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목사’였다면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원 하였을까? 그의 열강은 예배당에서 부흥회를 하는 시간과 흡사하였다. 열변을 토하고 설득력있게 이해를 시킬 때면 의례 힘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구한말 동양철학자인 ‘최한기’의 ‘기(氣)철학과 서양의니이체’와 비교하여 ‘한국동학사상’의 우월성을 강론하고 있었다.
잘도 전한다!!! 하면서도 계속 듣고 있자니 속에서 울분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그의 주장은 예수만 통해서 구원의 길이 있는게 아니라 모든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종교적 탈 이데올로기인 종교 다원주의 사상을 논리적으로 열강하고 있었다.그가 어떻게 하여 저렇게 되었는가? 그는 지금 중앙대 석좌교수로 있으며 동양철학을 가르치고 있다.지난 5일 권사였던 고 홍희남여사는 95세 일기로 장수한뒤 그의 곁을 떠나 주의 곁으로 갔다. 고 홍희남 여사는 모교회 권사로 한국의 어머니상 였다.엄격한 자녀교육과 철저한 자기관리로 막내인 도올뿐 아니라 슬하의 6남매 모두를 훌륭하게 키워냈기 때문이다.
도올의 큰형 김용준 박사는 서울대를 졸업한 뒤 미국 텍사스 A&M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해 고려대 교수를 역임하였고, 한남대 이사장인 둘째형 용균씨와 셋째형 용환씨는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누나 숙희씨는 이화여대 교수,문화부 장관을 역임하였다..천안에서 병원을 운영할 정도로 유복해 자칫 무례하거나 심약하게 클 수도 있었지만 홍여사는 도올에게 독(讀)선생을 붙여 예를 알고 배움의 길로 정진할 수 있도록 엄한 교육을 시켰다.
그런 이유로 도올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도 컸다. 대입 면접 때 감명 깊게 읽은 위인전을 묻는 면접관에게 “내가 읽은 가장 위대한 위인전은 엄마의 삶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위인도 나의 엄마”라고 대답한 일은 유명한 사례다.
어머니의 사랑과 신앙은 도올을 하나님이 사람으로 큰일을 하도록 두손모아 기도하였지만 도올은 한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학부 4학년 시절 은사였던 “안병무” 교수를 만나면서 예수의 반항아로 나서게 된다.“ 우리 사회”를 수세기 동안 지배하던 유학이 썩었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희망을 찾았지만 기독교도 빛을 잃고 있다네. 그러니 자네는 썩어있는 유학을 다시 세워 이민족과 세계에 희망을 주지 않겠는가?
도올은 교수의 권면으로 신학을 중도 포기하고 구한말 선비였던 다산 ‘유영모선생과 함석헌선생’의 영향을 받아 그의‘지식쌓기’가 시작된다.그가 하나님을 포기한체 30년동안 ‘동양철학’을 연구하였는데 뜬구름을 잡고 다닌 격이다.세상을 이해하고 이야기하는데 지식은 필수이다.그는 자기것이 아닌 ‘다양한 지식’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다..니이체가 말한데로 ‘신은 죽었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어떻게 믿을수 있는가? 독설 같은 외침이 있자 우뢰와 같은 박수가 관중석에서 터져 나왔다 예수를 입으로 죽이고 있는 실제 현장으로 현대판 사울의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하였다. 인생은 만남이다.어느때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에 영향을 받는다. 비진리인 가짜를 진리 같이 외치고 있는 그가 하루 빨리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진리’를 외치고 전하는 겸손한 종이 되기를 기도하며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