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예조의 말로 아뢰기를,
“이번에 행행할 때 받은 상언(上言)을 모두 전례대로 각도에 관문을 보내어 상세히 조사해서 보고하게 하라고 명을 내리셨습니다. 각 사람들이 올린 상언을 모아 상고해 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진사 박승혁(朴承赫) 등의 상언은 중부(中部)에 사는 유학(幼學) 강재익(姜載翼)의 9대조인 증 참판 강효인(姜孝仁)의 충절(忠節)에 대해서였고, 진사 이덕수(李德秀) 등의 상언은 서부(西部)에 사는 고 학생 강용한(康龍漢)의 효행(孝行)에 대해서였습니다.
경기의 유학 변의진(邊宜鎭) 등의 상언은 가평(加平)의 고 유학 장우태(張羽泰)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경기의 유학 김수익(金秀益) 등의 상언은 용인(龍仁)의 고 학생 권수인(權守仁)과 그의 아들인 고 학생 권사요(權思堯)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경기의 유학 김용제(金龍濟) 등의 상언은 서부(西部)의 고 학생 조상협(趙相協)과 그의 아들 조안겸(趙安謙)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경기의 유학 박해찬(朴海瓚) 등의 상언은 고양(高陽)의 고 학생 정수항(鄭遂恒)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경기의 유학 이강(李堈) 등의 상언은 용인(龍仁)의 고 학생 이혁의(李赫儀)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경기의 유학 이현상(李玄相) 등의 상언은 죽산(竹山)의 고 생원 이상식(李象軾)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경기의 유학 이규용(李圭容) 등의 상언은 부평(富平)의 고 장령 이계철(李啓哲)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수원부(水原府)의 유학 원세윤(元世胤) 등의 상언은 수원부의 양인(良人) 오경철(吳景哲) 및 그의 처 김 조이(金召史)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수원부의 유학 원세윤(元世胤) 등의 상언은 수원부의 고 부리(府吏) 최우홍(崔遇鴻)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광주부(廣州府)의 유학 이긍억(李肯億) 등의 상언은 광주부의 고 학생 정사묵(鄭師默)의 처 홍씨(洪氏)의 효행과 열행(烈行)에 대해서였습니다.
충청도 유학 이조승(李祖勝)의 상언은 서산(瑞山)의 고 통덕랑(通德郞) 김한윤(金漢胤)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충청도 유학 권정전(權定銓) 등의 상언은 청안(淸安)의 고 사인(士人) 차상권(車尙權)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충청도 유학 송태로(宋泰老) 등의 상언은 회덕(懷德)의 고 학생 남태소(南台韶)의 처 조씨(趙氏)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충청도 유학 이운명(李雲明) 등의 상언은 대흥(大興)의 고 학생 이병주(李秉周)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충청도 유학 서상장(徐相章) 등의 상언은 온양(溫陽)의 고 학생 맹승대(孟承大)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충청도 진사 홍재탁(洪在鐸) 등의 상언은 청양(靑陽)의 고 사과(司果) 이재연(李在淵)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충청도 유학 김노겸(金魯謙) 등의 상언은 공주(公州)의 고 현감 박몽열(朴夢說)의 충절 및 그의 처 유씨(柳氏)의 열행(烈行)에 대해서였고, 충청도 유학 홍재하(洪在夏) 등의 상언은 연기(燕岐)의 고 학생 유인주(兪麟柱)의 처 장씨(張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충청도 유학 이조봉(李祖鳳) 등의 상언은 홍산(鴻山)의 고 학생 이건오(李建五)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충청도 유학 민치준(閔致俊) 등의 상언은 부여(扶餘)의 유학 이운식(李運植)의 처 김씨(金氏)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충청도 유학 송택인(宋宅仁) 등의 상언은 회인(懷仁)의 고 사인 박성대(朴成大)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충청도 유학 윤자영(尹滋英) 등의 상언은 부여(扶餘)의 호장(戶長) 서덕해(徐德海)의 처 김씨(金氏)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충청도 유학 윤자영(尹滋英) 등의 상언은 정산(定山)의 고 학생 이원달(李源達)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충청도 유학 오성현(吳聖鉉) 등의 상언은 문의(文義)의 고 학생 김계홍(金啓泓)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충청도 유학 이예연(李禮淵) 등의 상언은 진천(鎭川)의 고 학생 임경은(林慶殷)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평안도 진사 이정호(李楨鎬) 등의 상언은 성천(成川)의 고 학생 김재명(金再命)의 5대에 걸친 효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유학 이재용(李載鏞) 등의 상언은 중화(中和)의 고 학생 윤태검(尹泰儉)의 충절과 효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진사 김정훈(金鼎薰) 등의 상언은 평양(平壤)의 고 사인 송환규(宋煥奎)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유학 조겸수(曺謙洙) 등의 상언은 박천(博川)의 증 병조판서 최호(崔湖)의 충절에 대해서였습니다.
평안도 유학 임창진(林昌鎭) 등의 상언은 정주(定州)의 고 학생 김상대(金尙大)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진사 한용범(韓用範) 등의 상언은 상원(祥原)의 고 학생 손필인(孫必仁)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생원 조석조(趙錫祖) 등의 상언은 정주(定州)의 고 진사 김서욱(金瑞郁)의 처 이씨(李氏)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진사 김지찬(金至粲) 등의 상언은 구성(龜城)의 고 절충장군(折衝將軍) 홍이후(洪履垕)의 충절에 대해서였습니다.
평안도 진사 조석조(趙錫祖) 등의 상언은 정주(定州)의 증 주부(主簿) 김성원(金聲遠)과 그의 조카 김간지(金柬之)의 충성과 효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진사 김헌철(金憲喆) 등의 상언은 정주(定州)의 고 학생 방치홍(方致弘)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유학 김상(金相) 등의 상언은 중화(中和)의 고 유생 이관준(李觀俊)의 처 박씨(朴氏)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서였습니다.
평안도 진사 신병조(申炳朝) 등의 상언은 숙천(肅川)의 고 학생 최봉현(崔鳳顯)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진사 박종권(朴宗權) 등의 상언은 평양의 고 사인 박돈행(朴惇行)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진사 송찬규(宋粲奎) 등의 상언은 정주(定州)의 증 참의 현담(玄淡)의 충절과 효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진사 윤영훤(尹永暄) 등의 상언은 정주(定州)의 증 참판 김윤장(金允章)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평안도 유학 백이관(白利寬) 등의 상언은 안주(安州)의 고 학생 김이우(金利佑)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진사 김규한(金奎翰) 등의 상언은 개천(价川)의 고 학생 김병현(金秉顯)의 처 김씨(金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유학 송지유(宋志逌) 등의 상언은 박천(博川)의 고 학생 홍기연(洪箕衍)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유학 김희현(金羲鉉) 등의 상언은 용강(龍岡)의 고 학생 나해섬(羅海暹)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평안도 진사 윤석의(尹錫儀) 등의 상언은 성천(成川)의 고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정유(李廷瑜)의 충절과 효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유학 박치규(朴致圭) 등의 상언은 안주(安州)의 고 학생 김승현(金昇顯)의 처 오씨(吳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진사 김헌철(金憲喆) 등의 상언은 정주(定州)의 고 학생 홍계악(洪啓渥)의 처 김씨(金氏)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평안도 참봉 이신규(李臣奎) 등의 상언은 중화(中和)의 고 학생 이태영(李泰榮)의 딸 이씨(李氏)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유학 박봉규(朴鳳圭) 등의 상언은 운산(雲山)의 고 학생 김명규(金命奎)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평안도 유학 임배근(林培根) 등의 상언은 중화(中和)의 고 학생 이정구(李鼎九)의 효행과 학문에 대해서였습니다.
함경도 진사 한홍면(韓弘冕) 등의 상언은 함흥(咸興)의 고 학생 김후정(金后鼎)과 그의 처 김씨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함경도 진사 이철갑(李哲甲) 등의 상언은 단천(端川)의 처사(處士) 지학목(池學穆)의 효행과 학문에 대해서였고, 함경도 진사 이재인(李載仁) 등의 상언은 안변(安邊)의 고 사인 이한필(李漢弼)의 처 이씨(李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함경도 유학 주종상(朱宗相) 등의 상언은 함흥의 고 학생 이덕행(李德行)의 처 박씨(朴氏)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서였습니다.
강원도 유학 송극회(宋極會) 등의 상언은 삼척(三陟)의 박영록(朴永祿)의 처 신 조이(申召史) 및 그의 아들 박파능(朴頗能)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강원도 유학 최진현(崔晉顯) 등의 상언은 삼척의 고 학생 김연심(金演心)의 처 홍씨(洪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강원도 유학 이집(李輯) 등의 상언은 낭천(狼川)의 고 사인 길형채(吉亨埰)의 처 손씨(孫氏)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강원도 유학 홍병선(洪秉善) 등의 상언은 춘천(春川)의 고 학생 황상목(黃尙穆)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강원도 진사 조두년(趙斗年) 등의 상언은 강릉(江陵)의 고 학생 장지언(張志彦)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강원도 유학 박영수(朴永壽) 등의 상언은 춘천의 고 찰방(察訪) 정백영(鄭白英)과 고 생원 정자번(鄭自蕃)의 효행과 학문에 대해서였고, 강원도 유학 권태영(權台榮) 등의 상언은 양양(襄陽)의 고 학생 이필용(李弼鏞)과 그의 동생 이백용(李百鏞)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강원도 유학 이우화(李遇和) 등의 상언은 강릉의 고 학생 강연(姜莚)의 처 남씨(南氏)의 열행에 대해서였습니다.
강원도 유학 김연주(金演周) 등의 상언은 삼척(三陟)의 고 하리(下吏) 김응규(金應奎)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강원도 유학 권은상(權殷相) 등의 상언은 강릉의 고 학생 강윤철(姜允哲)의 처 박씨(朴氏)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서였고, 강원도 진사 조서년(趙徐年) 등의 상언은 강릉의 고 학생 엄석규(嚴錫珪)와 그의 아들 엄양덕(嚴陽德)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전라도 유학 박규장(朴奎璋) 등의 상언은 부안(扶安)의 고 사인 최갑룡(崔甲龍)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이진구(李鎭九) 등의 상언은 흥양(興陽)의 증 동몽교관 김중희(金仲喜)의 충절과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안석원(安錫元) 등의 상언은 남원(南原)의 고 학생 이언익(李彦翊)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전라도 유학 최일영(崔日永) 등의 상언은 영암(靈巖)의 고 학생 정홍제(鄭弘濟)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홍순관(洪淳觀) 등의 상언은 부안(扶安)의 고 사인 최석환(崔錫煥)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진사 이병용(李秉容) 등의 상언은 보성(寶城)의 고 학생 최봉구(崔鳳九) 및 그의 동생 고 지사(知事) 최봉관(崔鳳觀)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허재(許滓) 등의 상언은 옥과(玉果)의 고 출신(出身) 김병호(金秉灝)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전라도 유학 이원식(李原植) 등의 상언은 남원(南原)의 고 학생 박재춘(朴載春)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정일섭(丁日燮) 등의 상언은 흥양(興陽)의 고 학생 신왈록(申曰祿)의 효행과 학문에 대해서였으며, 전라도 유학 이기영(李基榮) 등의 상언은 남원(南原)의 사인 장창규(張彰奎)의 효행과 학문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최운한(崔雲翰) 등의 상언은 순천(順天)의 고 통덕랑(通德郞) 조시성(趙時聖)의 효행과 학문에 대해서였습니다.
전라도 유학 고징진(高懲鎭) 등의 상언은 태인(泰仁)의 유학 이석신(李錫信)의 효행 및 그의 처 최씨(崔氏)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최한일(崔漢一) 등의 상언은 만경(萬頃)의 고 학생 이익찬(李翼贊)의 처 안씨(安氏)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유기환(柳基煥) 등의 상언은 김제(金堤)의 증 동몽교관 온승민(溫升民)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조상갑(趙相甲) 등의 상언은 부안(扶安)의 고 사인 신재환(辛再煥) 및 그의 처 송씨(宋氏)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전라도 유학 김국병(金國柄) 등의 상언은 구례(求禮)의 증 동몽교관 김강철(金剛喆) 및 그의 아들 김영(金瑛)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이훈구(李訓九) 등의 상언은 전주(全州)의 고 학생 박기동(朴基東)의 처 김씨(金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진사 정해최(鄭海
) 등의 상언은 광주(光州)의 고 진사 김이휴(金履休) 및 그의 아들 김용선(金容善)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전라도 유학 최석(崔鉐) 등의 상언은 임실(任實)의 고 학생 강주영(姜周永)의 처 조씨(趙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조한풍(趙漢豐) 등의 상언은 김제(金堤)의 유학 장규환(張圭煥)의 처 안씨(安氏)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장인권(張寅權) 등의 상언은 진안(鎭安)의 고 학생 김응철(金應喆) 및 그의 아들 김유황(金有璜)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전라도 유학 김창학(金昌學) 등의 상언은 순천(順天)의 고 진사 김우곤(金遇坤)의 효행 및 그의 처 이씨(李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박용휴(朴龍休) 등의 상언은 태인(泰仁)의 고 학생 김일채(金一菜)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최병희(崔炳喜) 등의 상언은 화순(和順)의 고 학생 장시만(張時萬)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최난수(崔蘭秀) 등의 상언은 전주(全州)의 고 학생 이용섭(李龍燮)의 효행 및 그의 처 박씨(朴氏)의 열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전라도 유학 권두헌(權斗憲) 등의 상언은 전주(全州)의 고 학생 박기헌(朴基憲)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진사 나원석(羅元錫) 등의 상언은 나주(羅州)의 고 학생 조기(曺祺)의 효행과 그의 아들 조의립(曺義立)의 충절과 효성 및 그의 아들 조홍업(曺弘業)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임화상(林華相) 등의 상언은 남원(南原)의 고 학생 하성룡(河成龍)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전라도 유학 정윤철(鄭胤澈) 등의 상언은 영광(靈光)의 고 학생 서석윤(徐錫胤)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진사 이이필(李以鉍) 등의 상언은 태인(泰仁)의 고 학생 강재효(姜在孝)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고남주(高南柱) 등의 상언은 함평(咸平)의 고 학생 정형시(鄭亨蓍)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진사 오시영(吳時永) 등의 상언은 무장(茂長)의 고 학생 양채룡(梁采龍)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전라도 진사 한용호(韓用浩) 등의 상언은 능주(綾州)의 고 오위장(五衛將) 정태열(鄭兌烈)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나수휘(羅壽徽) 등의 상언은 김제(金堤)의 고 학생 이만의(李萬儀)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김익성(金翊聲) 등의 상언은 곡성(谷城)의 고 사인 김순(金珣)의 효행과 그의 처 정씨(丁氏)의 열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전라도 유학 이흥만(李興萬) 등의 상언은 전주(全州)의 고 자헌대부(資憲大夫) 신성태(辛性泰)의 효행과 그의 처 유씨(柳氏)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이장춘(李長春) 등의 상언은 능주(綾州)의 증 동몽교관 김진명(金振鳴)의 처 이씨(李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양대형(梁大亨) 등의 상언은 장수(長水)의 고 학생 박한석(朴漢錫)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전라도 유학 조의호(趙義浩) 등의 상언은 장수(長水)의 고 학생 박용석(朴龍錫)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김종협(金鍾協) 등의 상언은 보성(寶城)의 고 학생 김기하(金基河)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전라도 유학 오선탁(吳善鐸) 등의 상언은 담양(潭陽)의 고 학생 김명휴(金命休)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경상도 생원 양주신(梁柱臣) 등의 상언은 하동(河東)의 고 사인 김경좌(金慶佐)의 처 김씨(金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경상도 진사 김정락(金正洛) 등의 상언은 진주(晉州)의 고 사인 정경모(鄭敬謨)의 효행 및 그의 처 박씨(朴氏)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서였고, 경상도 유학 이완효(李完孝) 등의 상언은 문경(聞慶)의 고 학생 박증효(朴曾孝)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경상도 유학 권익하(權翊夏) 등의 상언은 안동(安東)의 공생(貢生) 강사윤(姜思允)의 처 조씨(趙氏)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서였고, 경상도 진사 이희구(李熹久) 등의 상언은 경주(慶州)의 고 참봉 손엽(孫曄)의 충절에 대해서였고, 경상도 유학 송시극(宋詩極) 등의 상언은 삼가(三嘉)의 고 학생 이항진(李恒鎭)의 효행과 학문 및 그의 처 김씨(金氏)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서였습니다.
경상도 진사 최운(崔澐) 등의 상언은 고성(固城)의 고 사인 김정팔(金定八) 및 그의 처 강씨(姜氏)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경상도 유학 양종채(梁鍾埰) 등의 상언은 경주(慶州)의 한량(閑良) 김우진(金瑀振)의 어미 김 조이(金召史)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서였고, 경상도 유학 이승억(李承億) 등의 상언은 울산(蔚山)의 고 사인 조정규(趙廷奎)의 처 최씨(崔氏)의 열행에 대해서였습니다.
경상도 유학 서남규(徐南奎) 등의 상언은 대구(大邱)의 고 사인 김화순(金和淳) 및 그의 아들 김성철(金聖哲)의 효행과 김성철의 처 김씨(金氏)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서였고, 경상도 유학 이인욱(李寅旭) 등의 상언은 창녕(昌寧)의 고 학생 이동화(李同和)와 그의 동생 이동석(李同碩)의 효행 및 이동화의 처 강씨(姜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경상도 진사 이익룡(李翊龍) 등의 상언은 함창(咸昌)의 유학 인영건(印永乾)의 처 남씨(南氏)의 열행에 대해서였습니다.
경상도 유학 정환두(鄭煥斗) 등의 상언은 사천(泗川)의 고 학생 최광형(崔光馨)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경상도 진사 정철교(丁喆敎) 등의 상언은 성주(星州)의 사인 송우흠(宋佑欽)의 처 김씨(金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경상도 유학 정규현(鄭奎賢) 등의 상언은 함안(咸安)의 고 사인 송계준(宋啓俊)의 효행과 그의 처 지씨(池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경상도 유학 조석효(趙錫孝) 등의 상언은 진주(晉州)의 사인 박채성(朴采成)의 효행과 그의 어미 한씨(韓氏)의 열행에 대해서였습니다.
황해도 유학 오지선(吳至善) 등의 상언은 해주(海州)의 고 학생 김기우(金基宇)의 처 최씨(崔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황해도 유학 김석교(金錫敎) 등의 상언은 재령(載寧)의 고 학생 양학수(梁學洙) 및 그의 아들 양홍(梁鴻)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황해도 유학 이돈식(李敦植) 등의 상언은 송화(松禾)의 고 사인 신응선(申應宣)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황해도 유학 이문규(李文奎) 등의 상언은 평산(平山)의 고 사인 전상원(全尙元)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황해도 유학 유양복(柳瀁復) 등의 상언은 신천(信川)의 고 학생 민봉호(閔鳳鎬)의 효행과 그의 처 고씨(高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황해도 유학 김윤희(金潤喜) 등의 상언은 평산(平山)의 증 군자감 정 민낙서(閔洛瑞)의 충절과 그의 현손인 고 학생 민복대(閔復大)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황해도 유학 기동팔(奇東八) 등의 상언은 재령(載寧)의 고 학생 강성택(康聖澤) 및 그의 처 기씨(奇氏)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황해도 유학 정헌조(鄭憲祖) 등의 상언은 송화(松禾)의 고 사인 박지행(朴智行)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황해도 유학 이창준(李昌俊) 등의 상언은 해주(海州)의 고 학생 박준영(朴俊榮)의 처 최씨(崔氏)의 열행에 대해서였고, 황해도 유학 여윤해(呂潤海) 등의 상언은 서흥(瑞興)의 고 학생 홍종운(洪鍾運)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황해도 유학 신동식(申東植) 등의 상언은 평산(平山)의 고 학생 추성복(秋成復)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황해도 유학 유동기(柳東基) 등의 상언은 배천(白川)의 고 학생 이온(李穩)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황해도 생원 기동팔(奇東八) 등의 상언은 재령(載寧)의 유학 민장호(閔章鎬)의 처 이씨(李氏)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황해도 유학 조운익(趙雲翼) 등의 상언은 안악(安岳)의 고 사인 강창조(姜昌祚)의 처 조씨(趙氏)의 효행에 대해서였고, 황해도 유학 조능현(趙能顯) 등의 상언은 평산(平山)의 고 학생 민일현(閔日顯)의 효행에 대해서였습니다.
이상의 상언은 모두 표창하는 은전을 내려 주기를 청하는 글입니다.
삼가 하교대로 한성부 및 팔도, 수원부, 광주부에 공문(公文)하여, 그들로 하여금 상세하게 사실을 조사한 다음, 일일이 사유를 갖추어 보고하게 한 뒤, 품처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