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5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솜이불을 덮었습니다. 올 봄 장롱 속에 고스란히 묵혀두었던 솜 이불을 새로 솜을 타고 이불 호청을 다시 입혔거든요. 그리고 오늘 중부 지방에 첫 얼음이 얼었다는 뉴스에 거실에서 뒹굴 듯 밤새 몸부림치는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같이 덮고 자던 이불을 내어주고 새로 만든 이불을 꺼내 덮었습니다. 이불 속은 정말 포근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요. 새 이불에서 몽롱한 어머니의 젖 내음이 희미하게 납니다.
그러고 보니 결혼을 하고 꼭 한 번 솜 이불을 덮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초 겨울이었고 친정 어머니께서 처음 우리 집을 다녀가셨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 날 밤 방은 갑갑하다고 마다하셔서 하는 수 없이 거실에 잠자리를 봐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거실에 나란히 누웠었지요.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 깜빡 잠이 들었던 가 봅니다. 그런데 잠결에 몇 번이나 베란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습니다.
새벽에서야 어머니의 곤한 숨소리에 이번에는 내가 잠이 깨었지요. 그리고 잠드신 당신을 내려다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평생을 난전에서 살다시피 하셨던 당신께는 아파트 난방이 갑갑하셨던 겁니다. 누워있으면 더워서 답답하고 베란다 문을 열어두자니 딸 자식이 신경 쓰여 행여나 하는 노파심으로 밤을 홀딱 새고 말았던 거였습니다. 그러시고도 다음 날 따뜻한 아파트에 살아서 너무 다행이라며 나의 두 손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져 주셨지요.
그 후로 한번도 솜 이불을 꺼내 덮은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아파트라 굳이 두터운 솜 이불을 덮지 않아도 매서운 추위에도 끄떡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솜이불은 장롱 안에서 고스란히 한 해 두 해를 묵히며 애물 단지 아닌 애물 단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올 봄 집 정리를 하다 과감하게 자리만 차지하고 앉은 이불을 버리려고 꺼냈다가 15년이 지나도록 좀 하나 쓸지 않고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이불을 보니 괜히 코끝이 찡했습니다.
분명 당신께서는 이불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막내딸의 습관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겨울이면 여러 벌의 내복을 껴입고도 추위에 약한 당신의 딸이 안쓰러웠을 거구요. 그래서 없는 살림에도 한 여름에 결혼하는 딸에게 가장 따뜻하다는 목화 솜으로 이불 한 채를 들려서 시집을 보내셨겠지요. 추운 한겨울에도 당신의 따뜻한 품처럼 따스한 잠자리에서 춥지 않게 잠들기를 소망하셨을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당신의 못난 딸은 이불을 볼 때마다 두텁고 무겁기만 하다고 천대 아닌 천대를 했고요. 그런데 막상 버리려고 꺼내놓고 보니 신기하게도 처음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군 소리 없이 묵혀있던 이불을 만지는 순간 당신의 변함없는 사랑 같아서 차마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터운 솜을 새로 타서 얇게 누비고 깨끗한 호청으로 정성을 들이니 도깨비 방망이처럼 이불 세 개가 뚝딱 새로 생겼습니다.
비록 모양은 달라졌지만 당신의 사랑이 3배로 불려진 냥 솜 이불을 파고드는 온 몸과 마음에 행복이 물씬 차 오릅니다. 그리고 내일 새벽이면 전국이 영하 권으로 떨어진다는 뉴스를 접하니 새삼 내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오늘같이 차가운 날 물 질에 퉁퉁 붓고 싸늘하게 얼어버린 당신의 붉은 손등이 떠오릅니다. 당신의 늦은 고생이 자식들에게 나눠주신 사랑 같아서 따뜻한 이불 속에서도 가슴 한 구석에 차가운 겨울 바람이 휑하니 뚫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정작 세월이 흐를수록 놀라운 것은 연세가 드실수록 한 겨울의 고드름 같이 커져만 가는 자식에 대한 당신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끝없는 사랑을 받기만 하는데도 당신 앞에 서면 더욱 작아지는 내 모습이 자꾸 겹쳐집니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서 늦게나마 철이 들어 가는 걸까요? 다만 당신의 변함없는 사랑처럼 당신의 모습도 변함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작은 소망은 이보다 더 큰 바램 또한 앞으로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도 차가운 바람에 혼자 서 계실 당신을 감싸 드리고 싶은 마음에 애 궂은 이불만 끌어당겨 집니다. 몸이 따스해질수록 자꾸만 당신의 살가운 사랑이 감치는 것 같아서 딸 자식이 편히 잠들기를 소망하며 당신이 해 주신 따스한 이불 속에서도 오늘 밤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무한한 사랑 앞에 세월이 갈수록 겨울이 다가올수록 친정 어머니에 대한 안쓰럽고 애틋해지기만 하는 내 사랑이 변함 없기만을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