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의 조우 5＞ :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흐르는 등불]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1. 한국의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봤다. 2019년 부산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최근 주목받은 ‘작은 영화’이다. 독립영화는 적은 예산이라는 한계 때문에 최소한 비용으로 삶의 단면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소재가 된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도 전형적인 독립영화의 방식으로 구성되어 진행되고 있다. 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영화 속 인물에 대한 관객들의 공감과 인물들의 행동이 흥미를 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현재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어려움과 그런 현실 앞에서 겪는 혼란스러운 심정을 유쾌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2. 주인공 찬실은 영화 PD로 같이 작업하던 영화감독이 갑자기 죽게 되자 위기를 겪게 된다. 직업도, 수입도 없어진 상태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후배 배우의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남자와의 연애를 꿈꾸기도 하지만, 삶은 점점 수렁텅이로 빠진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찬실을 구원하는 것은 내면의 목소리라 할 수 있는 가상의 위로자와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이다. 영화는 최악의 상황에서 오히려 소중한 것들에 대한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인생의 역설을 보여준다. 10년 넘게 일에 중독되었으면서도 찬실의 진정한 삶의 의미는 여전히 불분명했지만 모든 것이 불안해졌을 때 삶의 진정한 목표와 의미를 찬실은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불행도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는 삶의 아이러니를 각본도 쓴 감독은 ‘찬실이는 복도 많지’라는 제목으로 표현하고 있다.

3. 독립영화가 다루는 일상의 소재는 대부분 극단적인 상황은 결코 아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찬실의 불행도 일상에서 누구나 겪게 될 수 있는 보통의 불행이다. 누구나 직업을 잃을 수 있고, 나이 때문에 설움을 받을 수 있고, 연애에서 실패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행은 겪은 사람들에게 결코 작은 일은 아닐지라도 삶의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점 때문에 관객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불행에 안달하기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찬실’의 태도는 일종의 위안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불행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그렇지만 찬실은 영웅적인 모습은 결코 아니다. 담담한 태도는 어떻게 보면 변화시킬 수 없는 무능력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찬실’은 결코 내면 속으로는 숨지 않으며 주변의 시선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 당당함이 삶의 과정을 서서히 정상적인 방식으로 복원시킨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이웃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동료들의 진정한 위로를 받아들이는 힘을 갖게 된다. 이 모두가 찬실이에게는 ‘복’이다. 외부에서 주어진 ‘복’이 아니라, 한 개인이 만들어 나가는 요란스럽지 않은 용기와 외부에 대한 개방이 가져다 준 일상의 과정인 것이다.

4.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차분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이다. 감독 김경희는 홍상수와 같이 작업했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홍상수의 ‘일상성’과 닮아 있는 면이 분명 있다. 독립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일본 영화의 메시지와 많은 유사점을 발견한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일본영화는 정치적, 사회적 배경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의 핵심은 주인공이 갖게 되는 소소한 감정과 그 감정이 만들어 나가는 작은 갈등과 치유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영화적 태도는 현실을 자신의 시선 안의 가둬 두고 바라보면서도 타인의 시선에 대한 관심 또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일종의 위로를 준다. 영화 속 인물과 위로와 공감을 교류하며 관객들은 영화를 통한 감정 치유를 경험하는 것이다.

5. 일본 영화의 두드러진 ‘개인적 특징’은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현재 내가 만나고 살아가는 직접적인 어려움과 갈등이 무엇보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일상의 문제’를 외면한 혁명은 공허한 외침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영화적 메시지의 집중을 위해서 영화 속 인물들은 지나치게 제한된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만 배치된다. 사회적 배경과 단절된 인물들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생동감이 부족해 보인다. 모든 불행은 ‘개인적’인 것임에도 불행의 현상이 개인적인 형태로만 표현되는 장면도 아쉽다. 개인의 고통을 모두 외부적 요인으로 돌리는 시선도 문제가 있지만 개인적 영역에만 머물고 있는 관점은 누군가 공감할지라도 명쾌하지 않다. 내면의 위안도 중요하지만 문제의 핵심에 대하여 질문하는 것, 이것이 ‘영화’라는 장르가 던져야 할 공공성이 아닐까?

[보보]

ㅡ 어떤 불행도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ㅡ 불행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ㅡ 당당함이 삶을 서서히 정상으로 가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