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언제부턴가 눈앞에서 알짱거리며 파리가 날아다니기에 잡으려고
애를 써도 잡히지는 않고 손으로 허공만 휘젓다가 말았지.
어느 날 우연히 거울에 비친 하루사리가 또 신경을 쓰이게 하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안과를 갔더니. 눈에 노환이 왔다고 하더군.
이제 칠십 중반으로 들어서고 보니 눈도 침침해지고 무릎도 삐걱거리고
해마다 달라지는 나의 건강에 적신호가 오는듯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서서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곁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씩 맥없이 떠나네.
35년 전 새로 입주해서 이사 온 후 한 백년을 살 것처럼 버리는건 인색해서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했던 것들이 이제는 짐이되고.
오늘은 무얼 정리할까 하루는 작은방. 내일은 뒷 베란다.
그 다음날은 잡동사니 들을 정리하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지.
신발장의 신발은 왜 그리 많은지 신지도 않으면서 떨어지지 않아 아까워 버리지 못한
신발들을 과감하게 없애려니 쓰레기봉투에 한가득 되더군.
이제는 치워야 할 것들을 날마다 봉투에 넣어 4층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의 어깨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는 것 같아 버릴 때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해.
오늘은 아침부터 비도오고 특별한 약속도 없어 무얼 치울까 생각하다 작은 방
책꽂이의 앨범이 눈에 들어와 치우기로 했어.
70년의 역사가 담겨있는 우리 온 가족들의 사진들을...
내가 떠나고 나면 저 많은 사진들을 아들이 치울 생각을 하니
다른 것들은 내다 버리면 되겠지만
사진만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아들/
네가 분가하면서 다 가져간 줄 알았더니 중 고등학교 앨범도 아직 있네.
아무리 물어도 아프지 않은 하나뿐인 엄지손가락인 너.
어릴때부터 착하게 자라 공부도 잘해서 늘 행복하게 해주고
내가 그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게해준 내 삶의 전부였던 너.
엄마가 곰살궂지 못해 먹고 살기 바빠 일만하느라 사랑한다는 표현도 못해주고
지금 생각해보니 후회도 되고 많이많이 미안해.
앨범을 열어 보니 빛바랜 사진속의 얼굴들이 한눈에 들어오네.
한평생을 마음 고생하시며 사셨던 우리 친정엄마의 야윈 모습.
나를 길러주신 외할머니.
없는 집 딸이라며 무시했던 호랑이 시어머니도.
첫 손주 보셨다고 기뻐하시며 너를 안아주던
미워할 수도 그리 살갑지도 않았던 시댁 식구들. 우리가족의 얼굴. 얼굴들이.
나의 10대. 20대. 세상 때가 묻지 않았던 순결했던 시절의 사진 속에
내가 해맑게 웃으며 나를 보고
‘얘ㅡ영숙아 너도 많이 늙었구나. 고생 많이 했다’
하며 웃고있어. 중요한 사진만 몇 장씩 고르고 모두 찢어서 봉투에 담았어
꼭 꼭 숨겨놓고 보고 싶지 않았던 네 동생 작은 손가락 사진도. 벌써 20년이 지났네.
하늘나라에서 잘 지네고 있는지 배는 곯지 않는지 쓸데없는 걱정인줄 알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생각나 나를 울리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아이.
명절 때만 되면 지금도 ‘엄마’하고 문을 열고 들어 올것만 같은 아들.
보이지 않는 눈물 삭이며 보내야 하는 세월을.
그 녀석은 이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교한다며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공연하며 찍은 사진들도 모두 다 찢어 버렸어.
추억은 가슴에 묻고. 흔적은 지워 버리고. 언제까지나 아픈 지난날에
연연하며 살수는 없지 않겠니?
나도 이제 살날보다 갈 날이 가까이 다가오는데.
아들/
너는 행복하니?
살아보니 산다는 게 별거 아니더라. 너는 아직 젊어서 이해는 안 되겠지만
그렇게 아등바등하며 살 필요도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됐어.
너는 돈 모으느라 바등대지도 말고 가족 사랑해주며 네 자신에게도
아낌없이 투자하며 즐겁게 살아. 여행도 다니고. 잘 먹고 인생이 긴 줄 알았더니 잠간이더라.
70이 넘고 보니 세월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일주일이 눈 코 뜰 새 없이 지나가네.
그도 그럴 것이 공부하러 학교 다니랴. 문학반 글쓰기. 침해교실. 여성회관 영어반 다녀야지
컴퓨터 원격수업 해야지. 병원 들어가 노인 돌봄 알바 해야지.
나이 먹어 더 바빠진 나를 보며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손 놓고 들어 앉아 놀면 뭐하니.
죽는 날까지 활동하며 배우고 일도 해야지. 아직은 할 만해.
바삐 움직이다 보면 아픈 추억도 희석되고.
너는 계단 없는 곳으로 이사하기를 원하지만.
나는 이집을 못 떠날 것 같아. 요양원으로 가기 전에는.
아들/
세상에는 훌륭한 엄마도 많고.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 가는 부모도 있지만 욕심이란 끝이 없더라구.
그래도 이 나이에 일하면서 공부하고 아들에게 손 안 벌리고
신앙생활 잘하며 씩씩하게 살고 있는 엄마 인 것에 감사해야해.
나는 나의 노후를 최선을 다하며 살고았으니까.
참 ㅡ 나. 19일 춘천으로 노래자랑 나간다.
철원 6개 읍에서 한 사람씩 경로당 대표로.
무슨 노래를 해야 할지 아직 못 정했어. 재미있고 신나는 곡으로 하라는데.
용두산 엘레지. 공항의 이별. 소양강 처녀. 아니면 슈샨보이로 할까.
너는 부끄럽다고 질색 하겠지만
기회는 항상 열려 있는게 아냐. 언제 춘천 가서 무대에 서 보겠니.
잘하고 올게 응원이나 해줘. 꽃다발은 사양 할게.
아무리 깨물어도 아프지 않는 하나뿐인 우리아들.
엄마가 너 사랑하는 거 알지
워낙 뚝뚝해서 표현을 못할 뿐이지 내 목숨처럼.
너를 그 무엇에 비하겠니. 그리고 삶이 행복해야해. 행복은 내가 만들며 사는 것 같아.
에ㅡ이.
노래자랑이 코로나 때문에 무기한으로 연기 됐다네.
그래도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날. 떨지 않고 나는 최선을 다 할 거야.
사랑해 아들.
엄마가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