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곡(四曲)은 어드매고 송애(松崖)에 해 넘거다 담심암영(潭心岩影)은 온갖 빗치 잠겻셰라 임천(林泉)이 깁도록 죠흐니 흥(興)을 계워 하노라.
[6] 오곡(五曲)은 어드매고 은병(隱屛)이 보기 죠희 수변정사(水邊精舍)는 소쇄(瀟灑)함도 가이 업다. 이 중(中)에 강학(講學)도 할현이와 영월음풍(詠月吟風) 하올이라.
[7] 육곡(六曲)은 어드매고 조협(釣峽)에 물이 넙다 나와 고기와 뉘야 더욱 즑이는고 황혼(黃昏)에 낙대를 메고 대월귀(帶月歸)를 하노라.
[8] 칠곡(七曲)은 어대매오 풍암(楓岩)에 추색(秋色) 됴타 청상(淸霜) 엷게 치니 절벽(絶壁)이 금수(錦繡)ㅣ로다 한암(寒岩)에 혼자 안쟈셔 집을 잇고 잇노라.
[9] 팔곡(八曲)은 어대매오 금탄(琴灘)에 달이 밝다 옥진금휘(玉軫金徽)로 수삼곡(數三曲)을 노는 말이 고조(古調)를 알 이 업스니 혼자 즐겨 하노라.
[10] 구곡(九曲)은 어대매오 문산(文山)에 세모(歲暮)커다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눈 속에 무쳐셰라 유인(遊仁)은 오지 아니하고 볼 것 업다 하더라.
현대어 풀이
[1] 고산 아홉 굽이의 경관을 사람들이 모르더니 / 띠풀을 베고 집터를 마련하여 살아가니 벗님들이 모두 오신다. / 아! 무이산(주희의 <무이구곡담>의 배경이 되는 산)을 상상하면서 주자의 학문을 배우리라.
[2] 일곡은 어디인가? 바위 머리 위에 해가 비치는구나 / 잡초가 우거진 들판에 안개가 걷히니 원근의 풍경이 그림이로다. / 소나무 숲 사이로 술통을 놓고 벗들이 찾아오는 모습을 바라보노라.
[3] 이곡은 어디인가? 화암(꽃바위)에 봄이 저물었도다. / 푸른 물결 위에 꽃을 띄워 들판으로 보내노라. / 사람들이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모르니 알게 하면 어떻겠는가?
[4] 삼곡은 어디인가? 푸른 병풍인 듯 펼쳐져 있는 절벽에 나뭇잎들이 우거져 있다. / 푸른 물 위로 산새가 내려왔다 올라갔다 하며 노래를 부를 때에, / 키가 작고 가로로 퍼진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니 여름 풍경이 따로 없구나.
[5] 네 번째 계곡은 어디인가? 소나무가 선 절벽 너머로 해가 지는구나. / 물 위에 비친 바위 그림자는 온갖 빛으로 잠기었도다. / 숲속의 샘이 깊을수록 좋으니 흥을 이기지 못하겠노라.
[6] 오곡은 어디인가?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절벽이 보기가 좋구나. / 물가에 지어 놓은 정사가 맑고 깨끗한 것이 그지없다. / 이러한 배경에서 학문을 연구하려니와 시를 읊으며 풍류도 즐기리라.
[7] 육곡은 어디인가? 낚시질하기에 좋은 골짜기에 물이 넓게 많이 고여 있다. / 나와 물고기 중 누가 더욱 즐기고 있는가? / 황혼녘에 낚싯대를 메고 달빛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노라.
[8] 칠곡은 어디인가? 단풍이 물든 바위에 가을 빛이 깨끗하구나. / 맑은 서리가 엷게 드리우니 절벽(단풍에 덮인 바위)이 마치 비단처럼 아름답구나. / 시원한 바위에 혼자 앉아서 집에 돌아갈 생각마저 잊었노라.
[9] 팔곡은 어디인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듯 물소리가 흥겹게 들리는 여울목에 달이 밝다. / 훌륭한 거문고로 몇 곡을 연주하며 노니 / 운치 있는 옛 가락을 알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 즐거워 하노라.
[10] 구곡은 어디인가? 기암괴석이 뒤섞여 아롱지게 아름다운 곳에 한해가 저물었도다. / 기암괴석이 눈 속에 묻혀 보이지 않을까 걱정되는구나. / 유인(즐기며 떠도는 사람)은 오지 아니하고 볼 것 없다 하더라
시어 및 시구 풀이
*산(高山) : 황해도 해주에 있는 산 *곡담(九曲潭) : 아홉 번을 굽이도는 계곡. 중국 송나라 때 주자가 무이산(武夷山)에 있는 구곡계(九曲溪)의 아름다운 풍경을 읊은 구곡가(九曲歌)를 본받아, 고산의 구곡담을 가려 낸 것 *모복거(誅茅卜居) : 풀을 베어 내고 집을 지어 살 곳을 정함. 터를 닦아 집을 지음 무이(武夷) : 중국 복건성(福建省)에 있는 산. 주자가 여기에 정사(精舍)를 짓고 학문을 닦았음 *님 : 만년에 해주 고산에 은퇴, 은병정사를 짓고 지낸 것으로 보아 정사(精舍)의 여러 후학(後學)들 을 가리킨다고 봄 *암(冠巖) : 바위 봉우리의 이름. 갓같이 우뚝 솟은 데서 붙인 이름 *무(平無) : 잡초가 무성한 들판 * 거든이 : 안개가 걷히니 *림이로다 : 그림과 같이 아름답도다 *준(綠樽) : 좋은 술동이 *암(花巖) : 바위 이름. 꽃바위 *만(春晩)커다 : 봄이 저물었도다 *지(勝地) : 명승지의 준말로서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곳 *병(翠屛) : 푸른 빛 병풍같이 나무와 풀로 덮인 절벽 *기음(下上其音) : 소리를 낮추었다 높였다 함. 아래위에서 우짖음 *청풍(受淸風) : 맑은 바람을 받다 *름 경(景) : 여름 기분. 여름의 흥 *병(隱屛) : 으슥한 병풍처럼 되어 있는 *변정사(水邊精舍) : 물가에 세워진 정사. '精舍'는 본디 뜻은 불교 절[寺]이었으나, 도사(道士)가 거처하는 곳, 학문을 닦는 곳 등의 뜻임 *쇄(瀟灑) : 맑고 깨끗함. 속세를 떠난 듯함 *래 : 낚시질하는 산골짜기 *월귀 : 달빛을 받으며 돌아옴 *진금미 : 거문고 *이 : 끝이 *학(講學) : 학문을 가르치고 연구함 *월음풍(詠月吟風) : 자연을 시로 읊음. 시를 짓고 읊으며 즐겁게 노는 것 *모(歲暮) : 한 해가 저물어 감 *암괴석(奇巖怪石) :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돌
출전 <해동가요>, <청구영언>, <병와가곡집>
작품개괄 -작가 이이(李珥 ;1536∼1584) 조선 선조때의 학자, 문신. 호는 율곡. 퇴계 이황과 더불어 성리학의 쌍벽을 이루었으며, 저서에 <성리학집요 >,<격몽요결>,<율곡집>, 작품으로 시조 ‘고산구곡가’ 가 있다.
-갈래 연시조(10수)
-연대 조선전기
-성격 교훈적, 유교적
-출전 <해동가요>, <청구영언>, <병와가곡집>
-제재 석담 수양산의 풍광(風光
-주제 강학(講學)의 즐거움과 고산(高山)의 아름다움 -각연의 주제 [1] 고산구곡가를 짓게 된 동기 [2] 학문의 세계에 들어오지 않는 자에 대한 경계 [3] 관암의 아침 경치 [4] 화암의 늦봄 경치 [5] 송애의 저물 무렵 못에 비친 아름다운 巖影(암영) [6] 水邊精舍(수변정사)에서의 講學(강학)과 詠月吟風(영월 음풍) [7] 조대의 야경 [8] 풍암의 가을 경치 [9] 탄금의 여울물 소리 [10] 문산의 눈덮인 경치
-특징 1. 학문에 대한 의지가 나타남. 2. 주자의 ‘무이구곡가’을 본떴다고 하나 내용이 이독창적임. 3. 어려운 한문을 많이 사용함
작품 해제
<고산구곡가>는 이이가 선조 10년 42세의 나이로 해주로 퇴거하여 선적봉과 진암산 두산 사이를 흐르는 구곡 유수의 제오곡인 고산 석담에 복거하고 그 다음해 여기에 은병정사를 세워 은거하면서 주희의 <무이도가>를 본떠서 지었다는 총 10수로 된 연시조이다. 이 작품을 주제로 김수증과 정선이 '고산구곡도'를 그렸는데, 전자에는 우암 송시열의 한역시가 5언4구로 1곡에서 9곡까지 있고, 후자에는 우암, 김수항, 송도원, 정중순, 이자삼, 김수증, 김자익, 권상하, 이동보, 송서구의 순으로 7언 4구의 한역시가 들어있다.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함께 쌍벽을 이룬다. 이 작품은 작가가 대사간의 벼슬에서 물러나 해주 석담에서 제자들의 교육에 힘쓰고 있을 때, 그곳에서의 생활을 노래한 것으로, 序詩에 이어 관암(寬巖), 화암(花巖), 취병(翠屛), 송애(松崖), 은병(隱屛), 조협(釣峽), 풍암(風巖), 금탄(琴灘), 문산(文山)의 구곡을 노래했는데, 그것은 지명인 동시에 특색도 설명되어 있다. 16세기 사림파들은 성리학적 이념에 근거하여 조선조를 개혁코자 하였는데 그 실천 요강은 주자에 집약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적 의지가 좌절되면 서슴없이 강호로 돌아갔는데 그들에게는 주자의 삶과 그의 학문, 그리고 그의 문학이 하나의 이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주자의 무이구곡에서의 삶이 동격의 대상이 되었고, 그가 지은 <무이도가> 등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고산구곡가>는 첫수를 서사로 시작하여 1곡에서 9곡까지 노래하는 구곡체 시가라 할 수 있는데, 퇴계, 율곡 이후 17세기 송시열을 비롯한 주자학적 지식인들에게 계승되어 애송되기도 하고, 자연을 소재로 한 많은 한시 창작에 영향을 미쳐 20세기 초엽까지 많은 구곡체 시가가 지어졌다. 그러나 한문 구곡체 시가의 작품 수는 많으나 국문 구곡체 시가는 율곡의 <고산구곡가>와 이것의 영향을 직접 받은 권섭의 <황강구곡가>, 가사 형태의 시가인 채헌의 <석문정구곡도가> 등 몇 편에 불과하다. 구곡체 시가 가운데 <고산구곡가>는 형태상 구곡을 읊었다는 점에서 <무이도가>의 영향을 받았으나 의미상 구조나 내용에 있어서는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