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선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결심이 서기까지 한참 걸렸죠. 이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물으신다면, 그렇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대사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인사이더(The Insider)’에서, 오랜 고뇌 끝에 자기가 몸담았던 담배회사의 비리를 방송을 통해 공개하는 주인공이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 말이다. 미국의 3대 담배회사 중 하나인 브라운&윌리암슨의 연구개발부 책임자였던 와이갠드 박사는 회사가 인체에 치명적인 암모니아 화합물을 담배에 넣는 것을 제지하려다 해고되고, 이후 방송국 PD를 알게 되면서 용기를 내어 비리를 폭로하게 되는 것이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이 영화에서 와이갠드 박사는 소위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이다. ‘내부고발’이란 조직의 구성원이 조직 내부에서 저질러지는 불법 또는 부당한 활동이나 공공의 건강 및 안전에 대한 위협 등에 대하여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내부책임자나 관련 감독기관, 의회, 언론 등에 알림으로써 공동체의 안전과 권익을 보호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행위를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의리를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 집단을 우선시하는 조직문화 등 내부고발을 저해하는 요인과 더불어, 비리를 시정하려는 내부고발자들이 한결같이 구속되거나 파면·해임과 같은 보복을 당했던 전례 때문에 그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부패방지법’이 제정되어 2002년 1월25일부터 부패방지위원회가 발족하였는데, 이 법 제32조 제1항은 “이 법에 의한 신고나 이와 관련한 진술 그 밖에 자료제출 등을 한 이유로 소속기관·단체·기업 등으로부터 징계조치 등 어떠한 신분상 불이익이나 근무조건상의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36조 제2항은 “부패행위의 신고자는 이 법에 의한 신고로 인하여 직접적인 공공기관 수입의 회복이나 증대 또는 비용의 절감을 가져오거나 그에 관한 법률관계가 확정된 때에는 위원회에 보상금의 지급을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이 법 제2조 제3호 나.목은 “공공기관의 예산사용, 공공기관 재산의 취득·관리·처분 또는 공공기관을 당사자로 하는 계약의 체결 및 그 이행에 있어서 법령에 위반하여 공공기관에 대하여 재산상 손해를 가하는 행위”를 부패행위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부정청구방지법(False Claims Act)이 위 부패방지법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 법은 남북전쟁 중 전쟁터에 버려진 총기나 탄약 등 중고 군수물자를 회수하여 다시 조달한 부정납품업자를 제재하고자 링컨 대통령이 제창하여 만들었다. 특징적인 것은 이 법 제3730조가 ‘국민소송(Qui Tam suit; ‘Qui Tam’이란 라틴어 “qui tam pro domino rege quam pro sic ipso in hoc parte sequitur”의 줄인 말로서, “이 사건에 관하여 왕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소를 제기하는 자”라는 의미이다)’제도를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에 허위 또는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손해를 끼친 자를 상대로 이해관계 없는 일반 사인이 국가를 대위하여 독자적으로 또는 법무부장관과 공동으로 소를 제기하고, 승소한 경우 환급금 중 최대 25% 범위 내에서 포상금을 지급받는 제도를 말한다. 다만 공지된 사실을 청구원인으로 한 경우 일반 사인의 소권은 배제되고, ‘정보의 원천적 제보자(original source of the information)’만이 소권을 가지게 된다. 아울러 동조는 ‘정보의 원천적 제보자’의 개념에 대하여 “청구원인사실에 대한 직접적이고 독립적인 정보를 알고 있고, 소 제기 전 이를 자발적으로 정부에 제공한 자”라 규정하고 있다.
지난 달 27일 미 연방대법원은 원자력발전소 운영회사의 비리를 제보한 내부고발자의 국민소송과 관련하여 ‘정보의 원천적 제보자’의 개념규정에 대한 유권해석적 의미를 가지는 판결을 선고한 바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건의 당사자는 상고인(피고) 락웰 인터내셔널 주식회사(Rockwell International Corp., 이하 ‘피고’라 함)와 피상고인(원고) 제임스 스톤(James Stone, 이하 ‘원고’라 함)인데,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피고는 1975년경 미 에너지국(Department of Energy, 이하 ‘DOE’라 함)으로부터 콜로라도 주 소재 록키플랫(Rocky Flats)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관리운영을 위탁받는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계약서상 피고는 DOE가 연 2회 실시하는 환경오염 및 안전성 평가실적에 따라 보수를 지급받기로 되어 있었다.
원고는 1980년경부터 위 발전소 엔지니어로 근무하였는데, 당시 피고는 발전소 인근 연못에 축적된 유독성 슬러지(오니, 汚泥)를 시멘트와 섞어 고체화시킨 블록(block)으로 폐기하는 방안을 연구 중에 있었고, 그 실시가능성에 대해 원고에게 검토를 맡겼다. 원고가 검토한 결과 위 블록은 장시간 경과하면 썩게 되어 유독물질의 방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예견’을 근거로 부정적인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피고의 경영진에게 제출하였다. 그러나 피고는 이 보고서와 관계없이 위 폐기방안대로 추진하였고, 이후 원고는 다른 이유로 해고당하게 된다.
그런데 위와 같은 방법으로 폐기물 처리를 시행한 후 수년이 지난 1986년경 블록에서 유독물질이 누수된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그 원인이 시멘트와 슬러지의 잘못된 혼합비율로 인한 것이라 보도되었다.
이에 원고는 연방수사국(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이하 ‘FBI’라 함)을 찾아가 피고의 환경법규 위반사실을 고발하면서 자신이 작성한 위 보고서를 함께 제출했고, FBI는 원고의 진술을 토대로 영장을 발부받아 피고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그 결과 피고는 DOE로부터 지속적인 보수지급을 받을 목적으로 위와 같은 환경오염 및 안전성 문제를 숨겨왔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원고는 1989년경 피고를 상대로 피고가 부정하게 수령해온 보수를 국가에 환급하라는 취지의 국민소송을 연방법원에 제기했고, 피고는 원고가 부정청구방지법상 원고적격이 없다고 항변하였다. 법원은 심리 끝에 피고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부정청구방지법 관련규정에 따라 부당취득금액의 3배에 해당하는 400만 달러의 배상을 명하였다.
피고의 항소 후 연방 제10항소법원도 하급심과 유사한 취지로 판시하였고, 결국 피고의 상고에 의해 연방대법원의 심리가 열렸는데, 피고는 상고이유서에서 원고가 정보의 원천적 제보자가 아님을 적극적으로 다투었다.
주심을 맡은 스칼리아(Scalia) 대법관은, “원고의 청구원인 및 피고의 책임근거가 된 사실은 ‘블록의 고체성 약화로 인해 유독물질이 누수된 것이 원고의 퇴사 이후 취업한 폐기물처리장 책임자가 슬러지와 시멘트의 적정한 혼합비율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고, 피고는 이러한 환경 및 안전성 문제를 알면서도 DOE에 보고하지 않고 보수를 수령해 감으로써 부당이득을 취하였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사정은 원고의 퇴사 이후에 발생한 것이므로 원고가 ‘직접’ 체득한 정보라 볼 수 없고, 또한 위와 같은 사실은 언론이나 검찰수사를 통해 비로소 밝혀진 이상 원고가 그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정보를 얻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면서, 원고를 정보의 원천적 제보자로 본 원심을 파기하였다. 물론 원고가 위 폐기방법상 위험성을 예견한 사실은 원고 작성의 보고서에도 나타나 있기는 하지만, 이는 단지 ‘예견(prediction)’에 불과할 뿐 실제 발생한 사실에 대한 정보취득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최근 부패방지법 외에도 환경범죄의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제15조),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제15조의 3),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제64조의 2) 등 각종 법률에서 내부고발자 등에 대한 포상금 규정을 두고 있는 추세이고, 특히 지난 해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의 위법한 재무회계행위에 대해 지역주민이 자신의 개인적 권리·이익의 침해와 관계없이 그 위법한 행위의 시정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주민소송제’가 도입된 바 있다(제13조의 5).
그런데 만약 지급여부 결정주체가 포상금 부지급 결정을 하거나 또는 그 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소송이 제기될 경우, ‘내부고발자’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현행 법체계 하에서 법원이 해석을 통해 제한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므로 위 연방대법원 판례가 하나의 참고적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앞으로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의 예산 수립 및 집행의 투명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마당에 가까운 시일 내에 ‘국민소송제’를 도입해 보면 어떨까 한다. 작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그 입법화를 적극 고려한 바 있었으나, 국회의 국정감사제도와 중복되고 남소송으로 인한 행정력 낭비라는 중앙정부의 강한 비판을 받자 무산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부정청구방지법상 국민소송에 의해 1987년부터 2005년까지 실제 환수된 예산만 무려 17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도 클 것이므로 이 제도가 존재한다면 불법적인 예산낭비에 대한 예방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법무법인 바른(한국 & 미국 뉴욕주)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