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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휴대용 잘 휴대하고 다니세요. (예) 그 교재는 교재대로 가지고 다니시고 또 휴대용『법화경』은 휴대용대로 가지고 다니시고 그러세요. 그거 아주 공들여 만든 책입니다. 어디 갈 때, 시장갈 때도 가지고 다니고 놀러갈 때도 가지고 다니고
오늘은 우리『법화경』교재 243페이지『묘법연화경』권 제4라. 제4권『법화경』전체가 7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권(卷)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말을 권’자라. 쭈욱 이렇게 두루마리로 말아서, 이렇게 한 것은 이것은 책이라 그러고 책이 발달하기 전에는 이렇게 말았었어요. 그래서 이제 그것을 이제 뭐라고 표현하는게 좋겠는가? 말려져 있는 것 그래서 卷 그랬어요. 1권, 2권, 3권 그러면 양이 한정돼 있어. 그래서 이제 고 양(量)만치 나눠가지고서 권이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한 권으로 돼있지만은 옛날 권수로는 일곱 권으로 돼있어요. 그래서 권은 지금으로서는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품(品)은 이제 28품 중에서 오늘 12품「제바달다품」아주 유명한 품입니다. 제바달다라고 하는 부처님 제자이면서 본래 사촌형제면서 또 출가해서 부처님 제자가 되긴 했지만은 형식적인 제자고, 세속에 있을 때 늘 싯다르타 태자하고 그 어떤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서로 뭐 경쟁을 하고 무술시합을 하거나 아니면 무슨 뭐 과거시험을 치거나 뭐 별별 그 당시는 그 당시대로 그 어떤 그 그때 생활의 사람들의 씨름이라든지 등등 어떤 그 경쟁을 하는 그런 일들이 있을 수 밖에 없죠.
그런데 늘 이제 이 제바달다도 아주 뛰어난 머리와 아주 그 체력과 이런걸 가지고 잘한 사람입니다. 아주 잘해가지고 다른 사람은 다 물리쳤는데 끝에 가서는 싯다르타 태자한테 늘 졌다 이래. 졌대요. 항상 싯다르타 태자만 없으면은 1등을 할 수 있는데 저 사람 때문에 내가 늘 2등밖에 못한다 하는 그런 피해의식이 아주 강했던 사람이라.
그럼 이제 어떤 그 원한을 품죠.‘저 놈만 없으면, 저 놈만 없으면 하는’그게 이제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나 그때 사람들의 마음이나 사람의 마음은 똑같기 때문에, 그래서 이 제바달다는 항상 그 피해의식이 어려서부터 쌓여가지고 원한을 이제 품어요. 보통 중생심은 그게 문제라. 그게 뭐 자기 능력 부족해서 자기가 진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그 뿐일텐데,‘저 사람만 없으면 내 1등을 할텐데’하는 그런 마음을 갖다 보니까 그걸 이제 제대로 이핼못하고 하나의 원한으로 그 쌓여가지고 어떻게 하더라도 저 원한을 갚을까? 그런 생각만 늘 하는 사람이라.
그래서 이제 출가를 해서 승려생활을 하고 부처님 법문도 듣고 하면서도 이제 다른 한 쪽으로는 자기 나름대로 작당을 해가지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렇게 어떤 단체를 만들어가지고 항상 부처님에게 대립을 한다든지, 반기를 든다든지 또 뭐 승단을 어지럽힌다든지 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심지어는 나중에는 이제 부처님이 안계시면 자기가 이 부처님 제자들을, 부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가 관리하고 자기가 거기서 대장노릇을 할텐데 하는 그런 그 허황한 꿈을 갖게까지 됐습니다. 참 그게 웃기는 이야기 아닙니까?
아 부처님은 그냥 성자시고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고 사람들의 마음의 병을 고쳐주고 하는 그런 성자일뿐인데 그것이 뭐 제자들이 많고 부처님에게 감화받은 신도들이 많고 하다고 그걸 하나의 세력으로 보고 권력으로 이제 본거야. 그 안목이 처음부터 틀린거죠. 처음부터 안목이 틀린거라. 그냥 지혜로우신 분이고 자비로우신 분이고 성자시고 그래서 우리가 마음에 그 고통이 있거나 생활에 어려움이 있거나 그런 것을 가지고 부처님 앞에 가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하소연도 하고 또 어떤 문제 해결책도 또 배워서 자연스럽게 참 이치를 알아가지고 해결도 하고 하는 그런 분으로 생각을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텐데, 이 사람은 늘 싯다르타 태자 다음가는 그런 그 사람으로서 죄의식이 강하다보니까 하나의 단체 권리행사하는 사람, 세력있는 사람 이렇게 본거야. 부처님을, 참 그 보는 시각도 참 희한하죠.
그 우리가“부처님 부처님”해도 또 부처님에 대한 인식이 사람마다 각각 다 다릅니다. 참 달라요. 특히 저 무속신앙을 하는 사람들 쉽게 무당들은 자기들 무속의 왕인 줄 압니다. 무당으로서 옛날부터 무당의 대장으로 그렇게 알아요. 그 무속하는 사람들하고 이야기해보면은 부처님을 그렇게 안다니까. 성자로 보거나 뭐 그 분이 말하자면 인류의 큰 스승으로서 우리의 어떤 그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행복하게 그리고 조화롭게 그리고 참 사람으로서 아주 보람있게 살 수 있겠나 하는 그런 어떤 그 가르침을 주는 그런 분으로 보질 않고, 무속적으로 무속의 왕으로 그렇게 이제 본다니까.
또 그전에 그 카운슬러 교육을 그전에 받을 일이 좀 있어가지고 그 그 분야에 아주 뛰어난 분이 설명을 하는데,“부처님도 카운슬러입니다. 상담자입니다. 상담자일뿐이지 다른 사람 아닙니다.”이런 이야길 해. 그건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여. 모든 사람을 상담자로 생각을 해서 그가 어떤 고민,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에 맞춰서 아주 누구보다도 현명하게 잘~ 관찰해서 아주 뛰어난 상담자 역할을 하긴 했죠. 사실은, 고렇게 이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상담학(相談學)을 하는 사람들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카운슬러였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상당히 일리가 있더라구요.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게 봐요. 그래서 그런 이들은‘어떻게 하면 부처님같은 그런 훌륭한 상담자가 될까?’사람이 딱 오면은 벌써 저 사람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이런 것을 제대로 이제 알아가지고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그걸 이제 상당히 그 마음에 두는 분이죠.
그런데 제바달다는 아뭏튼 부처님을 그런 대상으로 보아가지고 결국은 부처님의 그 제자들 내지 부처님께 따르는 모든 그 제자들과 제바달다가 본 대로라면 그 권력을 전부 자기가 이제 갖기 위해서 부처님을 없애야 되겠다. 부처님을 없애면 그게 자기에게 올 것이다 하는 이 생각을 한거야. 속가(俗家)에서 생각하던 그 생각 그대로
그래서 그 잘 아시다시피 어떤 언덕에는 인도순례, 성지순례를 가면 그 거기엔 잘 가긴 어렵고 또 그 거기까지 가기가 일정으로 어렵고 한 데, 어떤 사람들은 자유롭게 여행하는 사람 거기 찾아가본 사람들도 있대요. 언덕이 있어. 부처님이 밑으로 이렇게 지나가는데 제바달다가 그 언덕에서 자기 따르는 심복들 몇이하고 돌을 굴리는 거야. 바위도 굴리고 돌을 굴려가지고 부처님을 살해하려고 했던 그 지역이 있고 그 언덕도 있어요. 거기 가 본 사람한테 내가 이야기를 들었어. 올라가봤다네. 그렇게 큰 언덕도 아닌데
그래 이제 돌을 굴려가지고 그 돌 떨어진 깨진 파편이 부처님 발에 맞았어요. 그래서 부처님 발에 피가 나기도 하고 마침 이제 큰 돌을 맞진 않았어요. 그래 이제 발만 조금 다쳐가지고 피가 날 정도인데 그래서 그것이 하나의 계행으로 이제 이야기가 되지요. 부처님 발에 피를 낸 사람 또는 성인의 몸에 피를 내게까지 상처를 주는 사람은 오역죄(五逆罪)에 해당된다. 뭐 부모죽인 죄하고도 맞먹는 그런 큰 죄가 된다.
살부(殺父), 살모(殺母), 그 불출신혈(佛出身血) 부처님 몸에 피를 낸다거나 파화합승(破化合僧) 아주 그 참 중요한건데 그거는 그 단체 아주 그 화기애애하고 정답고 정말 거기에 기쁨과 웃음이 늘 넘쳐나는 그런 어떤 그 단체를 고의적으로 누가 음모를 한다거나 시기, 질투를 한다거나 해서 이간질을 시킨다. 그래 뭐 화합시켜야 되는데 오히려 없는 일을 만들어가지고 이간질을 시켜. 또 설사 오해의 소지가 좀 있다손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하더라도 이해시키려고 해야할텐데 그걸 자꾸 부풀려가지고‘아 저 사람은, 저 갑(甲)이란 사람은 을(乙)이란 사람 어떻게 어떻게 하더라.’을한테 가가지고 또 갑이란 사람이 어떻다 어떻다 하더라. 이게 우리 사회에 많잖아요. 그런 식으로 해서 그 단체를 깨버리는 거야. 그 모임을 깨버리는 거라.
그 예를 들어서 우리 법회라 하더라도 법회에 자꾸 대도 않는 헛소문을 퍼트려가지고‘누가 어떻다더라. 누가 어떻다더라.’자꾸 이래가지고 흉흉한 소리가 떠돌도록 그렇게 해가지고 예를 들어서 그 공부하는데 지장을 준다든지 급기야 그 단체 내지 그 사찰을 허물어 놓는다든지 하면은 그건 부모죽인 죄하고 맞먹는다 그랬어요.
그 살부, 살모 그러니까 파화합승 그 다음에 부처님 몸에 피낸거 그 다음에 살아라한(殺阿羅漢) 阿羅漢 아주 수행이 깊은 스님을 죽이면은 그것도 역시 부모 죽인거하고 맞먹는 거야. 그렇게 다섯 가지 죄가 있거든, 제일 무거운 죄를 우리가 그렇게 다섯 가지 죄라고 불교에선 그리 이야기를 하는데, 이 부처님을 피내면 그런 죄가 된다라고 하는 죄는 이 제바달다가 저질러서 생긴 계라. 계행이라는게 그 처음부터 만들어진게 아니에요. 뭐 문제가 하나씩 생기면은 그때사 부처님이“아 그러면 안된다.”해서‘안된다.’라고 하면 그때부터 계가 되는거야.
그 스님들이 무슨 뭐 저기 저 말하자면 집에 가고 또 집에서 찾아오고 하는거 이런 것들도 여러 가지 계가 있는데 그게 부처님 귀에 들어가고 모양이 안좋다. 또 신도들이 와서 이렇게 보니까 그 스님, 출가한 스님이 뭐 집에서 사람들이 찾아와서 왔다 갔다 해쌌고 그 신도로 오는건 괜찮은데 집안 가족이 와쌌는건 그건 모양이 아니거든, 그만 부처님 귀에 그 말이 들어간거야.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다 싶어서“그건 그렇게 하지마라.”이렇게 하면 그때부터 계 조목이 하나씩 하나씩 메모하기 시작해서 스물다섯 가지가 생긴거요. 이백오십 개 참. 이백오십 개가 그렇게까지 생긴 것입니다.
주로 이제 신도님들이 부처님을 뵙고는“아 어떤 스님이 뭐 어디서 뭐 어떻게 하는데 때도 지났는데 와서 탁발을 하고 와서 뭘 먹고 그러더라. 그 참 신도로서 보기가 민망하더라.”그 부처님께 좋게 이야기한거야. 그게, 그러면 그게 부처님도 가만히 생각해보고‘그건 참 그렇겠다.’싶으면은 당신이 보지 않았어도 그거는 딱 이렇게 계행으로 제정을 했어요. 그럼 이제 그게 또 하나의 계율이 되는거라. 그런 식으로 이제 하나씩 하나씩 불어나가지고 이백오십 가지나 되고, 또 여자들은 더 아주 그런개 숫자가 늘어나가지고 삼백사십팔 개인가? 그렇게 숫자가 또 많고, 그러니까 아무래도 여자들은 몸가짐이 남자들보다 그 더이제 조심하고 그 모양있게 해야할 것이 더 많겠죠. 아무래도, 그러니까 이제 그 숫자가 더 많이 비구니들은 숫자가 더 많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계율이 생긴 것을 가만히 이제 그 연유를 하나하나 더듬어보면 참 그 재밌는 이야기가 아주 많아요. 그게 다 기록이 돼있습니다. 무슨 연유로 이 계목이 생겼다. 무슨 연유로 이 계목이 생겼다. 그런게 있습니다. 그건 이제 스님이 되면은 그런 공부 다 해요. 율장연구를 열심히 하면
이제 이 제바달다는 부처님 몸에 피를 낸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그 계가 성립이 됐고 또 돌을 굴린 일 말고도 무슨 그 사나운 코끼리에다가 술을 먹여가지고 부처님 앞에 풀어놨다는거야. 그럼 코끼리가 술에 취해놓으면은 뭐 아무나 생긴 보이는대로 가서 침범을 하고 떠받고 그리고 사람을 상하게 하니까 그걸 이제 노린거지. 그래서 그런 일도 하고, 뭐 등등 몇 번 했다는 거요. 그런 정도로 그 부처님에게 그런 그 해칠려고 했던 그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점들이 또 어떻게 생각하면 참 우리에게 어떤 그 안심을 주고 위안을 주고 자기 자신을 이렇게 긍정하게 하는 그런 점이 되죠. 왜냐?‘부처님 같은 천하의 대성인도 제바달다같은 사람이 있어가지고 그렇게 해침을 당하기도 하고 미움을 사기도하고 그랬는데, 아 나를 누가 미워하고 나를 욕하고 하는거야 뭐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그 생각할 수가 있는거야.‘부처님도 뭐 그렇게 당했는데 아이 나야 뭐 뭐 열 번, 스무 번 당하고도 남을 사람 아니냐? 내가 뭐 잘났나?’그 덕행으로 보면은 부처님하고 나하고 천지차이잖아요. 그걸 생각해보면은 여러분들이 훨씬 더 잘사는거야.
누구한테 시기질투를 받고 모함도 듣고 또 뭐 이래저래 침해를 설사 좀 받더라도 훨씬 잘사는거야. 부처님보다도 좀 부처님 아무리 제바달다라 하더라도 체면이 없잖아요. 부처님 같은 위대한 성인이 아이 저 저 죽일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얼마나 부처님이 덕이 없고 지혜가 없고 교화가 교화력이 없으면은 아 그런 사람을 제자로 두느냐? 도대체 이게 체면이 안서는 일이라. 이게, 그런 입장으로 보면 또 그렇게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이 부처님으로 보면은 우리 그 중생의 계산으로 보면은 부처님한테 원수죠. 사실은, 부처님한테 큰 원수입니다. 제바달다에게 부처님은 원수가 아니에요. 부처님은 제바달다에게 해친 적이 없어요. 뭐든지 잘났을 뿐이여 그저. 우수했을 뿐이라. 무술을 해도 부처님이 더 잘했고 공부를 해도 부처님이 더 잘했고 더 잘한게 죄라 그만. 머리 좋고 능력 있고 실력좋은게 그만 죄인거라. 그랬는 것이 세상에 참 많죠. 얼마나 많습니까?
참 이번에 그 전당대회할 때, 선거할 때 아주 더러운 놈 한 놈 있었어요. 그 즈그끼리 아닙니까? 그런데 그 수십 년 전에 있었던 병역문제를 들고 일어나가지고 아이고 참 거 그렇게 추접게 자기들끼리 그것도 그 결국은그래가지고 떨어졌지. 지는 결국 떨어지더라구요. 아이고 참 나 그거 이번에 너무 보기 안됐더라구요. 그게 이제 자기보다 잘난게 죄인거야. 그거는, 그런 경우가 세상에 파다합니다.
그래서 제바달다도 그렇고 이제 이런데서 우리가 이제 참 평생을 살아가면서 자기에게 원결지고 안좋은 관계 그게 뭐 가족관계가 됐든 이웃관계가 됐든 친구관계가 됐든 그런 관계가 없이 살아갈 경우는 하나도 없습니다. 가만히 있는데 그렇게 이제 싫어해요. 좀 잘났으면 그것도 미움의 대상이고 좀 돈이 있으면 미움의 대상이고 키가 좀 커도 미움의 대상이고 뭐든지 옷 조금 잘입어도 미움의 대상이고 얼굴 잘나도 미움이 대상이야. 전부 미움의 대상인거야.
그 여러분들은‘뭐 아이고 나같은 얼굴에 누가 시기질투하나?’싶지만은, 많아. 아 70, 80됐는데 건강하면 아 그것도 미움의 대상이야. (하하하) 중생심이 그렇다니까. 건강하면은 겉으로야 아무렇지 않지. 그렇지만 속으로 배아퍼해요. 많아요. 참 그 우리는 조심해서 살아야 돼. 절대 그 잘난거 그 유능한거, 있는거 이거 자랑하지 말고 살아야 된다고 안그래도 눈총받는데 스스로 자랑하면은 이건 눈총받을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제 우리가 이런 문제를 여기서 마음에 잘 사유를 하고 깊이 생각을 해서 이 문제 하나를 우리가 마음에 꼭 새기고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해야되는데, 아뭏튼 우리가 부처님 생각하는 것은 정말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과 부처님에 대한 어떤 그 귀의하는 마음과 의지하고 또 부처님을 절대적인 그런 그 성인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그 마음. 이런 것들이 불자들에겐 아주 대단합니다.
그래서요. 우리가 그 땅바닥에다 부처 불(佛)자를 이렇게 써놓고도, 손가락으로 써놓고도 손으로 곱게 이렇게 지우지. 발로 문지르지 못합니다. 발로 문지르고 싶은 마음은 없는거야. 아무리 모래에 뭐 흙에다 써서 그게 흙이 그림으로 그려졌을 뿐이지 그게 부처도 아니야. 그냥 지워버리면 없어지는 그런 허망한 모래위에 글자인데도 불구하고 거기다 부처 佛자를 써놓으면 함부로 못지워요. 이게 이제 우리 불자들의 마음이고 그래야 또 돼. 당연히 그래야 되는거요. 만약에 신문지에다 부처 佛자를 썼어도 그 신문지를 함부로 버렸다가는 우리 옛날에 노스님들한테 혼이 납니다. 정말 보통 혼나는게 아니에요. 종이에 부처 佛자를 써가지고 함부로 그걸 던지거나, 예를 들어서 화장실 같은데 가져갔다 그러면 그건 큰일나. 산문출송(山門黜送)감이야. 쫓겨난 그런 죄라구요.
종이에다가 먹으로 그렇게 썼는데 그거 알고보면 뭐에요? 참으로 공한거고 아무것도 아닌거야. 찢어버려도 되고 태워도 되고 아무렇지도 않지만은 거기에 부처 佛자를 썼다하는 이 사실 하나가지고 그렇게 혼이 나는거요. 그만치 우리 불자들은 승속을 막론하고 부처님을 그렇게 마음속으로 존경하는게 있는거야.
그래 여기는 그 제바달다는 부처님을 원수로 생각하지만은 부처님에게는 원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 불자들은 제바달다를 우리의 원수라고 생각하는거야. 부처님을 그렇게 해친 분이니까 우리의 원수지. 과거 2700년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는거야. 사실은, 제바달다에게 화가 나는거여. 과거에 지나간 일이고 아무 탈 없이 지나갔어. 하지만은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고 말이야. 제바달다 옆에 있으면 그냥 어떻게 하더라도 두드려 패주고 싶고 심지어 죽이고 싶을 정도야. 왜? 부처님을 죽일려고 했으니까.‘네도 내 손에 한 번 맞아 죽어봐라.’이 생각 한다구요 딱. 해야 돼 또 불자라면은, 그래야 불자지. 그래야 부처님 제자지.
그래서 이 제바달다는 부처님의 원수일 뿐만아니라 그 후 무수한 부처님 제자들의 원수야. 그런 원수라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이웃에서 뭐 이렇게 아는 친구 사이에서 조그만 이해관계로 또는 뭐 오해로 그렇게 어떤 원결을 가졌던 그런 그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생각하면 제바달다같은 그런 그 원수가 없어. 우리에게,
그런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를 어떻게 마음속으로부터 풀어야 할 것인가? 이건 이제 제바달다에게 쌓인 감정을 푸는 것과 우리가 우리 이웃에서, 우리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있을 수 있는 그런 감정들, 인간 관계에서 오는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 하면 풀 것인가 하는 것을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고 꼭 배워야 되고 이것이 이제 내 살림살이가 꼭 돼야 됩니다. 이건, 정말 이것을 보고 그 생각을 그걸 풀어버려야되지.
부처님은 제바달다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이건 부처님 생각이라기 보다 사실은 경전에는 부처님 말씀으로 돼있어요. 하지만은 부처님과 맺어진 이 원한을 풀어야 됩니다. 부처님 일생에 풀어야 돼. 풀지않고 부처님 눈감으면 안되는거야. 이게, 부처님 살아생전에 이 원한을 풀고 가셔야 그래야 이제 우리가 뒷사람들도 제바달다를 그렇게 원수시 안하는거지. 그 제바달다를 미워하는 사람은『법화경』을 못 본 사람이야.『법화경』을 제대로 본 사람은 그때부터는 다만「제바달다품」만 봤어도 그때부턴 제바달다를 미워하지 않게 되고 아울러서 나에게 나를 해친 사람, 나에게 원수가 된 사람, 내가 미운 사람도 따라서 미워하지 않게 되는 것을 여기서 우리가 우리들의 이익으로 건져야 됩니다. 내 것으로 사실은 삼아야 되는거야. 그런 장이「제바달다품」입니다.
「제바달다품」은 두 가지 내용이 있는데 하나는 앞에는 제바달다의 이야기 그리고 제바달다의 원결을 어떻게 해소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풀었는가 하는 거 이걸 이제 볼 수가 있고 그 뒤에는 이제 용녀성불(龍女成佛) 축생이 그대로 부처님이다. 축생이 그대로 부처다. 뭐 성불이라고 표현했지만은 부처다 하는 내용으로 돼있습니다. 그건 다음 시간에 아마 공부하게 될 거고, 이건 이제「제바달다품」은 사실은 원결을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것을 여기서 해답을 주었고 그 다음에 또 고전적인 해석으로는 악인성불(惡人成佛)이다. 惡人成佛 악한 사람도 부처가 될 수 있다. 악한 사람도 부처다. 그런 뜻입니다.
좀 더 발전되 표현을 하자면 아무리 악한 사람도, 부처님을 죽이려고 했던 제바달다도 부처다. 이렇게까지 되는거요. 놀라운 일 아닙니까? 부처님을 세상에 죽이려고 했던 제바달다도 부처다 이 말이여. 그러니까 우리가 뭘‘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없애고 마음의 악심을 다~ 녹여버리고 선심만 가득하고 자비심만 가득하고 지혜만 가득해야만 부처다.’라고 하는 그런 그 차원이 아니라. 이『법화경』차원은 그런 차원이 아니라.『법화경』차원은 그야말로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그대로 부처다. 더 이상 더 닦을 것도 없고 더 다듬을 것도 없고 더 이상 고쳐야 부처다라고 하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이거
그러니까 경중의 왕이죠. 다른 불교는요. 전~부 착해야되고 업장소멸해야되고 참회해야되고 그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하나하나가 모범이 돼야되고 자기 혼자 저~ 컴컴한 밤에 자기 혼자 가만히 있어도 늘 착한 마음만 솟아나야 되고 그런 사람이 부처다라고 하는 그런 불교하고는 영~ 차원이 다릅니다. 대개 이제 그런 식으로 가르치죠. 일반불교는,
그러나『법화경』불교는 그게 아니여. 처음부터 시종일관 그대로 보아왔듯이 부처님 앞에 꽃 한 송이 든 것도 개이성불도(皆已成佛道)라. 다 부처를 이루어 마쳤다라고 하는 그 표현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 이거여. 그게 뭐 잘하는 일이라고 그게 무슨 수행이라고 꽃 한 송이 들었거나 손을 한 번 들었거나 절 한 번 했거나‘나무불(南無佛)’염불 한 번 했거나 또 어린아이가 철없는 어린아이가 모래를 대충 장난하느라고 쌓아놓고‘이게 불탑이다.’이렇게 하는 것도 皆已成佛道라.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여? 그『법화경』그와 같이 차원이 높은 내용입니다. 참 차원이 높은 거여.
그러니까 이런 소리가 이해가 쉽게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한게 바로 그 점이라. 그래서 5000명이 자리를 박차고 앞부분에서 보면 나갔잖아요.『법화경』이 엉터리라고 하고 5000명이 자리를 박차고 나간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서품」에, 그 차원이 높다는게 그거야. 다 수행을 해야 되고 참선을 해야 되고 염불을 해야 되고 육바라밀을 열심히 닦아야 되고 뭘 하고 뭘 하고 그래서 그것도 삼아승지겁 하~ 몇 생을 닦고 몇 생을 닦고 그래 닦아서 부처된 사람 지금 금생(今生)에 아무도 없잖아요. 그 조건에 맞는 부처는 아무도 없는거야. 부처님 이후에 아무도 없어. 지금까지 2700년동안 그 조건에 맞는 부처님은 아무도 없어. 그런데 그 조건을 제시해서 그것을 그 조건을 충족시켜야 부처가 된다라고만 이야기하고 있어. 지금까지, 그 조건에 충족해서 부처된 사람 누가 있어요? 원효가 부처요? 의상스님이 부처요? 서산, 사명이 부처님이요? 아무도 그 조건에 맞는 부처님은 역사적으로 없습니다. 그냥 조건만 있을 뿐이야.
그래서 부처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 정진하고 열심히 정진하고 착하게 살아야되겠구나 그저 그거 그 방편이라고 사실은 그 방편이야. 그런데 그런데 이제『법화경』에 와서는 지금까지 내가 방편이야기만 했는데 방편이야기만 하고 있을 수 없다. 내가 곧 머지않아 눈감을텐데 진실한 말, 가슴속에 있는 진짜 말을 한 마디 하고 가야 되겠다. 그게『법화경』이야. 부처님이 눈을 감으면서 최후로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그 메시지가 바로『법화경』이야.
그건 뭐냐?‘사람이 그대로 부처다.’조금도 닦을 필요가 없고 닦지 아니한 그대로 뭐 닦는 건 좋은 일이야. 육바라밀 닦는 거 좋은 일이에요. 그건 그대로 육바라밀 닦는 거고 선행하는 일이고 참선하는 일이고, 참선을 해서 부처가 되고 선행을 해서 부처가 되는게 아니라 그저 참선하는 일이고 선행을 하는 일이야. 다 좋은 일이라구요. 그런데 부처라고 하는 것은 그런 차원이 아니다. 그런 수행을 해서 되는 차원이 아니고 본래, 본래 부처인 것이다. 여기에 눈을 떠야 된다. 거기에 눈을 뜨면 저절로 선행이 되게 돼있는거요. 절로 선행은 되게 돼있어.
마치 서울가는 기차를 표끊어서 탁 타고 있으면 잠을 자도 서울가고 거기서 뭐 놀아도 서울가고 책을 읽어도 서울가고 뭐 무슨 짓을 해도 서울가게 돼있어. 그러니까 참 이게요. 중요한게 고런 이치를 딱 알면은 제대로만 알면은 수행은 저절로 되게 돼있고 선행도 저절로 되게 돼있고 공부도 저절로 되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惡人成佛이라고 하는 것도 악인이 아주 오랜 세월 걸려서 부처가 된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지만은‘악인도 그대로 부처다.’라는 뜻입니다. 어린아이가 모래로 탑을 쌓아놓고 불탑이다라고 해도 그대로 어린아이 그대로 부처다. 그 뜻이에요. 꽃 한 송이 올리는 것으로써 다 이미 부처를 이루어 마쳤다라고 하는 말도 그냥 그대로 그 사람 그대로 부처다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 사람이 뭘했느냐? 어떤 수행을 했느냐? 이런 조건은 전혀 없다. 이게 시종일관『법화경』의 종지라. 근본취지라구요.
그래서 여기서 이제 앞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왔지만은 여기선 아주 극적인‘제바달다도 부처다.’라고까지 나온, 나중에는‘축생도 부처’다. 용녀성불(龍女成佛), 축생부처, 여인부처 그런 이야기까지 나오는거야. 그러니까 그런걸 다 깨놓고 자나깨나 생각해보고 이리 생각해보고 저리 생각해보면은 결론이 딱 한 마디‘사람이 그대로 부처다.’라고 하는 거. 현재 이대로 현재 이대로입니다. 절대 뭐 다른 조건이 필요하거나 어떤 과정을 경과해야만 되는게 아니에요. 아뭏튼 수행을 해가지고 이러이러한 조건을 충족해서 부처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역사적으로도 아무도 없어. 원효, 의상도 아니야. 그런 그런 조건이 아니라구요.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야.
원효스님도 의상스님도 우리나라에 아주 불교계에 최고 성인아닙니까? 사상가를 대표하고 성인을 대표하는 이가 바로 원효스님, 의상스님인데 바로 그런 뜻이지. 그 조건을 충족시켜서 부처다라고 하는 일반적인 불교에 그렇게 영합한 사람은 아닌거요. 그런 불교 그 자체가, 일반적인 불교 자체가 방편이여. 아주 좋은 방편이지. 일미방편(一味方便)이라 그런거요. 그런 뜻이 이제 이「제바달다품」에 그 속 뜻입니다.
그래 여기서 우리가 큰~ 그 부모죽인 원수까지 용납해야되겠지만은 용납하지 못하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인연있는 사람들, 피할 수 없는 인연관계들이 있잖아요. 그가 누가 됐든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관계라면은 그저 스승으로 받아들이고 그저 부처님으로 생각하고 그저 나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 경책이 되는 그런 선지식이라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그런 자세 요것만 우리가 취해도 아주 큰 소득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뭐 그게 어떤 내 팔자든, 내 환경이든 아니면 사람이든 이 모든 것이 다 그 속에 포함됩니다. 제바달다라고 하는 것에 내 마음속에 그 참 있어서는 안될 그런 관계들, 그런 사건들, 그런 처지, 환경들 이것이 전부 제바달다라고 하는 사람만 포함되는게 아니에요. 제바달다라고 하는 그 속에는 사람도 포함되고 내 처지, 내 팔자도 포함되고 내 환경도 포함되고 내 인생이 어떻게 살아왔는가? 이 모든 것이 다 그속에 포함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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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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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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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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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생활에서 살아가면서 있을 수 있는 그런 감정들, 인간 관계에서 오는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 하면 풀 것인가 하는 것을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고 꼭 배워야 되고 이것이 이제 내 살림살이가 꼭 돼야 된다.] [『법화경』차원은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그대로 부처다. 더 이상 더 닦을 것도 없고 더 다듬을 것도 없고 더 이상 고쳐야 부처다라고 하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 부처님이 눈을 감으면서 최후로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그 메시지가 바로『법화경』사람이 그대로 부처다.] 고맙습니다. _()()()_
내 마음속에 그 참 있어서는 안될 그런 관계들, 그런 사건들, 그런 처지, 환경들 이것이 전부 제바달다라고 하는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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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보았읍니다
나를 해친 사람,나를 미워하는 사람,나와 원수진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것이 제바달다품
참선,육바라밀은 그것대로 좋은 일이지만 부처라는 것하고는 상관 없다
--그런 수행을 해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본래 부처다
--여기에 눈을 뜨면 저절로 선행을 하게 된다
그냥 그대로 부처다.그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는 문제가 안된다.
--이것이 법화경의 종지다
내 팔자든.환경이든,사람이든 피할 수 없는 인연이라면 스승으로 생각하고 선지식으로 생각하고 부처님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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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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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2번째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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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_()()()_
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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