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텃밭에서 공동밭조장이란걸 맡다보니 공동밭일지를 쓸 요량으로 개인 밭에 대한 기록은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강동쪽 공동밭에 약간의 불상사가 있어서 경작계획자체가 무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바람에 공동밭일지를 쓰는 것도 좀 황망한 형편이 되었네요.
중계동 백사마을이란 곳에서 5년째 텃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올해 개인텃밭은 규모를 조금 늘려 제 동료와 둘이서 같이 경작하고 있어서 기록이나 일지는 초보농군에게 맡겨 놓았지요. 그 친구꺼 인용하면 제가 명색이 텃밭스승인데 제자논문 표절한 넘이 될까봐 얼숲이나 미니홈피 등에 올렸던 자료들을 대충 엮어봤습니다. 텃밭일지라기보다는 기냥 텃밭가꾸기를 취미로 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 정도로 읽으시면 됩니다.
- 이건 텃밭일지와 경작보고서를 겸해서 쓰는 건데요. 턱걸이 수료하면서 보고서까지 날림으로 하면 안 봐주실라나??
텃밭 가는 길
텃밭이 있는 백사마을이란 곳부터가 압축성장의 그늘이 드리워진 시대의 자화상을 담고 있는 곳입니다. 1967년 도심 재개발을 위해 용산, 남대문, 청계천에 살던 분들을 이주시킨 곳인데요.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어서 여기 사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또 다시 떠나야할 운명과 마주하고 있지요. <백사마을 가기>
이렇게 예쁜 길을 지나노라면(사진 왼쪽) 길 옆에 백사마을의 전경(사진 오른쪽)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봄 꽃이 만개한 백사마을은 참 예쁜데, 곧 사라진답니다. 이미 많은 집들이 비어 있어 보는 이의 마음도 허전하지요.
만발한 꽃과 우거진 신록에 묻힌 마을을 지나면 제 텃밭이 있는 천수텃밭농장에 도착합니다. 불암산을 등지고 있는 먹골배 과수원이라 경치가 참 좋지요(아래 사진 왼쪽). 제가 사는 집에서는 걸어 20분 쯤 거리여서 배꽃이 한창일 때는 막걸리 한 통 싸들고는 해 질무렵에 가서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 아랴마난,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야 잠 못 드러 하노라."를 읊어대며 신선놀음을 흉내내보기도 하지요.
텃밭농장 옆길이 불암산 등산로여서 텃밭 오가는 길에 불암산에 올라보기도 합니다.
등산로 초입에 심어놓은 밤나무 아래에는 평상들이 있습니다(위 사진 오른쪽). 여기가 밭에서 딴 푸성귀들을 가지고 잔치를 벌이는 곳이지요. 6월 초순경 밤꽃이 만발할 때는 오묘한 밤꽃향이 지글대는 삼겹살 냄새를 가려준답니다.
지난 해 농사는
이 곳에서 몇 해째 작은 텃밭을 하다 작년에는 좀 새로운 작물에 도전해보자는 뜻에서 열매채소를 집중적으로 해봤답니다. 오이나 가지, 토마토는 그 전부터 해왔던터라 참외나 수박같은 걸 키워볼 요량을 낸거죠. 참외하고 단호박은 비교적 성공작이었습니다. 각각 모종 2개씩을 심었는데 참외는 10여개, 단호박은 제대로 큰 4개와 부실한 3개를 얻었습니다.
수박모종은 3개를 심었는데 철을 놓쳐서 늦게 심은 탓인지 안타깝게도 모종 2개에서만 5개를 수확했습니다. 크기도 일반 수박에 훨씬 못미쳤구요. 때깔은 보기 좋았지만 맛은 그야말로 화중지병 수준이었네요.
<왼쪽 위는 단호박, 왼쪽 아래는 참외>
농사를 도시의 삶 안으로
올해 도시농부학교에 가게 된 것은 날림 자습시대를 마감하고 작물 재배에 대해 제대로 배워보자는 뜻이었습니다. 귀농 귀촌을 목표로 삼는 분들이 많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도시 안에 농사를 끌어들이는 일을 해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 생태의 근간이 흔들리는 위기의 시대를 맞아 농사의 근본을 제대로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데 완전히 공감하지만 모든 사람이 농사를 하고 살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한 만큼, 현실에 맞는 대안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작은 텃밭이 딸린 타운하우스형 패시브하우스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수직농이나 수경제배도 해 볼 요량입니다. 농사가 작물을 키운다는 의미도 있지만 생명을 키우는 과정이 곧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단절이 깊어지고 있는 자연과 인간의 소통 기제를 회복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잠깐
패시브하우스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전시회에 함 가보심이....
건축물은 전 세계 모든 자재의 40%를 차지하고, 에너지 소비의 40%, 온실가스 20%이상을 방출한다네요. 그래서 한국YMCA가 국내에서는 처츰으로 건물에너지 효율화의 획기적인 기술로 일컬어지는 '파시브하우스'(Passivhaus) 건축전시회를 연답니다.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파시브하우스' 건축을 도입한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건축가 21명의 작품과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 11명의 저에너지건축물을 함께 전시한답니다. 더불어 코뮤니티 활성화와 재개발, 재건축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코하우징(co-housing) APT, 주택조합 건축물의 사례도 함께 나눈답니다.
6월 8일부터 11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다네요
이제부터가 텃밭일지
사설이 길었군요. 12-3평 쯤 되는 제 개인밭에는
- 4월 2일
첫 삽을 떴다. 가운데 끼기 싫어서 모서리 쪽에 자리잡았는데 약간 경사지에 포크레인으로 새로 파서 만든 곳이라 토질이 별로 좋지 않다. 사토질에 거름기가 거의 없다. 땅콩 많이 심고, 거름도 많이 줘야겠다. 20kg 퇴비 2포대를 골고루 섞고 흙을 살짝 뒤집어 주고 EM효소를 희석해서 골고루 뿌렸다.
- 4월 10일
상추모종을 심고 상추와 아욱, 열무와 달랑무를 파종했다. 감자도 심었다. 올해는 박영제 선생께 토종 모종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로 그리 많이 심지는 않았다. 희석한 목초액을 전체적으로 뿌려줬다.
- 4월 13일
사무실에서 9명이 참가한 도시농부학습모임을 만들고 첫 모임을 가졌다. 학습모임에 참여한 직원들과 함께 사무실 뒤편 재개발예정지에 1평짜리 텃밭을 만들고 상추, 부추를 파종했다.
- 4월 16일
수원대텃밭에서 박영재님이 키운 구억통배추와 산청청상추 모종을 가져와 심었다. 강동텃밭에 널린 딸기를 캐와서 아주심기를 했다.
- 4월 24일
토요일 모임에 가지 못해 일요일에 강동텃밭을 찾았다. 앗뜨! 이거이 뭥미??? 공동텃밭 전체에 옥수수와 땅콩이 심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후에 개인밭에 가서 고추, 오이, 호박, 가지, 토마토를 심고 북주기를 했다.
- 4월 27일
사무실 뒤편에 밭을 조금 더 만들었다. 여기에서도 삼겹살 파뤼를 할 수 있도록 상추와 들깨, 쑥갓, 고추 등 쌈채 모종을 심었다.
- 4월 30일
특별한 일은 없다. 땅 고르고, 물 주고, 고추 모종 2개가 이승을 하직하여 그 자리에 피망을 심었다.
- 5월 7일
모종으로 심은 상추에서 첫 수확을 거뒀다. 구억배추도 그냥 쌈채처럼 먹어보기로 해서 잎을 조금 따봤다. 산청 청상추는 상추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살아 있다. 구억배추도 속 노란 배추와 달리 풀맛이 느껴진다.
- 5월 14~15일
참외를 심으려고 남겨 둔 땅에 오이 모종을 조금 더 심고. 들깨 모종도 몇 개 심었다. 이제 텃밭은 2평 정도만 남아 있다. 여기에 토종 참외 모종을 받아서 심어야하는데 모종을 받을 날이 기약이 없단다. 그냥 사다가 심어야 할까? 상추가 풍성해져서 같이 하는 동료와 나눴는데도 양이 꽤 된다.
- 5월 22일
열무와 달랑무를 솎았다. 무성해진 쌈채소까지 수확하니 이래저래 장바구니 세 개쯤 되는 양이다. 이걸 어떻게 다 처치하지? 다음 날 베낭에 싸가지고 사무실에 풀었다.
- 5월 25일
사무실 텃밭모임날이다. 김희수선생을 모시고 강의를 들은 뒤 6시 넘어서 삼실 뒤편 밭에서 삼겹살 파뤼를 하기로 했다. 삼실 밭은 땅이 척박해서 생각만큼 크지 않는다. 결국 강동밭에 SOS를 쳐서 만농밭장 밭의 쌈채를 공수하기로 했다.
<여기는 불암산 아래 밭이랍니다>
<여기는 삼실 뒤편 밭이고요>
이상 경작보고서와 텃밭일지였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 감사드립니다.
10기 도시농부 동기들,
그리고 생명을 사랑하는 벗들 모두
풍성한 삶이 되시기를.....
첫댓글 능력많고 솜씨좋은 공동텃밭 팀장님...
님은 분명 텃밭농사의 달인이십니다.
남들은 한개도 힘들어 하는데 무려 세군데나 농사를 짓다니요?
평소에 조용조용하면서도 할말은 다하고,
별로 티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팀장님을
정말 존경합니다. 제가 명목상 밭장을 맡고 있지만 팀장님이야말로 진정한
밭장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함께 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