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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2일 월요일 묵상
<1:1> 「솔로몬의 아가라」
<1:2>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1:3>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1:4>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1: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1:7>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
<1:8>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1:9>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1:10>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
<1:11>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
<1:12>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
<1:13>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1:15>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1:16>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1:17>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
<2:1>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2: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2:4>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2:5>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2:6> 「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
(매일성경본문)
매일성경 2019.04.22(월)
사랑하는 자야, 어여쁜 자야
본문 : 아가(Song of Solomon)1:1 - 2:7 찬송가 314장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갈망하고 서로의 아름다움을 칭송합니다. 둘 사이에 신분과 환경적 차이가 존재함에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4절 여인은 연인과의 사랑을 달콤한 포도주에 빗대어 적극적으로 사랑을 갈망하고, 연인의 이름을 값비싼 향유에 빗대어 존귀함을 표현합니다. 그는 성안의 여인들이 모두 갈망할 정도로 연모의 대상입니다. 여인은 그에게 이끌려 둘만의 시간을 갖길 원합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를 이끄시는 사랑의 손길로 주님의 방에 초대되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그분의 사랑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5,6절 누구라도 사모할 만한 매력을 지닌 연인과 달리, 술람미 여인은 햇볕에 그을려 피부가 검었습니다. 오빠들의 성화로 포도원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했지만, 게달의 장막과 솔로몬의 휘장에 빗대어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어떤 이유로 피부가 검어졌든 하나님은 그것조차 아름답게 보십니다. 완벽해서 아름다운 게 아니라 불완전하더라도 아름답게 보십니다.
7~11절 여인은 양들이 해를 피해 쉴 동안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자 행선지를 묻습니다. 연인은 자신이 모는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오되, 염소 새끼들을 먹이면서 오면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안내합니다. 또한 자기를 위해 단장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파라오의 병거를 끄는 암말에 비유하며 칭송합니다. 그 앞에 선 여인은 검게 탄 여인이 아닌 사랑하는 자일 뿐입니다. 사랑하면 만나고 싶고,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싶어 합니다. 교제 중인 이성이나 배우자, 하나님을 대하는 내 마음과 언어는 어떠합니까?
12절~2장 3절 여인은 연인을 몰약 향주머니와 고벨 꽃송이에 빗대며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후각적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이어서 서로를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에 빗대어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여전히 배우자를 가장 어여쁘고 귀한 자로 여깁니까? 마음이 담긴 최고의 찬사를 나누십시오.
2장 4~7절 두 사람은 잔칫집에서 친밀한 만남을 가집니다. 여인은 병이 날 정도로 연인을 사랑했고, 연인은 그 사랑을 순수하게 지키고자 합니다. 사랑은 이용하거나 무시해도 될 대상이 아닙니다. 존중하고 보호할 때 유지됩니다.
기도
공동체-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자를 사랑하는 자로 삼아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열방-카메룬의 영어권 지역에서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단체들이 활동하며 불어권 정부와 주민들을 향한 폭력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언어에 의한 갈등이 해소되고 평화가 정착되도록
(본문 해석)
4월 22일 월요일 아가 1:1~2:7절
1~6절 절에서 아가라는 말은 노래 중의 노래, 가장 아름다운 노래란 뜻이다. 이런 이름은 본래 속가 혹은 잡가의 반대말로 아가서를 남녀 사랑에 관한 책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적 관계를 노래하는 책으로 보는 해석 전통에 어울리는 제목이다. 아가서는 전통적으로 유월절에 낭독된다. 아가서의 저자는 전통적으로 솔로몬으로 알려져 있다. 아가서에서 솔로몬이라는 이름은 일곱 번 나온다. 2절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입맞춤을 원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남자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낫다고 말한다. 3절에서는 여자는 남자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서 여자를 더 자극하므로, 여자는 그의 이름을 향유에 비유하여 향유가 쏟아져 냄새가 진동하듯 그의 명성이 널리 펴져 그가 뭇 처녀들의 동경과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고 칭찬한다. 여기서 그의 이름을 향유에 비유함으로써 그분 자체가 매우 존귀한 인물임을 말해 준다. 그리고 향유 냄새가 사람들에게 황홀감과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그의 인생이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좋은 영향을 주었음을 암시한다. 4절에서 이 남자는 왕으로 소개되며, 이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는 그와 함께 있고 싶고 육체적으로 친밀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내비친다. 여자는 남자에게 그의 방으로 데려가 달라고 요청한다. 달려갈 준비가 됐다는 여자의 말에서 한시라도 빨리 남자와 함께하고픈 여자의 간절함이 나타나 있다. 여기서 여자는 ‘나’만이 아닌 우리를 언급하는데 이들은 아가서 전체에서 합창단처럼 나와, 여자의 감정이나 생각을 지지하거나 표현하는 데 동참하는 시적 장치 역할을 한다. 우리들은 여자와 마찬가지로 남자로 인해 즐겁고, 그의 사랑을 포도주보다 더 기억한다. 여기서 왕은 일반적으로 신랑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말이다. 신랑과 신부의 혼인식을 표현하는 것이며, 또한 이것은 흠모할 만한 우리의 연인이신 주님이 우리를 내밀한 교제와 연합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5절에서 여자는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자신의 피부는 검지만, 게달 족속의 검은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처럼 기품있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유대인 전통에 게달의 장막은 겉에서 보기에는 검고 울퉁불퉁하여 보기에 좋지 않지만, 안은 보석과 진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고 한다. 솔로몬의 휘장도 화려하고 아름다웠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로 게달의 장막과 솔로몬의 장막 즉 휘장은 모두 검지만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잘 반영하는 은유어일 것이다. 6절에서 여자의 검은 피부는 햇볕에 그을렸기 때문이다. 오빠들이 자기에게 화를 내어 자기를 포도원 지기로 삼은 탓에 포도원을 돌보느라 자기의 포도원, 즉 자기 몸은 돌보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유대의 해석에 의하면 이 여인은 세상의 관점에서 겉보기에 별 볼 일 없고, 매력 없지만, 내면적 아름다움을 가진, 즉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지식을 가진 유대인들을 상징한다. 고대 기독교 해석가들은 본래 진노의 자식이었으나 믿음으로 아름답게 된 이방인 교회에서 아가서 여인의 모습을 찾는다. 또한, 본래 죄의 본성으로 검은 자였으나, 주님을 바라는 마음으로 아름답게 된 모든 기독교인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이해되었다. 분명한 것은 피부가 검기 때문에 단점이고 부족한 점이었지만 연인의 사랑을 받은 자인 것이다. 외적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에 초점이 있는 것 같다.
7~2:3절 7절에서 여자는 남자를 내 영혼이 사랑하는 자라로 부르며, 그를 온전히 사랑함을 표현한다. 여자는 남자를 목자로 비유하여, 그가 어디서 양을 먹이고, 또 정오가 되면 어디서 양을 눕게 할지를 묻는다. 그리고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진 자 같이 되랴’라고 한다. 이 말은 남자가 여자에게 양을 쉬게 하는 장소를 알려주지 않으면, 여자는 그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 남자 친구들의 장막을 이리저리 기웃거려야 할 것이고, 그러다가 여자는 행실 나쁜 여인으로 오해받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여자와 남자가 단둘이 연애하러 간다는 사실이 다 알려질 수 있는데 그래도 좋은지 남자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다. 8절에서 남자가 등장하여 여자를 ‘여자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자’라고 부른다. 여자에게 새끼 염소들을 데리고 나와 남자와 동료들이 양 떼가 지나가는 발자국을 따라 나오라고 한다. 그러다가 쉬면 여자도 그 옆에서 자연스럽게 염소를 먹이라고 한다. 그러면 친구들은 여자가 남자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유대인의 미드라쉬 해석에 의하면 7~8절은 외적의 억압 속에 있는 이스라엘의 외침이다. 외적이 이스라엘을 누르고 핍박할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울면서 통곡하는 모습을 말한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하나님의 인도를 강조하는 대답이다. 매일 매일의 하나님의 발자취, 즉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곳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믿음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한 걸음, 한걸음 말씀을 따라가는 삶이다. 그렇게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살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주님의 품 안에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초기 기독교 해석가들은 신랑을 찾는 신부를 그리스도를 찾는 교회로 이해했다. 아무 방해 받지 않고 사랑하는 주님과 오붓하게 보내는 시간은 언제인가? 9절에서 남자는 여자를 바로의 병거를 끄는 암말로 비유한다. 어떤 학자는 암말이 등장하는 이유를 병거를 끄는 준마들을 성적 매력으로 유혹해 그들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또는, 어떤 학자는 성적 매력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화려하게 장식된 외모에 초점이 있다고 본다. 이것은 10~11절과도 연결이 된다. 10절에서 귀걸이와 목걸이로 장식된 여인의 두 뺨과 목에 집중한다. 11절에서 ‘우리’는 남자의 감정이 이입된 코러스를 지칭한다. 여인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감동한 남자가 여인을 더 아름답게 치장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여 구슬 목걸이를 찬 여자에게 금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어주어서 여자의 아름다움을 한층 높여주고 싶다. 서로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있다. 12~14절에서는 남자를 칭송하는 여자의 노래이다. 12절에서 여기서 다시 남자를 왕으로 표현한다. 여인은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침상에 앉았을 때에 자신의 귀한 나드 기름의 향을 쏟아 뿜어냈다고 말한다. 나드 향품은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매우 값비싼 향품이다. 13절에서 내 사랑하는 이는 몰약 주머니라고 한다. 몰약은 나드와 마찬가지로 결혼식 예복, 왕을 알현할 때에, 아주 특별한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사장과 성전 기물에 기름 부을 대도 사용되었다. 그래서 관능적인 측면과 종교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남자와 가까이 있고픈 여인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것은 여인이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가장 보배로운 존재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14절에서 여자는 남자를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라고 한다. 고벨화는 고급스럽고 귀한 화장품이었고, 향수였다. 이것 역시 남자와 함께 있고픈 여인의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유대인 미드라쉬는 12절을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셨을 때 이스라엘이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고백한 사건을 나드가 그 향을 발하는 것으로 보았다. 초기 기독교 해석가들도 이것을 알레고리로 해석해서 이해했다. 몰약 주머니가 여인의 두 가슴 사이에 있듯이 그리스도 신. 구약 사이를 연결시킨다고 보았다. 15절에서 남자는 여자를 아름답다고 두 번이나 반복하며 여자의 아름다움을 무한히 긍정해준다. 또한, 여자의 눈을 비둘기로 비유한다. 이것은 매력적으로 화장한 여인의 눈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16~17절은 여인의 화답이다. 여자는 남자를 향하여 잘 생겼다고 답을 한다. 그리고 둘은 백향목으로 집을 삼고 잣나무를 서까래 삼고 풀밭을 침상 삼아 살자고 노래한다. 2:1절에서 여자는 자신을 사론 평야에서나 골짜기에서 평범하게 핀 수선화나 백합화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자신이 들에 백합화들이 수업이 핀다는 점에서 자신이 들에 흐드러진 백합화들 중의 하나처럼 평범한 여자에 불과함을 말하는 것 같다. 2절에서 남자는 다른 여자들은 자신의 눈에 가시덤불이며, 자신의 여자만이 그 가운데 백합화처럼 돋보인다고 칭찬해준다. 3절에서 이에 여자는 다른 남자들은 숲의 평범한 나무들이나. 남자는 사과나무처럼 두드러진다고 찬양한다. 그늘과 열매를 통해 여자에게 평안과 안전과 즐거움을 공급해주는 매력적인 존재임을 표한다. 아무도 사랑하는 이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세상에 없다. 예수님이 없는 우리는 가시덤불에 불과하다. 가시덤불처럼 메마르고 남에게 상처 주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신랑 삼은 우리들은 그분의 그늘 아래 보호받으며,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온갖 기쁨을 누릴 수 있다.
2:4~7절 4절에서 남자는 여자를 잔칫집으로 인도한다. 잔칫집은 포도주가 제공되는 집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궁전이나 귀족의 집에서 설치된 연회장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유흥을 즐기는 선술집과 같은 곳일 수 있다. 여기에서 남자에게 그곳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 고백되고 표현되는 둘만의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 여자에 대한 남자의 사랑이 군사가 가진 깃발처럼 확고함이 밝혀졌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나에 대한 그의 눈빛은 사랑이었다는 표현이다. 5절에서 여인은 자신에게 건포도와 사과로 기력을 회복시켜 달라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기진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생긴 상사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6절에서 남자는 왼팔을 여인의 머리 아래에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여인을 감싸나. 어느 정도의 스킨쉽을 말하는 것 같다. 7절에서 사랑에 빠진 여인은 다른 여인들을 불러 노루와 들 사슴을 두고 맹세한다. 여기서 노루와 들 사슴은 만군의 여호와와 엘로힘에 대한 언어유희로 이해한다. 즉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무르익어 완전한 연합을 이루는 적정한 때까지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사랑을 자극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충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