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프로야구를 즐깁니다. 부산에 살고 있는 저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이언츠의 오랜 팬입니다. 그런데 30년 동안의 프로야구 기간 중에 관심이 덜했던 시즌이
세 번 있었는데 올해도 별 관심이 가질 않는군요. 이유는 이 세 번의 시즌은 자이언츠의
걸출한 선수들이 별로 기분 좋지 않게 트레이드된 때입니다. 최동원, 마해영, 이대호...
이런 선수들이 사라지니 특기할만한 기록들도 보이지 않고 단지 게임의 승패만 봐야하니까
저 같은 사람은 흥미가 현저히 떨어지는군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자이언츠는 포스트 시즌에 진출을 하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저 같은
사람이 야구장에서 직접 야구경기를 즐기기에는 오히려 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적이
안 좋으니 언제든 가기만하면 손쉽게 표를 구할 수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입장권
구매하려면 하늘의 별따기라 야구장 가기가 너무 힘들어져 버렸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기는 오래전에 사직에서 벌어졌던 타이거즈와의 게임이었는데, 경기내용보다도 양측 팬들끼리
엄청난 싸움이 벌어져서 아이들 다칠까봐 전전긍긍하며 몇 시간동안 오도 가도 못하고
식겁을 했던 적이 있었지요. 암튼 그 당시에는 야구장 풍경이란 게 완전 새까맣게 생긴
아저씨들과 음주, 담배 연기...그러다 경기가 꼬이기라도 하면 여기 저기 날아드는 술병,
물병, 싸움, 우산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다녀야 소주병에 안 맞아 죽는다는 얘기까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십년 이전의 우리 모습들이 야구장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가관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미친 사람들 같기도 했고 몰상식한데다 툭하면 폭력을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년(2011년)에 포스트 시즌 입장권이 생겨서 오랜만에 사직 야구장엘 갔습니다. 내야 좌석에
앉았는데 TV 중계만 보다가 현장에서 본 야구장 풍경에 입이 쩍 벌어집니다. 새까맣고
고주망태인 아저씨들은 잘 안보이고 애기들 손잡고 온 젊은 부부들과 연인들은 물론이고
웬 젊은 처자들이 그리 많은지 엄청 놀랐습니다. 와! 요즘은 처자들도 이렇게 야구를
좋아하나 싶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저 같이 올드한 사람들은 도저히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집니다. 각 선수들마다 응원가가 따로 있어 나올 때마다
그 응원가를 부르고 1루 견제할 때마다, 마! 하고 외쳐야하고 공수가 바뀔 때는
장내 카메라가 돌다가 어떤 짝을 비추면 뽀뽀를 해야한다던가 급기야 7회가 넘어가면
머리에 비닐봉지도 덮어써야하고. 암튼 경기는 뒷전이고 3회 정도 넘어가니 이미 목이
맛이 가버려서 말도 안 나오는겁니다. 마! 하는 건 들어갈 박자를 못 맞춰 헷갈리기
일쑤인데다, 혹시 카메라라도 비출까봐 전전긍긍...오랜만에 야구 보러갔다가 너무
달라진 관람 문화에 완전 멘붕이었습니다.
어쨌든 처음에는 곁의 젊은 여학생들이나 처자들이 야구 내용은 잘 모르면서 그저 선수
한명 한명에 열광한다든지, 노래하고 춤추는 데만 집중하는 것 같은 모습이 생경스럽고
조금은 불쾌한 마음에 '뭐야! 경기 룰도 잘 모르는 주제에' 이런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만
3회가 조금 넘어서고 보니 묘하게 이런 분위기에 동화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더군요. 경기 후반이 되니 경기장 구석구석의 사람들과 행동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느 순간 야구장은 동질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하나의 사회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옛날과 달리 남자들은 여자들과 아이들을 배려해주고 있고, 경기 룰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히 설명하는 모습도 보이고, 어쩌다 술 취한 관중이 플레이에 화가 나서 물병을
던져도 모두가 합심해서 막아서는 모습도 보입니다.
제가 느낀 것은 적어도 이 공간과 이 시간 속에서 모두가 행복해 한다는 것입니다.
야구장을 벗어난 순간부터 각자에게 직면한 그 무엇들이 있다는 건 분명하겠지만,
짧은 그 몇 시간 동안의 행복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과 이해하고 맞추려는 노력으로
말미암은 것일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란 것도 알고 보면 그런 노력들이
부족해서 서로를 괴롭히고 급기야 스스로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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