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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의 그림과 시
Winged Old Man with a Long White Beard - Odilon Redon
기탄잘리 1
당신은 나를 무한케 하셨으니 그것은 당신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당신은 비우고 또 비우시고 끊임없이 이 그릇을 싱싱한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이 가냘픈 갈대 피리를 당신은 언덕과 골짜기 넘어 지니고
다니셨고 이 피리로 영원히 새로운 노래를 부르십니다.
당신 손길의 끝없는 토닥거림에 내 가냘픈 가슴은 한없는 즐거움에 젖고 형언할 수 없는 소리를 발합니다.
당신의 무궁한 선물은 이처럼 작은 내 손으로만 옵니다.
세월은 흐르고 당신은 여전히 채우시고 그러나 여전히 채울 자리는 남아 있습니다.
GITANJALI 1
Thou hast made me endless, such is thy pleasure. This frail
vessel thou emptiest again and again, and fillest it ever with fresh life.
This little flute of a reed thou hast carried over hills and dales, and
hast breathed through it melodies eternally new.
At the immortal touch of thy hands my little heart loses its limits
in joy and gives birth to utterance ineffable.
Thy infinite gifts come to me only on these very small hands of mine.
Ages pass, and still thou pourest, and still there is room to fill.
Oriental Woman (Woman in Red) - Odilon Redon
기탄잘리 12
내 여행 시간은 길고 그 길은 멉니다.
나는 태양의 첫 햇살을 수레를 타고 출발하여
숱한 항성과 유성에 내 자취를 남기며 광막한 우주로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가까이 가는 것이 가장 먼 길이며
그 시련은 가장 단순한 가락을 따라가는 가장 복잡한 것입니다.
여행자는 자기 문에 이르기 위해 낯선 문마다 두드려야 하고 마지막 가장 깊은 성소에 다다르기 위해
온갖 바깥 세계를 방황해야 합니다.
눈을 감고 “여기 당신이 계십니다!”고 말하기까지 내 눈은 멀리 멀리 헤매었습니다.
물음과 외침, “오, 어디입니까!”는 천 갈래 눈물의 시내로 녹아내리고
“나 여기 있도다”란 확언이 홍수로 세계를 범람합니다.
GITANJALI 12
The time that my journey takes is long and the way of it long.
I came out on the chariot of the first gleam of light, and pursued my
voyage through the wildernesses of worlds leaving my track on many a star and planet.
It is the most distant course that comes nearest to thyself, and that
training is the most intricate which leads to the utter simplicity of a tune.
The traveler has to knock at every alien door to come to his own, and
one has to wander through all the outer worlds to reach the innermost
shrine at the end. My eyes strayed far and wide before I shut them and said, “Here art
thou!” The question and the cry, “Oh, where?” melt tears of a thousand
streams and deluge the world with the flood of the assurance, “I am!”
mystery - Odilon Redon
종이배
매일 매일 나는 종이배를 하나씩 흐르는 물살에 띄워보냅니다.
크고 검은 글씨로 나는 그 배에 내 이름과 내가 사는 마을 이름을적어놓습니다.
낯선 나라 누군가가 내 배를 발견하고 내가 누구인지 알아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집 정원에서 따온 슐리꽃을 내 작은 배에 싣고
이 새벽의 꽃들이 밤의 나라로 무사히 실려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종이배를 띄우고 하늘을 보고 바람 안은 흰 돛 형상의 조각구름을 바라봅니다.
하늘의 내 또래 장난꾼이 내 배와 경주하려 바람을 구름에 날리는지 알 수 없어요!
밤이 오면 나는 얼굴을 팔 안에 묻고 한밤의 별 아래 내 종이배가 흘러 흘러가는 꿈을 꿉니다.
잠의 요정들이 그 배에 노를 젖고 뱃짐은 꿈으로 가득 찬 광주리입니다.
PAPER BOATS
Day by day I float my paper boats one by one down the running stream.
In big black letters I write my name on them and the name of the village
where I live. I hope that someone in some strange land will find them and know who
I am. I load my little boats with shiuli flowers from our garden, and hope that
these blooms of the dawn will be carried safely to land in the night.
I launch my paper boats and look up into the sky and see the little clouds
setting their white bulging sails.
I know not what playmate of mine in the sky sends them down the air to race with my boats!
When night comes I bury my face in my arms
and dream that my paper Boats float on and on under the midnight stars.
The fairies of sleep are sailing in them, and the lading is their baskets full of dreams.
flowers - Odilon Redon
정원사 85
백 년 뒤에 나의 시를 읽고 있는 독자여,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이 풍성한 봄날에 피는 꽃을 한 송이도 당신에게 보내드릴 수 없고
저 하늘 구름밭 새의 한 줄기 금빛 햇살도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당신의 문들을 열고 밖을 내다보십시오.
당신의 꽃피는 정원에서 사라진 백 년 전의 꽃들의 향기로운 추억들을 모아보십시오.
기쁜 마음으로 당신은 백 년 세월 저 너머로 즐거운 목소리를 보내며
어느 봄날 아침을 노래했던 그 생생한 기쁨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The Gardener (85)
Who are you, reader, reading my poems an hundred years hence?
I cannot send you one single flower from this wealth of the spring,
one single streak of gold from yonder clouds. Open your doors and look abroad.
From your blossoming garden gather fragrant memories of the vanished flowers of an hundred years before.
In the joy of your heart may you feel the living joy
that sang one spring morning, sending its glad voice across an hundred years.
인도 음악....... Track 8】 VAISHNAVA VIJNAPTI (9:16)
『Prayer To The Vaisnava』 by Narottama Das Thakur
(16th century, Bengali)
<출처: 박사플래닛 / sunshine>
라빈드라니드 타고르의 그림. 여인(女人의 頭部)제작년도 1931년
타고르 詩모음
기도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게 하시고
위험에 처하여서도 겁을 내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게 하시고
고통을 극복할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인생의 싸움터에서 동조자를 찾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게 하시고
인생과 싸워 이길 스스로의 힘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근심스런 공포에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게 하시고
자유를 싸워 얻을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겁장이가 되고 싶지 않나이다.
도와 주소서
일취월장하는 성공 속에서만 하느님이
자비하시다고 생각지 말게 하시고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도
하느님이 내 손을 힘껏 쥐고 계시다고
감사하게 하소서
당신의 말씀은
당신의 말씀은 단순합니다
오 주여
그러나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말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저는 알 만합니다
당신의 별들의 소리를
그리고 당신의 수목들의 그 침묵을
저는 느낍니다
제 마음이 꽃같이 피어나려 함을
그리고 저의 삶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샘물을 마시고 충만해 있음을
당신의 노래는
눈에 싸여 적막한 나라로부터 날아온 새처럼
저의 마음에 둥지를 틀고
그 속에서
제 마음의 '4월'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은 흡족하여
복된 계절을 기다리게 됩니다
영혼의 목소리
님께서 이 몸을 영원케 하셨으니
이것이 곧 님의 기쁨입니다.
연약한 이 그릇을 몇 번이고 비우시고
늘 새로운 생명으로 채우셨나이다.
님은 이 가냘픈 갈대피리를
산과 골짜기 너머로 나르시고
영원한 새로운 멜로디를 불어넣으셨나이다.
님의 불멸의 손길이 닿자
나의 어린 가슴은 기쁨에 겨워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말을 외칩니다.
님의 무한한 선물은
아주 작은 이 손을 타고 와서
세월이 흘러가도 영원히 부으시니
그래도 채울 자리 여전히 남았습니다.
이 예쁜 꽃을 꺾어 가십시오
조금도 지체하지 마시고
꽃이 시들어 땅에 떨어질까 걱정이니
이 꽃이 님의 화관에
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지언정
님의 손길로 꺾는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
어느새 해 저물어
님에게 바칠 시간도 없이
때가 지나버릴까 두렵습니다.
빛은 밝지 않고
향기 또한 희미하지만
이꽃을 님을 섬기는 데 쓰고자 하오니
때가 가기 전에 꺾어 주십시오.
기탄잘리(Gitanjali / 신께 바치는 송가)
71~90
71
나는 소중하게 간직하던 자신을,
사방으로 향하게 하여
당신의 아름다운 빛에 그림자를 던져야 합니다
- 이것은 당신의 '마야'입니다.
당신은 스스로의 존재에 울타리를 치고,
수한 곡조로 당신의 분신을 부릅니다.
당신의 분신은 나의 내부에도 깃들여 있습니다.
절실한 노래는
온 하늘을 통하여
여러 빛깔의 눈물, 미소, 공포, 희망이 됩니다.
물결이 밀려와서는 다시 부서지고,
꿈이 깨어졌다가 다시 이루어집니다.
나의 내부에서 당신은
스스로 이기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세운 막에는
낮과 밤의 붓으로
수많은 형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뒤에 마련되어 있던 당신의 자리는
놀라운 신비의 곡선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불모의 직선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당신과 나의 놀라운 장관이 하늘 가득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의 곡조로 대기가 온통 진동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세대를 거치면서 당신과 나는 숨바꼭질을 합니다.
72
가장 깊은 곳에서 머무르고 있는 당신은
신비스러운 손길로 나의 존재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당신은 마법의 주문으로 나의 두 눈에 신비로운 힘을 주고,
기쁨과 고뇌의 선율로 연주하면서 나의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금빛과 은빛,
파랑 색과 초록색의 미묘한 빛깔로
환상의 직물을 직조하고
'마야'의 비단을 짜서
그 주름 사이로 발끝을 보여줍니다.
당신의 발에 나의 손이 닿을 때마다,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립니다.
많은 날이 흘러가고, 세월은 지나갑니다.
당신은 언제나 변함없이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기쁨과 슬픔의 많은 법열 속에서
나의 마음을 감동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73
나에게 있어 해탈이라는 것은
체념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수많은 환희의 속박 가운데
자유로움의 포옹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나를 위하여
여러 종류의 빛깔과 향기가 감도는
신선한 술을 부어주고 있습니다.
이 잔에 가득히 채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세계는 당신의 불길로 인하여
수많은 등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당신 사원의 제단 위에 바칩니다.
나는 감각의 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
보고 듣고 손길이 닿는 기쁨은,
당신의 환희를 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모든 환상은 기쁨의 불꽃으로 타오를 것이며,
나의 모든 욕망은 사랑의 열매가 될 것입니다.
74
날은 저물고 땅거미가 대지를 뒤덮습니다.
강가로 나가서 항아리에
물을 가득히 길어올 때가 되었습니다.
저녁 바람은 강물의 슬픈 음악소리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아,
저녁 바람과 물소리가
나를 황혼 속으로 불러내고 있습니다.
쓸쓸한 오솔길에는 인적이 모두 끊어졌습니다.
강물에는 잔물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누군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창 가에 정박하고 있는 작은 배 위에서
낯선 사람이 현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75
당신의 선물은 우리의 모든 요구를 부족하지 않게 채워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줄어드는 일이 없이,
당신에게로 되돌아 갑니다.
강물을 날마다 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벌판과 마을을 가로질러 달려갑니다.
하지만 강물의 끊임없는 흐름은
당신의 발을 씻어주기 위하여
다시 굽이쳐서 되돌아 갑니다.
꽃은 향기를 풍기면서 대지를 달콤하게 만들지만,
그 마지막 의무는 당신에게 몸을 바치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 세상을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시인의 말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의미를 찾아내지만,
그 마지막 의미는 당신을 향하는 것입니다.
76
오,
내 생명의 신이여.
날마다 당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두 손을 모으고,
오, 이 세계의 신이여.
나는 당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고독과 침묵의 영역에 잠겨 있는 당신의 위대한 하늘 아래에서,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당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고난과 투쟁으로 소란스러운 당신의 세계에서,
바쁜 사람들의 무리와 뒤섞이면서도
나는 당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나의 일이 이 세상에서 끝나게 될 때,
오, 왕 중의 왕이여.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홀로 당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77
나는 당신을, 나의 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과 떨어진 곳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당신을 나의 것으로 여기지도 못하고
가까이 접근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나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면서
당신의 발 아래 머리를 숙입니다.
친구의 손을 잡는 것처럼
당신의 손을 잡지도 못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다가와서,
당신이 나의 것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가슴에 껴안으면서도,
나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내 형제 중의 형제입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형제들을 세심하게 보살피지 않습니다.
나의 소득을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당신과 나누려고 할 따름입니다.
즐거운 시절이나 괴로운 시절에도
나는 다른 사람들 편에 서려고 하지 않고,
다만 당신의 곁에 서려고 합니다.
나는 내 생명을 버리는 것을 주저하기에,
위대한 생명의 바다에 감히 나의 몸을 던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78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모든 별이 처음으로 빛나기 시작했을 때,
하늘에 모인 여러 신들은
이렇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 완성의 모습이여, 진정한 희열이여!"
그러나 어느 신이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딘가의 빛줄기가 끊어져서 별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여러 신들이 연주하던 하아프의 황금 현이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노래도 멈추어지게 되었습니다.
신들은 몹시 당황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잃어버린 별은 가장 좋은 것이었습니다. 하늘의 영광
이었던 별입니다."
여러 신들은 그 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별이 없어졌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기쁨을 잃어버렸다는 외침이 퍼져
나갔습니다.고요한 밤이 되었을 때,
별들은 서로 웃음을 지으면서이야기를 합니다.
"그 별을 찾아다니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깨어지지 않는 완전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79
만약 내가 지금의 삶에서
당신을 만나지 못하는 운명이라면,
내가 당신을 만나지 못해서
언제나 아쉬움에 잠기도록 하십시오.
내가 당신을 잠시도 잊어버리지 않도록,
꿈을 꾸거나 잠에서 깨어나서도
당신을 만나지 못하는
슬픔의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하십시오.
내가 이 세상의 혼잡한 거리에서 살아가고,
나의 두 손에 커다란 이득이 담겨지게 되더라도,
내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을 언제나 느낄 수 있도록 하십시오.
삶에 지쳐버린 내가 길가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거나
먼지 속에 서 자리를 펼치더라도,
아직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느낄 수 있도록 하십시오.
내가 잠시도 잊어버리지 않도록,
꿈을 꾸거나 잠에서 깨어나서도
슬픔의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하십시오.
나의 방들이 모두 화려하게 장식되고
피리 소리가 들리고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을 때,
내가 당신을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제나 느낄 수 있도록 하십시오.
내가 잠시도 잊어버리지 않도록,
꿈을 꾸거나 잠에서 깨어나서도
슬픔의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하십시오.
80
나는 가을 하늘을 공허하게 떠도는 구름조각과 같습니다.
오, 영원히 빛나는 나의 태양이여.
당신의 손길은 아직도 나의 수증기를
완전히 녹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당신의 빛과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당신과 분리된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당신의 소원이고 장난이라면,
나의 허무한 마음을 잡아서 채색하고 도금을 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변덕스러운 바람에 나를 맡겨서
여러 가지의 기적으로 펼쳐지도록 하십시오.
밤이 되어서 당신이 장난을 멈추려고 할 때에는,
나는 녹아서 어둠 속으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혹은 하얀 새벽의 미소 속으로
혹은 투명하고 순결한 차가움 속으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81
헛되이 지나간 많은 날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하여 몹시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신이여,
내 삶의 모든 순간을 당신은 손으로 마주 잡아 주었습니다.
당신은 모든 존재의 내밀한 장소에 숨어서 씨앗을 길러 싹트게 하고,
봉오리는 꽃을 피우도록 하고,
꽃은 풍부한 열매를 수확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몹시 피곤하였던 나는,
잠자리에 들면서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정원에 피어있는 꽃들이 기적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82
신이여,
당신의 손 안에서 시간은 무한합니다.
당신의 시간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낮과 밤이 지나가고 세월이 꽃처럼 피었다가 사라집니다.
당신은 기다림의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몇백 년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한 송이의 작은 들꽃이 피어나도록 합니다.
우리에게는 충분한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난하기 때문에 조금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내어주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그대로 흘러갑니다.
당신의 제단에는 제물이 놓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비어있는 것입니다.
해가 저무는 무렵에,
나는 당신의 문이 닫히는 것이 두려워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문 앞에 도착한 다음,
시간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83
어머니,
내 슬픔의 눈물로
당신의 목에 걸어드릴 수 있는 진주 목걸이를 엮겠습니다.
별들은 그 빛을 연결해서
당신의 발목에 매달 수 있는 장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만든 장식은 당신의 가슴에 드리워질 것입니다.
부귀와 명성은 당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베풀거나 베풀지 않는 것도
당신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슬픔은 모두 나의 것입니다.
내가 슬픔의 제물을 당신에게 바칠 때,
당신은 자비로 보답할 것입니다.
84
이 세상 널리 퍼지면서,
끝이 없는 하늘에 무수한 형상을 낳는 것은
고독의 슬픔입니다.
깊은 밤에 조용히 별을 지켜보다가,
비가 내리는 칠월의 어둠 속에서
나뭇잎이 떨어지는 서정의 소리를 듣는 것도
고독의 슬픔인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사랑과 욕망이 깊어지고,
괴로움과 기쁨이 깊어지는 것도 널리 퍼지는 슬픔인 것입니다.
시인이었던 나의 가슴 속에서
언제나 녹아 흐르고 있는 노래도 바로 슬픔입니다.
85
전사들이 주인의 집에서 처음으로 나왔을 때,
그들의 힘을 어느 장소에 감추어 두었을까요?
갑옷과 무기는 어느 장소에 있었을까요?
전사들은 초라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전사들이 주인의 집에서 나왔던 날,
그들 위에는 많은 화살이 쏟아졌습니다.
전사들이 다시 주인의 집으로 되돌아갔을 때,
그들은 어느 장소에 힘을 감추어 두었을까요?
전사들은 칼을 버리고 활과 화살도 모두 버렸습니다.
전사들의 얼굴에는 평화가 깃들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열매가 풍성하게 열렸습니다.
전사들은 주인의 집으로 다시 되돌아갔던 것입니다.
86
당신의 하인이었던 죽음이
나의 문 앞에 서 있습니다.
죽음은 당신의 기별을 나에게 알리기 위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바다를 건너왔습니다.
밤은 어둡고, 나의 마음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등불을 들고 문을 열어서,
친절하게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나의 문 앞에 서 있는 죽음은,
당신의 사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눈물을 흘리면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나는 죽음의 발 아래
내 마음의 보물을 모두 펼쳐 놓았습니다.
의무를 모두 수행한 죽음은,
아침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기면서 돌아갑니다.
쓸쓸한 집에는 버림을 받은
나의 자아만이 외롭게 남아 있습니다.
나의 자아는 당신에게 바치는 마지막 예물입니다.
87
절망적인 희망을 품고
나는 그녀를 찾기 위하여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집은 작고 한 번 잃은 것은 다시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섭리는 무한합니다.
나의 신이여.
그녀를 찾는 도중에 나는 당신의 문 앞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저녁 하늘이 드리우는 황금의 덮개 아래 서 있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당신의 얼굴을 열심히 바라봅니다.
나는 영원의 가장자리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사라질 수 없습니다.
희망도 행복도 눈물 속에 바라본 얼굴의 환상도.
오! 나의 텅 빈 삶을 그 바다에 담그십시오.
가장 깊은 충만함 속에 던져 넣으십시오.
단 한 번만이라도 우주의 완전함 속의 사라진
달콤한 접촉을 느끼게 하여 주십시오.
88
황폐한 사원의 신이여!
비나의 끊어진 현은 더 이상 당신을 찬미하지 않습니다.
저녁의 종소리도 당신을 위한 경배의 시간을 알리지 않습니다.
당신을 둘러싼 대기는 적막하고 고요합니다.
당신의 쓸쓸한 거처로 떠돌아다니는 봄날의 미풍이 찾아옵니다.
봄바람은 꽃의 물결을 몰고 옵니다.
그러나 당신을 경배하는 꽃은 더 이상 바쳐지지 않습니다.
당신의 늙은 경배자는 여전히 거절당한 은혜를 갈망하며 떠돌고 있습니다.
땅거미가 지고, 불과 그림자가 어둠의 희미함 속에 뒤섞이는 시간에,
그는 마음에 굶주림을 간직하고 버려진 사원으로 되돌아옵니다.
많은 축제의 날들이 소리없이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황폐한 사원의 신이여!
많은 예배의 밤이 등불도 밝히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립니다.
많은 새로운 우상들이 교묘한 기술의 대가들에 의해 세워졌다가 때가 되면
망각의 성스러운 흐름 속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오직 황폐한 사원의 신만이 영원한 무관심 속에
경배하는 이도 없이 남아 있습니다.
89
더 이상 시끄럽고 요란스러운 말을 하지 말아라.
이것이 내 주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속삭입니다.
나의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말들은
노래의 가락 위에 실릴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둘러 왕의 시장으로 갑니다.
사고 파는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이 바쁜 한낮에 때 아닌 휴식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비록 그들의 때가 아닐지라도,
나의 정원에 꽃들이 피어나게 하십시오.
한낮의 벌들도 게으른 붕붕거림을 내게 하십시오.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나는 선과 악의 투쟁으로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텅 빈 날들의 유희가
나의 마음을 당신에게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이렇게 쓸데없는 엉뚱한 일들로
갑작스럽게 부르신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합니다.
90
죽음이 당신의 문을 두드리는 날,
그대는 무엇을 내놓으시겠습니까?
오,
나는 나의 손님 앞에 삶으로 가득 찬 그릇을 차려놓겠습니다.
결코 빈 손으로 죽음을 떠나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내 생명의 마지막 시간에 죽음이 나의 문을 두드리는 날,
나는 모든 가을날과 여름날 밤의 향기로운 열매들을,
분주한 삶에서 얻은 모든 수고와 이삭을 죽음 앞에 바칠 것입니다.
내가 혼자
나 홀로 그대 만나러 약속한 곳으로 가는 밤은
새도 노래하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고
거리의 집들은 묵묵히 입 다물고 서 있습니다.
내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내 발바닥은 웁니다.
나는 부끄럽습니다.
나는 발코니에 앉아 그이의 발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나무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물은 잠에 빠진 초병의 무릎 위 총검같이
여울 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습니다.
사납게 뛰는 것은 내 심장입니다 ―어떻게 하면 진정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이가 오셔서 내 곁에 가만히 앉습니다.
내 몸이 가늘게 떨립니다.
그리곤 내 눈이 감깁니다.
밤은 점점 검어집니다.
바람이 촛불을 불어 끕니다.
그리곤 구름이 별을 가리며 면사面絲를 잡아당깁니다.
내 가슴 속 보석이
반짝이며 빛을 던집니다.
어떻게 그것을 감추겠습니까.
강우식 해설 /사랑의 신비와 황홀
이 시를 이해하려먼 먼저 인도의 밤의 질량이 피부에 스며들어야 한다. 한국의 가을 하늘이 푸르고 아름답듯이 인도의 여름밤 또한 매우 신비롭다. 어둠의 깊디깊은 질량도 그렇거니와 이름모를 나무들로 가득한 숲과, 숲 속에 흐르는 꽃향기와 하늘에 뜬 별들을 보고 있으면 어둠 속에 빠져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마약과 같은 황홀함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신비롭고 아름다운 밤을 가진 인도 땅의 소년·소녀들은 밤을 통하여 그들의 가슴을 여는 사랑을 속삭인다. 하늘의 별처럼 눈동자를 빛내며 숲의 꽃향기 같은 서로의 입김을 내뿜으며 향유로 가득찬 항아리를 열듯이 가슴과 가슴으로 사랑을 나눈다.
아름다운 밤하늘을 바라보아서 인도 여인의 눈동자는 신비로운가 보다. 달콤한 밤의 질량과 밀착되어서 인도 여인의 피부는 밤의 색깔인가 보다.
그리고 사랑의 뜨거운 열기를 씻어주듯 내리는 한 줄기 소나기. 몸과 마음을 흠뻑 적셔주는 밤 소나기. 그 찬란한 빗줄기를 꿈꾸는 사람들은 인도식 사랑이 무엇인가를 어렴픗이 알리라.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아그라의 타지마할 궁. 타는 듯한 불볕 속에서 꿈꾸듯 서 있는 대리석의 이 거대한 궁은 샤 자한이 그의 왕비 마할을 위해 지은 궁전이다. 궁전의 숲에는 그들의 사랑의 금슬처럼 수많은 앵무새들이 살고 있는 것을 나는 연전에 보면서 인도인의 사랑, 이승에서의 그 다함 없는 사랑의 실체를 보는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인도는 너무나 뜨거운 나라이다. 그들이 맨발로 거니는 땅도 뜨겁고, 사랑도 뜨거운 원시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나라이다. 도마뱀이 방 안의 벽에 붙어 기어다니는 그런 원시의 품에서 그들은 원색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이 시를 접하면 훨씬 생생히 이해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시를 읊고 있으면 순수한 사랑의 물결이 가숨 속에 가득 차 오른다. 이 시 속의 사랑에는 사랑에 대한 맹세나 아픔, 아무것도 없다. 그저 사랑하는 만큼의 사랑이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과정이 앞 연에 묘사되어 있다. 모든 것은 정적 속에 감싸여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자신의 발소리도 스스로가 들을 만큼 정적 속에 있다. 그리고 한 소녀는 약속 장소의 발코니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린다. 아, 그 신비한 고요 속에서 그 소녀는 깨닫는다. ‘사납게 뛰노는 것은 내 심장입니다 ―어떻게 하면 진정되겠습니까’
앞 연에 타고르가 묘사한 시 구절은 자연 속에 깊이 밀착되어 있는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시이다. 사랑의 분위기를 자연의 묘사와 일치시킴으로써 시의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또 세상의 만물은 고요 속에 있는데 유달리 자기 심장만이 뛰는 것 같은 사랑의 크나큰 희열을 그려내고 있다.
둘째 연은 그런 가슴의 희열을 갖고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고 또 그의 품에 안기는 것을 그리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처음으로 안기는 감동의 세세한 것들이 그려져 있다.
내 몸이 가늘게 떨립니다
그리곤 내눈이 감깁니다 / 밤은 점점 검어집니다
이 구절은 첫 포옹의 환희를 나타낸 것이다. 특히 ‘밤은 점점 검어집니다’라는 구절에 이르면 정신까지도 그냥 아득해지고 마는 무아의 경지가 밤과 같은 상징성을 띠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타고르는 아시아권에서는 최초로 19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다. 그의 「키탄잘리」 등의 시편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읽히고 있으며, 특히 「님의 침묵」이라는 시로 유명한 한용운도 타고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고르의 작품 가운데 한국을 소재로 한 시로는, 한국 찬양의 「아시아의 등불」과 3·1운동의 실패를 같이 아파해 준 「패자의 노래」 등이 있다.
‘영혼의 영원한 자유는 사랑 속에, 위대한 것은 작은 것 속에, 무한한 것은 형태의 구속에서 발견된다’라고 한 그의 말은 그의 시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타고르는 인류의 영원한 자유는 사랑 속에 있음을 시로 나타내려고 한 시인이다. 그의 사랑은 결코 거창한 외침이 아니다. 첫사랑의 남녀가 처음으로 포옹하는 기쁨에 잠기듯이 그런 순수한 사랑이야말로 어떠한 물리적인 힘으로도 변질될 수 없는 사랑의 자연이요, 본질이며, 생명의 보석이다. 가슴 속에 간직된 빛나는 보석이 있다면 그것이야먈로 사랑이 아닌 다른 무엇이겠는가.
겨울이 온다. 눈이 내릴 것이다. 춥다고 어떻게 사랑을 감출 수 있으랴.
<문학아카데미>