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교(甑山敎)의 창시자. 본관은 진주. 자는 사옥(士玉), 호는 증산(甑山)ㆍ대순(大巡)이다. 증산교에서는 옥황상제(玉皇上帝)요 미륵불(彌勒佛)로서 신앙의 대상이다.
[생애 및 사상]
강일순은 1871년 음 9월 19일 전북 정읍군 고부에서 아버지 흥주(興周)와 어머니 권씨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조들이 이조참의와 도승지를 지낸 바 있다. 모친 권씨가 하늘이 남북으로 갈라지며 큰 불덩어리가 내려와 몸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태기가 있어 13달 만에 태어났다. 아주 총명하여 사람들이 그를 영아(靈兒)라 불렀다. 9세부터 14세까지 한문서당에 다녔는데 항상 장원자리를 차지했고 때때로 지은 시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15세에 학업을 그만 둔 그는 근방을 돌아다니며 농사일을 하기도 하고 산에서 나무 베는 일을 하는 등 세상인심을 경험하다가 21세 때에 정씨부인을 맞아 혼인을 하게 되었다. 혼인 후에도 그의 방황은 계속되어 집에 머무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한때 처가에서 서당 훈장을 하기도 했다.
24세 되는 해에 동학혁명이 일어났는데 사람들에게 적극 가담치 말 것을 권유하고 그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죽음 직전에서 구해주기도 했다. 처참한 전쟁의 와중에서 민중이 겪는 고통을 몸소 체험한 그는 고통에 헤매는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오랜 역사를 통해 민중을 지배해온 여러 갈래의 종교와 사상의 실태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25세부터 1년간 동양의 전통사상인 유ㆍ불ㆍ선(儒佛仙)ㆍ음양참위(陰陽讖緯)를 비롯한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동양사상을 대체로 살펴본 그는 세태와 인심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27세경부터 3년여에 걸쳐 조선 8도를 돌아다니게 된다. 충청도 비인에서 김경흔(金京訢)으로부터 태을주(太乙呪)를 얻었으며, 연산에서 《정역(正易)》을 저술한 김항(金恒, 호 一夫)을 만났다. 이 기간에 그는 내 나라의 어려움이 바로 세계의 어려움이요, 내 겨레의 아픔이 온 인류의 아픔임을 다시 느끼고 유달리 큰 환란에 싸인 이 강토는 세계적 대변화의 중심지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민족과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道)를 세울 길밖에 없고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권능을 얻지 않고는 뜻을 이루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31세 되던 1901년에 전주 모악산 대원사(大院寺)에 들어가 수도를 시작했다.
수도를 시작한 지 불과 며칠 만인 7월 5일에 천지대도(天地大道)를 깨달아 성도(成道)하게 되었다고 한다. 도를 이룬 뒤 그는 9년 동안 활동을 했는데 이 기간의 행적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기행이적ㆍ신통묘술ㆍ치병(治病)ㆍ예언 등 불가사의한 일로 연속되고 있다. 그가 성도했다는 소문을 듣고 제일 먼저 그를 따른 사람은 김형렬(金亨烈)이었다. 그 뒤 강일순은 금산사 밑 구릿골 김형렬의 집에 기거하면서 전북 일대를 중심으로 많은 종도(從徒)들을 만나게 된다. 1907년에는 차경석(車京石)을 만나고 그의 이종누나인 고판례(高判禮)를 수부(首婦)로 삼게 되었다. 그를 따르던 사람은 모두 60여 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활동 중에 의병모의 혐의로 관에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강일순은 처음 만난 종도에게는 반드시 평생에 지은 허물을 낱낱이 생각하여 용서해주기를 비는 참회기도(懺悔祈禱)를 가르치고 그를 위해 모든 척신과 병고를 밝혀주었다. 그가 종도들에게 주로 시킨 수련법은 태좌정심법(胎坐正心法)과 태을주(太乙呪)ㆍ시천주(侍天呪) 등 주문을 많이 읽게 했다. 그는 종도들에게 수련을 시킨 뒤에 그의 능력에 따라 천지공사(天地公事)에 참여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김형렬ㆍ차경석ㆍ박공우(朴公又)ㆍ고판례ㆍ안내성(安乃成)ㆍ문공신(文公信) 등은 큰일을 맡아 했고 강일순 사망 후 각기 교단을 만들었다. 그는 옥황상제요 미륵불로서 절대적 권능과 조화를 가지고 조선 땅위에 세계제일의 왕국을 건설하여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종도들은 하루빨리 그런 세상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대에 차있는 종도들에게 여러 가지 수련을 시킬 뿐 현실 사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자 초조한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1909년 6월 20일경 모든 종도들을 구릿골로 모이게 한 뒤 천지공사를 모두 마쳤음을 선언하자, 종도들은 그러면 빨리 새 왕국을 건설하는 천하사를 도모하기를 간청했다. 그 뒤 강일순은 자리에 누워 여러 가지 병을 번갈아 앓고 난 후에 ‘세상에 있는 병을 다 대속했으나 오직 괴병(怪病)은 그대로 남겨두고 너희들에게 의통(醫統)을 전하리라’ 했다. 1909년 음 6월 24일 사망하니 그의 나이 39세 때였다. 그가 사망하자 구릿골 뒷산에 초빈으로 장사지낸 후, 그를 따르면서 새 왕국이 건설되고 후천선경이 오면 잘살아 보겠다는 꿈을 갖고 있던 종도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강일순은 9년 동안 신비한 기행이적을 행하면서 종도들을 가르치고 환자를 치료하는 생활을 했는데 이 기간 동안의 일을 증산교에서는 그가 천지공사를 했다고 한다. 천지공사란 글자 그대로 하늘과 땅을 뜯어 고쳐 새롭게 만드는 공사라는 것이다. 증산은 상제의 권능과 힘을 가지고 재겁(災劫)에 처한 조선과 우리 인류를 구원할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가 행했다는 천지공사는 신정정리공사(神政整理公事)ㆍ세운공사(世運公事)ㆍ교운공사(敎運公事) 등 세 가지이다. 신정정리공사란 신명계를 재정비하여 원한에 사무친 신명들을 해원(解寃)시켜 후천선경 건설에 참여시켰다는 내용이고, 세운공사는 세상 변화의 운도가 음시대에서 양시대로, 선천에서 후천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밝은 문명의 세상으로 바뀌도록 조정 정리하여 후천선경이 조선으로부터 비롯되도록 했다는 것이며, 교운공사란 증산교 자체의 운수가 난법(亂法) 후에 진법(眞法)이 나도록 모든 계획을 사전에 짜놓았다는 것이다. 강일순의 사상은 그가 행한 9년 동안의 천지공사 내용 속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것을 요약하면 해원(解寃)ㆍ보은(報恩)ㆍ상생(相生)ㆍ조화(造化)로 대표된다. 경전은 그가 저술한 《현무경(玄武經)》과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기록한 《대순전경(大巡典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