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출애굽기 - 기상변화가 몰고 온 전염병과 사회혼란.
모세의 출애굽에 관한 역사기록은 이집트는 물론 주변국 어느 역사기록에도 없다.
출애굽은 실제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카루스의 탈출은 신화로 받아들이면서도
모세의 탈출은 역사로 믿는 이들이 많다. 아니 역사로 믿고 싶은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가들은 사료조사와 검증연구의 결과,
고대 이집트에 히브리인이 집단으로 살다가 탈출한 기록은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사학자들도 모세의 출애굽을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음에도,
비유대인들이 오히려 출애굽기를 역사로 고집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신화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직 깨이지 못한 고대인들의 사고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현대인에게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포기하고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무지의 상태로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아카드의 왕 사르곤의 탄생신화,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의 탄생신화,
로마의 로물루스 형제의 탄생신화가 모세출생 신화의 원형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특히 사르곤 왕 탄생신화는
- 유프라테스 강이 나일강으로,
- 물에서 건진 아기를 키우는 사람이 이쉬타르 여신에서 공주로,
무대와 등장인물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아기를 은밀히 낳아야 하는 상황,
역청 바른 갈대바구니, 발견되고 입양되는 설정 등
거의 그대로 모세의 출생신화에 차용되었다.
히브리인들이 바빌로니아 유수 때 접했던 사르곤 왕의 탄생신화를 차용하여
히브리식으로 터치만 가한 것이다.
<표8 출애굽기>
우리는 모세5경이라는 말 때문에 모세에 의해서 쓰여진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
모세5경은 4세기 경 익명의 저자들이 모세의 이름을 빌어
주변 선진문명국들의 사료, 전승, 신화를 유대의 전승과 결부시켜 편집하여 이루어졌다.
다수의 저자들이 여러 출처의 자료를 편집/각색해 내용이 서로 어긋나고
시대순서가 맞지 않는 등 성서 곳곳에서 많은 오류를 드러낸다.
1) 여호와 신이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는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성서 편집자들이 J전승(여호와라는 이름을 처음부터 사용한 문서)와
E전승(모세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처음 계시한 문서)을 뒤섞어 편집했기 때문이다.
Jahweh 전승 - 여호와 신이 아담,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에게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밝혔다. → 창4:1, 15:2, 25:21, 28:13.
Elohist 전승 - 여호와 신이 아담,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 출6:3.
2) 모세의 장인이 이름과 출신지가 일치하지 않는다.
→ 출2:16~18, 3:1, 4:18, 18:1, 사사기1:16, 4:11.
3) 이집트 거주기간에 대한 전지전능한 여호와 신의 예언이 30년 빗나갔다.
"여호와께서...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 창15:13.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거주한지 430년이라." → 출12:40.
4) 법궤를 만드는 사람이 서로 다르게 언급되어 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출25:10~22), 브살렐(출37:1~9), 모세가 직접(신10:1~5).
5) 모세의 형 아론의 매장지에 대한 성서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
→ 호르山(민33:38), 모세라(신10:6).
어떤 나라의 풍토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원전의 줄거리만 차용해
자기 것으로 둔갑시키는데 급급하다 보면 허점을 드러내기 쉽다.
구약성서 편집자들에게 바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다.
1) 파라오의 공주가 나일강에서 목욕을 한다?
나일강은 진흙이 섞여 혼탁하게 흐르기 때문에 이집트 왕족이나 귀족들은
우물물이나 모래를 필터로 사용해 걸러 낸 물로 목욕을 했다.
구약 편집자들이 사르곤 왕 출생신화의 무대인 유프라테스 강을
모세의 출생신화의 무대인 나일강으로 옮겨 각색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오류이다.
2) 파라오의 공주는 강물에 떠 있는 요람에 든 아기를 발견했을 때
아무런 단서도 없이 그가 히브리인의 아기인 것을 알았다?
한때 할례 받은 것을 보고 알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할례는 이집트에서 기원했으며, 당시 거의 모든 이집트 아이들도 할례를 받았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 할례 관습을 습득했다.
아브라함과 여호와 신의 계약의 표시로 할례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은 오류다.
3) 물에서 건져 내었다는 뜻에서 모세라고 이름을 지었다? → 출2:10.
그렇다면 이집트 파라오의 공주가 노예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알고
아기에게 히브리어로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억지가 된다.
더구나 자신의 양자로 삼기로 마음먹은 공주가 사랑하는 아들이자 왕자에게
구태여 노예들의 언어로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우스운 결론에 이른다.
사실은 모세는 히브리인의 이름이 아닌 이집트인의 이름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모세라는 이름은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
모세는 아들이란 뜻으로 보통 '~의 아들' 식으로 접미어로 사용되었다.
예컨대 투트모세는 투트의 아들, 아흐모세는 아의 아들, 람세스는 라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모세라는 이름은 이집트 이름이며, 아버지를 지칭하는 부분만 삭제되었음을 알 수 있다.
프로이트는 모세의 출생신화가 사르곤 왕의 출생신화(기원전 2800년)와
이집트 <호루스 탄생신화>를 고쳐 쓴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기원전 3세기 역사가 마네토, 기원전 1세기엔 유대인 역사가 필론과 요세푸스,
2세기의 교부 유스티아누스가 이미 이를 기록에서 밝힌 바 있다.
아톤 신은 자신을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칭했다.
이집트 아톤 신의 지칭어는 모세의 신화에 등장하는 여호와 신의 지칭어로도 차용되었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칭호가 출애굽기(3:14)에 그대로 옮겨져 있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다.
유아기의 모세 이야기가 사르곤 왕의 출생신화를 차용했듯이,
성인기의 모세 이야기 역시 이집트의 아크나톤 왕을 모델로 각색한 것이다.
모세와 여호와 신의 이야기는 아크나톤과 아톤 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편집한 것이다.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도문
"들어라, 이스라엘인이여. 너희들의 신 主는 유일한 신이다."는
유대인들이 독창적으로 만들어 낸 기도문이 아니라,
이집트의 일신교 아톤 신의 기도문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알렉산더 통치시대에 이르기 전까지의 고대 이집트에는
역사상 모두 30개의 왕조와 295명의 왕이 있었다.
이집트의 역대 왕들은 모두 다신교를 믿었다.
유일무이하게 태양신 아톤을 유일신으로 신봉한 왕은
제18왕조 10대 왕 아멘호테프4세 아크나톤(재위 기원전 1379~1360)이었다.
기원전 1375년 경 아멘호테프4세는 즉위 당시 성직자들의 횡포에
왕권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왕국의 수도 테베에서는 主神 암몬의 사제들이 막대한 권력과 부를 휘두르고 있었다.
왕은 치세 6년째에 종교개혁을 단행해 일신교의 기초를 만드는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다.
그는 종래의 이집트 판테온(만신전)을 폐지하고 태양신 아톤을 유일신으로 하는
일신교로 바꾸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아크나톤으로 개명하고, 수도를 테베에서 텔 엘 아마르나로 옮겼다.
당시 이집트 문명은 큰 발전을 이루고 경제적, 문화적, 군사적으로 막강하게 되어
이집트는 아시아에까지 세력을 펼쳤다.
그러나 왕의 일신교 사상은 유일신 종교 특유의 독선적,배타적 성향으로
다른 종교와 갈등을 빚었다.
가나안과 시리아에서는 반란까지 일어났으며 경제적으로도 혼란이 일어났다.
왕이 죽은 후 개혁은 좌절되고 암몬 신앙은 부활했으며, 수도는 다시 테베로 옮겨졌다.
아크나톤의 유일신 사상은 배타성이라는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당시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톤 신앙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우상금지조항이었다.
아톤이란 이름은 히브리어로 아돈 또는 아도나이(主,Lord)로 번역되었다.
히브리인들은 아마르나 시대 이집트의 아톤 신앙에 크게 공명했다.
기원전 1360년 아크나톤이 죽자 아톤 신앙의 붕괴를 보고 그들은 절망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톤 신앙의 이상국을 세우고자 열망하였다.
모세의 나이 80세, 그의 형 아론이 83세일 때, 여호와 신은 10가지 재앙을 이집트에 내린다.
여호와 신이 이집트인에게 내렸다는 10가지 재난의 공통점은
그것들 모두가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나일강이 피로 변한 것이 아니라, 핏빛으로 변한 것이다.
우기가 되면 대량의 진흙을 지녀 강물은 핏빛을 띄게 된다.
그래서 성서는 이집트인들이 흙탕물이 흐르는 강 주변을 파서
모래층을 거쳐 여과되어 나오는 깨끗한 물을 마셨다고 말하고 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집트에 대한 10가지 재앙은 이푸웨르 문서(기원전 19~16세기)의
내용을 그대로 베껴 쓴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하바나 길라는 '기뻐하자'라는 뜻으로, 블레셋에 빼앗겼던 성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다윗 왕이 기뻐서 행렬 앞에서 춤춘다는 내용이다.
구약성서에 흐르는 일관된 본질은 끈질긴 토지획득 투쟁이며,
여기에 여호와 신의 약속은 그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토지를 구하는 것과 신을 구하는 것은 그들 내부에서 하나가 되어 있다.
이는 또한 유목 이동생활에서 정주 농경생활로의 전환을 보여 준다.
야곱의 자손이 차츰 그 수가 늘고 힘이 강해지자 침략과 약탈을 감행하게 된다.
오늘날 이스라엘 학자들은 스스로 역사를 하나하나 바로잡아 가고자
진지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 성서가 편집/가필이 반복되었으며,
과거 신정체제에서 성서가 역사를 대신함으로써 진정한 역사서가 없다는 점을 통탄했다.
오늘날 이스라엘 학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신화와 역사의 분리작업이다.
역사에서 신화적 요소를 제거하고 진정한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이다.
근대에 들어 학자들은 이미 성서를 신화집으로 간주했다.
역사서로서의 조건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서술태도를 견지하고 있지 못하다.
심지어는 성서의 저자들의 감정이입의 흔적까지도 엿보인다.
예컨대 이집트의 사료에는 가뭄이 들어
작물이 타들어 가고 백성들 수천 명이 죽었다고 사실을 기록한다.
그러나 같은 사건을 성서에서는 여호와 신이 진노하여 하늘에서 불비를 내리고
당은 저주받아 소출이 없고 여호와 신을 원망한 백성들을
일시에 번갯불로 쳐 죽인다고 하는 식이다.
출애굽기는 신화를 역사로 둔갑시킨 대표적 사례의 하나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이 집단으로 탈출하는 이야기는
구약성서에서 매우 극적인 부분으로서 종교의 선전수단으로는 아주 좋은 얘깃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 이스라엘 민족사학자/고고학자들이 장기간 체계적 발굴조사와
검증연구를 한 결과 그것은 한낱 신화이자 허구로 밝혀졌다.
당사자국인 이집트는 물론 주변국 어떤 역사에도 관련 사료가 전혀 없다.
출애굽이 사실처럼 오인된 까닭은 저자들이 역사에 있었던 실제의 인명이나 지명들과
결부시켜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신화이면서도 마치 실제의 역사처럼 오인되도록 각색을
하였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의 그러한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모세의 출애굽 신화를 놓고 역사적 연대를 알아내려는
여러 가지 주장이 제시되었다.
마치 홍길동이 선조를 만난 것이 어느 해이냐에 관해 甲論乙駁하는 것과 같다.
신화와 역사적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한 결과로 빚어진 희극과도 같은 일이었다.
1) 열왕기(上6:1)나 텔 엘 아르마나에서 발견된 아르마나 문서(기원전 14세기) 등을
참조하여 기원전 15세기에 출애굽이 일어났다는 설이 있다.
2) 유대인들에게 강제노동을 시켜 파라오의 곡식을 저장해 둘 비돔과 람셋을 세웠다는
기록(출1:11)에 근거해 람세스2세 치하에서 기원전 1290년 경에 발생한 것으로 보는 설이다.
3) 람세스2세의 아들 메르넵타(재위 기원전 1213~1204) 시기에 이집트 탈출이
일어났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이집트 측 사료에는 대재앙이나 출애굽과 같은 사건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성서의 내용대로라면, 홍해에 수장되었어야 할 람세스2세나 메르넵타는
미이라가 발굴되어 물에 빠져 죽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한때 메르넵타 왕의 미이라가 발견되지 않자 기독교에서는
그가 모세를 추격하다가 홍해에 수장된 증거라고 주장했다가 웃음거리로 끝났다.
"초기 이스라엘의 출현은 가나안 문화의 붕괴의 결과이지
이스라엘이 가나안 문화를 붕괴시킨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사람 대부분이 유입민이 아니라 가나안 토착민 출신이었다."
- 이스라엘 핀켈스타인(텔아비브大 고고학자) & 닐 실버만(벨기에 고고학자).
이스라엘 역사학계의 조사결과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룻, 모세 그리고 여호수아가
존재했었다는 증거도 전혀 없음을 밝혔다.
역사적 관점에서는 이들 모두가 신화적 인물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꾸며진 것이라는 것이다.
출애굽 관련 몇 가지 모순된 내용.
1) 성서에는 출애굽의 정확한 날짜나 인명의 수까지 제시하고 있어
성서를 마치 역사서인 양 착각하게 한다.
성서에 의하면 최초에 이집트로 이주한 야곱의 자손들은 모두 70명이었다.
그런데 출애굽 당시에는 거의 200만 명의 막대한 인구가 되었다.
인구가 29,000배나 증가했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된다.
성서가 여호와의 선택된 민족의 번성을 강조하다보니 희극이 되어 버렸다.
2) 그렇다면 왜 이집트의 인구는 늘어나지 않았는가?
히브리 민족만이 번식력이 유달리 강했다는 말인가?
3) 열왕기上(6:1)에서는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한 것이
기원전 1495년(솔로몬 왕 4년(966) + 이집트 탈출 후 480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출애굽기(1:8~10)에선 그보다 훨씬 뒤의 시대(기원전 1279~1213)에도
유대들이 람세스라는 도시를 짓는데 동원되었다고 말하는 모순을 보인다.
1999년 이스라엘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오랜 발굴조사와 연구결과
역사로서의 출애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식적 최종발표를 했다.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 430년 동안 거주한 적은 없다.
이스라엘인들은 가나안 밖에서 이주하여 온 것이 아니다.
출애굽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출애굽은 기원전 7~5세기에 성서 편집자들에 의해 편집된 신화이다."
그러므로 홍해의 갈라짐, 만나의 기적, 호렙의 바위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출17:7) 등은
모두 성서 저자 또는 편집자들의 창작이다.
흥미로운 점은 유대민족 스스로 출애굽의 역사적 사실이 없다고 하는데,
非유대인들이 종교적 이유에서 여전히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필자가 만난 유대교 랍비 도비아스는
많은 한국인들이 출애굽을 역사로 믿는다는 말을 듣고
"동양인들은 무척 순진하다."는 말로 간단히 평했다.
바빌로니아 유수 당시 소규모의 포로들이 긴 세월에 걸쳐 탈출한 사실이나
40가구 정도의 사람들이 바빌로니아에서 탈출하여 이스라엘로 도망쳐 온 사건이
이집트에서 200만 명이 탈출한 이야기로 각색된 것이라는 학설도 유력시되고 있다.
홍해 이야기로 구약의 편집자들은 지상최강 권력자의 위신을 실추시킴으로써
여호와 신의 위대함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멋진 창작을 해냈다.
그런데 왕과 군대가 홍해에서 수장되었다면 이집트에는 급작스런 권력공백이 생겨
일대 혼란이 벌어졌겠지만, 그런 기록은 전혀 없다.
성서는 2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홍해를 걸어서 건넜다고 말하고 있다.
출애굽 경로에서 홍해의 폭은 좁은 지역도 최소 200km가 넘는다.
성인남자의 걸음걸이로도 7일이 소요되는 거리다.
이 모두가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기만하여 온 허구이다.
오랫동안 성서의 오역을 지적한 사람들은
성서의 절대성을 모독한 죄로 사탄으로 매도되어 화형에 처해졌다.
진리를 말하는 입을 봉하고 거짓을 유지시켜온 그들이 바로 사탄의 무리가 아닌가?
교부 이레니우스가
성서의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여호와 신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이라는 축자영감설을 주장한 후,
성서에는 오류나 모순이 있을 수 없다는 성서무오설로 전개되었다.
성서는 물을 가르는 이야기를 4번이나 되풀이해 말한다.
- 창세기(1:6)에서 물과 물을 나누고,
- 출애굽기에서 홍해의 물을 가르고,
- 여호수아(3:14~17)의 지휘 하에 가나안으로 들어가며 요르단 강을 건널 때 강물을 가르고,
-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왕하2:8, 2:14)가 요르단 강물을 가른다.
구약의 편집자들이 같은 테마를 무대와 등장인물의 이름만 교체하여
다른 부분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구약성서의 특징 중 하나이다.
같은 테마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가 쉽기 때문이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이야기의 원전은 바빌로니아의 창조신화인 에누마 엘리쉬이다.
창세기 편집자들은 바빌로니아 유수 당시 접한 이 신화를 차용했다.
히브리인들은 이 고대의 신화를 차용하여 자기 민족의 신화로 만들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히브리 민족의 필요와 환경에 맞추어 신의 이름이나 지명 등이 각색되었다.
바빌로니아의 마르둑 신이 구세계에서 우두머리였던 악한 용으로 표현된
바다의 신 티아맛의 시체를 둘로 나누는 신화는
구약에서는 여호와 신이 바다의 괴물로 표현된 리워야단(리바이어던, 라합)을 칼로 베어
죽이는 것으로 복제(시편74:13~14, 89:9~10 이사야27:1, 욥기26:12~13)되어 나타나 있다.
구약성서 속에는 많은 메소포타미아 신화들이 살아 숨쉬며
성서 곳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성서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첫걸음은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의 전승에 대한 이해이다.
광야에서의 메추라기와 만나라는 양식 이야기는
자연현상을 신과 연관 짓던 고대인의 원시신앙일 뿐이다.
다만 기원전 5세기에 이 이야기를 쓰고 편집하던 구약성서 저자들의 자연과학 수준을
말해주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 쯤 내리게 한지라." - 민11:31.
하룻길이란 거리단위는 성인의 평균여행거리로 32km이다.
고대의 길이단위 규빗(cubit)은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로 약 46~56cm이다.
그렇다면 땅에 깔린 메추라기 떼가 32,000m×32,000m×1m = 1,024,000㎥,
즉 10억 입방미터가 넘는 양이 된다.
이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류를 쌓아 놓아도 채울 수 없는 양이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 올라가 40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신의 계시를 받는다.
사실 사람의 몸은 40주야를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 누구나 신을 보게 되어 있다.
모세가 십계명을 석판에 새기고 있을 때
산 밑의 그의 동포들은 아피스 신상을 받들어 숭배하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이 모습을 보고 격분하여 신의 계시를 기록한 석판을 집어던졌다.
여호와 신은 일대 살인극을 벌여 이 날 죽은 자가 3,000명이라고 성서는 말한다.
그러나 여호와 신도 우상을 제작한 당사자인 권력자 모세의 형 아론만은 건드리지 못했다.
단순 가담한 사람들만 죽였다.
성서는 이러한 불공평한 처사에 대해서 아무런 답도 하지 않는다.
모세는 다시 산에 올라 40일간을 단식하며 십계명을 계시 받았다.
새로 받았다는 것은 조항이 교체되었거나 수정작업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산에서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4세기 교부 히에로니무스(345~419)가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의 히브리어 단어 '빛나다'를 '뿔'로 오역했다.
그 때문에 이후 기독교 미술작품에서는
모세의 머리에 뿔이 두 개 달린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각에 있어서 미켈란젤로(1475~1564)의 모세 상이 그 대표적 사례로 흔히 언급된다.
모세의 10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되던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의 법률에서 따 온
사료라는 것이 철저하게 밝혀졌다.
모세의 십계명은 함무라비 법전에 실려 있는 법 조항의 일부를 옮겨다 요약한 것이다.
함무라비(재위 기원전 1792~1750)의 석주에는 법전의 명문이 있고,
그 상단에 왕이 정의의 태양신 샤마쉬로부터 법전을 받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왕권을 공고히 하고 통치의 정당성을 주입하기 위한 방편으로
法神授思想 또는 王權神授思想을 적절히 활용한 것을 엿볼 수 있다.
태양신 샤마쉬로부터 함무라비 왕이 법전을 받는다는 개념,
즉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신으로부터 받는다는 개념을
여호와 신으로부터 모세가 율법을 받는다는 개념으로 대체했다.
모세 세력이 신정체제 또는 지배권을 확보하는 것을 정당화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모세의 율법/십계명의 원전으로,
이 법전의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증언 조항은 거의 그대로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에 옮겨졌다.
모세의 율법과 십계명은 성서의 저자들이
바빌로니아 유수 당시 접했던 함무라비 법전을 바탕으로 편집해 만든 것이다.
따라서 모세 율법의 형식이 다른 고대 오리엔트 제국의 법률과 매우 유사한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단어와 어투까지 똑같아서 학자들을 더욱 놀라게 한다.
→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모세의 십계명은 이집트의 유일신 태양신 아톤이 아크나톤에게 내린 18계명을
거의 그대로 옮겨 요약한 것이다.
또한 아톤 신의 찬송가 역시 구약의 시편 104편과 매우 유사하다.
모세 일파로 일컬어지는 유일신 아톤을 숭배하는 세력이
이집트 일신교 신앙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르나 시대 당시의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의 아톤 신앙에 크게 공명한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아톤 신의 18계명이 구약성서로 옮겨간 내용을 비교하면,
아톤 신의 이름만 여호와 신으로 대체된 채 여전히 구약성서 속에 살아 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주 아톤 신을 사랑하라."
- 아톤 신의 3계명.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신명기6:5.
게다가 아톤(Aton)은 히브리어 아도나이(Adonay), 그리스어 아도니스(Adonis)와 어원을
공통으로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성서 저자들은 여호와의 이름(YHVH)은 발음을 회피하여 대신 아도나이를 사용했는데,
이것 역시 아톤의 변형이다.
"들으라 우리 하느님 아톤은 오직 하나인 아톤이시다." - 아톤 찬가.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다." - 신6:4.
특히 질투하는 신이라는 매우 독특한 표현이나 우상숭배금지 등은
아톤 신의 계율에만 있는 문구이다.
"너희는 다른 신들을 질투의 신이자 창조주인 내 앞에 있게 하지 말라." - 아톤 신의 1계명.
"너희는 다른 신을 예배해서는 안 된다. 나의 이름은 질투하는 야훼 곧 질투하는 신이다."
- 출34:13.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나 여호와 너의 신은 질투하는 신인즉..."
- 신5:7~9.
피라미드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이집트 학자 프린더스 페트리(1853~1942)가 밝힌
아톤 신의 18계명을 여호와 신의 10계명과 비교하여 보자.
빛의 신이자 창조의 신이신 아톤 신이 내려 주신 평등의 율법은 이러하니라.
제1계명. 너희는 다른 신들을 질투의 신이자 창조주인 내 앞에 있게 하지 말라.
→ 1계명.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 출20:3.
제2계명. 너를 위하여 우상이나 다른 신들을 섬기기 위하여 어떠한 상도 만들지 말라.
→ 2계명.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 - 출20:4.
제3계명.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주 아톤 신을 사랑하라.
너 자신을 신으로 사랑하고 신을 너 자신으로 사랑하라.
제4계명. 너의 주 아톤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또한 그 이름을 걸고 거짓되이 맹세하지 말라.
→ 3계명.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 출20:7.
→ 9계명.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 - 출20:16.
제5계명. 너의 주 아톤 신의 날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 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 출20:8.
제6계명. 너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공경하라.
→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 출20:12.
제7계명. 살인하지 말라.
→ 6계명. 살인하지 말라. - 출20:13.
제8계명. 간음하지 말라.
→ 7계명. 간음하지 말라. - 출20:14.
제9계명. 물질적으로도 마음으로도 도둑질하지 말라.
→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 출20:15.
제10계명. 네 이웃에 속한 일체의 모든 것을 탐내지 말라.
→ 10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 출20:17.
제11계명. 너의 의지를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제12계명. 남을 판단하려 들지 말라.
제13계명.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를 기억하라.
제14계명. 신에게 행하는 모든 봉사를 거룩하게 여기라.
제15계명. 인류의 번영을 위하여 신의 지혜를 본받으라.
제16계명.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제17계명. 악행은 쉽게 드러남을 알라.
제18계명. 너희는 신이 창조한 어떤 인간도 노예로 부려서는 안 된다.
아톤 신이 여호와 신으로 대체되고 신의 명을 받들던 아크나톤 역시 모세로 대체되었다.
그럼으로써 이집트 일신교의 체계는 히브리인의 유일신 체계로 맥을 잇게 된 것이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신과의 계약이란 개념은
고대 오리엔트 국가의 종주권 조약을 바탕으로 한 사상에서 따온 것이다."
- 조지 멘덴홀.(1916~).
히타이트의 왕은 자신의 제국에 종속되어 있는 여러 제후국 왕들과의 사이에
상하 계약을 맺었다.
이스라엘에서는 바로 그 정치적 계약의 형식을 차용하여
여호와 신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계약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고대 오리엔트 종주권 조약의 형식이 구약성서에서
여호와 신과의 계약으로 차용된 구조를 살펴보자.
<표 종주권>
히타이트 종주권 조약의 특징 중의 하나는 계약의 이행에 따르는 축복과 번영,
위반 시에 받게 될 벌과 저주를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
모세가 신과 맺은 계약도 신명기에서는 이 형태를 그대로 따서 썼다.
특히 히타이트 조약에서는 하늘, 땅, 강, 산, 비 등의 자연과 자연현상까지도
계약의 증인으로 언급하고 있다.
구약성서에서도 이러한 점까지 그대로 옮겨
신명기(32:1~2)에는 하늘, 땅, 비 등을 증인으로 하고 있다.
조약이 체결된 후 제후국의 왕은 종주국 왕에게 복종을 맹세하는 공식적 선서를 했다.
선서 후엔 백성들 앞에서 조약을 낭독하는 의식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히타이트의 종주국 조약의 공식적 의식까지도
구약성서는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 7년...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 신31:10~12.
이처럼 구약성서는 히브리 민족 자생의 문학서가 아니라 성서의 저자들이
주변 선진문명국의 신화, 역사, 문서를 혼합하여
자신들의 필요와 풍토에 맞게 편집하고 각색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구약성서가 표절(plagiarism) 그 자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진정한 히브리의 율법과 십계명은 계약의 궤 속에서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근동의 고대 선진문명국의 사료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 충고한다.
히브리인의 성궤란 고작 메소포타미아 원본의 복사본이나 편집본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법률가들은 구약에 나타난 계약은 여호와 신이 계약이라는 미명 하에
일방적으로 자신의 뜻을 포고한 것으로, 이것은 계약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며
따라서 그 계약은 무효라고 한다.
더구나 계약당사자인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의무사항이 있으나
여호와 신에게는 아무런 의무사항도 없다.
용어 자체도 계약이 아닌 명령문이나 포고문, 또는 심지어는
계약상대방인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 신의 명령을 위반할 경우
받게 될 징벌이 명시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경고문으로 고쳐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경우 저주는 오늘날 법률상 요건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독교가 신과의 상하계약이라는 사고가 중심이 되는 계약종교라는 말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상명하복식 예종의 종교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