아래에 자리한 작은 PC방에 들러 네팔에서 필요한 증명사진을 마련하였다.

오랜만에 태양을 대하니 마음까지 따뜻하다. 잠깐 숙소에 들러 차림을 재정비한다. 잡주머니에 물과 간식을 준비하고 옷차림도 좀 가볍게 한다.

약간의 휴식 후, 오후 ‘동쪽 사원군’의 자전거 투어를 위하여 대여소를 찾았다. 이네들의 체형이 우리와는 달라서인지 자전거의 모양이 몸에 설다. 껑중하게 다리가 길고 어깨는 좁은 그들에게 맞춰진 것이 영 마땅치가 않다. 거의 모든 자전거의 바퀴가 휘었고 안장도 맞지 않다. 높낮이를 좀 조정한 뒤에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그래! 아무렴 어떠랴? 그냥 마음 느긋이 하고 천천히 돌아다니면 기분이 좋아지는 동네”라는데.....

오전의 서쪽 건물들이 대부분 ‘힌두 사원’인데 비해 동쪽은 ‘자이나’ 사원들이다. 전설로는 건립 당시의 재무 장관이 권력을 가진 ‘자이나’ 교도였단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소유’와 ‘아힘사(불살생, 비폭력)’를 궁극적인 목표로 살아가는 자이나 교도들이 도리어 금전과 재물 관리에 능했던가 보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서 소박한 상가 거리를 벗어나자마자 곧바로 한적한 시골이다. 미루나무 닮은 상록의 가로수 길이 시원하다. 불과 10여 분 만에 당도한 동쪽의 사원군, 이곳에는 ‘파르스바나트’, ‘산티나트’, ‘아디나트’ 등 3개의 자이나교 사원이 있는데, 첫 머리에 자리 잡은 ‘산티나트’는 붉은 사암 건축물의 겉에 모두 백회를 발라두어 새하얀 것이 ‘백궁(白宮)’이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겠다. 입장료 없이 맨발로 들어 선 이곳은 사방으로 회랑을 두르고 가운데 광장엔 대리석을 체크 문양으로 깔아 볼품을 더한 예배 장소다. 저 위로는 동글한 지붕의 첨탑에 세모깃발이 길게 펄럭이는 진정 인도다운 건물이다. 신발을 정리해주며 몇 안 되는 탐방객을 반기는 관리인의 미소가 선하다.

전라(全裸)의 자이나교 부처 앞에서 인간을 경계(驚悸)하지 않는 참새를 작별하고 바로 왼편에 접한 ‘파르스바나트’ 사원을 찾았다. 회랑이 조성되어있지 않아 울림이 없음이 도리어 고요한 사색의 분위기를 돋운다. 전체적으로 서군의 힌두 사원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나 부조물들이 조금은 덜 노골적이고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그 새 맑아진 날씨 덕분에 조각의 많은 부분들이 더욱 섬세하게 다가온다.

사원의 고요함을 홀로 즐기다가 그만 일행들을 놓치고 말았다. 작은 시골인지라 대충 방향을 짐작하고 가는데 삼거리 갈래 길이 나온다. 여기부터는 정말로 비포장의 완전한 시골 농촌 길이다. 빈둥거리는 젊은이들에게 일행의 방향을 물으니 선뜻 왼편을 가리킨다. 서둘러 페달을 밟아 쫓으려는데 그들이 황급히 불러 세우고선 다시 오른쪽을 가리키며 미안해한다. 잠시 외국인을 상대로 장난기가 동한 것이었다.

진땀을 내며 1km 정도를 쫓아 내려가니 저 멀리 보수공사 중인 ‘두라데오’ 사원의 오른편으로 일행들의 자전거가 느릿하게 간다. 페달을 더욱 밟아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슬며시 합류한다.

지금의 목적지는 이른바 ‘마운틴’으로 거의 평원에 가까운 이 지역에서 별 높이가 아니면서도 최고봉이다. 화창한 날씨에 운동이 되는지 제법 더위를 느낀다. 건기의 말라있는 수로 뚝 방을 오르내리며 귓가에 스치는 바람을 즐기는데 갑자기 길을 막는 게 있다. 길가에서 새끼 딸린 어미 돼지 한마리가 잔뜩 화를 낸 채 잡종 개와 실랑이중이다. 멧돼지를 닮은 집돼지가 자그마한 체구에 사나운 엄니를 드러내며 사나운 기세로 어린 새끼들을 지키는데 몇 마리 개들이 어쩔 바를 모른다.

또 다시 10여분을 달려 농가들을 스쳐지나 또 한 굽이 돌아드니 작은 언덕의 고갯마루가 나온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느린 걸음으로 전망 좋은 곳에 오르니 산 정상 까지는 아직도 까마득하여 남은 시간으로는 어림없겠다. 그저 농가와 어울린 사방의 아스라한 숲을 조망할 따름인데 바람소리 새소리마저 끊기어 고요하기 그지없다. 한국 아가씨가 예쁘다며 시내에서부터 따라 붙은 인도의 어린 총각 둘과 어울려 여러 가지 포즈로 사진 몇 장 찍어두고 귀로를 재촉한다.

열 댓 마리 물소가 풀을 뜯는 마른 초지를 지나 역순으로 되돌아오는데 작은 가게가 눈에 띤다. 햇빛도 피할 겸, 다리도 쉴 겸 후원에 자리 잡고 오랜만에 비스켓에 콜라 한잔 마셔본다. 나름 강행군인데 피곤한 줄도 모르겠다. 마치 인도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길가의 울창한 고목들이 강한 햇빛의 반짝임을 안고서 인상적으로 서있다. 하이킹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크게 후회 할 뻔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힘들어하며 쉬고 있던 다른 일행들에게 “별 재미가 없었노라”고 슬쩍 눙을 쳐본다.

오후 3시 30분. 이제는 ‘바라나시’행 기차를 타러 ‘사트나’역으로 이동해야한다. 대절 된 찝차 지붕에 여행 짐을 올려두고 자리 배정을 한다. 새삼 “나이대접을 해드린다”는 멘트와 함께 등받이 편안한 가운데 좌석을 내어준다. 차량의 상태도 어제보다는 훨씬 낫다.

잠간 새에 시내를 벗어난 ?차는 평원(平原)의 직선 길을 간다. 처음으로 안개 없이 달리는 길이다. 걸핏하면 가로 막는 소떼와 사람들을 비켜가며 세 시간을 달려 땅거미가 내릴 무렵 ‘사트나’역에 도착했다. 도착 예정보다 무려 30분을 당긴 것은 여기의 기준으로는 좀처럼 드문 일이리라. ‘사트나’ 역은 ‘아그라’나 ‘잔시’에 비해 현저히 작은 시골역이지만 도리어 깔끔하고 잘 정비되었다.

역 구내의 전광판은 벌써부터 7시 20분 출발 예정의 ‘바라나시’행 기차가 9시 20분으로 연착되었음을 알려온다. 자욱한 안개가 열차의 운행속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단다. 이제는 이미 기다림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니 2시간 연착이라도 지켜지길 바랄 뿐이다.

북적이는 대합실, 그래도 가장 한적한 곳은 화장실 출입문 앞이다. 선뜻 그쪽에 자리를 잡은 뒤 두 패를 만들어 식사 조와 지킴 조로 나눈다. 이 시골 역 화장실 한 편에 어인 일인지 샤워부스가 마련되어있다. 차가운 물이지만 머리를 감고 나니 그리 상쾌할 수가 없다. 보온용으로 온 종일 요긴히 썼던 예의 테이블보를 이제는 담요삼아 무릎에 덮었다. 비행기의 담요라도 하나 챙겨올 것을 하는 후회와 함께 날씨 정보 수집에 게을렀던 자신을 다시 허물한다.

역전 광장 앞 시장거리의 로칼 식당에 들러 ‘탈리’를 주문했다. 아우는 이미 ‘커리’향을 물려하지만 내 입맛에 여전히 훌륭하다. 더군다나 ‘짜파티(구운 밀 떡)’가 무한 리필이라니 이 아니 좋을쏜가. 식사 후 훌륭한 음식을 칭찬하며 요리사와 기념촬영도 하여보며 좋은 기분에 너스레를 떨어본다.

열차 도착 예정시간은 이미 3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밤은 깊어가고 기온은 더욱 떨어진다. 처마 밑 원숭이가족은 서로를 꼭 껴안은 채 잠들었다. 찬 기운과 기다림에 지쳐가는 일행들은 이제 체념상태다. 모두들 구내매점 등을 뒤져가며 버려진 박스를 구해다가 깔개로 삼고는 아예 침낭을 꺼내어 몸을 감쌌다. 행색들이 볼 쌍은 사나워도 몸에는 한결 낫다. 온 몸에 쏠을 뒤집어쓰고서 주저앉아있던 주위의 인디언 가족들이 나를 주시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어쩌랴. 나도 현지화해야지.

거의 자정이 되어 갑작스레 기다리던 열차가 프렛 홈에 들어선다. 미처 침낭을 정리하지도 못한 채 배낭 속에 우겨 넣고 부랴부랴 올라탄다. 어짜피 오늘도 침대는 배정받지 못한 입석 손님이다. 빈 침대가 남아있길 빌 따름이다.

열차에 오르자마자 재빨리 빈 바닥을 찾아 쇠사슬로 배낭을 묶어 단속한 다음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한 침대가 비었다. 아우에게 자리를 내어주고서 뒷칸으로 넘어가보니 또 한자리가 남아있다. 침낭 속에 곤한 몸을 눕히니 그렇게 아늑할 수가 없다. 아예 안대에 귀마개까지 하고서 잠을 청하는데 채 10분도 되지 않아 침대 주인이 나타난다. 이런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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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8.26 18:21

    첫댓글 네팔기행문이 실감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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