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제와 배제(forclusion)의 권력 : 가라타니 고진,「일본정신분석」읽기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일본정신분석」, 박유하 옮김,《창작과비평》,
1998 가을호, 271-292쪽.
고모리 요이치의『포스트콜로니얼』을 읽으면서 나는 서구화과정과 제국주의로의 성장, 그리고 패전 후 전후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일본의
역사는 타자에 대한 상상적 관계를 지속하려는 역사임을 암시했다. 외부에서 우월한 상대(서양 제국주의)를 모방하면서 스스로 열등한 야만임을 은폐하는 동시에 내부에서 발견한 타자(아이누족, 조선)를 열등하다고 간주함으로써 우월한 위치를 찾으려했던 근대 초기 일본 제국주의의 양가성은 전후
민주주의의 건설에 있어서 전쟁 책임을 은폐하는 문제에서도 다시 반복된다. 당시 일본 천황에 의해서 제기되었던 '1억 총참회'의 신화는 '천황제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권력을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일본의 전쟁책임을 직접
은폐하거나 혹은 일본의 전쟁책임 문제는 일본측 전몰자들과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로 시작, 그것이 조선과 대만으로 확대되는 순서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는 가토 노리히노라는 일본 우익 문학비평가의 최근의 주장에서 다시
일본 중심적인 것으로 회귀하고 있다. 그런 사고의 밑바탕엔 죽은 자들, 말없는 희생자들을 '대변'할 수 있다는 오만한 ''재현'의 신화'가 자리잡고
있다.
전후 전범 재판을 지켜보면서 일본의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는 전범자들이 어떤 범죄도 인정하지 않고, 단지 자신들은 천황의 명령에 따라서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하면서 구체적인 책임을 은폐시킨 것에 대해 지적한다.
즉, 천황의 신민(臣民)이라는 자격을 얻은 육군 이등병부터 민간인까지 자신들의 살상과 전쟁협력의 이유란 모두 천황의 이름으로 대표되지만, 정작
그런 천황제가 전후에도 지속한다는 것, 즉 천황에게 전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은 천황의 신민이었던 그 누구도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것과 결국 마찬가지가 된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것을 '무책임의 체계'라고 불렀다. 그런데, 전후에도 이런 천황제를 유지시켰던 것은 바로 미국이며, 전전의 일본에 대한 상징인 천황제에 대한 '상징적 거세'를 통해
무기력과 수치심의 느낌구조를 사회전반에 지속시키면서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얻어내려는 데에 미국의 최종목적이 있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 정치의 역학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한편 근대일본에서 고대의 지배체제인 천황제가 부활해서 악명 높은 군국주의 체제를 만들었던 일본 사회의
특수성에 보다 주목했다. 그는 일본의 종교인 '신도(神道)'라는 다신교적
특성의 무한포용성과 사상적 잡거성(雜居性)이 일본에 고유하다는 것을 주장했고, 한편으로는 의식의 '코소오(古層)', 즉 작위, 제작에 대해 생성을
우위에 두는 사고에서 찾아내려 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에서 플라톤적 '제작'적 사고에 대해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의 '생성'적 사고와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일견 보편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라타니 고진이 비판하고 있듯이, 이런 마루야마 마사오의 사고나 기타 '모계제'나 '종교적 관용' '자기와 원리 없음' 등등에서 일본 사회의 특수성을 찾으려는 시도 모두 결국 일본이라는 자기동일성 내부의 사유에서
단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들일 뿐이다. 가라타니는 일단 일본의 특수성을 일본의 자기동일성으로 제한하면서 동아시아에서의 지정학적 위치
속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관계'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즉,
외재성의 발견에서 문제의 해결을 찾는다.
가라타니는 여기서 근대 이전에 한번도 외부의 침략을 받은 적이 없으며,
또한 외부의 문물의 유입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일본의 '상징적 거세'의 부재라는 특성을 고찰한다(상징적 거세의 부재, 그것은 다름 아닌 정신병의 기원이다). 여기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가라타니는 단적으로 "천황제의 구조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한반도의 존재"(280쪽)라고 말한다. 가라타니의 설명을 간단히 요약하면, 한반도의 역사는 중국의 한자와 문물이라는 문화적 수용과 중국 및 기타 이민족의
침략을 통해 상징적 거세, 즉 "억압과 주체를 강화시켜온"(같은 쪽) 역사이다. 정신분석적으로 말한다면, 한반도는 신경증적이다(앞으로 나오겠지만,
그런 한반도나 중국의 문화에 대해 영향을 덜 받았던 일본은 정신병적이다.
일본은 상징적 거세가 충분히 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으로 떠오르는 것은 문자의 문제이다. 즉, 일본어라는 "에크뤼튀르 자체의 역사성"에 대한 문제. 즉, 과거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한국은 한글을 통해 중국의 한자를 소리(중국어의 음성에 가까운 소리)로만 읽었지 훈(訓), 즉 한국어의 소리로는 읽지 않았다는 점이고, 이에 비해 일본의 카나(히라카나)는 한자를 소리뿐만 아니라 일본어의
소리, 즉 훈으로도 읽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예를 들어 한자어 君은 한국어에서는 '군'이라고 읽고, 그 뜻은 대충 사내라는 의미이다.
즉, 사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뜻일 뿐이지, 이 뜻을 다시 '군'을 발음하는
음성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즉, 한국어에서는 君을 군과 동시에 사내라고
발음하지는 않는다(사멸한 표기법인 이두나 향찰로 대충 이것을 '사내(思內)' 등으로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카나는 기본적으로 이두나
향찰에서 그 표기법을 빌어 왔다). 일본에서 君은 '쿤(くん)'이라고 읽고,
그 뜻은 '키미(きみ, 사내)'이지만, 바로 이 きみ도 くん과 마찬가지로 군(君)을 발음하기 위한 음성이라는 점이다. 즉, 일본어에서는 군을 くん, きみ 두 가지 방식으로 모두 읽는다. 일본문자 카나에서 한자를 훈으로 읽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이다. 이대로면, 일본어의 음성은 모두 한자로 바꾸어 표기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말한다면, 우리 나라는 한글 전용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일본은 카나 전용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가타카나란 그런 외래어를 표기하기 위해 일부러 따로 만든 것이다).
이런 간단한 사실이 뜻하는 바는, 한문, 히라가나, 가타가나 등의 세 가지
표기법을 가진 일본에서는 君이라는 한자를 받아들이면서도 君의 외재성,
그 낯섦은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이다(그것은 일본이 현재 영어나 외국어를
가타카나로 따로 표기하는 것과 등가이다). 거기에 비해 한국에서 君은 이미 내면화된 산물이다(영어나 기타 외국어도 발음대로 적는다). 즉, 일본
문자체계에는 한국어와는 달리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문자, 그것이 문명의 기원이라면, 일본의 문자체계에는 원억압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깡의『에크리』일본어판 서문을 빌어 가라타니가 말하고자 한 것은, 일본의 문자체계는 상징적 원억압의 부재, 즉 정신병의 기원인 거세의 배제(forclusion)의 체계라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상형문자에 비유했는데, 그것은 한문이 굳이 음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뜻을
바깥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이때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 한문을 음으로만 읽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즉, 일본어 카나가 모두 한자로 표기될 수 있다는 것은, 표면에서 무의식이 전면으로 노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는 말실수와 농담, 즉 기표의 연쇄가 실패하거나 비틀어지는 지점에서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에게 이런 실수란 절대 없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일상적인 의미의
빠롤의 사용에서가 아니라, 일본어라는 랑그의 체계 그 자체에서 돌출되는
문제이다. 무의식을 번역하는 음성언어의 주체는 보통 신경증적 주체이다.
즉, 음성언어를 통해 무의식의 의식화작업 속에서 억압된 무의식이 남고,
그때 주체는 언제라도 무의식을 분출할 수 있는 신경증적인 주체가 된다.
즉, 주체는 기본적으로 신경증적이며 억압적인 주체이다. 소쉬르가 말하는
랑그, 그것은 언어의 보편적 체계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보편적이라고 생각되어 온 근대국가의 언어체계이다. 아마 과거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의 언어체계와 부딪혔을 때의 문제란, 바로 이 보편적이라고 여겨져 왔던
일본어라는 랑그 체계 자체의 위기라고도 볼 수 있다(이에 대해서는 도케이다 모토키라는 식민지 조선의 경성제국대학 교수의 언어학적 작업에 담긴
위기의식을 다룬 가라타니 고진의「언어와 국가」를 참조하면 좋다).
한국어로 번역된 가라타니의「일본정신분석」의 원제목은「일본과 라깡」이다. 이 논문은「일본과 푸코」라는 소논문과 더불어「억압의 권력과 배제의
권력」이라는 큰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가라타니가 주목하고자 한 것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억압이라는 관념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푸코적 (비)사유, 혹은 억압, 즉 상징적 거세의 문제 자체를 넘어서는
들뢰즈/가타리의 분열증 분석이 일본(어)이라는 특수한 국가(언어)체계에서
과연 보편 타당한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여기서 가라타니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신경증적, 즉 억압적 주체가 부재한 나라에서 억압과 해방이라는 모더니티의 오래된 문제가 가진 이중성이다. 즉, 들뢰즈/가타리나 푸코의 억압/해방 관념의 폐기라는 문제는 기본적으로 신경증적인, 즉 억압이 뿌리깊이
박힌 문화의 산물에서 비롯된 것이며, 정작 일본에서의 문제란 푸코나 들뢰즈/가타리 등의 포스트-구조주의적 사유가 활발하게 전파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억압과 해방이라는 모더니티의 문제가 진지하게 제기되기도 전에 미리
배제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기호의 제국』에서 바르트가 본 일본사회는 텅 빈 중심으로 구조화된 억압 없는 사회였다. 그것은 유럽의 '해방구'이자 사유의 '바깥'이었다). 일본에서의 포스트-구조주의적 사유는 정신병적 구조를 가진 일본이라는 국가, 사회 체제와 모종의 공모관계가 있다는
것, 즉, 이때 문제되는 것은 더 이상 억압의 권력이 아니라 "배제의 권력"이다. 즉, 배제 자체가 억압에 반대하고 저항을 기획하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억압의 문제다.
푸코가 말하는 것처럼 권력에는 중심이 없지만, 바로 '무책임의 체계'인 일본의 천황제에서 권력의 중심은 부재한다. 모든 권력과 억압의 행사는 천황의 이름으로 행해지지만, 면책특권을 가진 천황제의 국가에서 누구에게도
권력과 억압의 행사에 대한 책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천황이라는 무(無)를 중심으로 구조화된 권력에서 권력이란 없다. 따라서 억압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 중심 없는 권력 체계라는 푸코적 사유는 놀랍게도 천황제의 구조와 자연스럽게 닮아있다(물론 푸코의 사유가 천황제의 구조와 같다는 것은 아니다. 즉 푸코적 사유의 실험은 천황제의 구조를 가진 국가에서는 그 사유의 보편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푸코와 일본」에서 가라타니가 개인이 철저하게 원자화되었고
모든 반국가적 운동 세력들이 개별적 단위로 고립되어 있는 미국에서의 분열증적, 탈억압적 포스트모던 좌파의 운동세력들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는데서 다시 한번 문제가 제기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푸코적, 들뢰즈/가타리의 사고의 보편타당성이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고 실험하는 데서
아무런 문제제기도 되지 않는 일본의 천황제 구조 자체의 자명성이다. 근대적 주체의 문제가 한번도 제기되지 않았으면서 탈주체의 정신분열적 발화의
장소 일본이 포스트-모던적 국가이면서 동시에 프리(pre)-모던하다고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적으로 일본의 천황제를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근대적 '주체'와 주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문제를 거론하는
모더니티의 문제는 결코 동떨어져 사고할 수 없다는 것, 여기에서 (가라타니의) 이론과 실천이 진정하게 분열을 지양하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