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수요일 1월 6일은 우리 시대의 가객이자 음유시인 김광석 20주기 되는 날이었습니다. 짧지만 타오르는 불꽃처럼 강렬하게 시대를 살아간 영원한 청년 김광석. 그의 생애와 노래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고단한 일상을 위로해 보고자 합니다.
1) 2016년 신년벽두부터 여러 사건들이 터지고 있는데, 김광석은 예상 밖 주제입니다!
연초부터 시작된 중국증시의 거듭되는 폭락사태와 휘청거리는 세계경제, 그저께 돌발적으로 터진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코앞에 닥친 어린이들의 보육대란으로 요약되는 <누리사업> 위기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70억 인구가 모여 사는 지구촌은 바람 잘 날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지나가겠지요?!”
벌써 20년 전에 세상을 버린 가객 김광석을 돌이켜보는 것은 나날이 강퍅해지고 팍팍하다 못해 우울하기까지 한 우리의 건조하고 삭막한 일상을 조금이나마 위무하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삶이란 것이 어느 날 문득 좋아지거나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가끔은 쉬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걸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2) 대구가 낳은 불멸의 가객 김광석의 삶과 죽음을 먼저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하겠군요?!
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에서 출생했습니다. 유년시절을 대구에서 보낸 그는 서울 창신동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중학교 때 처음 악보를 배우고 현악부나 합창부에서 활동하며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고 합니다. 그는 1982년 명지대학교에 입학한 뒤 1984년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찾사)> 창단멤버로 참여합니다.
1988년 ‘산울림’ 김창완의 권유로 그룹 '동물원'을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솔로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89년 첫 번째 음반을 낸 이후 1994년까지 네 개의 정규음반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러다가 1996년 1월 6일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하지만 그는 유서 한 장도 남기지 않음으로써 죽음을 둘러싼 의문부호가 상당기간 세상을 떠돌기도 했습니다.
3) 김광석을 음유시인이나 가객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럴 만한 사유라도 있나요?!
‘음유시인’이란 말은 노래하면서 세상을 떠도는 시인을 뜻합니다. ‘가객’은 가수라는 직업을 높여 부르는 명칭입니다. 화가라는 직업을 ‘묵객’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만큼 김광석의 노래는 오랜 세월 허다한 민초들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거리와 광장, 지하철과 장터에서 불렸던 것이죠. 저는 오래 전부터 <김광석 문학관>을 짓자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그의 노랫말은 웬만한 서정 시인들이 울고 돌아설 정도로 기막힙니다.
4) 그의 대표음반과 공연활동 그리고 대표적인 노래를 몇 곡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동물원’에서 활동하면서 두 번 앨범을 냅니다. 솔로로 전향한 1989년 제1집, 1991년 제2집, 1992년 제3집, 1994년 제4집 앨범이 세상과 만납니다. 정규음반 이외에도 리메이크 앨범인 <다시 부르기> 1집과 2집을 1993년, 1995년에 발표합니다. 1991년부터 ‘학전 소극장’ 같은 곳에서 관객들과 직접 대면하여 1995년 8월까지 1,000회 공연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를 음유시인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동물원’ 시절 대표곡은 <거리에서>와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입니다. <너에게>와 <그대 웃음소리>가 1집 대표곡이고, 2집에는 <사랑했지만>과 <사랑이라는 이유로>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김광석은 제2집까지는 서정적인 발라드를 불렀으며, 3집부터 포크풍의 노래로 전환합니다. 3집에는 <나의 노래>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가 수록돼 있고, 포크 음악경향이 한결 농후해진 4집에는 <일어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이 수록돼 있습니다. <김광석 다시 부르기> 1집과 2집에 <이등병의 편지>,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서른 즈음에>, <먼지가 되어> 등이 실려 있습니다.
5) 김광석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언 20년인데, 그를 추모하는 행사 같은 게 있었습니까?!
우선 대구부터 생각해 볼까요. 2010년 대봉동 방천시장에 350미터 길이의 ‘김광석 거리’가 조성되어 그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정훈교 시인의 시와 다채로운 벽화와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구 시민들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김광석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대구 중구청은 내일 1월 9일 오후 <김광석 거리 콘서트홀>에서 '김광석 다시 그리기 콘서트'를 연다고 합니다. (얼마 전 <시인보호구역>이란 시집을 출간한 정훈교 시인은 김광석 거리가 상업주의로 인해 시인과 가객, 예술이 사라져버린 폐허가 되었다는 뼈아픈 일갈을 남겼다.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1월 6일 <가수 김광석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과 ‘가든 테아터 극장’에서 20주기를 기념해 추모제와 공연을 열었습니다. 생전 그가 속했던 그룹 ‘동물원’ 탄생과정과 뒷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이 오는 1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아트센터에서 진행된다고 합니다. KBS 2TV <전설을 노래하다-불후의 명곡>은 이달 중순 <김광석 특집>을 녹화해 그와 그의 노래를 추억하는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6) 사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김광석의 노래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도 노랫말이 아름답고 깊이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서른 즈음에>는 2007년 음악 평론가들이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한 곡입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어휘로 써내려간 시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진한 아쉬움, 그러니까 담배 연기처럼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청춘과 이별의 정한이 사무치게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이등병의 편지>는 입대를 눈앞에 둔 청춘들을 위로하는 노래였습니다. 훈련소로 떠나기 전 부모님과 작별하고, 정거장에서 친구들과 아쉬움을 나누는 장면,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훈련소 병영생활에 투영되는 이등병의 자화상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있습니다. 짤막한 동영상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이렇게 간결하고 가슴 저미게 스무 살 청춘의 아픈 작별과 또 다른 희망을 그려낸 노래는 많지 않습니다. 최백호의 투박한 <입영전야>와 비교하시라.
김광석의 노래는 남녀와 세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호소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노랫말도 그렇지만 복잡하지 않은, 더러는 상당히 반복되는 단조로운 듯 휘감기는 곡조에도 원인이 있는 듯합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같은 노래는 G, D, Em7 세 개의 코드로 훌륭하게 소화해낼 수 있을 정도로 단순 소박하고 평안합니다. 하지만 거기 담긴 가사에는 차마 말로 다하지 못할 실연의 아픔이 농축되어 있지요. 아마 이런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의 노래는 여전히 우리 한국인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 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 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