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창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난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기녀 이매창
조선 선조 때의 기생이며 여류시인인 이매창은 1573년에 당시 부안현리였던 이탕종의 서녀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웠으며, 시문과 거문고를 익히며 기생이 되었는데, 이로 보아 어머니가 기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태어난 해가 계유년이었기에 계생(癸生), 또는 계랑(癸娘)이라 하였으며, 향금(香今)이라는 본명도 가지고 있다. 부안의 명기로 한시 70여 수와 시조 1수가 전해지고 있으며 시와 가무에도 능했을 뿐아니라 정절의 여인으로 부안 지방에서 400여년 동안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매창은 부안읍 남쪽에 있는 봉덕리 공동묘지에 그와 동고동락했던 거문고와 함께 묻혔다. 그 뒤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곳을 매창이뜸이라고 부른다. 그가 죽은 후 몇 년 뒤에 그의 수백편의 시들 중 고을 사람들에 의해 전해 외던 시 58편을 부안 고을 아전들이 모아 목판에 새겨 <매창집>을 간행하였다. 당시 세계 어느 나라를 둘러보아도 한 여인의 시집이 이러한 단행본으로 나온 예는 없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매창 시비에 적힌 시조>
이 시조는 평시조이며 단형시조로 비처럼 휘날리는 배꽃, 이화우(梨花雨)에서 추풍낙엽으로 이어지는 시간적 이별이 일순간 천리 공간을 뛰어넘어 그리운 임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창이 유희경과 이별하고 지은 이 시조는 <가곡원류>에 실려 전하는데 이별가로서 이보다 더한 절창(絶唱)이 또 없을 듯하다.
내 정령(精靈) 술에 섞여 님의 속에 흘러들어
구곡간장(九曲肝腸)을 마디마디 찾아가며
날 잊고 님 향한 마음을 다스리려 하노라
기러기 산 채로 잡아 정들이고 길들여서
님의 집 가는 길을 역력(歷歷)히 가르쳐주고
한밤중 님 생각날 제면 소식 전케 하리라
(문정희 역)
등잔불 그무러갈 제 창(窓) 앞 짚고 드는 님과
오경종(五更鐘) 나리올 제 다시 안고 눕는 님을
아무리 백골이 진토(塵土) 된들 잊을줄이 있으리
내 가슴 흐르는 피로 님의 얼굴 그려내어
내 자는 방안에 족자 삼아 걸어두고
살뜰히 님 생각날 제면 족자나 볼까 하노라
(문정희 역)
나그네가 시를 지어 사랑을 구하자 계생(매창)이 운을 빌려 짓다
평생에 동쪽 집에서 먹는 일 배우지 않고
오직 매창(梅窓_에 달 그림자 비침을 사랑했지
시인은 여인의 맑은 뜻 알지 못하고
부절없이 뜬 구름만 잡으려 하네
(문정희 역)
한(恨)
봄새라 치위는 가시지 않아 / 볕드는 창가에서 옷을 깁노니
숙인 머리에 눈물이 떨어져 / 옮기는 실귀가 말없이 넞는다 (신석정 역)
산수(山水)를 찾아서
먼 산은 사뭇 아스므라한데 / 언덕엔 버들이 안개에 묻혀
잔 들어 시름은 풀 곳이 없고 / 고깃배 가는 곳에 살구꽃 핀다 (신석정 역)
단장사장 1
서울은 꿈속에 삼 년이 넘고 / 강남에 봄이 또 찾아드누나
덧없는 옛 생각 둘 곳이 없어 / 이 밤을 고소라니 떠 새노라 (신석정 역)
단장사장 2
그립던 그대 날 찾아오니 / 밤새워 하는 이야기 길바께
이렇게 뜰 바에야 오시지 말지 / 잔 들어 설레는 마음 둘 곳이 없어 ... (신석정 역)
강남곡 3장
동부새 한밤을 비가 오는데 / 매화랑 버들이랑 봄을 시새워
잔 들어 이 자리에 그댈 보내기 / 차마 사람으론 못할 일이어 ...(신석정 역)
님께
간직한 옛 비파 홀로 뜯으니 / 생각은 흘러 흘러 끝이 없어라
이 곡조 뉘 알려 그 뉘 알으리 / 님의 먼 젓대에 맞춰보노니(신석정 역)
병상음 1
봄이 싫여 병상에 누은 게 아니어 / 떠나신 그대가 그리워 그렇지 ......
뜬 세상 괴롬은 말하기도 싫다 / 어쩌지 못하는 건 못 펴는 정(精)이어 (신석정 역)
병상음 2
하구많은 뜬말이 하도 많아서 / 세상은 수수하기 짝이 없어라
한 많고 시름 많은 괴로운 심정 / 차라리 앓은 채 문을 닫으리 (신석정 역)
그대에게(一)
봄 오고 그댄 올 길 바이 없고 / 바라보아도 바라보아도 덧없는 마음
들여다보는 거울엔 먼지가 끼어 / 거문고 소리만 달 아래 흘러간다 (신석정 역)
그대에게(二)
바라보는 꽃에도 한숨이 일어 / 제비 소리에도 옛 시름 자아낸다
밤마다 그리는 정 펼 길이 없어 / 낙숫물 소리에도 잠을 깨운다 (신석정 역)
님 생각 (一)
떠난 정(精) 못 이겨 문 닫고 앉었으니 / 눈물은 속절없이 소매를 적신다
인젠 빈방을 찾아올 이 없고 / 가는 비 보슬보슬 해가 저물어 (신석정 역)
님 생각(二)
애끊는 정(精) 말로는 할 길이 없어 / 밤새에 머리칼이 반(半) 남아 세였고나
생각는 정(精) 그대도 알고프거던 / 가락지도 안 맞는 여윈 손 보소 (신석정 역)
취하신 님께
취하신 님 사정없이 날 끌어단
끝내는 비단적삼 찢어놓앗지
적삼 하날 아껴서 그러는 게 아니어
맺힌 정(精) 끊어질까 두려워 그렇지 ......
(신석정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