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라는 과학이론이 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 달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가상이론이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1961년 기상관측을 하다가 생각해낸 이 원리는 훗날 물리학의 카오스이론 토대가 되기도 했다. 변화무쌍한 날씨의 예측이 힘든 이유를, 지구상 어디에서인가 일어난 조그만 변화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날씨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오늘날 정보의 흐름이 매우 빨라지면서 지구촌 한 구석의 미세한 변화가 순식간에 확산 되는 예로 이 이론을 흔히 들고 있다. 처음에는 이 현상을 설명할 때 갈매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좀 더 그럴듯한 시적 표현을 찾은 것이 나비란다. 이 나비효과는 기존의 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작은 변화가 나중엔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즉 초기조건에 민감한 의존성이 가져오는 힘을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한 때 텔레비전 간장약 광고에 우루사 선전이 있었다. 힘세 보이는 반달곰이 귀엽게 기지개를 켜는 배경화면에 우람한 목소리의 탤런트가 등장해 피로를 이겨내는 무쇠 간장에는 웅담으로 만든 우루사가 좋다는 광고였다. 일터에서 격무에 시달리고 퇴근 후 술자리까지 몸을 혹사당하는 직장인들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천근만근 무거울 테고 누구나 이 광고를 보면 귀가 솔깃했을 것이다.
올해 중 3인 집의 둘째 녀석이 초등학교 다닐 때의 별명이 ‘우루사’였다. 그 별명을 누가 붙여 주더냐고 물었더니 같은 반 친구들이 그러더란다. 대개 별명은 그 사람의 신체 특징이나 특별히 선호하는 별난 취향에 따라 붙는다. 그런데 둘째 녀석은 그의 성격에 초점을 맞춘 별명이지 싶다. 미련하기보다 우직하게 끈기 있는 편이다. 녀석의 친구들은 그것을 포착하여 곰의 간에서 뽑은 성분이라는 우루사에 연상시켰던 것이다.
사실 둘째는 우직하고 끈기가 있는 편이다. 우리 집은 사내아이만 둘이니 좀 삭막했다. 그렇다고 성격이 과격하거나 목소리가 높아서가 아니었다. 여가시간에 컴퓨터게임만 하려드는 게 아이들 풍속도다. 사춘기가 오자 아비하고 목욕탕도 가지 않으려했다. 그래도 아비는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어 함께 인근 산이나 계곡을 찾았다. 처음에는 송사리도 잡아보고 다람쥐도 만나 좋아하더니만 얼마 안 가 길을 따라 나서지 않으려 했다.
하여 다시 삼부자가 함께 보낼 수 있는 여가시간이 무엇일까 생각한 끝에 찾은 것이 집 인근에 있는 시립도서관에 가는 일이었다. 어린이 전용실도 있고 일반열람실이나 정기간행물실 등을 돌면서 하루를 꼬박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일요일이나 방학이면 점심도 지하 식당에서 함께 먹고 온종일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습관으로 길들여지니 내가 먼저 나서지 않아도 제 먼저 찾아가서 책을 펴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 사이 한두 번 위기가 있긴 했다. 어쩌다 무협지에 흠뻑 빠진 경우도 있었다. 한번은 저녁밥을 먹은 후 자기 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지 않은가. 무협지에서 명상에 관한 책으로 옮아가 참선을 하면서 기를 모은다면서 이상한 동작을 하는 것이었다. 또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엄마, 스님은 어떻게 하면 스님이 되는 거예요?”하면서 엉뚱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제 자리로 되돌아왔다. 특히 자연과학에 관한 배경지식을 많이 갖게 되었다.
그 도서관에 들락날락한 것이 밑천이 되어 뭐 그렇게 별난 과외를 받지 않았다. 교육청에서 운영한 영재교육엔 참여했다. 지난해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발견 백주년을 맞아 유엔에서 정한 세계 물리의 해였다. 서울로 포항으로 다니면서 혼자 힘으로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여 전국에서 몇 뽑지 않은 청소년 물리 홍보대사가 되기도 했다. 과학경시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아 과학고등학교는 특별전형으로 입학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 녀석이 우루사 효과를 톡톡히 보는가 싶다. 강남을 비롯한 수도권 학부모들이 비싼 과외비 들여 특목고 진학에 집중 공략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류의 학교가 외국어고와 과학고다. 그 위에 민사고와 영재학교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영재학교 입학전형 마지막 단계 4박5일 캠프합숙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내신에 신경 쓰지 않고 수능을 거치지 않고 대학가는 유일한 학교다.
돈도 안 되고 영양가 없는 순수학문을 하려해도 믿음이 간다. 너의 갈 길을 무소의 뿔처럼 밀고 나가게나. 아니, 곰처럼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너희 갈 길 뚜벅뚜벅 걸어도 이 아비는 상관하지 않으련다. 너가 좋아하는 물리학에서 찾아내려 것이 무엇일까 궁금할 뿐이다. 카이스트 총장으로 왔다간 러플린은 피아노를 잘 쳤다고 하던데 너는 어쩌지. 판소리를 배워보든지 단소라도 불 줄 알아야 할 텐데.
첫댓글 우루사 아들을 두셨으니 건강은 걱정이 없으시겠습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저희 가락방의 자랑거리가 또 하나 늘었습니다. 듬직한 아드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학원아닌 도서관에서의 자기학습... 우루사의 끈질긴 저력.. 아들의 내일이이 기대됩니다
도서관이 최적의 피서지임을 지난 일요일 상남 도서관 꽉 채운 자리에서 느꼈습니다. 나비효과 같은 도서관에서 지낸 생활과 아버지의 모습이 우주의 넓은 세상을 보여 주신 듯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