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이 뽑았다, 한 가락씩 하는 집들
짬뽕 맛은 평준화됐다? ‘아니다‘라고 부인하기도 어렵다.
옛날 우리네 동네 중국집들이 나름의 춘장을 쟁여놓고 돼지기름으로 볶아내던
그 고소하고 매혹적인 맛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요즘 자장면은 심심하다. 짬뽕도 그렇다.
‘이 나이에 자장면만 먹기엔 뭔가 유치하다‘는 자아의식이 생길 때쯤 입문하는 게 짬뽕이다.
그 시절 짬뽕엔 기름이 둥둥 떴다. 그 매콤하고 고소한 국물 맛은 면발이 아무리 허접해도 용서가 될 정도였다.
그립다. 그 시절의 짬뽕. 그래서 찾아나섰다.
한 입에 추억 한 다발을 불러다 줄 자장면과 짬뽕을. 한데 세월이 흐르며 ‘건강‘이라는 화두에 ‘맛‘은 자리를 내주었다.
이젠 자장면도 짬뽕도 담백함에서 승부처를 삼는다.
돼지기름을 물리고 식물성 기름으로 건강하게 볶아낸 춘장 맛은, 실은 거기서 거기다.
이제 우리가 기댈 건 주인장의 솜씨와 분위기. 그래서 맛 좀 안다는 사람들을 찾아 물어봤다.
맛있는 동네 자장면'짬뽕집이 어디냐고.
[짬뽕]
마라도 ‘원조마라도해물짜장면집‘
이진주-중앙일보 기자
마라도에 가면 자장면을 먹어야 한다. 십수년 전 개그맨 이창명이 한 ‘자장면 시키신 분~‘ 광고 이후 풍속도다.
한데 당시 등장하는 원조집에선 실은 자장면보다 짬뽕이 더 맛있다.
마라도에 풍부한 해물육수에 다양한 해초가 들어가 짬뽕이라기보다 해물탕에 가까운 맛이 난다.
덕분에 누구라도 거부감이 없고 유람선을 타느라 울렁거렸던 속을 다스리기에도 제격이다.
비결은 이곳 주인장의 할머니가 전북 김제에서 직접 농사 지어 보내는 고추의 매운맛이란다.
해물자장과 짬뽕 모두 5000원.
■제주 마라도 내. 064-792-8506.
서울 역삼동 ‘희래등‘
이상훈-르네상스서울호텔 셰프
역삼동 인근 중국 음식점 중에서는 가장 오래됐다는 집이다. 호텔에 근무하면서 본 기간만 16년이다.
일 끝나고 소주 한잔과 함께 짬뽕 국물을 마시면 그 맛이 끝내준다. 직업 탓에 조미료 맛에 굉장히 민감하다.
그런데 이곳은 조미료 맛이 안 난다. 순수하게 음식 재료만으로 만든 국물 맛이다.
그동안 이 집 주변에 중국음식점들이 여럿 생겼지만 곧 문을 닫았다.
크고 오래된 중국집은 체인점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하도 건물이 오래돼 옆 건물로 지난해 옮긴 것이 변화의 전부다.
입맛 까다로운 호텔 직원들도 즐겨 찾는 집이라면 믿을 만하지 않을까. 6000원.
■서울 역삼역 8번 출구에서 나와 첫 번째 골목. 02-568-0772.
서울 삼성동 ‘만천성‘
닉 플린-인터컨티넨탈호텔 서울 총주방장
점심시간이면 집 앞에 긴 줄이 늘어선다. 그 모습이 신기해 들어갔다가 단골이 된 집이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해물 뚝배기 짬뽕. 쌀국수를 먹을 때처럼 면 위에 숙주를 듬뿍 얹어 주는 게 특징이다.
뚝배기에 담겨 나오기 때문에 먹는 내내 따뜻하다. 낙지,새우,오징어,홍합 등의 해산물이 들어가서 국물 맛도 시원하다.
한국 생활을 한 지도 벌써 3년. 한국 사람들은 술 마신 다음날 꼭 ‘해장‘을 하더라.
점심시간에 만천성으로 몰리는 사람들 중 반 이상은 이 매콤하고 시원한 국물로 해장을 하려는 게 아닐까.
부드러운 면발과 쫀득한 해물이 어울려서 씹는 재미가 있는 해물 간자장도 맛있다.
개인적으로는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은 파 모양이 맘에 든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내. 02-6002-0888.
서울 천연동 ‘종합분식‘
강지영■푸드 스타일리스트
배우 정준호씨가 강력 추천해서 알게 된 집이다. 테이블은 고작 3~4개뿐. 실내도 솔직히 지저분하다.
점심시간처럼 바쁠 때는 일행끼리 메뉴도 통일해야 한다.
눈치 없이 '짬뽕 하나, 자장면 하나, 군만두 하나 주세요' 했다가는 할머니의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바쁜데, 웬만하면 통일해.' '짬뽕 셋이요.'
군말 없이 할머니의 법을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집의 해물짬뽕이 너무 맛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떡볶이 국물처럼 빨갛고 걸죽한 것이 특징.
짬뽕을 먹고 난 빈 그릇을 보면 대개 기름띠가 남는데 이 집은 그렇지 않다.
그만큼 국물 맛이 개운하고 깔끔하다. 4000원.
■서울 천연동 독립문 근처, 천연동 동사무소 골목길 안. 02-363-6586.
인천 ‘풍미‘
윤승락-진주산업대 교수
문을 연 지 50년이 넘는,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다.
스톡(겨자과의 여러해살이풀)을 넣고 센 불에서 볶아 ‘불 맛‘이 제대로 나는 짬뽕이 압권이다.
중국 화상들이 모두 이곳을 떠날 때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듯 짬뽕 맛도 여전히 그대로라 고맙다.
육수를 넣고 끓인 매콤 시원한 국물을 한 숟가락 먹는 순간, 인천까지 달려간 수고 따위는 잊게 된다. 4000원.
■인천 차이나타운 내. 032-772-2680.
서울 동대문 ‘동화반점‘
윤명훈-대한야구협회 심판
정식 메뉴에는 없지만 종업원에게 주문하면 만들어 주는 메뉴가 있다. 일명 ‘고춧가루 뺀 짬뽕‘이다.
고춧가루를 뺐기 때문에 맵지 않아 마치 우동 같다. 그런데 느끼하지 않고 개운한 맛이 우동과는 또 다르다.
동대문야구장에서 경기가 한창 열리던 시절 야구 심판을 보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샤워 후 이 짬뽕을 먹으면 몸과 마음이 다 시원해졌던 기억이 남아 있다. 7000원.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 옆. 02-2265-9224.
서울 삼성동 ‘마담밍‘
최혜숙-휘슬러 코리아 수석 셰프
새빨간 육수에 작은 얼음이 동동 띄워진 냉짬뽕이 이 집의 대표 메뉴다.
새우,해파리,주꾸미 등의 해산물과 오이,무순 등의 야채가 풍부하게 들어간다.
단순한 ‘짬뽕+냉면’, 그 이상의 맛이다. 무더운 여름날은 물론 한 겨울에도 찾게 된다.
게다가 모든 면과 밥은 무제한 리필이 되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6000원.
■서울 지하철 2호선 선릉역 2번 출구. 02-557-6992.
서울 방배동 ‘만다린’
서원예-면사랑 마케팅 팀장
서울에는 손꼽히는 짬뽕 맛집이 많다. 그들에 비하면 만다린은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이 집 짬뽕을 최고로 꼽는다.
질 좋은 재료를 듬뿍 넣고 인위적인 맛을 없앤 시원한 맛이 일품.
한마디로 ‘부티 나는 강남스타일’ 짬뽕이다.
삼선짬뽕을 시키면 그릇에서 곧 쏟아져 내릴 것처럼 새송이,표고버섯,청경채,주꾸미,오징어,새우가 듬뿍 올려져 나온다.
보기에도 싱싱한 재료를 작은 입에는 부담스러울 만큼 큼직하게 썰어 넣은 것도 특징이다.
'삼선짬뽕, 면 빼고'로 주문하면 해물짬뽕탕에 가까운 푸짐한 한 그릇이 뚝배기에 담겨 나온다.
이 짬뽕을 안주 삼아 고량주를 비우는 단골이 많다. 삼선짬뽕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