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쌀로 불리던 통일벼는 1970년부터 장려품종으로 선정하였고, 정부는 일반 품종보다 쌀 생산량이 30% 이상 높은 통일벼를 지속적으로 보급하였다. 통일벼는 1972년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보급되면서 ha당 쌀 생산량은 1977년 4.94 톤으로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그 결과 1977년에 쌀의 완전 자급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통일계 품종은 1980년대 들어서 냉해 피해를 크게 입으면서 관심에서 멀어졌다. 통일벼는 재래 품종보다 내냉성(耐冷性)이 낮기 때문에 보온 못자리가 필요했고, 충분한 양의 비료와 물이 공급되어야 했다. 키가 작기 때문에 볏짚이 짧아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만들기는 어려웠고 밥맛도 비교적 떨어지지만, 소출이 많아 우리나라 국민들이 모처럼 쌀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입맛인 일본계 자포니카와 맛이 달라서 회의적인 상황과 더불어 예상치 못한 아일랜드 감자 기근(Irish Potato Famine, Great Hunger)*과 같은 상황에는 대비가 미흡했다. 한때 ‘기적이 볍씨’라고 칭송하던 통일벼는 1978을 전후하여 통일벼 생산량이 급격히 줄면서 우리의 논에서 사라지게 된다. 비록 20여 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통일벼는 민족의 숙원인 보릿고개를 해결한 역사적 공로를 간직하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 생활에서 보릿고개와 함께 통일벼도 사라지면서 기억으로만 남았다. 그 뿐 아니라 통일벼가 새겨진 50원짜리 동전도 사라지고 있다. 50원짜리 동전에 새긴 그림이 바로 통일벼의 '볏 이삭'이다. 1972년 12월 1일 처음으로 '통일벼'를 개발한 '허문회'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통일벼'를 동전에 새긴 것이다.
통일벼 육종을 연구하던 무렵인 1960년대 후반, UN 식량농업기구가 세계 식량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FAO Coin Plan'으로 주요 나라에 농업(특히 식량 작물) 소재의 주화 제작을 권장하였다. 그에 따라 한국은 우리의 주식인 쌀을 주제로 벼 이삭과 잎사귀를 50원 동전에 도안하여 1972년 12월에 발행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50원짜리 동전이 일본 5엔짜리 동전을 표절한 것처럼 보인다. 잘 보면 일본의 5엔은 벼 이삭이 오른쪽으로 한국의 50원은 벼이삭이 왼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리고 볏낱알도 '일본'의 5엔 동전은 27개이고 한국의 50원짜리 동전은 28개이다. 넓은 개념으로 보면 표절이다. 물론 당시에는 우리나라 국민의 해외여행은 금지되고 일본 문물도 제대로 들어오지 못하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5엔짜리 동전은 1949년에 나왔고, 현재 사용 중인 동전은 1959년에 나왔으므로 FAO Coin Plan과 직접 관련은 없다. 그 당시에 디자인에 대해 오늘날과 같은 엄격한 표절개념을 적용할 수 없더라도 닮았다고 볼 수 있는 디자인이다. 좌우간 한국의 50원짜리 주화는 FAO Coin Plan에 따라 만든 것이고, 보릿고개를 넘어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의 염원을 새긴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자료: 심의섭, 거울의 헛기침(전자책), 한국문학방송.com, 2022. p.94+ >
첫댓글 * 아일랜드는 기후가 춥고 습해서 감자 말고는 잘 자라는 작물이 거의 없었다. 아메리카에서 감자가 처음 전해지면서 소출이 많아지자 경작지가 늘어났다. 175여 년 전(1845) 초기에 문제없던 감자밭에 곰팡이 병이 돌더니 아일랜드 전역을 덮치면서 800만 인구 가운데 100만 명이 죽어나갔다. 당시 유행한 감자병으로 인해 감자 농사가 연속적으로 실패하면서 1845년에는 감자의 4분의 3이 감염됐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기근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