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이후로는 야영을 별로 하지 않았다.
가족 산행으로 지리산을 다녀와도 아내가 주로 큰 짐을 맡는데 인수산장 야영장을 가려면
취사장비, 야영장비에 등반장비까지 짊어지려면 도저히 엄두가 나질않아 당일 산행외에는 들어가질 않았다.
하지만 힘들어도 그 옛날 야영하고 등반하던 때가 너무 그리워 15년만에 용기를 내어본다.
기왕 대형 배낭 메는 김에 벨트와 암벽화, 헬멧과 퀵드로 몇 개도 챙겨 넣고 재열이와 통화를 한다.
"형, 일요일에 간간이 비 온다는데 등반 못할거 같은데?"
"그래? 그럼 등반 못 하더라도 천막 가지고 가니까 옛날 생각하면서 술이라도 한잔하게 와라~"
무거울수록 발에 무리가 오니 차라리 암장비라도 덜어놓고 가야겠다 생각하여
다시 배낭을 풀고 암장비만 꺼내어 다시 배낭을 꾸려도 별반 줄어든 느낌이 안든다.
이번엔 정욱형과 통화를 하니 비오면 고독길이라도 가게 벨트라도 가져오란다.
다시 벨트만 넣고 집을 나서기전에 주동이와 통화를 한다.
엊그제 월례회의 때 정욱형이 삼겹살을 인수산장으로 택배로 부치라하니 택배는 안되고
와서 가져가는 것은 좋다하여 내가 들러서 가기로 했었는데 일이 있어 외부에 나가있다고 한다. 쩝~
나갈때 전화라도 해주든지...
동네 단골 마트에 들러 삼겹 두근을 준비하는 김에 양파와 마늘, 버섯까지 추가한다.
비도 오는데 술이 없으면 안되겠지... 소주도 세병 챙겨넣고... ㅋ
5시 반경 수유역에 도착하니 버스 번호도 다 바뀌어 6번, 23번 등은 사라지고 노선표에서
우이동을 찾아보니 120번이 젤 먼저 눈에 띤다. 종점에 내리니 예전 6번 종점이다.
택시 타기전에 혹시나 봉영이 어데쯤 올라나 싶어 통화하니 사정이 생겨 못 오게 생겼다는...ㅠ
재열이는 전화가 안되고... 정욱형은 저녁식사하고 온다했으니 혼자 올라가야겠다.
도선사 입구...
드디어 큰 배낭을 메고 한발씩 내딛으니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다.
화장실 앞 볼더링 바위, 등반이 일찍 끝나서 내려올때면 한번씩 붙어보곤 했었는데... ㅋ
어라? 우이산장이 없네? 언제 허물었는지 돌들만 쌓여있고 산장이 있던 자리는 노끈으로 둘러쳐 놓았다.
쉬엄쉬엄 오르니 하루재를 지나 인수산장이 나타난다.
재열이가 혹시 들어와 있을까 싶어 전화를 하니 또 불통, 무슨 일일까?
산장 위편으로는 몇 팀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자리를 찾아본다.
12구역에 두 사람이 철수준비를 하고 있기에 그 자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천막부터 설치하니 8시가 되어간다.
지난 월례회의 때 처음 모습을 보이신 신입회원 천환형의 전화가 온다.
"이번주에 산행이 어떻게 되나요? 산행 합니까?"
"네~ 벌써 들어와서 자리피고 식사중입니다."
"제가 이제 끝나서 들어가려면 좀 늦을것 같아요."
삼겹이 부터 구워 소주 한 잔에 허기를 달래주고 있으니 9시가 거의 되어 정욱형이 들어온다.
그리고 천환형이 몇 시쯤 들어오셨는지, 한 10시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와중에 재열이와 통화가 되었는데 못 들어온다는... OTL
헐~ 이 고기를 셋이서 어찌 다 먹누~
'먹다 지쳐~♬ 잠이 들면~ ♬'
밤은 깊어가고 일순배를 돌리는 중에 옆자리에 한 팀이 들어오는데 인원에 제법 많다.
그러려니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사람이 다가온다.
"상현아, 야~ 오랜만이다."
"어? 무진이형~ 오랜만이네요."
청원 산악회가 들어온 것이다.
청원도 일순배가 돌아가고 깊은 밤 취침하실 분은 취침에 들어가고 청원으로 자리를 옮겨
또 한잔 나누는데 일어나보니 아침이다.
이럴수가... 필림이 끊기다니...
너무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15년만에 북한산 품속에 들어와 있으니
긴장도 풀리고 절제를 못 한것이다.
천환형이 잠자리까지 챙겨주셨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날 아침, 아니 그날 아침이다.
8시 무렵인가, 청원은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등반 준비중이다.
우리는 쌀도 없고 코펠도 없고 6명 예상하고 사온 삼겹이만 잔뜩 남았다.
라면을 가져왔기에 후라이팬에라도 끓여 먹을까 하는데 청원에서 식사를 여유있게 준비한 모양이다.
밥과 찌게를 덜어서 가져온다. 에고~ 미안스러워라~
'무진이형(회장), 청원 회원님들 감사합니다.'
간밤에 실수는 안했는지 원~ ㅠ
술도 덜 깨어 더 푹 자고 싶은데 정욱형이 고독길이라도 가잔다.
하는 수 없이 천환형과 함께 벨트차고 따라나선다.
야영장에는 몇 팀 없었는데 다들 비가와서 아침에 들어왔는지 고독길에 인원이 만원이다.
기존 코스도 대부분 물이 흐를테니 일부 몇 팀을 제외하곤 다들 고독길로 모인 것이다.
초입에서 잠시 기다리니 뒤를 이어 경성산악회와 또 몇 팀이 줄을 선다.
한 시간(?)은 기다린 듯 한데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여 우리도 출발하지만 정상까지 지체현상은 계속된다.
입에서 단내는 나고 가지고 온 물은 거의 내가 다 비운다.
별다른 간식거리도 없어 영자크랙 아래서 정욱형이 아는 후배 팔봉씨를 만나 간식도 얻어 먹는다.
이른바 앵벌이 등반이라고 일컫는... ㅠ
얻은 과자를 하나 먹는 중에 인수A 쪽에서 "짱구야~" 하니, 천환 형이 "따옥아~" 한다.
천환 형과 허욱 선배님의 인사말이 오가고 바로 하강하신다.
고독길에서는 가장 난이도 있는 영자 크랙을 오르고 나니 미끄럼 바위가 더 오르기 어렵게 느껴진다.
한 발만 올라서면 되는데 릿지화라서 그런지 패인 홈에 앞꿈치가 걸리질 않는다.
'에라~ 줄 잡고 가자... 그래도 한때는 잘 나가는 톱쟁이 였는디~ 으~ 쪽 팔려~'
인수봉에 오르니 코 앞에 있는 백운대에서 말소리는 들려오는데 운무에 가려 전혀 보이질 않는다.
잠시 빗방울도 떨어져 서둘러 하강 준비를 한다.
비록 예전처럼 기존 코스로의 선등은 아니었지만 15년만에 오른 인수봉은 감회가 새롭다.
야영장으로 내려오는 길은 스틱 하나에 의지하니 만만치가 않다.
천천히 야영장으로 내려와 잠시 발을 식히고 짐정리를 한다.
청원팀은 먼저 하산하고 우리도 하산하려는 중에 인수산장 앞에서 천환형이 누군가와 인사를 나눈다.
되돌아가보니 77년 토왕폭을 초등하셨던 크로니의 박영배 선배님께서 앉아 계신다.
언젠가 원기형을 따라 갔다가 술자리에서 몇 몇 원로 산악인들을 뵈었을때 인사를 드린것 같은데
기억을 못 하신다.
하루재에 오르자 천환 형이 배낭을 바꾸자 하셔서 내키지 않았지만 식당에 들어설 때까지 메고 가신다.
'정말 죄송스럽고 감사합니다.'
우이동에 내려와 식당에서 자리를 잡고 하산주 한 잔에 피곤함을 달래며
천환형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조금 엿들으니 어느덧 귀가 시간이 되어간다.
우리는 귀가를 하고 천환형은 박영배 선배님 팀들과 2차를 하기위해 남는다.
10시경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천환 형이 걱정되어 전화를 드린다.
마음만 먹는다면 또다시 야영을 들어가거나 등반을 할 수도 있겠지만
주변 회원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어 미안스럽다.
다친 이후로 낚시나 캠핑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환형과 정욱형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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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생하셨네요!! 건강생각하셔서 술은 많이 드시지 마셨음해요!!ㅎㅎ
그르게 필림 끊긴적이 옛날이었는데.. 너무 긴장을 풀었나봐
'따옥아~' ---> '까욱아~'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