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 1장 19절에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하셨다.
성경의 한 쪽에는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 나오지만, 다른 한 편에는 말세에 내 교회와 백성이 믿음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경고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가 믿음에 대해서 일가견을 가지고 있지만, 참된 믿음인 구원하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개인적으로 아는 그리스도인은 매우 적다. 믿음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구원에 대한 엉뚱한 환상 속에서 생애를 끝마치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그리스도인이 된지 수십 년 동안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믿음에 대한 이상한 환상 속에서 방황하였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참된 믿음을 터득하였기에 이러한 간증의 고백을 하기에 이르렀다.
첫번째 의미
믿음에 대한 세가지 설명과 나의 가정에서 있었던 세가지 실례를 통하여 믿음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믿음에 대한 첫번째 정의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믿음이란 영혼의 행동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와 인도하심 가운데로 영혼 전체가 바쳐지는 것을 의미한다. 구원받는 믿음이란 하나님을 향하여 내가 하는 응답이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능력의 하나님께 자신 전체가 바쳐지는 것을 뜻한다." Havenly Places p.104. 감정과 격정이 치밀어 올라올 때에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믿음이다. 정욕과 방탕한 식욕이 올라 올 때에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믿음이다. 죗된 욕구가 강하게 올라올 때에 그것을 부인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믿음이다.
나의 가정에서 실제로 있었던 예를 통하여 믿음의 실체를 살펴보도록 하자. 16살된 아들, 마태가 한번은 엄마가 일하고 있는 부엌을 지나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다음과 같은 부탁을 아들에게 하였다. "마태야, 엄마가 바쁜데 저녁 식사 준비를 도와줄 수 있니?" 마태는 동생과 재미있게 놀기 위하여 밖으로 나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엄마의 부탁을 듣는 순간, 마태는 자신의 의지와 엄마의 명령이 마음 속에서 서로 부딪치는 것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마태의 어깨가 축 쳐지고, 얼굴이 찌끄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들의 의지는 엄마를 도와서 저녁 식사 준비하는 것을 거절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가정 예배 시간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배웠다. 올바르지 못한 감정과 느낌이 올라올 때에 그것을 부인하고 자신의 의지를 굴복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는 사실을 어렸을 적부터 배워왔다. 엄마의 부탁을 받고 망설이며 서있는 아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를 주목하였다. 마태는 부모의 말을 공경하라는 성경 말씀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성경 말씀에 대하여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살아있는 믿음을 활용하지 못하면, 성경 말씀은 실생활에 적용되지 못한다. 진리에 대한 지식은 가지고 있지만, 실 생활에서 진리대로 사는 경험을 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부엌 한가운데 서있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그가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아버지가 가정에서 가르치고 교회에서 설교하는대로 이 아이가 이 순간에 믿음을 활용할 것인가? 마태의 마음 가운데 극심한 갈등이 대립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이런 종류의 갈등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 과연 내 아들 마태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마침내 마태가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한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께 즉시로 찬양을 돌렸다. 육체와 영의 싸움에서 아들은 믿음으로 성령의 음성을 붙잡음으로써 승리하였다. 아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엄마, 나는 저녁 식사 준비를 돕는 대신에 밖에 나가서 동생과 놀기 원하지만, 엄마 말씀에 따를께요." 바로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이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굴복하여 드리는 것이다. 한 순간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믿음의 생애이다.
두번째 의미
믿음에 대한 두번째 설명은 다음과 같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자신의 의지와 뜻을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마음이 굴복되는 그곳에 자신의 애정이 부어지게 된다." 믿음은 의지와 마음을 주관할 뿐만 아니라, 육체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말씀을 믿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믿음은 매일의 생활에서 내가 믿는 성경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는가를 포함한다.
한번은 14살인 둘째 아들 앤드류가 숙제를 끝낸 다음에 산악용 자전거를 타기 위하여 막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앤드류에게 "얘, 엄마가 지금 매우 바쁜데 다리미질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니?" 그는 평소에 다리미질하는 것을 싫어했다. 엄마의 부탁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 속에는 갈등과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는 믿음을 통하여 자신의 의지를 굴복하고 어머니의 명령에 순종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엄마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집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가 밖에서 무엇을 하는가 궁금하여 창문을 통하여 그를 엿보았다. 그는 집앞 계단에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었다. 그는 자기 마음 속의 갈등을 하나님께 아뢰고 있었다. 잠시 후에 그는 집안으로 돌아와서 엄마에게 웃는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제가 다리미질 할께요."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인정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 말씀에 따라 자신을 굴복시키는 것, 이것이 믿음이 우리 생애 속에서 실제적으로 하는 역할이다. 믿음은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굴복하는 것이다. 항상, 그리고 어디에서나 양심 속에서 말씀해 주시는 그분의 음성에 나의 의지와 감정과 욕구를 굴복시키는 것이 믿음이다.
세번째 의미
믿음에 관한 세번째 정의는 다음과 같이 내릴 수 있다. "믿음은 모든 위기의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고 승리하는 것을 뜻한다."
한번은 두 아들과 함께 등산을 간 적이 있다. 내가 먼저 산의 정상에 올라섰고, 두 아들은 내가 내려주는 밧줄을 잡고 바위를 타고 올라와야만 산 꼭대기까지 올라 올 수 있었다. 나는 바위 산의 꼭대기 위에 서서 아들 마태에게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얘들아, 내가 내려주는 밧줄을 붙잡아라! 나는 너를 붙잡아 올릴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 염려하지 말고 밧줄을 의지하여 올라와라!" 나는 바위 산 꼭대기 위에서 두 아들의 눈을 내려다 보았다. 그들의 눈을 통하여 나는 그들의 갈등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나는 과연 아버지를 신뢰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힘을 믿어도 될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두 아들은 마음의 의심을 떨쳐 버리고 아버지를 믿는 믿음으로 밧줄을 잡고 산의 정상까지 올라왔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이란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신뢰하는 것이다. 나의 두 아들이 이 땅의 아버지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밧줄을 붙잡고 정상을 오른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늘 가는 길을 걸어야 한다. 믿음이란 모든 경우에, 위기의 경우에, 비상시에,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음성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내가 도달한 결론
믿음 자체에는 구원하는 능력이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공로로 여겨짐을 받아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에 관한 한, 인간에게는 어떤 공로도 없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고,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을 통하여 우리를 시험과 유혹 가운데서 건져내시는 것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하나님)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나의 가족은 몬타나주의 깊은 산속에서 살고 있다. 한번은 산 아래에 있는 시내에 가기 위하여 짚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조금 과속으로 커브길을 돌다가 그만 길옆 도랑에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지나가던 차가 멈추어지고, 내 차를 밧줄로 그 차의 범퍼에 연결시켜서 끌어내었다.
믿음이란 내 차를 도랑에서 꺼내기 위하여 묶었던 밧줄과 같은 것이다. 믿음이란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에게 나를 묶어 매는 밧줄과 같다. 밧줄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할 뿐 밧줄 자체에는 구원하는 능력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은 단지 연결시켜주는 밧줄의 역할을 할 뿐, 믿음 자체에는 구원하는 능력이 없다.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께 묶어 준다. 믿음에는 우리를 구원하는 면에 있어서 어떤 공로도 없다. 믿음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공로를 붙잡을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믿음이 없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내 자신 밖에 있는 구원자를 신뢰하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나의 그리스도인 신앙 생활에 있어서, 나는 믿음 대신에 다른 어떤 것을 신뢰해 왔는데, 그것은 성경 말씀에 대하여 내 자신이 갖고 있었던 지식이었다. 나는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대신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신학을 신뢰했고, 십자가와 하나님의 용서를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지식을 신뢰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매일의 생활에서 나를 죄와 유혹에서 건져내지 못했다. 그것은 죽은 지식에 불과했다. 내가 성경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또한 내가 다른 사람과 신학에 대해서 잘 논쟁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믿음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지식과 동의에 불과하였다. 믿음이란 우리 자신 밖에 있는 구원자를 전적으로 신뢰함으로써, 내 자신의 뜻과 의지를 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스도인이 된지 20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믿음은 우리 자신의 굴복이다. "나는 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노라"는 말씀이 믿음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의이다. 내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그리스도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리하여 "내게 힘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간증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 말의 의미를 다시 예화를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나는 독일계 미국인이다. 독일 사람은 매우 완고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다. 그들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가면 금방 화를 내는 기질이 있다. 독자 중의 어떤 사람은 나와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번은 새벽에 일어나서 2시간 반 동안 성경 말씀을 연구하고 마음을 그리스도께 드리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아래 층으로부터 급히 올라와서 "아버지, 큰일 났어요. 지금 저 밖에 있는 발전기가 꺼졌어요!" 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은 가까운 인가로부터 50마일 떨어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 속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가정에는 자가 발전기가 있어서 가정의 모든 전기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발전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즉시로 나는 그 문제를 고쳐야만 했다. 그러나 그 당시 집밖의 기온은 체감 온도까지 감안하여 영하 45도까지 내려갔다. 영하 45도에서 쇠로 만든 물건을 만져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이 춥고 캄캄한 새벽 시간에 밖에 나가서 발전기를 분해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육체와 마음 속에서는 격렬한 갈등과 좌절감이 일어났다. 어찌할 수 없는 성가신 느낌과 짜증이 급히 마음을 채워갔다. 이런 상태로 밖에 나가면 발전기 앞에 서서 화를 내면서 그것을 발로 걷어찰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추위에 밖에 나가면 감기 밖에는 걸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나를 에워쌌다. 발전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조금 전 새벽 헌신 시간에 가졌던 영적 경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때 그리스도께서 나의 마음 속에 이렇게 속삭이셨다. "얘, 너는 지금 나를 신뢰해야만 한다. 이 위기의 상황이야말로 네가 나를 신뢰해야 할 순간이란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성경 말씀(마 28:20)을 잊어버렸니?"
그리스도의 이 음성을 들은 그 순간, 나는 믿음의 결정을 해야만 하였다. 지난 주일에 교회에서 설교했던 그 말씀 그대로 이 위기의 상황을 믿음으로 승리해야만 하였다. 내가 집에서 평소에 강조하던 말씀대로 그 순간 믿음을 활용해야만 하였다. 위기와 시험이 닥쳐올 때, 나는 믿음으로 내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해야만 하였다. 나는 그 위기의 순간에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님이시여, 저를 제 자신의 느낌과 감정으로부터 보호해 주시옵소서. 지금 집 밖으로 나갈 때에 저와 함께 해주십시요. 주님을 신뢰하오니 저의 눈이 되어 주셔서 발전기의 문제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저의 독일인 기질이 나를 압도하지 못하게 지켜주시옵소서. 환경이 나를 주도하지 못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면서 나는 책상 위에 있던 조그만 쪽지 위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뜻대로 독립해 나가는 것은 내 생애의 저주이다. 주님이시여, 지금 저를 제 자신으로부터 구원해 주시옵소서." 기도가 마치자, 나는 예수께서 주시는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발전기를 고칠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살아 있는 믿음이다.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이다. 과거 같으면 화를 내면서 발전기를 발로 걷어차고, 안으로 들어와서는 아내에게 신경질을 내고, 아이들에게 고함을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경험이다. 살아 있는 믿음의 체험을 발견한 이후부터, 나는 위기의 상황마다 그리스도를 신뢰하였고 그분의 말씀과 음성에 굴복하였다. 위기의 상황에서 어떻게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손을 잡을 수 있는가에 대한 신앙 비결을 배운 다음부터, 나는 끊임없는 기도와 노력에 의해서 그분과의 연합 관계를 유지해 왔다. "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우리는 자아를 저지하고 부인함으로써 정복해야 한다.
나의 전쟁은 발전기와의 싸움이 아니었다. 나의 투쟁은 집밖의 영하 45온도와의 싸움도 아니었다. 나는 내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나는 발전기 앞에서 다시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님,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과 나의 문제입니다. 나를 홀로 내버려 두지 마옵소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예민하게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나를 따라 함께 나왔던 둘째 아들이 나의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교회와 가정에서 설교하고 가르치는대로 이 위기의 상황을 극복할 것인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의 자녀들은 성경절을 암송함으로써 믿음과 신앙을 배우는가? 아니면 부모들이 모든 상황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을 보면서 신앙을 배우는가? 그 날 새벽, 나는 30분 동안 침착한 태도로 발전기와 씨름한 끝에 결국 문제를 발견하고 고쳤다. 나의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정말 훌륭한 그리스도인인데요." 나는 그 아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니?" 아들은 대답하였다. "아버지는 주일 날에 설교단상에서 설교하는대로 집에서 사시니까요. 발전기가 고장났다고 제가 말씀드렸을 때, 처음에는 아버지의 마음 속으로부터 심한 좌절감이 올라오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아마 아버지는 화를 내면서 신경질을 내셨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버지가 기도로서 마음 속의 좌절감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인다운 태도로 발전기의 문제를 대처하시는 모습을 보았거든요." 나는 아들의 손을 붙잡으며 위기의 순간에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해 줄 수 있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면 복음대로 살아가는 비결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그들은 가정에서 부모가 보여주는 모본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살아 있는 믿음은 승리를 가져다 준다. 짜증과 분노를 낼 수 있는 상황에서 아내와 자녀에게 부드럽고 온화한 말을 건내 주는 것, 바로 이것이 믿음이 가져다 주는 승리이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믿음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면, 결코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구원을 경험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세상을 회개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영적 분위기를 가진 가정을 세워야 한다. 믿음은 성경을 아는 지식 이상의 것이다. 살아 있는 믿음은 성경 말씀을 우리의 생활 중심으로 가져옴으로써, 성경 말씀이 실 생활 속에서 실현되게 된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처음과 나중과 최상으로 삼는 생애를 살아간다. 가정에서 부모와 아내와 남편과 자녀에게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대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구별하는 경계선이 된다.
살아 있는 믿음을 발견한 다음, 나의 결혼 생활과 가정 생활은 전격적으로 변화되었다. 남편인 내가 성령의 감동하에서 모든 상황을 믿음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본 아내는 내 경험을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아내는 나의 간증에 감동하였고, 아내의 생애 또한 놀라운 변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아내가 변화되자, 자녀들이 엄마의 변화된 성품과 태도에 감동되어 부모의 말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이들로 자라났다. 지금 나의 두 자녀는 우리 부부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종들의 길을 걷고 있다. 복음은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다!
이 글은 www.sostv.net [살아남는 이들 제43호-대속죄일]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