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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맛집 그리고 추억 스크랩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54) 바이주 `양하대곡`...고량주는 잊어라
ginasa 추천 0 조회 854 17.02.06 09: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54)

부드럽게 번지는 향긋함, 고량주는 잊어라
바이주 '양하대곡'


2001


고량주에 취해 길바닥에 주저앉은 일은 치욕이었다. 술 먹고 쓰러져 본 적 없는 주당의 자부심에 먹칠을 한 사건이었다. 40도 넘는 알콜의 독기는 목구멍을 태우는 듯했다. 술은 다 그런 줄 알았다. 대학에 갓 들어간 애송이가 연거푸 들이킨 고량주는 두 병을 넘겼다. 녹색 병에 붉은 라벨이 붙은 국산 고량주만 떠올리면 손사래를 쳤다. 동해·수성·풍원 등 당시 나오던 고량주들도 마찬가지다. 아픔의 각인은 오래갔다. 고량주는 냄새도 맡기 싫었다.


중국을 드나들었다. 세월은 기억마저 희석시키는 모양이다. 끈질기게 술을 권하는 중국인의 성의마저 무시할 순 없었다. 게다가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곁들이는 술로 바이주(白酒) 말고 무엇을 마시란 말인가.


중국 바이주는 기억 속의 거칠고 역한 고량주와 달랐다. 짙은 향이 풍기고, 독하면서도 매끄럽게 넘어가는 맛을 새롭게 발견했다. 넓디 넓은 중국에서 나오는 술을 무슨 수로 다 맛볼까. 좋다는 수정방과 오량액, 마오타이 정도가 익숙하다. 가끔 공항 면세점에서 한 병씩 사들고 나오곤 했다.


중국인들의 수사법은 우리와 다르다. 시공간의 스케일도 남다르다. 봉황의 날갯짓 한 번으로 구천리를 날고 눈물 한 방울이 바다를 메운다는 뻥을 이제 친근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헌데 중국술 포장을 뜯을 때마다 박스에서 느껴지는 뻥과 허세는 아직 적응이 안 된다. 온갖 잠금장치가 박혀있는 요란한 포장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 속에 담겨있는 술병은 실망할 만큼 작다. 귀한 술에 대한 예우인지 내용을 강조하는 형식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워낙 가짜가 많아 구분하기 위한 고육책이란 설만이 수긍될 만하다.


중국인과의 교류가 많아지다 보니 전국에 양꼬치 집이 늘어났다. 웬만한 동네에서는 양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시안의 회족 골목이나 쓰촨, 칭하이 성에서 맛보았던 양꼬치 맛이 얼추 재현되는 느낌이다. 향신료가 들어간 중국 음식엔 짙은 향의 바이주가 제격이다. 음식과 술이 어울리는 마리아주란 중요하다. 맛 역시 균형과 조화의 접점에서 극대화되기 마련이니까. 오랜 세월 살아온 사람의 입맛이란 좋은 맛을 저절로 걸러내 고착화시킨다. 입안의 혀는 먹는 순간 호불호를 직감한다. 눈앞에 보고 있는 모든 음식의 조합은 최상의 선택이 맞다.


양꼬치의 유행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중국 바이주의 소비도 급증했다. 양꼬치 집에서 팔리는 고량주를 유심히 보았다. 연태고량주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많은 중국 술 가운데 특정 고량주만 선호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국내 거주의 역사가 긴 화교의 대부분이 산둥성 출신이라는 점이다. 자연히 연태 지역에 생산되는 술이 국내에 들어오게 됐고 고량주의 대명사처럼 통용되었을 뿐이다.


베이징에서 만들어지는 이과두주도 국내에서 익숙하다. 식초병 같은 병에 담긴 고량주로 오래전부터 대중주로 자리 잡았다. 값이 싸 외려 가짜가 있을 수 없는 안심의 고량주로 통용된다나. 이유야 어떻든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고량주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중국 사람들조차 다 맛보지 못한다는 다양한 바이주다. 와인에 빠져 곁에 있는 이웃의 술은 알지 못한 채 지냈다.


 


[흙구덩이에서 숙성시켜 묵직한 광물성 향]


2002

2003


바이주를 좋아하는 이들이 늘었다. 수많은 애호가와 동호인 모임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바이주 동호회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마신 술이 늘어나며 지역별 다채로운 향과 맛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동해고량주와 이과두주, 연태고량주에 젖은 입맛은 벗어버려도 억울할 게 없다. 드넓은 중국에는 술 또한 많아도 너무 많았다.


바이주는 호불호가 분명한 술이다. 대개 짙은 향과 높은 도수에서 오는 거부감이 있다. 익숙하지 않은 향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는 이들도 있다. 좋은 바이주는 마개를 따는 순간 향이 방에 가득 찰 정도로 번진다. 문 바깥에서도 술 향이 느껴질 정도다. 대개 단번에 들이키는 술의 독기는 입 안은 물론 식도까지 타들어갈 듯 화끈하다. 바이주는 이런 향과 도수 때문에 마시는 것이다.


수수나 쌀, 밀, 옥수수를 누룩으로 발효시킨 술이다. 발효의 신비를 말로 바꿀 재주가 달린다. 해와 땅이 기른 곡물에 물과 효모로 인간이 익힌 게 술이다. 온 우주의 에너지가 응축되었을 액체의 변신은 시간이 더해져야 완성된다. 와인마냥 오크 통을 쓰지 않는 바이주는 흙구덩이 속에서 숙성되는 점이 독특하다. 바이주의 향은 매우 복합적이다. 곡물과 누룩이 어울려 과일과 같은 달콤한 향을 풍긴다. 물과 흙이 섞여 더해진 광물성 향은 묵직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불을 당겨 증류된 휘발성의 강렬한 향이 섞이게 된다.


숙성의 과정과 시간이 길수록 맛과 향은 진해진다. 바이주는 도수가 높을수록 고급품 취급을 받는 경향이 있다. 30도 이상의 술만을 바이주로 인정한다. 장향의 술은 53도, 농향은 61도까지 올라간다. 들이키는 순간 타들어갈 것 같지만 번지듯 잠잠해 지는 게 바이주의 매력이다. 짙은 향이 아니라면 독함도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수수를 황국으로 발효시켜 미인천 물로 빚어]


수요가 있다면 공급이 따르게 마련이다. 최근 좋은 바이주를 들여오는 업체들이 늘었다. 예전에 비해 다양한 술이 눈에 띄게 된 변화다. 마음에 드는 바이주를 발견했다. ‘양하대곡(洋河大曲)’이다. 온갖 술을 취급했던 주류업계의 한 전문가가 평소 점찍어 뒀던 중국 술을 들여왔다. 술에 관한한 그보다 더 많이 아는 이를 보지 못했다. 평생의 경험과 확신으로 선택한 술은 역시 맛있다.


양하대곡은 중국 장쑤(江蘇)성 쓰양(泗陽)현 양허(洋河)진에서 만든다. 황하와 양자강이 연결되는 운하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당대부터 교통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상인의 도시이기도 한 이곳에서 술이 빠질 리 없다. 명·청 시대엔 각처에서 술 빚는 이들이 모여들어 양조업이 발달했다. 천리 밖에서 술을 사러 온 상인들로 북적였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청나라 강희제가 “맛과 향기가 순한 진실로 아름다운 술”이란 친필을 남기기도 했다나. 황제의 인정을 받은 술의 후광효과는 말 하나마나다.


줄잡아 3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온 양하대곡이다. 공장의 규모가 커져 중국 전역에 공급될 만큼 큰 양조회사가 됐다. 등수 매기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중국의 7대 혹은 10대 명주로 친다. 자료를 보면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 같다. 중국의 국가공인 명주 리스트에 들어있는 걸 확인했다.


양하대곡은 장쑤성 특산의 수수가 바탕이다. 보리와 밀, 완두콩도 섞어 좋은 누룩인 황국으로 발효시킨다. 술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인 물도 빼놓을 수 없다. 이름도 이쁜 ‘미인천’에서 길어온 물로 빚는다. 양하 지역의 붉은 점토층은 숙성을 위한 발효 구덩이가 된다. 증류된 술을 거르는 필터 역할도 겸한다. 곡물과 물, 토양의 절묘한 조화가 이루어지는 선순환이다.


양하대곡은 수정방, 오량액 같은 고급품인 몽지람에서부터 저렴한 술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장쑤성 일대는 예전부터 도수가 높지 않은 황주의 산지로 유명했다. 전통은 그대로 이어진다. 도수는 38도 정도로 여느 바이주 만큼 독하지 않다. 해지람, 천지람, 양하대곡…. 어느 것을 선택해도 향긋한 향이 부드럽게 번진다. 역한 맛도 덜하다. 우리 음식과 곁들여도 큰 거부감이 없는 이유다. ●




윤광준 ● 윤광준
* 글 쓰는 사진가.
*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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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출처 / 온라인 중앙SUNDAY / http://sunday.joins.com/archives/143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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