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날의 여러가지 상념들
새벽에 소담스럽게 내린 눈은 우중충하고 회갈색으로 치장된 동네 골목을 하얀 세상으로 바꿔놓았다. 해 뜨기 전 영하의 매서운 바람 줄기들이 간간이 몰아쳐 왔지만, 모처럼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겨울 풍경과 추위를 맛보는 것 같아 가슴 속이 다 시원하다. 그래! 역시 겨울은 겨울 다워야지 뇌까리며 집 앞 골목에 주차되어있는 승용차로 향했다. 빗자루로 차량 위에 쌓인 눈을 쓸어내릴 때 막 솟아오른 태양의 빛살이 서설(瑞雪) 위로 부서져 내렸다.
새벽에 내린 눈은 폭설 수준은 아니어서 통행에 큰 불편을 주지는 않을 것이고, 한낮의 햇볕과 제설 조치로 그 순백의 위의(威儀)를 금세 잃을 것이다. 문득 오늘만큼은 눈으로 인한 불편이 조금 있더라도, 순백의 모습 그대로 쌓여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뭉클 치밀어 올랐다. 잠시 눈 털기를 멈추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요즘은 회상도 잘 되지않던 유년시절의 고향 풍경 한 장면이 놀랍게도 선명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사랑방 따뜻한 아랫목에서 사촌 형제들과 잠들었던 나는 새벽녘의 아득한 호통소리에 일어났다. “야! 이눔들 빨리 문 열지 못할까!” 막내 삼촌의 목소리였다. 밤새도록 마을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새벽에 들어오는 삼촌의 목소리는 당연히 안채 쪽이 아니라 밖의 사랑방 툇마루 문 앞이었다. 황급히 툇마루 쪽 문고리를 잡고 열려 했으나, 누군가 반대로 미는 듯 꼼짝도 안했다. 뚫린 창호지 사이로 밖을 내다보니 앗! 툇마루에 눈이 쌓였는데, 거의 내 눈높이였다.
깨어 일어난 세 명의 사촌형제들과 낑낑대며 문을 밀었으나 겨우 손바닥 만한 틈새만 벌어졌다. 결국 삼촌과 사촌들의 안팎 합동 제설작업으로 툇마루 문짝은 기능을 회복했는데, 삼촌의 어깨너머로 펼쳐진 광경은 놀라웠다. 온통 새하얀 천지 속에 묻혀버린 마을과 눈더미 둔덕 위에 두더쥐 굴처럼 파여 진 삼촌의 귀가 흔적뿐이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폭설의 기억이다.
21세기는 기후마저 낭만과 흥취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인가. 최근 지구온난화의 급속화는 창졸간에 무자비한 천재지변을 일으켜 세상에 큰 상처를 남기고 있다. 나의 유년시절 같은 아름다운 추억이 새겨진 사계절이 너무나 그립다. 초가집 처마에 일렬로 매달린 청정한 고드름을 따서 빨아 먹으면, 지푸라기 맛과 함께 느껴지던 폐부까지 시린 고향의 정(情). 봄이면 진달래 따 먹고, 여름엔 툇마루 건너 오솔길 가에 흐르는 개여울에서 멱감고, 가을이면 휘영청 밝은 성황당 비탈길에 질펀하게 떨어진 알밤들을 줍던 그 무위자연(無爲自然) 속의 세상이 너무나도 그립다.
이제 유년시절의 그 고향은 사라지고 없다. 자본주의와 과학의 발전은 도시와 농촌의 경계만 무너뜨린 것이 아니다. 내 소년기의 낭만이 서린 추억과 향수마저 앗아 가버린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우주의 시계는 유장하게 변함없이 순환하고 있을 것이다. 백 년도 안되는 나의 시공간(時空間) 경험은 갠지스 강의 모래 한 알도 안되는 미미한 한 순간의 숨결일 뿐이다. 잠깐 동안의 유년 추억 회상을 핑계로 장탄식하며 암울해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자동차 위의 백설도 잠시 후 햇볕에 녹아 물로 흐르면, 그 또한 어느 한 순간의 무정한 물리적 변주(變奏)인걸 어찌할 것인가. 결국 모든 사물의 양태는 자연의 순리로서 영위되는 법.
아침 골목의 자동차 눈 털기는 무언가 힘찬 삶의 시동걸기 같아서 상큼한 기분이 든다. 겨우내 세차 한번 안해서 땟국물이 줄줄 흐르던 차체가 잠시 백설에 은폐되어 있다가, 빗질에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순간 ‘진실은 항상 지저분한 것인가?’라며 피식 웃었다. 이런! 평소 깔끔하지 못한 주인의 게으름을 탓해야지 하는데, 문득 하이쿠(俳句) 한편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진흙에 내린/ 아름다운 눈송이/ 진흙이 되네 (泥に降る雪うつくしや泥になる)
- 오가와 게이슈(小川輕舟·1961~)
게이슈는 이 시를 “진흙 바닥으로 내리는 눈은 흑백의 조화로 아름답게 보인다. 그런데 그 눈은 결국 진흙 속으로 녹아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나는 텅 비어 있다. 그러나 이 시를 통해 가득 채워졌다” 라며 창작의 희열을 토로했다. 그렇다. 나 또한 게이슈처럼 무욕(無慾)의 시심으로 지금 이 순간 나를 감싸며 휘돌고 있는 모든 삼라만상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자동차에 쌓인 눈을 빗자루로 털며, 백설처럼 하얀 마음으로 그간 시든 서정(敍情)을 모처럼 일깨우고자 노력하기로 다짐해 본다.
무욕의 시심을 떠올리자 또 한가지 연상되는 한시 한구절이 있다.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 왕유(王維)가 종남산에 있는 자신의 망천(輞川)별장에서 지은 시다.
中歲頗好道 晩家南山陲 (중년에는 자못 도를 좋아하다 만년에는 종남산 기슭에 집을 지었다.)
興來每獨往 勝事空自知 (흥이 나면 매양 홀로 거니는데 유쾌한 일은 나만이 안다네.)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가다가 물 다하는 곳에 이르러 앉아서 구름 이는 것 바라본다.)
偶然値林叟 談笑無還期 (우연히 숲 속의 늙은이 만나면 얘기하고 웃느라 돌아가기를 잊는다.)
- 왕유(王維, 699~759) ⌜종남별업(終南別業)⌟
왕유는 불교에 심취해서 시불(詩佛)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는데, 말년에 정계를 떠나 산자수명한 종남산에서 자연과 벗하며 무욕의 삶을 영위하면서 지은 시다. 그 경지를 절묘하게 나타낸 부분이 ‘행도수궁처 좌간운기시(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이다. ‘수궁처’는 산속의 물길이 시작되는 수원지를 말하는데, 그곳까지 뉘엿뉘엿 찾아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감상한다는 기막힌 표현은 한시의 명구(名句)로 인용되고 있다. 21세기 후학이지만 나 또한 은퇴한 형편으로서 고인(古人)처럼, 저 그윽하고 유현(幽玄)한 곳을 떠돌며 유유자적하고 싶다. 어느 산록 골짜기에서는 종일 햇볕을 쬐며 꾸벅꾸벅 졸고 싶고, 이름 모를 황량한 구릉에서는 함박눈을 맞으며 중얼중얼 옛시를 읊조리고 싶다.
모처럼 내린 새벽 눈에 상쾌했던 기분이 점차 침중해져 갔다. 골목의 자동차에 쌓인 눈을 빗자루로 털며 여러 가지 상념들이 가슴 속에 출렁인다. 그간 바람 앞의 등불처럼 깜빡였던 얄팍한 소신들이 부끄러워졌다. 지나갔지만 잊을 수 없는 ‘마음 속의 상흔(傷痕)’으로 남은 ~ 어쩌면 아름다운 회한으로도 치환할 수 있는 ∼ 여러 조각의 기억들이 슬픈 표정으로 떠올랐다. 그 상념의 편린들은 마치 게이슈의 하이쿠 ‘진흙과 눈의 윤회’ 같은 얼굴로 뭉쳐지더니, 빗질하는 자동차 윈도우에 주마등처럼 비치며 사라져 갔다. 잠시 우두커니 서서 “무욕이 해탈인가?” 반문해 보았다. 그러나 이 골목에서 종남산은 너무나 멀고 먼 피안의 저쪽이었다.
[2026.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