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상들의 실전용 사법인 '철전사법'을 완성하였다고 주장하는 분이 계시다.
이제는 잃어버린 철전사법을 복원하셨다니 축하할 일이지만 문제는 그분이 다른 이들의 궁체나 사법을 죄다 허접한 것으로 폄하해버리고 자신처럼 쏘는 것 만이 '전통'이고 '철전사법'이며 바른 활쏘기라고 주장한다는 것이 문제다.
철전이란 무엇인가?
철전은 장전, 아량전, 육량전을 모두 아우르는 용어로, 장전은 실전에 사용되는 화살로 약 한냥 반 정도 되는 화살이고, 아량전은 네량의 무거운 화살, 육량전은 잘 알다시피 무과시험에 사용되었던 촉무게만 여섯냥의 엄청난 화살이다.
그렇다면 이 무거운 철전을 강력하게 쏘아 적의 갑옷을 뚫고 타격을 줄 수 있는 활 역시 그에 걸맞게 위력적이어야 한다.
실제 남아 있는 유물과 기록등을 토대로 미루어 추론해보건데, 대략 100파운드 이상~200파운드 미만의 활이었을 것이다.
이런 활과 철전을 사용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당연히 무관과 군에 복무하는 사부(射夫)들이다.
그들은 평시와 전시 모두 전립(무관) 또는 벙거지를 쓴다.
전립과 벙거지는 모두 짐승의 털을 압착해 만든 모자의 한 종류로, 질긴 섬유조직으로 인해 나름의 방호력을 가진 장비라 모든 군사들이 필수적으로 착용하던 것이다.
(사진 위) 무관이 착용하는 전립. 주로 돼지털등을 압착하여 일종의 펠트(Felt)로 만들어 질기고 겹겹의 층으로 되어 있어서 약한 방탄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위 사진은 실제로 조선시대에 촬영된 희귀한 사진으로, 조선군이 활쏘기를 수련하는 사진인데, 전원이 갓 또는 전립을 착용하고 있다.
자신의 궁체가 조선시대 군에서 사용되던 실전 사법중 하나로 볼 수 있을지 없을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의 전통 두루마기나 한복을 입고, 팔에 팔찌를 찬 뒤 갓이나 전립을 쓰고 활을 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대부분의 궁사들은 이 복장을 하고서 거궁 단계에서 난감함을 느끼게 된다.
활을 들다가 갓이나 전립의 챙에 시위가 딱 걸리며 거궁을 평소처럼 할 수 없게 되고, 거궁이 제대로 되지 못하니 시위를 당길 수도 없다.
시위가 당겨지는 길이 전립에 딱 가로막혀있기 때문이다.
이때 대부분의 궁사들은 고개를 쳐들고 각지손을 겨우겨우 뺨언저리까지 당기고 어색하게 방사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러다보면 팔찌를 찬 윗쪽, 즉 겨드랑이 부위의 옷자락을 시위가 "퍽!" 하고 치고 나가게 되어 화살은 힘을 잃고 과녁에 한참 못미쳐 떨어지게 된다.
굳이 애써 고전을 뒤져가며 글귀들을 따오고 이리저리 엮으며 자신만의 논리를 만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토록 외치는 조선 철전사법 궁체로는 조선시대 무관복장을 입고 거궁조차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비단 군대의 활쏘기뿐만이 아니다.
옛 어른들은 학창의에 갓을 쓴채로도 활을 내셨다.
민간의 활터에서는, 특히 구한말부터는 조선시대의 예법들이 많이 사라지며 활터에서도 간편하게 탕건만 쓰고 활을 내게 되었지만 원래 양반들은 옥외에서는 반드시 갓을 착용하도록 되어 있고, 갓을 벗는다는 것은 소위 '의관정제'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
예법에 살고 예법에 죽는 양반들이 의관정제하지 않은 상태로 활을 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통사법을 공부하고 알고 싶다면 우선 전통복식부터 갖춰 입고 활을 내볼 일이다.
첫댓글 막줌에 살대가 입술꼬리 아래 턱선에 걸린게 너무 불쌍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좌우지간 어색하고 초라하게 보이는게 나만의 생각일까?
두번째 사진에서 발디딤이나 발시후 활장이 줌손 안에서 돌아서 시위가 과녁을 향하여 보고 있는 거는 대만사람 장유화가 쏘는 청나라활을 복원한 모습이지 우리 전통 조선의 궁술은 아니다, 활장이 돌아가는 대표적인 활이 일본활 유미의 유가에리 기법이 있지만 조선의 궁술은 활장이 손 안에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책 조선의 궁술만 해도 발시후 줌손이 불거름으로 떨어진다고 분명히 나와 있는데 줌손이 어디를 보고 있느냐? 스스로에게 되물어 봐야 한다
세랑과 청나라 활을 복원한 대만사람 장유화의 궁체를 나란히 놓고 보았을때 세랑의 궁체는 조선의 궁술 궁체가 아니라 청나라 궁체에 가깝다 하겠다.
골반이 돌아간 발디딤, 일본활 유미의 유가에리 기법처럼 발시후 줌손안에서 활장이 돌아가서 시위가 과녁을 보는 쏘임, 이거는 조선의 궁술이 아니다. 이러고도 한산의 궁체를 비판하나? 우리활쏘기의 요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천방치죽으로 나부댄다고 할 수 있다. 무식하면 부끄럼을 모른다.
세랑과 장유화가 다른점이라면 세랑은 깍지손을 좀더 채주고 장유화는 봉뒤라는 점만 다르다. 이거는 小異에 속해서 따따부따 다질것도 못된다 하겠다.
책 조선의 궁술에서는 깍지손을 어깨위에 걸머지고 만작하라고 나온다.
깍지손을 어깨위에 걸머지면 절대로 절대로 살대가 턱선으로 못내려 간다.
책 조선의 궁술대로 깍지손을 어깨위에 걸머지면 화살대는 귓바퀴에 있어야 지극히 정상이다.
그래서 턱밑살대는 조선의 궁술이 아니다.
족보없는 엉터리 궁체를 가지고 조선철전사법을 복원한 한산의 궁체를 비판하는 것은 친일역적놈이 약산 김원봉장군의 의열단이 주축이 된 조선의용대(독립군)를 테러리스트라 비난하는거 보다 더 못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